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경주 여행기
2000년 경주 여행기
  • tktt
  • 승인 2005.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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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다녀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생각보다 부모님 허락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여행을 기다리는 동안 내내 들떠 있었고 여행 당일에는 너무도 떨려 승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가슴 부푼 여행이라고는 하나 말상대 하나 없이 혼자 기차 안에서 4시간 30분을 보내기란 정말 어려웠다. 책도 좀 읽고, 음악도 좀 듣고, 잠도 좀 자고 하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창 밖을 보니 어느 고장인지 무덤이 아주 소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꼭 두 개씩... 젖무덤이라는 말이 정말 무덤을 뜻하는 말인가 보다고 여겨질 정도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저 안에서 정겨운 노부부가 두 손을 꼭 잡고 따스한 봄날의 햇볕을 함께 누리고 있으리라.

경주역에 도착할 즈음 창 밖에는 어느덧 고분들이 하나 둘 눈에 띠기 시작했고 그것은 내가 지금 경주에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경주역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번화한 곳이어서 조금은 놀랐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대릉원으로 갔다.

대릉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드디어 ´밥!´을 먹었다. 대릉원 입구의 쌈밥집이 유명하다는 관광안내를 읽은 적이 있어서, 나 역시 쌈밥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 들어가면서 1인분은 팔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 1인분도 파신단다. 그러나 정작 식탁 위에 떡 벌어지게 차려진 무수한 음식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괜히 1인분을 시켜 너무 많이 남게 한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



대릉원은 말 그대로 커다란 여러 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는 공원이다. 대릉원에 들어서자마자 날 반긴 것은 바로 청설모였다. 벤치에 앉아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청설모가 내 발치까지 다가왔다. 그곳에는 청설모와 다람쥐와 그 밖의 이름 모를 새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예쁜 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 않고 제 마음껏 그 곳을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동물들의 그런 자유와 여유가 한없이 부러웠다. 대릉원의 분들은 너무 손질이 잘되어 있었고 고분들 사이사이에 놓여진 산책로 또한 깨끗하고 단정해서 그 길을 걷는 내가 마치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나선 도로시 같았다.

대릉원 안에는 말로만 듣던 미추왕릉과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 있다.

 

미추왕은 김알지(金閼智)의 7대손으로서 신라의 제 13대 왕이다. 23년간 왕위에 있다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유리왕이 즉위하였다. 제 14대 유리왕 때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금성을 공격해왔다. 신라에서도 크게 군사를 동원했으나 오랫동안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군사가 와서 신라군을 도왔는데 그들은 모두 댓잎(竹葉)을 귀에 꽂고 있었다. 이들은 신라 군사와 힘을 합하여 적을 격파하고는 사라졌다.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다만 미추왕의 능 앞에 댓잎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군사를 보내어 도와주었다는 이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의 미추왕릉 앞에는 대나무가 우겨져 있었다. 나라를 수호하고자 하는 미추왕의 은덕에 감탄하게 하는 곳이었다.

천마총은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책에 실려있던 천마도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실제로 본 천마도는 생각보다도 훨씬 작고 흐릿하여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천마도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왕의 유해(遺骸)가 그대로 묻혀 있다는, 유리창 속의 좁은 흙바닥이었다. 저 안에 누워계신 왕은 후대의 자손들이 얼마나 괘씸할까 하는 생각에 괜히 내가 송구스러워 졌다. 살아서는 신라땅 전체를 손에 쥐고 계시다가 죽어서는 겨우 그 땅의 손바닥만한 크기에 몸을 뉘였거늘, 그것마저도 편히 내버려두질 않고 파헤쳐 하루에도 수명이 들락거리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죄송스러운 마음을 위로 하고 대릉원을 나오는 길은 새들이 배웅해 주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까치 같은 새는 아니었다. 빛깔과 소리가 아주 고운 새들이었다. 무슨 열매를 까먹고 있는지, 또랑또랑한 눈을 굴리며 여기저기 열매를 찾아 똑 똑 소리를 내며 까먹는 모습이 너무 앙증맞아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괜시리 새의 식사를 방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대릉원 정문 앞쪽에 첨성대가 있었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에 조영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관측대이다. 관측대라 하기에는 너무 작아, 정말 저것이 관측대일까 싶은데, 그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닌지 실제로 첨성대에 관한 여러 이견(異見)이 많다고 한다. 그것은 첨성대가 별을 실제 관측하던 천문대였다는 학설과 천문대의 상징물일 뿐이라는 설 등이라고 하는데, 첨성대가 어떤 용도로 쓰였던 간에 자연과 조화된 건축학적 의미를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면 예사로운 문화재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첨성대의 층수를 세어보면, 제일 밑 기단을 빼고 맨 위 井자 모양을 넣으면 28층이 된다. 이것은 기본 별자리 28수를 표현한다. 그리고 밑에서 가운데쯤에 있는 네모난 창까지만 세어보면 12층으로 이것을 12달 24절기까지를 나타낸다. 맨 위 井의 사각은 정확히 동·서·남·복을 가리키고 있고, 벽돌 수를 세어보면 361개로 음력으로 따진 1년의 날수를 나타낸다고 하니 얼마나 과학적인가. 게다가 밑 기단의 네모 모양이 점차 위로 올라가면서 둥그런 모형을 나타내는 것은 땅과 하늘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아담한 조형물 하나에 신라의 철학과 건축을 완벽하고 조화롭게 담아낸 우리 옛 조상들의 우수성에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였다.

