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스위스 베른 - 두근두근 설레이던 한나절의 여정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08.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근두근 설레이던 한나절의 여정

알프스를 목적으로 스위스를 찾는 대다수 여행자들이 베른을 그냥 지나치는 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해 스위스로 입국하는 공항이 바로 베른에 있으니 어차피 지나는 길이라면 더도 덜도 말고 딱 한나절만 머물러 보자. 담박하고 여성스러운 스위스가 알프스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글·사진  도선미 기자   취재협조  스위스관광청 www.myswitzerland.co.kr



아레강 이편과 저편

베른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천상 여행지다. 지도로 만나는 베른의 생김새는 특히 매력적인데, 푸른 뱀처럼 구불텅한 아레강(Aare)이 온몸으로 감싼 안쪽이 구시가지를, 바깥쪽이 외곽을 형성하고 있다. 아레강 이편의 구시가지에는 베른역과 시청, 연방의사당, 대성당 등 천여 년 전부터 수백년 전, 수십년 전까지 세세손손 연륜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빽빽하다. 반면 아레강 저편은 숲이나 정원이 대부분이라 다소 헐렁한 느낌. 하지만 석조 건물들이 단조로운 색감을 이루는 이편과는 달리 신록의 프리즘 속에 폭 파묻힌 저편은 그 나름의 운치가 그만이다. 

베른이 이런 구조를 갖게 된 것은 1191년 체링엔가의 베르톨트 5세에 의해 처음 건설됐을 당시 요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자연히 아레강을 해자로 삼는 요새 안쪽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3세기에 베른이 제국자유도시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베른 대성당을 비롯한 이 도시의 랜드마크들이 속속 구시가지에 세워졌다. 베른이라는 도시명의 유래 역시 베르톨트 5세와 관련이 깊은데, 그가 처음으로 사냥한 동물이 곰이라서 도시 이름이 곰(Bear)에서 유래한 베른(Bern)이 됐다는 일화가 있다. 베른 시내에서 틈틈이 곰 동상이나 깃발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 작정하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싶다면 ‘베른카드’를 사 보는 건 어떨까. 27개의 박물관과 모든 공공 교통수단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패스로, 베른 기차역과 베어 피트에 있는 베른관광안내소(tourist center)에서 1일권 20CHF, 2일권 31CHF, 3일권 38CHF에 구입할 수 있다. 

■ 관광 책자에 소개된 설명만으로는 도무지 성에 안 찬다면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자.  관광안내소에서는 하루에 18CHF에 아이팟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해 준다. 의회광장, 시계탑, 베어 피트, 베른 대성당 등 베른의 주요 관광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거닐면 똑같은 장소도 색다르게 보인다는 사실. 물론 영어 듣기 실력은 필수다.





구시가지 거리에서 천년 거스르기

구시가지의 명소들은 베른역에서 아레강 저편으로 이어지는 나이덱 다리(nydeggbrucke) 사이에 포진해 있다. 전차가 가로지르는  스피탤 거리(Spital gasse)에서 남자 감옥으로 쓰였던 프리즌 타워를 지나 크람 거리(Kram gasse), 게레히티하카이트 거리(Gerechtigkeits gasse)까지 이어지는 널찍한 일직선 보행자 거리가 바로 메인 스트리트다. 

크람 거리의 명소는 시계탑과 아인슈타인 하우스다. 13세기경 만들어졌다가 16세기에 재건된 시계탑은 매시 정각 4분 전부터 펼쳐지는 자동 인형들의 공연 때문에 유명해졌다. 장난스러운 모습의 광대는 북을 치고 그 아래에 군악대와 곰 인형들이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는 금박을 입힌 해 모양의 시침과 달 모양의 분침이 은은하게 석양 빛을 반사하면서 환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은 베른에서 7년 정도를 머물렀다. 그의 전 일생으로 보자면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크람 거리의 집에서 그는 인류의 우주관을 뒤바꾼 상대성이론을 발견했다. 그의 이론에 대한 이해와는 상관없이 당대의 천재가 남긴 옅은 흔적을 맡는 것만으로 아인슈타인 하우스 방문은 흡족하다. 아치형 석벽에 붉은 글씨로 아인슈타인 하우스(Einstein haus)라고 쓰인 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총 3층으로 구성된 집은 2층은 아인슈타인이 묵었던 거실을 보존해 놓은 생가로, 3층은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영상자료를 상영하는 세미나실과 각종 책자, 기념품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미니 박물관으로 구성됐다. 아인슈타인 하우스에 왔다가 호기심에 발동이 걸렸다거나 ‘상대성’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느끼고 싶은 여행자라면 교외의 아인슈타인 박물관에 가 보는 것도 좋다. 세계 최대의 아인슈타인 박물관으로 아인슈타인의 생애와 업적을 다양한 시청각 매체를 활용해 보여 주고 있어 흥미롭다. 

