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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덕수궁 돌담길

  • Editor. tktt
  • 입력 200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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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에 다녀온 것 가지고 무슨 여행이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할말이 없겠지만서도 거창하게 말한다면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다녀왔노라고 말하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나는 마음이 심란하고 머릿속이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을 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덕수궁 돌담길을 습관처럼 찾아가곤 한다.

사실 덕수궁 돌담길을 처음 가 본 기억은 숨이 차 허덕이던 기억밖에 없다.

‘ㄱ’ 신문사에 볼일이 있어 충무로 거래처에서 부장님께 그 신문사를 어떻게 찾아가는 게 좋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덕수궁 돌담길로 가는 게 빠를 것 같다며 내게 길을 가르쳐 주셨다.

사실 덕수궁 돌담길 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은 바로 이것! 사랑하는 연인과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이별하게 된다는 좋지 않은 전설(?)이였기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었더랬다. 심각한 길치인 내가 그 쪽 길로 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과 마침 날은 구름한점 없는 하늘에 따스한 태양빛이 기분 좋은 가을날이었기에 그래 한번 가보자 하는 생각이 함께 교차했다.

사실 가을이고 뭐고 간에 신문사에 급한 볼일이 있었기에 빠르다는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어디어디로 가서 몇 번 출구로 나가면 덕수궁 돌담길이 나온다는 부장님의 말씀. 믿은 내가 바보였더랬다.

덕수궁 돌담길은 커녕 서울지리를 잘 모르는 내게는 높은 빌딩과 빵빵거리는 차들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짧은 스커트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어물어 덕수궁 돌담길 앞에 이르니 내 발은 벌써 퉁퉁 부르트고 있었고, 시간은 촉박한 상태였다.

‘덕수궁 돌담길만 지나면 된다고 했지.’

하지만 이게 웬걸 덕수궁 돌담길은 높은 하이힐을 신고 걷는 내게 너무나도 길고길고 또 길었다.

게다가 중간에 좌회전을 해야 할 것을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불상사까지 생긴 것이다.

나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만 일분일초가 빠듯하기에 원망은 후에 하고 뛰고 뛰어 겨우겨우 제 시간 내에 ‘ㄱ´신문사에 도착해 다행히 마감 시간에 늦지는 않았다.

머리는 바람에 휘날리고 얼굴은 가을에 잘 익은 사과처럼 뻘겋고 엄지발가락은 하이힐에 퉁퉁 부어있는 나를 보시고 차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ㄱ’신문사에서 빠져나와 한숨을 돌리고 다시 덕수궁 돌담길 쪽으로 되돌아가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너무 피곤하고 다리도 아파서 담에 한번 다시 와보자는 혼자만의 기약을 하고 가까운 길로 향했다. (알고 보니 충무로 거래처 부장님이 가르쳐준 덕수궁 돌담길은 빠른 길도 아니였거니와 나중에 와서 주변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 부장님도 만만찮은 길치라고...)

이별이 있는 돌담길이라지만 단풍이 예쁘다는 소문에 기대를 했건만, 은행잎은커녕 돌담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와 버렸던 것이였다.


며칠째, 머릿속이 터질 듯 어지럽고, 가슴도 답답했더랬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뿐더러 신경질까지 내는 나를 보고 있자니 한심하기도 하고, 스스로 나를 달래보기도 하였다.

‘누구나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단다.’ 라며 나는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답답한 나의 가슴은 누구하나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10년을 함께한 친구들조차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불만족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내 속을 다 퍼다 주고 싶었는데도 나는 말문이 막히고 내 자신을 이제는 꼭꼭 숨겨두어 나조차도 나를 찾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럴 때 훌쩍 여행을 떠날까..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그렇다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는 것도 아니였지만, 한번 나 홀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던 것이였다. 배낭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나의 꿈이자, 나의 목표였지만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은 없었을 뿐더러 사실 여자로서 조금 겁도 나는 것이었다.

그래, 까짓것 오늘 한번 해 보는 거야.

사진기 하나에 돈 몇 푼을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우스운 건 새벽도 아니였고, 토요일의 오후였다. 지루한 한 낮을 마루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집을 나선 것이었다.

‘셋째 딸 여행갑니다. 연락하지마세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란 쪽지도 잊지 않았다.

옆에 누워있던 동생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며 갑작스레 주섬주섬 옷을 입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디로 가지?

집을 나와 보니 막상 갈 곳은 하나도 없었고 아무 준비조차 되어있지 않은 나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래도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고...

우선 청량리 행 버스에 올랐다.

청량리에 가면 기차표를 끊을 수 있겠지. 가을이었지만, 그래도 날씨는 맑았기에 바다로 떠나도 무난할 것이라는 생각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갑자기 신이 나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특별히 바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도 마음 울쩍할 때 바다로 훌쩍 떠나는 주인공이 꽤나 멋지지 않은가.

그리고 우선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야, 나 혼자 여행 갈 거다. 그러니 연락하지 마라.

그렇게 혼자 말하고 끊어버렸다.

왠지 낭만에 젖어 눈을 감고 바다에 서있는 나를 상상했다.

파란 하늘에 파란 바닷물. 어디가 경계인지 구분이 안돼는 맑은 하늘. 그리고 혼자 마음껏 소리 지르며 모래사장을 뛰는 나를 상상하며 사진기에 무엇을 담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다이어리도 잊지 않았다. 나의 생각들, 나의 답답함, 그리고 나의 꿈, 미래를 훌훌 털고 일기장에 희망만 담아와야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꿈같은 시간은 한 시간을 채 가지 못했다.

