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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가나의 캐씨 이야기

  • Editor. tktt
  • 입력 2005.06.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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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월이 흘러 허리도 굵어지고, 어느 전기부품 제조업체의 수출팀장을 맡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생산기계 수입관련 업무를 마치고, 그동안 전화 및 팩스로만 교신했던 아프리카 가나공화국의 바이어를 만나기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무렵 수도 아크라에 도착하니 공항에서 미스터 피터라 쓰여진 팻말을 들고 있던 바이어 일행을 볼 수 있었다.

함께 차를 타고 그들이 예약해준 호텔이 있는 항구도시 테마로 이동했다. 

호텔의 허름한 야외식당에서 닭튀김에 맥주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으려니까,

웬 여자들이  우리 테이블 주위를 서성거려서 종업원들이 왜이리 많냐고 물으니..

창녀들이란다..쩝!

 좀 있다가 보니까, 험상궂은 사내들이 검은 아가씨들을 하나 씩 옆에 끼고 

식당 뒷편의 홀로 들어가는데 끈적끈적한 블루스음악이 커텐사이로 새어나온다.

 일행들을 데리고 내 호텔방으로 들어와 함께 일정을 잡고 있었는데..

이 호텔은 국제전화가 안된단다....??

"미스터 단,  말이 안되잖아...숙박비가 얼만데?" 

 "25달러..."

 "왜 이리 싼 데를 잡았어?,  저 밖에 창녀들은 뭐고, 저 남자들은 뭐야? 깡패야?"

 "미스터 피터, 너 돈 아껴줄라고 이 호텔 잡은거야.. 저 남자들은 씨보트맨(외항선원)들이고...,

 이 곳은 선원들을 위한 호텔이야..."

 "후~우...알았어. 다음에는 좋은 호텔잡아놔...돈 걱정말고...내일 아침 보자."

 그러나 걱정할지도 모르는 서울사무실에 연락은 해야겠기에

호텔프론트의 아가씨에게 전화 좀 쓰자 했더니,

프론트 전화도 국제전화 발신이 안된단다.

다만, 이 호텔에서 한참 걸어가면 국제전화가 되는 공중전화가 있는데,

가나의 국제전화카드를 사야한단다.

그런데 가나돈만 받는단다.

나에게는 독일 마르크화밖에 없었다. (그 때는 아직 유로가 통용되기 전이었다.)

환전은 다음 날 아침 환전담당 직원이 출근해야지 가능하고...  

근데 이 자그마한 가나아가씨가 가나돈을 빌려주겠단다.

 "진짜? 고마워요..근데 어디서 전화카드를 사지?"

 

"내 이름은 캐씨예요. 따라와요..."

 

"호텔 프론트 비워둬도 되나?"

 

"걱정말고 따라와요.^^"

비가 와서 질척이는 캄캄한 진흙길을 10여분 걷다보니 문득 불안해져서

"밤에 이곳은 안 위험해요?"하고 물으니

 

"우리 가나는 안전한 나라예요. 걱정말아요."란다.

그렇게 같이 걷다가 허름한 가로등 불빛 아래 서있는 덩치 큰 제복의 흑인에게서

캐시가 전화카드를 사주었다. 경찰이란다.

 

그리고 다시 십여 분을 걸어서 어느 공장의 정문앞에 위치한 공중전화에서

국제전화를 걸 수 있었다.

 

오는 길에 그녀가 묻는다. " 맥주 마실래요? 내가 사께.^^"

 

"뭘, 니가 사니? 내일 아침 정산해줄테니까, 먹고 싶은 것 먹어..그리고 고맙다."

 

캐시의 안내로 들어 간 허름한 술집에는 낡은 피아노가 한 대 있었고,

각 인종으로 이루어진 뱃사람들과 흑인아가씨들과 아랍계아가씨들이 

여기 저기 모여앉아서 

묵묵히 카드놀이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 모습이 이자리에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음이 느껴졌다.

정장에 넥타이....구두....

"나가자, 캐시. 야외에서 마실 데 없니?"

"오케이, 따라와요.."

 

해서 두 번째로 간 곳이 야외에 테이블이 여러 개 펼쳐져 있고, 다소 떨어져있는

술집의 본건물에서는 희미하게 음악소리가 새어나오는 곳이었다.

 

하늘을 보니 주먹만한 별빛이 쏟아진다. 한국과 별자리가 전혀 달랐다.

같이 마주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데, 문득 캐시가 이런 말을 내뱉었다.

"유럽남자들은 짐승이야....한국남자는 좋아요..."

 

"한국남자?..를..알아?"

 

"네, 내 보이프렌드가 한국사람예요.^^"

 

"정말? 뭐하는 사람인데?"

