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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고이고이 마음을 쌓아올리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0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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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다. 사람들이 진안은 몰라도 마이산은 안다고. 산은 산이되 나무가 없고, 군데군데 움푹 팬 모양이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언뜻 보아도 말의 귀를 닮은 모습이 보통 신기한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사계에 따라 돛대봉, 용각봉, 마이봉, 문필봉이라 부르며 스스로의 염원을 이곳에 묻곤 했단다.

글·사진  이민희 기자  
취재협조  진안군청 063-430-2114

1, 3 탑사에는 80기의 크고 작은 돌탑이 가득하다 2 진안 시내에서 바라본 마이산 4 법당에 걸린 연꽃 모양의 봉축등

진안은 면적의 80% 이상이 산악지대로 이루어졌다. 서쪽으로 노령산맥의 주능선이 지나고 동쪽으로 소백산맥이 버티고 섰다. 하지만 정작 진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쫑긋 솟은 말의 귀, 마이산(馬耳山)이다. 자세히 보면 두 개의 봉우리가 살짝 다르게 생긴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중 동쪽에 솟은 봉우리를 ‘남근’의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는 여인의 볼록한 가슴과 같다 하여 암마이봉이라 부른단다. 

외모(?)에서부터 비범한 이 산은 속까지 예사롭지 않다. 백악기 시대의 역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데군데 구멍이 움푹 패어 마치 작은 동굴과도 같은 타포니(tafoni, 일종의 풍화작용) 지형을 만날 수 있는 것. 이런 신기한 모습 때문인지 고려 말, 이성계가 나라를 잘 다스리라는 계시와 징표를 이곳 마이산에서 받았다거나 인간세상에서 살던 산신 부부가 승천하려다 어느 아낙의 눈에 띄어 그 자리에서 돌이 된 것이 지금의 두 봉우리라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수많은 볼거리 중 마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건 탑사 곳곳에 쌓인 80기의 돌탑이다. 이를 두고 ‘이갑용이라는 이가 도력을 이용해 쌓았다’ 혹은 ‘마이산이 들썩이면 나라가 편치 못하다는 풍수설에 의해 쌓았다’는 등 누가, 언제, 왜 쌓았느냐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백여 년의 넘는 세월 동안 거센 비바람 앞에 단 한번도 쓰러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힘으로, 여타의 도구 없이 묵묵히 쌓아올렸을 돌탑은 줄이나 끈 따위로 비끄러맨 듯 견고해 보인다. 그게 누구이건간에 하나하나 돌을 고르고 무너질세라 조심스레 쌓아올린 그 정성만은 가히 존경스러울 따름. 그래서일까. 탑사에 선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혹여나 공든 탑이 무너질까 하는 걱정과 탑을 쌓았을 누군가의 바람에 괜스레 숙연해졌기 때문일 게다.

마이산의 시작점은 남부 주차장과 북부 주차장, 두 곳으로 나뉜다. 남부 주차장에서 너른 호수와 탑사, 천황문, 화엄굴을 지나 북부 주차장까지 이르는 시간은 약 2시간여. 암마이봉을 타면 정상까지도 오를 수 있지만 암마이봉 식생복원사업기간인 2010년 10월까지는 등산이 금지되어 있다. 물론 주변으로 크고 작은 등산로가 있으니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를 내뿜는 마이산의 절경을 만끽해도 좋겠다. 안개 속에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수목 사이에서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처럼 보인다 하여 마이봉, 두 봉우리에 눈이 쌓이지 않아 마치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는 뜻에서 문필봉(文筆峰)이라 불릴 정도로 마이산은 사계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단다.

어느새 겨울의 초입이다. 운이 좋다면 한 폭의 수묵화인 양, 설산 위에 솟은 한 쌍의 봉우리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몰과 일출로 한 해의 경계를 긋는 대신 마이산에서 나만의 작은 돌탑을 쌓아 보는 건 어떨까. 주문을 걸 듯 소원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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