첨성대에서 발길을 돌려 조금만 걸으면 계림이 나온다.

계림(鷄林)은 경주 김씨의 시조(始祖)가 된 김알지(金閼智)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신라 탈해왕 때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이 숲의 나뭇가지에 황금궤가 걸려 있고 그 옆에서 흰 닭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실을 탈해왕에게 알리게 되어 왕이 친히 행차하여 금궤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서 한 사내아이가 일어나므로 왕은 하늘이 내린 아이로 알고 태자(太子)로 삼았으며,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김(金)이라하고 이름은 알지(閼智)라 했으며, 흰 닭이 알림으로써 태자를 얻었다 하여 원래 시림(始林)이라고 한 이 숲을 계림(鷄林)이라 고쳐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계림에는 현재 무열왕릉이 있다. 어느 가족들이 소풍을 나왔는지,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왕릉 위를 오르는 것을 보면 잠시 눈살을 찌푸렸으나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무열왕이 좀더 인자하신 왕이라면 후대의 어린 백성들이 당신의 무등을 타고 노는 것쯤은 이해해 주시겠지...하고 말이다.

무열왕릉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신 수녀님의 모습에서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며 계림을 돌아 나오려는데 닭소리가 들려왔다. 인근 농가에서 키우는 닭인지 숲 관리처에서 일부러 마련한 닭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는 아니기를 바랬다. 관광객들을 위해 준비된 계획적인 효과 음향이라면 왠지 서글퍼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나에게 먼 옛날의 호공(瓠公)의 넋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닌지는 모르겠다.

 

계림에서 나와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반월성터가 있다. 성곽의 모양이 반달과 같다고 해서 반월성(半月城)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 성이라고 하니까 알지 그냥 봐서는 성터라고 생각되지 않는 곳이다. 넓은 공터 한 가운데에 세 개짜리 계단과 기둥이 서 있었음직한 자국이 있는데, 아마도 그것이 성안에 있던 건축물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반월성 왼쪽에는 석빙고가 있다. 멀리서 볼 때는 무슨 무덤처럼 생겨서 여기에도 릉이 있구나 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석빙고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입구를 막아놓아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으나 입구에서만도 한기(寒氣)가 느껴졌다. 그 옛날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이렇게 자연을 이용하여 얼음을 저장하였다고 하니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고 신비할 따름이다.

다시 반월성을 나와 10분쯤 걸어가면 안압지(雁鴨池)가 있다.