베른에는 17세기에 만들어진 유럽 최대의 석조 아케이드가 있다. 크람거리부터 게레히티하카이트 거리 역시 6km에 이르는 아케이드의 일부분. 베른역 주변의 스피탤 거리가 대부분 브랜드숍인 것과 달리 이곳 아케이드 내에는 대부분 보세숍이 들어서 있다. 독특한 것은 단이 높은 아케이드와 보도 사이의 사면에 줄지어 늘어선 여러 개의 문들이다. 이곳은 과거에 저장고로 사용됐던 지하 켈러로 현재는 아기자기하고 앤티크한 소품들을 판매하는 가게가 많다. 

지도를 보면서 곳곳에 세워진 분수들을 섭렵하는 것도 구시가지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 특히 십계명을 펼쳐든 모세상, 달타냥을 떠올리게 하는 머스킷총병상, 괴력의 상징 삼손상 등 11개에 달하는 독특한 조각 분수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니다 보면 재미뿐 아니라 길 익히기도 좋으니 일석이조다. 16세기에 세워진 분수들은 1세기 전까지만 해도 도시의 처자들이 물도 긷고 시시콜콜한 최신 가십거리도 듣기 위해 모여들던 장소였다고 한다.


■ 시계탑 내부를 견학하고 싶다면 매일 오후 2시부터 50분 동안 진행되는 유로가이드투어에 참가하면 된다. CHF12.
■ 아인슈타인 하우스는 오전 10시~오후 5시(~9월 말)까지 개방하고 입장료는 CHF6. (www.einstein-bern.ch.) 아인슈타인 박물관의 개방시간은 아인슈타인 하우스와 동일하다. 입장료는 CHF13.


짧지만 강렬한
스위스제 씽씽카의 질주! 

올드타운 스쿠터 투어 

걷는 건 쉽게 지치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 싱거워서 싫다는 여행자들이라면 베른시에서 운영하는 스쿠터 투어를 추천한다. 물론 스쿠터라고 이름 붙인 물건은 엄밀히 말하면 스쿠터가 아니다. 생긴 건 자전거요, 작동법은 영락없는 씽씽카. 100% 무동력이라 짝발을 열심히 굴려야 하는 점이 다소 수고스럽지만 투어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베른의 골목골목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매력이다. 무엇보다 두 발을 받침대에 모으고 내리막길인 융컨 거리(Junkern gasse)를 내달리는 그 기분이란! 아레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거리쪽으로 고개 숙인 갖가지 칸톤의 휘장 밑을 지날 때는 마치 예도대를 통과하듯 우쭐함과 흥분, 상쾌함이 뒤섞여 벅차오른다. 짧지만 강렬한 스위스제 씽씽카의 질주는 베른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 중 하나. 10명 이상 그룹 기준 1인당 하루 CHF40. berninfo.com에서 예약 가능하다.




스위스적인 의회, 분데스하우스 

베른 구시가지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또 있다. 베른 대성당과 스위스 연방의사당인 분데스 하우스. 이 두 건물은 베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다. 베른 대성당은 15세기에 착공해 19세기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높이가 무려 100m에 달해 스위스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뒷목을 곧추세우지 않고는 첨탑의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높이인데다 경계심을 한껏 드러내는 고딕 성당이라 푸근한 느낌은 아니지만, 정문의 화려한 장식만큼은 마음을 끈다. 최후의 심판을 형상화한 부조인데 천사와 악마가 복잡하게 뒤섞인 모습이 난해하면서도 흥미롭다. 광장을 사이에 두고 이 성당을 향해 있는 분수에는 십계명을 읽고 있는 모세상도 세워져 있다. 

분데스 하우스는 아름다운 동시에 베른에서 가장 스위스적인 건물이다. 그건 바로 스위스의 정치적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 분데스 하우스는 26개의 칸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스위스의 연방 의사당인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관으로 보나 주변 조경으로 보나, 이곳에 서성이는 사람들의 분위기로 보나 도저히 정치하는 곳 같지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분데스 하우스 앞 광장에 흐드러진 유채꽃과 그 사이로 솟아오르는 26개의 물줄기는 한껏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그래서인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며, 주말에는 시장이 열리고 근처에는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런 일상은 상상도 할 수 없으니 과연 스위스는 딴판이다. 추측컨대 이런 분위기는 아마 자치정부인 칸톤이 실질적인 행정 정부이고 연방 의회는 칸톤 간의 굵직한 안건만 처리하는 곳이라 그 권위로 보면 스위스 정치의 본산이면서도 시끄러울 일이 없는 탓일 게다. 그 정도로 지방자치제, 직접 민주주의가 잘 이뤄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스위스다. 

