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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여름휴가특집 theme2 - 고택체험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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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2 고택체험

송소고택으로의 초대

그곳엔 땀을 식히는 청량한 바람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초록빛 속살이,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옛 이야기가 있다. 생활의 독을 씻어내고 방황하는 걸음 멈추어 쉬는 곳, 청송으로 그대를 초대한다.
글·사진  이민희 기자   취재협조  청송군청 www.cs.go.kr


한여름 송소고택
그때, 그곳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반 강제로 따라나선 가족의 여름 휴가지는 청송의 송소고택이었다. 나른한 오후엔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온 가족이 한 방에 누워 수다를 떨었는가 하면 새벽엔 가장 먼저 일어나 마을을 산책했다. 별빛 쏟아지는 마당에 불을 지펴 구워 먹은 고구마는 왜 그리 맛있던지. 떠나기 직전까지 TV도, 에어컨도 없는 곳으로 왜 가야하냐며 투덜거렸지만 어느덧 송소고택에서의 하룻밤은 가장 편안하고 여유로운 한때로 기억되곤 했다.

그리하여 들판 가득 싱그러운 벼이삭이 무르익는 7월, 다시 청송을 찾았다. 반가운 길손이 찾아온 줄도 모르고 마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단잠에 빠진 듯 고요하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흩날리는 잎사귀의 아우성이 정지된 일상에 작은 파장을 일으킬 뿐. 그 바람을 깊숙이 들이마셔 가슴 속 켜켜이 쌓인 먼지를 씻어내고 마을 옆 개울에 발을 담가 도시의 때를 벗겨냈다. 조선시대 지체 높은 가문이었던 청송 심씨의 고택에 발을 들이기 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픈 마음 때문이다. 



120여 년 전 시간 속으로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영조(英祖)때 만석(萬石)의 부를 누린 청송 심씨의 7대손 심호택이 1880년경에 지은 고(古)가옥이다. 총 7개동, 99칸 규모의 한옥으로 조선시대 전형적인 부잣집의 형태를 취한다. 여기서 99칸이란 방의 개수가 아닌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을 뜻하는지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으리으리하지는 않다. 하지만 궁궐을 제외한 사가는 99칸 이하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사가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청송 심씨 가문의 위세는 솟을대문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다. 대문은 열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요란한데 이는 단순히 낡아서 나는 소리가 아니란다. 부와 권세가 클수록 솟을 대문도 크고 그 여닫는 소리 또한 크다는 사실. 실제로 별채로 통하는 문과 그 소리를 비교해 보면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육중한 소리로 객을 반기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니 익숙한 안마당과 큰사랑채가 눈에 담긴다. 유순한 표정의 삽살개도, 헛담 아래 핀 봉선화도 5년 전 그대로다. 흔히 접할 일 없는 고택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싶다면 큰사랑채 앞에 놓인 헛담도 눈여겨보시길. 사랑채에서 안채로 이어지는 중문 사이 마당에 안채에 드나드는 사람이 사랑채를 볼 수 없도록 헛담을 두었다. 이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외법이 엄격했던 양반가에서나 볼 법한 풍경으로 사랑채를 감싸 안은 헛담이 아늑하다.

 

고택의 깊은 밤

고택의 시간은 여느 장소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TV도, 에어컨도 없는 방이 대부분인데다 방이라고 해봤자 덩그러니 놓인 이불 한두 채가 전부. 화장실이 방마다 있을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시원하게 바람이 통하는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자잘한 피로가 사그라지고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되 곁에 머문다. 무더운 오후 시원스레 내리는 여름비는 이곳 고택에서만큼은 불청객이 아닌 행운이다. 어차피 심산유곡에 홀로 앉아 산책과 독서 등의 소일거리나 할 요량이었다면 더욱 그러하다. 더위를 물리치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벗 삼으면 근사한 노래 한 곡 없이도 운치 있는 하루를 보내는 셈이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사이 건너방에 터를 잡은 한 가족이 마당을 독차지했다. 시골 풍경이 생소한 아이들에게 보드라운 흙마당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터일 터. 고택에서 마련한 제기차기, 새총, 투호, 국궁 등 전통놀이기구들 또한 훌륭한 장난감이다. 이들을 이용한 민속놀이 5종 경기에 도전해 최고 점수를 기록하면 고추장 항아리 등을 받을 수 있으니 가족끼리 겨루기에 나서 보는 건 어떨까.