안압지는 임해전지(臨海殿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문무왕이 만든 인공 호수로서 궁궐의 향연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과 북쪽과 동쪽으로는 12봉우리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동양의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배경으로 삼신산과 무산십이봉을 상징한 것이다. 못가에 임해전과 여러 부속 건물을 만들어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東宮)으로 사용하면서,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 못을 바라보면서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이 연못을 파고 섬을 만들어 그 안에 여러 진기한 동물들을 키웠다고 하는데 발굴 당시 여러 동물의 뼈도 함께 발굴되어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현재 안압지의 모습은 1975년부터 2년간 실시된 발굴조사 결과로 원형대로 복원된 것인데 이 때 건져올린 수저, 가위, 그릇 등은 경주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안압지에서 발견된 나룻배와 노이다. 아마도 술에 얼큰히 취한 양반님네들이 연못에 배를 띄우고 흥겹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치를 즐겼을 것이리라. 그러나 그 노를 힘겹게 젓고 있었을 하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연못을 파기 위해 쏟았을 백성들의 땀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국립 경주 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성덕대왕 신종이다. 우리는 흔히 에밀레종이라고 부르는데,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으며 오직 에밀레종만이 있을 뿐´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비천상은 실제로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도저히 쇠붙이에 조각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금세라도 날아갈 것 같은 하늘하늘한 느낌이었다.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에밀레종의 소리를 들어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에밀레종의 소리는 부처님의 목소리에 가까운 장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신비의 소리라고 한다. 종을 만들 때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를 넣었다는 말도 안 되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기는 하지만, 그 순수한 어린아이의 ´에밀레´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큰 서운함이 아닐 수 없다.



국립 경주 박물관은 이 밖에도 2만5천여 점의 유물을 상설전시하고 8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한, 서울의 중앙 박물관 다음으로 큰 규모의 박물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에밀레종을 보았다는 감동 때문에 다른 유물들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첫날의 일정을 이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아까 지나쳐버렸던, 경주 먹거리의 대표 황남빵을 꼭 먹어야 겠다는 일념하에 다시 택시까지 타고 대릉원 쪽으로 왔다. 황남빵은 겉으로 보기엔 그냥 평범한 팥빵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맛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고소하고 바삭한 겉껍질 속의 부드럽고 따뜻한 팥소의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둘째 날의 일정을 불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전에도 한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으나, 이번의 느낌은 너무도 새로워서 내가 정말 와본 곳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불국사는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웠다는 말 이상으로 표현할 길이 없어 안타깝지만, 불국사의 아름다움은 그 말의 뜻 이상이었다. 불국사 입구에 딱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과는 격리된 이상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흙 길 옆에 있는 돌 하나,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마저도 마치 완벽한 계산에 의해 자리 잡은 듯 완벽히 자연스럽고 완전히 아름다웠다. 심지어 ´화장실´이라는 표지판마저도 자연의 일부 같았다면 너무 지나친 감탄일까? 어쨌거나 나는 불국사 입구에서부터, 건축물의 조화와 우수성을 보기도 전에 불국사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사천왕문을 지날 때는 삼배를 하는 것이 사찰의 예절이라는 말을 듣고 사천왕문 앞에서 삼배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바람에 괜히 내가 머쓱해졌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너무 낯익은 건물이 보인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청운교, 백운교가 그것인데, 그간 많이 보아왔던 탓인지 그다지 색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계단 옆의 석단에 더 눈길이 많이 갔다. 사람이 깎아낸 것 같지는 않은데, 그 각각의 모서리들이 맞물려 단을 이루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그 모양에 맞추어 위에 올려질 돌을 깎아낸 모양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돌아와서 알아보니 이를 ´그랭이 법´이라고 한다고 한다. 자연석을 아래에 깔고 인공석을 위에 올려 건물을 짓는데, 위에 올려지는 인공석을 위해 아래에 놓여지는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아래에 놓여지는 자연석의 모양에 맞추어 인공석을 깎아 자연석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는 기법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보여지는 아주 특이한 기법이라고 한다.

 


대웅전으로 오르면 역시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다. 물론 미학적으로 완벽한 비율과 화려한 기교를 갖추고 있고, 불교적 입장에서 보아도 다양한 의미와 내용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전설이 훨씬 가슴 깊이 다가오는 곳이다. 다만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두 탑의 조화로움에 관한 것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석가탑이 다보탑에 비해 수수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석가탑 아래에 팔방연화를 새기고, 석가탑에 귀중한 부처님의 사리와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을 안치했다고 하는 것이다. 절 하나를 지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지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국사의 영역은 석단에 의해 둘로 나뉘는데 석단의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을, 그 밑에는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범부의 세계를 나타낸다. 불국사의 경내는 다시 세 영역으로 나뉘어 대웅전과 극락전, 비로전에 각각 중심 건물이 된다. 불교적 해석을 빌면 각 영역이 하나의 이상적인 피안세계인 불국을 형상화한 것으로 대웅전 영역은 석가여래의 피안세계를, 극락전 영역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비로전 영역은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경주를 다녀온 후에 조사를 통해 안 것이다. 막상 불국사에 있을 때는 이런 깊은 의미까지는 모르고, 그냥 단순히 건물이 참 많구나 하고 지나치고 말았으니, 나의 무지가 한스러울 따름이다.