 

"선원. 2달에 한 번씩 와서 1달정도쯤 나랑 지내요. 호텔에 그의 방이 있어요."

 

아마도, 장기투숙계약을 맺은 원양어선 선원이리라 짐작했다.

 

"그 사람 좋아?"

 

"스물여덟살인데 아주 친절하구 착해요. 내가 친구들과 술마시고 미친년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면, 나 찾으러  온 동네를 뒤져서 나를 꼭 안고서 호텔로 와서

 재워줘요.^^ "

 

"캐씨는 몇 살이야?"

 

"스물다섯살."

 

"내가 생각컨대, 유럽남자건 한국남자건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은데.....?,

 왜 유럽 남자가 짐승이라고 생각해?" 

 

"거칠고 너무 커서 아파요. 섹스할 때 정상아닌 사디스트녀석들이 너무 많아요!

 한국남자는 싸이즈도 딱 좋고, 친절해서 좋아.^^"

 

이쯤 얘기듣다가 맥주가 목에 걸려서 기침이 나왔다...이 개방적인 아가씨 왈

이곳에서 여러 유럽남자들을 만나다가 4년전에 독일인과 결혼했단다.

그 남자는 중년남자였고  같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살았는데, 친절하고 좋은 남자였단다.

그런데 1년전에 이 남편이 병에 걸려 죽었는데, 전 부인(독일여자)과 자녀들때문에

유산상속 한 푼 못받고 독일에서 쫒겨나다시피해서 고국인 가나로 다시 왔단다.

 

그래서 속이 상해서 매일같이 밤에는 술을 마시면서 미친년(이 친구 말로는 라익 크레이지

빗취란다.)처럼 지내다가 자기직장인 이 선원호텔에서

호텔투숙객인 착하고 친절한 한국선원을 만나서

자기도 사랑하지만 자기가 이 한국청년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단다.

 

"그래, 너도 착한 것 같으니까..잘 될거야..이제 좀 피곤하네..가자."

맥주를 서너병 마시고는 일어섰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샤워하고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이태리와 오스트리아에서 상담때문에 강행군을 한데다가

프랑크푸르트로부터 10시간 정도의 비행이 몸을 피곤하게 했나보다.

 

1층 홀에서 들려오는 블루스음악과 사람들의 술취한 웃음소리에도 불구하고

깊이 잠들어 있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꽝꽝꽝 두드린다.

 

"누구야??"

"캐시예요. 문 좀 열어봐요."

"왜? 무슨 일이야..."

 잠결에도 이 여자의 목소리가 술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어디서 친구들과 다시 마셨나보다.

 

"문 좀 열어요! 할 얘기가 있어요!"

"내일 아침 얘기해! 피곤해!"

 

그러나 막무가내로 문을 꽝꽝꽝 두드리길래, 열어줬더니

비틀거리며 들어와서는

내 침대에 벌렁 드러눕는다...."조금만 쉬었다 갈래..."라면서..

 

슬슬 화가 나기시작한 나는, 눈을 감고 누워있던 캐씨를 번쩍 들다시피해서 복도로

내다놓고 "잘자!"하고는 문에 열쇠를 채웠다.

그날 밤 꿈에 악몽을 꾸었다.

꿈에 캐씨가 다시 문을 두드려 문을 열어주었더니

두 명의 건장한 흑인들이 따라들어와

내머리에 권총을 들이미는 꿈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프론트에 있는 캐씨를 보고 굳모닝해도 대답없이 

굳어진 얼굴로 눈도 마주치려하지 않았다.

아마 술김에 한 행동이 창피했었나보다.

나도 말없이 환전담당 직원에게 마르크화를 환전해서 계산을 마치고

내 바이어가 나를 픽업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다시 그녀에게 "캐시, 커피한 잔 같이 마실래?" 하고 씩 웃었더니,

그제서야 웃으면서 내 커피만 가져온다...물론 전날밤의 소동은

나도 그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휴지에 물을 묻혀오더니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있는 내 발 아래

갑자기 쪼그리고 앉아서 내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말렸지만 고개를 숙인 채로

어젯밤에 진흙길에 엉망이 된 내 구두를 닦으면서....

"유럽여자들은 이런거 안해줘요! 돈만 사랑해요. 한국여자들도 안해줄걸요!

 우리 가나여자들은 친절하고 좋은 여자들이고 좋은 아내들이예요!" 라고

중얼거린다.

 

"맞아!  캐씨. 나도 니가 친절하고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 

너는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거야."라고 말해주자

캐씨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메모지에 적어준다.

전화번호인데 이곳에서 출장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내손에 쥐어주었다.

 

마침, 내 바이어가 와서 더이상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행운을 빈다는 내 인사에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던 낙천적인 그녀가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명랑 무역상 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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