짐을 풀고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바람도 차다.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낮에 사 온 맥주를 한 캔 따고 한동안 읽지 못한 책을 펼친다. 건너방의 아이들은 벌써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고 곱게 발린 창호지 사이로 부부의 낮은 속삭임이 들려온다. 처마 끝에 걸린 달빛이 은은하게 스며드는 밤이다.
위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76번지  가격 4만원(행랑채방)~18만원(별채), 아침식사 6,000원  문의  054-873-0234~5 songso.co.kr

옹기 & 전통염색체험

오감으로 즐기는 한국의 멋

선비의 기개로 충만한 소나무가 지천이요, 곳곳에 크고 작은 한옥이 둥지를 튼 청송. 전국에 농촌테마마을을 중심으로 전통 체험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지만 이왕이면 한국적인 멋이 가득한 이곳 청송에서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송소고택으로 유명한 참소슬마을은 청송을 대표하는 전통과 풍류의 고장이다. 청송 심씨의 세거지(世居地)이며 송소고택 외에도 기념물 421호의 초전댁과 소류 심성지 선생이 기거하던 소류정 등이 있다. 마을 곳곳에서 느껴지는 깊은 유서와 유구한 내력 때문인지 참소슬마을이 준비한 체험 프로그램은 더욱 예스럽다. 우선 고택명상 체험으로 마음에 총명한 기운을 불어넣고 청송고추, 청송사과 등 마을의 대표적인 작물을 거두는 참농사 체험으로 몸을 다져보자. 전통염색체험은 선인들의 방식 그대로 감, 쪽, 황토, 쑥, 양파, 솔가지, 홍화, 치자 등 천연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좋다. 체험 과정이 쉽고 하얀 천이 금세 다양한 빛깔로 물드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흥미롭기까지 하다. 체험 신청은 참소슬마을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청송군 진보면으로 이동하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된 이무남 옹기장을 만나 볼 수 있다. 흔히 옹기나 도자기 하면 여주와 이천을 떠올리지만 청송에서 나는 오색황토야말로 백, 흑, 황, 적, 청색의 점토를 고루 갖추고 있단다. 실제로 이무남 옹기장은 상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옹기를 빚기 시작하면서 좋은 흙을 따라 이곳 청송에 터를 잡았을 정도다. 

옹기를 빚는 기구는 손물레와 전기물레 그리고 발물레로 나뉘며 체험은 손물레로만 가능하다. 전기물레와 발물레는 오랜  수련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선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다고.  손물레만으론 성이 차지 않아 갖은 애교(?)와 회유 끝에 전기물레에 앉을 수 있었는데, 이거 정말 만만치가 않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물레의 속도를 따라잡자니 양손에 힘이 고루 실리지 않아 모양이 엉기고, 모양에 신경을 쓰자니 물레가 자꾸 멈춰 버리는 게다. 길고 긴 사투를 벌인 끝에 엉성하지만 밥그릇이라 우겨도 될 법한 옹기가 탄생했다. 양손부터 팔뚝, 심지어 다리까지 흙으로 범벅이 됐음에도 어찌나 흐뭇하던지. 전통 옹기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배울 것도 많은 데다 이런 재미까지 있으니 아이를 둔 가족은 물론, 어른들 역시 한번 들러 볼 만하다. 가족이나 학생 또는 단체별로 전화로 체험 신청이 가능하다. 

문의 cham.go2vil.org(참소슬마을), 054-874-3362(옹기체험)

청정 청송 돌아보기 

주산지, 새벽을 깨우는 바람

다음날 새벽 5시, 주산지에 가기 위해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이보다 더 부지런히 잠을 깨우는 것은 장닭의 우렁찬 울음이다. 눈은 떴건만 이불에서 빠져나오기가 못내 아쉬워 몸을 곰지락거리며 늦장을 부리고 있자니 어스름이 밝아 오는 새벽의 푸른빛이 문살에 배어들고 이따금 스산한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분명 여름의 복판임에도 자다 깨서 두꺼운 이불을 찾게 하는 시린 바람. 이렇게 해가 사라진 청송의 여름은 7월이란 숫자가 무색토록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했다. 

