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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추억..

  • Editor. tktt
  • 입력 2005.06.07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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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사이공(Ho Chi minh City)은

 

1994년 후반부터 1996년 초반까지 주재원으로 근무했었고

 

그후로도 최근까지 자주 출장 다녔던 친근한 도시이다.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남국의 풍경과 어우러져 묘하게 친근감을 뿌리는 사이공....

 

1994년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수출부 이사님이  어느 날 물었다..

"자네, 남부유럽 담당이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보는 게 어떨까?

 러시아의 하바롭스크와 베트남의 사이공 중에 하나 선택해봐봐...

 이번 주내로 선택해서 보고하도록. 이상!"

 

처음에 사이공의 탄손넛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 트랩에 나설 때 후끈하게

다가왔던 공기의 끈적함과 그 냄새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픽업 나왔던 하청업체 사장님집에서 묵었던 다음 날 아침7시 무렵에

창가로 파고들기 시작하는 강렬한 햇빛과 요란한 오토바이소리에 잠이 깨었다.

 

야자수와 고전양식의 유럽풍 건물이 섞여져 있는 시내를 벗어나 외곽의 공장을

방문하면서 시작된 나의 일과는 언제나처럼 바뻤지만 달리 특이하달 것 없는

확인과 네고(협상)와 매너로 위장된 차가움을 동반한 정찰업무로 시작되었다.

차의 창문 너머로 스쳐가는 풍경이 그냥 켜놓은 TV화면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사이공 교외의 투덕이란 곳의 의류 하청공장을 관리할 때였다..

공장장이나 그곳 직원들과도 친해져서 공장 마당에서 오토바이 타고 놀다가

자재창고를 점검했다. 

갑의 입장이란 보통 느긋하지만 

을의 입장에선 때론 사소한 일에도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알기에

평상시처럼 시시한 농담을 지껄이면서 창고에 들어섰다..

우리회사 원자재가 들어있는 창고다...

 

자재의 총량은 숫자로 기억하지만 평소에는 그냥 휙-하고 둘러보고 나오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았던 걸까?

 

나는 이 사람들 자존심을 믿는다는 의미에서 대충 둘러본다는 제스츄어를 썼지만 

항상 내가 걸어가는 걸음의 숫자와 내 키의 높이로

간단하게 자재 총량을 파악하고 있었는데....매일같이.....

 

걸어간 숫자와 키높이로 파악된 평균총량이 다른 날과 달리

일일 평균소요량을 감안하더라도  많이 줄어 있었다...

(어라?  음...혹시 착오가 있을지 모르니 정식으로 세어보자...)

 

"미스터 공장장.. 좀 심심한데... 한 번 세어보고 싶어. 마당에다가 전부 정렬해 놔봐요.."   

 

얼굴이 굳어진 공장장이

"미스터 피터..왜요? 저거 다 꺼낼려면 시간도 걸리고..."란다.

 

"이 양반아...나도 일 좀 하자...월급받기 미안하잖어."

 

당황하는 베트남 사람들 앞에서, 하나,두울.....하고 세 차례를 왕복하면서

공장마당에 쌓여진 원자재를 세었다.

반 정도의 자재가 부족했다.

 

"왓 해펀(뭔일이래)? 공장장?"

부동자세를 하고 있던 이 아저씨 대답..."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알았어요. 사장 불러요!"

 

1 시간 쯤 뒤에 공장에 도착한 사장에게 물으니, 이 친구 대답은 안하고서

뒤돌아서서 10 여 분간 줄담배만 피고있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어머니 지시에 따라서 다른 친분있던 바이어물품의 생산에

轉用했다는 것이다.

 

좀 화가 났지만, 이 번 週 內로 동일 원자재를 보충해 놓으면 눈감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바이어가 부도가 났단다. 따라서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단다.

"이봐요. 사장아저씨. 지금 농담하는 거요? 어머니 만납시다.."

 

참고로 이 어머니란 분은 한국에서도 옛날에 유명했던 여성이었다.

미인이기도 했고... 

월남 패망당시 월맹군에 의해 억류되어 있던 이대용公使 등 한국인 일행에게

몰래 음식물을 반입하는 등 도움을 줘서 나중에 박정희대통령에게

표창인가 훈장도 받고,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도 받았으며

친분도 있었던 여장부였었다.

또한 내가 몸담고 있던 직장의 owner 와도 각별한 교우관계가 있던듯이 보였었다.

 

만나서 이 여장부에게 원자재 보충 또는 변상을 요구했다.

그런데 사과의 말도 없었고 변상의 기한도 못 지키겠단다.

"마담(한 때 불어권이어서 이게 존칭이다.)! 이러시면 본사에 보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했더니..

이 다혈질 여장부 왈

"하우 데어 피터..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어요? 당신 사장에게 말하겠어요!"

 

"울 사장님요? 편한대로 하세요. 나는 내가 말한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곤 사무실로 돌아와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 런던지사에서 본사로 복귀하셨던 차장님이 보고를 받으시곤,

"피터야. 최전방에 나가있는 사람이 결정할 事案이네. 니 맘대로 해! 이상! "

 

그 후에 내 사무실의 베트남 여비서가 이 호랑이 아줌마의 온갖 욕을 들으며

내 意思를 전달했고 변상을 모두 받은 후에 이 공장과 거래를 끊었다.

 

이 베트남 여장부의 心情이야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失笑가 나온다.    

  

  

-명랑 무역상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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