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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전수일 감독-그에게서 묻어나는 바람의 흔적"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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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전수일 감독
그에게서 묻어나는 바람의 흔적


영화를 보게 된 건 ‘최민식’이라는 반가운 얼굴 때문이기도 했지만 포스터에서 본 히말라야의 경이로운 풍경과 예사롭지 않은 제목 때문이었다. 한 순간도 머물지 않는 것이 바람이건만, 히말라야를 왜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 했을까. 이제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혹여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라면 잠시 책을 덮어두고 지금 당장 영화관으로 달려가시길. 필력을 다해도 히말라야의 장대함을 표현해낼 자신이 없을 뿐더러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가슴 속에 남겨진 희망은 제각기 다른 온도로 느껴질 테니.

글·사진  이민희 기자   사진제공  올뎃시네마


낯선 이름, 전수일

배우 최민식을 알고 영화를 보는 이는 많아도 감독 전수일의 이름 석자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기자 역시도 히말라야와 최민식이라는 이름에 먼저 끌려 영화를 본 뒤에서야 ‘이를 만든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으니 말이다.

각종 언론 자료를 검색한 결과 그는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이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검은 땅의 소녀와> 등 연출한 6편의 영화마다 각종 국제영화제에 진출하는 진기록을 세운 걸출한 감독이었다. 이번 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역시 동유럽뿐 아니라 유럽의 대표적인 영화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히말라야>는 해외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거예요. 감독으로서 기분 좋은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의 더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작가주의 감독, 대표적인 독립영화 감독 등 이름 앞에 붙는 수식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영화는 상업영화에 길들여진 대중에겐 결코 쉽지 않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 기러기 아빠 ‘최’(최민식)는 우연히 동생의 공장에서 네팔 청년 ‘도르지’의 장례식을 보게 된다. 이후 그는 도르지의 유골을 고향에 전하기 위해 히말라야의 자르코트라는 마을에 간다는 내용으로,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의 무게와 치유에 대한 갈증을 견뎌내기란 녹록치 않다. 또 양복에 구두차림으로 히말라야를 오르는 위태로운 모습의 최민식을 묵묵히 쫓는 카메라의 시선, 90분의 상영 시간 동안 열 마디나 될까 한 절제된 대사, 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 같은 구성, 디테일한 상황설명의 부재 등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불친절한 수일씨’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최’가 히말라야로 떠나는 과정이 논리적이지 않다고도 해요. 하지만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과정이 논리적이지 않을 뿐더러 삶 자체는 우연의 연속이 아니던가요. 또 하나하나 따지기보다는 묵묵히‘최’의 정서를 따라가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상실감과 살고자 하는 욕망 등을요. 그래서 배경도 세상의 끝, 히말라야로 결정했고요.”

세상의 끝, 히말라야

평소 여행을 통해 영화를 구상을 한다는 그가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것은 2003년의 어느 날이었다. 마침 술도 마셨고, 잠은 오지 않았으며, 영화적 고민으로 가슴은 답답했기에 무작정 방콕으로 갔단다. “방콕은 동남아의 허브로 전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잖아요. 방콕에 도착해서 전광판을 봤는데 수많은 항공편명 중 카트만두가 눈에 확 들어왔고, 그렇게 ‘그냥’ 히말라야로 갔어요.”
두 번째 방문은 그로부터 꼭 일년 뒤에 이루어졌다. 이번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포카라에서 해발 2,700m의 작은 마을 좀솜을 거쳐 3,800m의 고산마을 자르코트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해발 3,000m가 넘어가자 이미 풀과 나무는 사라진 지 오래요, 광활한 사막이 펼쳐진 듯했고 마침 그 길 끝에서 만난 자르코트는 그에게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엔 우리의 리듬과는 다른 속도의 삶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 살면서도 건강하고 순수하며 당당했죠. 영화에도 나오지만 염소를 잡는 이들의 모습은 엄숙하기까지 해요. 피를 보이지 않고 심장을 조여 서서히 죽이잖아요. 마지막으로 코와 귀에 성수를 뿌리며 의식을 치러 주죠. 삶과 죽음의 공존, 자연과 인간의 완전한 합일, 날것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함. 이런 것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단 한번의 여행을 통해 목표한 것을 이루지는 못할지언정 어떠한 계기는 얻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히말라야는 그리 만만한 촬영지가 아니었다. 이방인을 압도하는 존재감만큼이나 배우는 물론 전 스탭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카트만두에서 좀솜까지 소형비행기로 이동할 적엔 협곡 사이로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부는 바람에 기체가 거의 춤을 추다시피 하며 마을에 도착했다고.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사람이 오는 건 처음이다’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니, 그 아찔했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고산병은 말할 것도 없다. 가만히 서 있어도 호흡이 가빠 오는 판국에 자르코트까지 걸어 올라가며 촬영을 하려니 마치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분이었단다.

다시, 그곳으로

마음이 무거울 때면 훌쩍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그는 진정한 ‘길 위의 여행자’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는 생소한 경험이야말로 그에게는 다시 내일을 살게 하는 에너지가 되어 준다고. “여행은 방황인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답을 찾게 하죠.”

영화감독이자 교수로 강단에 서는 그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도 ‘자아 찾기’다. 일반 드라마나 상업영화, 장르영화를 답습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정서를 반영하는 영화를 만들라는 것.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영화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믿음, 흐름에 편승하지 않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7월 초 체코에서 열리는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뒤 다시 한번 히말라야를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1년 여의 사전 준비기간 동안 이미 5번을 오갔고, 6주간 머물면서 촬영을 했으니 지겨울 법도 한데 그는 ‘왠지 가야 할 것만 같다’고 했다. “히말라야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나 봐요. 그곳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난 일년 반 동안의 시간을 돌아보고 싶어요.”

다시 찾은 히말라야 앞에 주인공 ‘최’가 아닌 인간 ‘전수일’로 서는 기분은 어떨까. 그는 또 한번 지구의 끝에서 자신과 맞닥뜨리고, 도전하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어올 게다. 영화 속 ‘최’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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