송소고택에서 주산지까지는 차로 30여 분, 주차장에서 또다시 도보로 10분 정도 올라간다. 주산지는 주왕산과 더불어 청송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자리한 지 오래. 높은 산봉우리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주왕산자락에 자리하지만 경사가 평이하고 저수지 가장자리로 울창한 산책로가 있어 이른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 좋다. 원래의 용도는 조선 경종 때 인위적으로 만든 농업용 저수지로 지금까지 그 어떤 가뭄에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는 든든한 저수지란다. 하지만 우리에겐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보았던 몽환적인 광경으로 더욱 익숙한 것이 사실이지 않던가. 비록 호수에 오롯이 떠 있던 절은 영화를 위해 지어진 세트장으로 지금은 철거되고 없지만 때를 잘 맞춘다면 영화 속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주산지는 물에 잠긴 왕버들과 거울 같은 수면 위로 비친 초야의 풍경이 제 맛이니 이를 보기 위해선 물때를 잘 봐야 한다. 물이 줄고 늘기를 반복하는 저수지인지라 자칫 수량이 부족한 시기라면 왕버들의 뿌리만 확인하고 돌아오는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다. 주산지를 더욱 그윽하고 아련한 별유선경으로 만드는 것은 왕버들을 감싸 안은 자욱한 안개.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하며 일교차가 커지는 가을 새벽을 노리는 것이 현명하다. 

기자는 불운하게도 수면 가득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새벽빛이 감도는 숲의 정취와 물안개 대신 능선을 타고 스멀스멀 하늘로 향하는 운무의 행렬 또한 남부럽지 않은 풍경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의 춤사위,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 뿌리를 묻은 채 의연하고 고고하게 선 왕버들의 기개 앞에서 왠지 모를 아련함이 밀려온다.
위치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 
 
문의  청송군청 054-873-2291 www.cs.go.kr



물길을 열어 대지를 적시다

가만 살펴보면 산과 산이 만나고 골과 골이 겹치는 수려한 산세엔 약속이나 한 듯이 정자나 누각이 들어선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그 속엔 자연과 하나되어 마음을 닦고 사상을 논하며 풍류를 즐기던 사대부의 이야기가 절절이 묻어난다. 청송의 너른 물길을 아우르는 신성계곡 벼랑 위에 자리한 방호정 또한 마찬가지. 

일찍이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이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 하였다면 신성계곡은 이와는 반대로 고운 모래톱과 들녘을 어루만지며 서정적인 풍경을 펼쳐놓았다. 안덕면 신성리에서 ‘이리도 곱다’라는 뜻의 고와리까지 이어지는 3km 구간 곳곳에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선 절경을 자랑하니 이런 풍광을 읊조릴 수 있는 정자 하나 없다면 오히려 서운할 따름이다.

방호정은 광해군 11년 조준도 선생이 어머님의 묘가 바라보이는 곳에 세운 정자로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의 ‘사친’ 또는 ‘풍수당’이라 하였단다. 이후 창석 이준, 동계 조형도 선생과 같은 인물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익히고 산수를 즐겼다. 정자나 전통가옥의 멋이나 건축기법을 아는 이라면 방호정의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을 터. 물론 벼랑 끝에 아슬하게 자리한 방호정의 난간에 기대어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물길을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옛 선비들의 풍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주왕산 시린 계곡이 사납게 느껴진다면 이곳 신성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린 아이도 안전하게 놀 수 있을 정도의 완만한 경사와 깨끗한 물에서만 볼 수 있다는 다슬기가 서식할 정도로 맑은 수질을 자랑한다. 때문에 주말이면 청송 사람들의 여름철 휴식처로 활기를 띤단다.

드라이브 겸 신성계곡 방호정에서 북서쪽으로 굽이진 도로를 내달리면 이내 좁아진 강폭 때문에 거세진 물줄기와 이에 맞선 순백의 바위군을 만나게 된다. 세상의 어떤 티끌도 닿지 않은듯, 마치 누군가의 손길로 빚어놓은 듯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 ‘백석탄(白石灘)’이다. 행여 오가는 발길에 때라도 묻을까 싶어 밟기가 아까울 정도. 아니나 다를까 신성계곡에서 이곳에 이르는 구간 전체가 청송 8경 중 1경으로 손꼽힌단다. 이 중 예부터 고기를 낚았던 조어대(釣魚臺)와 고기를 낚다 보면 저절로 시상이 떠올랐다는 가사연(歌詞淵)이라는 연못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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