분데스 하우스는 밤이 되면 조명을 밝히는 푸른 돔과 건물의 백열등으로 더욱 눈부시게 변신한다. 한편 정면에는 ‘헬베티카 공화국(Confoederationis Helveticae)’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스위스연방의 정식 국가명이다. 스위스프랑을 CHF로 표기하는 것도 헬베티카 공화국의 약자에서 따온 것이다.




■ 분데스 광장의 분수쇼는 여름에는 볼 수 없다. 10월22일부터 봄 시작 전까지 오전 11시부터 밤 11시 사이에 진행되며 마켓이 열리는 화·토요일에는 오후 2시까지 진행된다.  





아레강 저편 나이덱 다리 건너

1 지금은 공사 중 ‘베어 파크’

베른에서 곰은 마스코트이자 신화로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나이덱 다리를 건너면 아레강과 맞붙은 오른쪽에 베어 피트(곰 우리)가 있다. 원래는 이곳에 페드로라는 늙은 곰이 살았는데 지난 5월 운명하신 탓에 현재는 휑 하니 비어 있다. 페드로가 살던 ‘곰 우리’는 ‘곰 공원’ (베어파크)으로 리모델링 중인데 10월 오픈에 맞춰 곰 2마리도 새로 들여온단다.  이 녀석들은 우리에서만 살았던 페드로와는 달리 아레강 둑에 만들어지는 곰 풀장에서 마음껏 헤엄도 치며 놀 수 있다. 베어 피트 옆에는 비어하우스가 있어 맥주 견학과 시음도 가능하다.




2, 3, 4  베스트 뷰포인트, 장미정원

베어 피트 반대편 오솔길을 따라가면 로젠가르텐, 장미정원이 나온다. 얼마 높지 않은 곳인데도 베른 시내가 한눈에 내다보여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바깥쪽에는 이 같은 전망을 식사와 함께 음미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고 안쪽에는 수백 종의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봄에 피는 장미만도 220종, 아이리스는 200여 종에 달한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무엇보다 입장료도 무료라 금상첨화. 레스토랑 식사는 메인메뉴가 CHF20~45, 티·아이스크림 등은 CHF11 정도. 물론 풍경이 반찬이니 베른 사람들처럼 간단한 음식이라도 싸 와서 시내 쪽을 향한 오솔길 벤치에서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6, 7, 8  클레의 향기, 파울 클레 센터

미술관으로 불리길 거부하는 파울 클레 센터는 스위스 출신의 화가 파울 클레에 대한 총망라다. 그의 활동이 미술뿐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심취했던 음악, 바우하우스 강단을 통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미쳤던 만큼 파울 클레 센터는 얌전한 미술관이기보다는 음악과 연극, 무용과 문학이 어우러진 복합문화예술공간이자 교육 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시의 지원을 받아 그의 가족들이 세웠기 때문에 토털 컬렉션이 약 4,5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이중 20~30개 작품을 매번 컬렉션 전시나 특별기획전으로 선보인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파울 클레가 남긴 사인을 유심히 보자. 그는 스스로 슈퍼클래스에 속하는 작품을 선별해 CKL이라고 표기하고 이를 판매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보관하게 했다. 파울 클레 센터에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클레 회화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올해 여름까지는 ‘오리엔트’를 주제로 클레의 그림을 탐구하는 전시들이 이어지는데 파울 클레 마니아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 오리엔트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클레의 그림이란 대개 1914년 여행한 튀니지와 카이루안 여행의 인상들인데 이 시기는 클레 스스로 ‘나와 색은 일체다. 나는 화가이다’라고 자각했을 만큼 풍부한 영감을 주었고 이후에 이르러서야 파울 클레적인 환상적인 색채가 등장한다. 물론 클레의 그림과 함께 오리엔트와 관련된 이슬람 미술 작품들, 화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돼 더욱 풍성한 느낌이다. 

파울 클레 센터로 가려면 베어 피트를 끼고 위쪽으로 난 국도변 정류장에서 12번 버스를 타면 된다. 버스로 5분 거리이므로 지도를 들고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 파울 클레 센터 이용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로 컬렉션 관람료는 CHF16, 특별전시회 입장료는 CHF14이다. 지하 1층의 아이들 미술 교실은 오후 2시, 4시에 90분씩 진행된다. 수업료는 CHF15. www.zpk.org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