청량리 매표소에 서성이며 어디어디에 무슨 표가 있나. 기웃기웃 거리고 있는데, 이게 웬걸, 주말인데다가 한창 데이트 철인지 갈만한곳 표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듣도 보도 못한 곳에 마냥 갈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표를 끊으려면 밤이나 내일 새벽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최악의 상황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일까.

그저 아무 계획 없이 신나서 들떠 있던 조금 전 내가 미웠다.

매표소를 천천히 돌아 나오며, 휴우. 한숨을 쉬었다.

메고 있던 사진기도 서글퍼 보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니 쓰고 나온 쪽지가 생각났다. 게다가 친구에게 한 전화도. 자존심 때문이라도 한시간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돌아가기에는 가을 하늘이 너무 맑았다.

그래, 그럼 서울 시내라도 한바퀴 돌아볼까. 하지만 서울도 내게는 익숙한 곳은 아니다.

들떠있던 마음이 한순간에 푸욱 꺼지고 말았더랬다. 게다가 자존심마저도 구겨졌으니 말이다.


어디 사진 찍을 곳이나 찾아볼까 하다가 작년 이맘때쯤 길을 헤매 다리가 퉁퉁 부었던 덕수궁 돌담길이 생각이 났다. 다시 꼭 한번 가겠다던 혼자만의 기약을 잊은 채 벌써 그로부터 일년이 지났구나. 덕수궁도 섭섭해 하고 있겠지.

가을에 특히 단풍이 예쁘다는 덕수궁 돌담길.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덕수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심란한 마음잡으러 나왔다가 마음만 더 심란해 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찌되었든 작년, 그렇게 나를 고생고생을 시켰던 덕수궁 돌담길에 도착을 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진을 찍으러 온 수다스런 여학생들과 아주머니들. 그리고 의외로 연인도 많았다.

그리고 왠지 프로다운 포즈로 사진을 찍는 이도 있었다.

옆에 사진기를 메고서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발 한발 나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여기는 왠지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았다. 예전과는 다른 덕수궁 돌담은 오늘따라 어머니의 가슴처럼 풍만하고 푹신해 보였다.

하늘도 맑았고, 역시 단풍도 너무 예쁜 빛을 서로 뽐내고 있었다.

왕비 같은 위엄과 교태가 왠지 엄숙하고 또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 가운데 돌담은 친숙하기까지 해보였다.

천천히 덕수궁 돌담길을 돌면서 돌담을 손바닥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차갑지만 왜인지 따스한 느낌마저 드는 것 같다. 눈을 감아 보았다. 돌담에 손바닥을 댄 채로 걸음을 걸었다.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더 멀어짐을 느꼈다.

눈을 감았지만 나는 돌담의 까칠하지만 부드러움을 느낄 수가 있었고 피부에 와 닿는 따뜻한 태양을 느끼며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몇 시간을 걷고 또 되돌아와 걷고. 이제 서야 나는 내가, 아니 나의 마음이 조금은 수그러졌음을 알았다.

답답하고 뜨겁게 열이 나던 나의 마음은 어느덧 차분한 가을 하늘처럼 가라앉았다. 그리고 투명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돌담이 조용히 내게 속삭였다. 조금은 너에게 여유를 주어보겠니, 라고.

바람이 살랑 불어와 내 마음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코끝에 와 닿는 가을 냄새가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내가 왜 이제껏 답답해 해왔음을 알았다. 나는 그동안 너무나도 쉴 틈 없이 지내왔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던 나. 각박해지는 세상에 왜인지 혼자라는 생각들. 그리고 나조차 찾을 수 없었던 나. 뭐가 그리 불안한지. 뭐가 그리 답답해 왔던 건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덩그러니 서있는 나를 보면서 나는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이 바다에서 폼을 잡아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덕수궁 돌담길을 돌다가 사진 몇 장을 찍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집을 나설 때의 그 들뜬 기분은 아니였지만 어느새 미소를 빙그레 짓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것이 나에게로의 여행의 시작이었다. 아니 돌담을 사랑하게 된 시작인가.

그 후로 나는 가끔 울적해질 때면 덕수궁 돌담길을 찾는다. 바다처럼 탁 트인 곳도 아니고, 산처럼 정상에 오른 뿌듯함을 느낄 수 도 없는 곳이다. 하지만 덕수궁 돌담길은 어머니 같은 냄새가 날뿐 아니라 나 자신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지만 단단함. 연약해보이지만 그 포근함.

그 돌담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아무리 함께 걸으면 이별하게 된다는 소문이 있는 돌담이라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생긴다면 함께 걸어 봐도 좋을 듯 하다.

그래도 아직 돌담길은 나만의 공간이다. 힘들고 삶에 지칠 때, 누군가에게 이야기 할 수도 없을 때. 가만히 돌담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라. 차갑고 까칠하지만 따스한, 그 안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을 냄새가 좋은 덕수궁 돌담길이지만 따뜻한 봄도 좋고, 싱그러운 여름엔 시원하기도 하고 겨울엔 뽀드득 소리를 내며 눈길을 밟는 기분도 꽤나 좋다.


돌아와 보니 식구들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 사이로 끼어 들어가 배가 고프다며 빨리 밥을 달라고 재촉을 해댔다.

역시 엄마가 해주는 밥이 맛있네!  엄마가 빙그레 웃으신다.

 

<글, 사진 = ´혼자사랑´ 님

http://blog.naver.com/garden2012/6001344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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