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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주년 기념-트래비 기자들이 공개하는 ‘나만의 특별한 여행지’②체코 체스키크롬로프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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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Cesky Krumlov   김기자의 특별한 ‘그곳’

재즈 선율에 취했던
동화 마을의 밤, 체스키크롬로프


여행은 조급증이다. 떠나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다음 여행을 꿈꾸게 되니까. 여행이 일상이 되어 버린 여행기자지만, 나는 출장 겸 여행을 떠나서도 ‘다음 휴가 때는 어디로 갈까?’를 매번 고민하고 그 대답 또한 매번 바뀌는 성급한 여행자다. 새로운 곳에 대한 갈망과 익숙한 곳을 다시 밟고 싶은 욕구가 늘 충돌하는 와중에, 내가 특별히 아끼는 그곳을 곰곰 반추해 본다. 내 여행에 있어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시간은 언제였던가. 그리하여 ‘내가 특별히 아끼는 나만의 여행지’에 대한 대답은 나의 첫 여행으로 되돌아간다. 

글·사진  김영미 기자


1 허름하고 낡았지만 예쁜 체스키크롬로프의 민가 2 구시가의 건물들은 대부분 호텔 아니면 가게다 3 블타바강이 동화 마을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다 4 그림으로 그려진 체스키크롬로프성의 외벽 5 가게에 진열된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별일 없이 살던 나의 무미한 청춘에서 가장 영롱하게 반짝이는 지점은 스물넷의 여름날이다. 그 여름 나는 홀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길고도 짧았던 40일간의 여행 일정이 모두 명확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어떤 곳은 좁다란 골목의 풍경과 공기의 밀도까지 똑똑히 기억나는 반면, 어떤 곳은 그곳을 다녀왔다는 사실조차 종종 까맣게 잊고는 한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으레 들었던  “어디가 제일 좋았어?”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체코에 체스키크롬로프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말이야 정말 낭만적이야….” 비록 혼자였음에도 행복함에 눈물겨웠던 여행지도 많았고, 좋아 죽을 뻔한 순간도 많았지만 체코만큼 여운이 길게 남은 여행지는 없었다. 

사랑스러운 프라하와 눈물겨운 작별을 한 후 기차를 타고 체스키크롬로프에 닿았다. 울퉁불퉁한 돌길 위를 힘겹게 구르며 소음을 유발하던 나의 캐리어는 20여 분의 사투 끝에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주홍색 지붕들과 파스텔톤 집들, 개성있고 귀여운 간판들, 구불구불한 돌길…. 체스키크롬로프의 풍경은 상상 그 이상으로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체코 남서부의 체스키크롬로프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중세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곡선을 그리며 마을을 휘감고 있는 블타바강은 동화책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이 마을의 경치를 완성 한다. 마을의 랜드마크인 체스키크롬로프성의 외벽은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을 구성하고 있는 벽돌과 창문, 석상들까지도 가만히 살펴보면 실제가 아니라 직접 그린 그림들인데, 진짜 창문과 그림 창문이 쉽사리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졌다. 느긋하게 성 뒤편의 정원을 거닐다 문득, 나 말고 아무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인적 없는 좁은 길에서 그림으로 그려진 중세 건물에 둘러싸여 있으니 마치 동화책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갑자기 떠나온 시간여행에 너무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신비로운 정적을 깨기 싫어 함박웃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노래를 대신했다. 

비 내리는 저녁, 마을을 어슬렁거리다가 재즈 클럽에 성큼 발을 디뎠다. 여행지에서 밤 문화를 전혀 즐기지 않던 당시의 내가 재즈 클럽에 들어선 것은 어떤 운명적인 이끌림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섯 개도 넘는 종류의 관악기를 혼자 연주하던 음악가와 기타로 반주를 하던 또 다른 음악가, 작은 클럽 안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흥겹고도 감미로운 선율을 온 마음과 온 귀를 열고 감상하던 사람들 그리고 진한 커피 한 잔. 그 시간 동안 나는 진정 행복으로 충만했다.
체스키크롬로프는 프라하에서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경우가 많으나 하룻밤 이상 묵고 가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반나절로도 충분히 둘러본다고들 말하지만, 낮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풍기는 체스키크롬로프성의 야경과 늦은 밤 동화같은 마을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재즈를 빼놓으면 섭섭하기 때문이다.

* 체스키크롬로프에서 만난 에곤 실레 

체스키크롬로프 여행이 더욱 다채로웠던 이유는 ‘에곤 실레 아트 센터’ 때문이었다.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분명 오스트리아가 낳은 화가일진대, 어찌하여 그의 미술관이 체스키크롬로프에 있을까. 체스키크롬로프는 에곤 실레 어머니의 고향이었다. 늘 체스키크롬로프로의 여행을 갈망했던 그는 1911년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체스키크롬로프로 이사해 약 3개월간 작품활동을 했다.

양조장으로 사용되던 16세기의 우아한 건축물은 1993년 에곤 실레 아트 센터로 거듭났다. 이곳에는 에곤 실레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와 에곤 실레의 데드마스크(death mask), 그의 유일한 조각 작품 및 다수의 수채화와 드로잉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드로잉을 중심으로 전시해 놓아 비엔나의 레오폴드미술관에서 에곤 실레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또 다른 감동이 있다.


* 여행길엔 음악을 챙기세요!

그곳의 생생한 소리까지 느껴야 하므로 여행지에 가서 MP3 따위 멀찍이 둔다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지에 꼭 맞는 음악은 여행의 감흥을 몇 배는 풍성하게 해준다.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여행지 OST들을 아직 많이 찾지는 못했지만, <트래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해 볼까 한다. 독자 여러분도 지극히 주관적인 ‘나만의 여행 OST’를 만들어 가는 재미를 느껴 보시기를.

파리에서 바토무슈를 탈 때
아멜리에 OST 중
<La Valse D’amelie>

파리여행의 목적은 영화 <아멜리에> 따라잡기였다. 아멜리에가 일하던 카페 <레드물랭>에서 크림 부흘레를 먹고, 생마르땡 운하에서 아멜리에가 물수제비를 뜨던 곳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주구장창 걷기도 하고, 몽마르트르에 올라 나만의 니노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때를 위해 준비해 간 아멜리에 OST는 의외로 세느강에서 바토무슈를 타면서 반짝이는 에펠탑을 바라볼 때 가장 절묘했다. 하여 파리의 밤은 두 배로 황홀했다.

호주 시드니의 해질녘
동방신기  4집 중 <넌 나의 노래>

호주 울릉공에서 시드니로 오는 길, 창밖에는 노을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마침 MP3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그곳의 풍경이 너무도 잘 어울려, 이 노래를 세 번쯤 반복해 들었다. 그 후로 이 노래를 들으면 호주의 노을이 생각난다.

호주 아웃백 한가운데를 달리며
컨트리송

호주 앨리스스프링스에서 킹스캐년으로 그리고 또 에어즈록으로 달리던 길, 달려도달려도 끝없는 고속도로 위의 낡은 봉고차에서 흘러나오던 이름 모를 컨트리송은 반세기쯤 과거로 온 듯한 느낌이 풍겼던 호주 아웃백 분위기에 딱 맞았다.

달리는 기차나 자동차에서 
일기예보 4집중 <떠나요>

‘떠나요 둘이서 아무도 모르게’ 이 노래는 특히 달리는 탈것 안에서 창밖으로 휙휙 바뀌는 풍경들을 감상하면서 듣는 게 제맛. 신나는 리듬이 여행 기대 지수를 팍팍 높여 준다. 자세히 들어 보면 연인에게 불러 주는 가사라 솔로들은 조금 서글프지만.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에서 
김동률 5집 중 <출발>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여행을 떠나는 지금,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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