 

비로전 영역에 들어섰을 때인가, 무수한 돌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수한 기법으로 조각된 돌탑이 아니라 작은 돌멩이를 쌓아올리고 소원을 비는 그 돌탑 말이다. 돌탑들은 그 주위를 빙 둘러가며 쌓여 있었다. 저 수많은 돌멩이 속에 담신 그 많은 소원들은 다 이루어 졌을까... 나도 옆의 돌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끝에 간신히 돌탑을 세웠다.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돌탑들을 바라보면서 비로전을 돌아 나오려는데 스님들의 공양시간이 되었는지, 스님 한분이 비로전에 오셔서 독경(?)을 하시기 시작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어서 그 의식이 무엇인지, 스님이 외시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그 음성과 음률과 목탁 소리가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아 한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고 웬일인지 눈에 눈물이 맺혔다.

불국사에서 나와 석굴암에 갔다. 석굴암까지 이르는 산길은 여전히 좋았으나, 예전의 경주 방문 중에 그나마 제일 기억이 생생한 곳이 석굴암이어서 그런지 감동은 불국사만 같지 못하였다.

 

석굴암에 올 때는 셔틀버스를 이용했고, 내려 갈 때는 등산로를 이용했다. 생각보다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너무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여럿이 하는 여행보다 좋은 이유는, 남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도롱뇽이 지나가느라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새가 열매를 먹느라 껍질 깨무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이다.

 

다음에 간 곳은 민속 공예촌이다. 우리나라의 민속 공예품들을 분야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제작과정도 직접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토기를 만들고 계시던 아저씨의 자상함과 친절함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안에 석굴암의 제작과정과 미스터리 등을 전시하고 있는 ´제 2 석굴암´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 역시도 우리 조상들의 현명함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곳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문무대왕 수중릉이다. 문무대왕릉이 보이는 해변에는 바람에 얼마나 심하게 불던지 마치 범인의 접근을 막으려는 문무와의 호령 같았다. 그래서 사진 두 방만 겨우 찍고 쫓기듯이 그곳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갈매기들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그렇게 가까이 나는 갈매기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바람을 역류해서 날려고 했으나 바람이 너무 강해, 공중에 가만히 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 색이 너무 곱고 깨끗해서 단정하게 그려진 그림 한 폭을 보는 것 같았다. 지금도 공중에 떠 있던 그 귀여운 갈매기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신문왕의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 심한 바람을 잠재우고 좀더 문무대왕 수중릉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허황된 생각도 해보았다.

 

곧바로 감은사지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멀리 조그맣게 감은사지 석탑이 보여 나를 설레게 했다. 탑을 바라보며 길을 따라 감은사 탑에 도착했을 때 난 그 웅장함에 너무 놀랐다. 멀리서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웅장함과 근엄함과 장중함이었다. 나는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교수처럼 감탄과 찬사를 표현할 만한 능력은 없으나, 뭐라 달리 말할 길이 없는 그 가슴 벅차오름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듯 하다.

 

감은사지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마침 필름이 떨어져서 근처 잡화점에서 필름을 갈아 끼우려다가 그만 카메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정말 심정 상했다. 카메라 아랫부분이 깨졌다. 결국 감은사지는 찍지도 못하고 아쉬운 마음을 혼자 속으로 삭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간 곳이 보문단지이다. 이곳은 경주에서 아주 유명한 관광단지라고 하는데, 너무 어두울 때 가서인지 호수도 잘 안보이고 분수도 멈춰져있고, 사람도 없어서 을씨년스러웠다. 그래서 근처의 ´반용아뜨리에´라는 찻집을 찾아 헤매었다. 워낙 유명한 방향치에 길치인지라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지를 못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그토록 찾던 카페가 눈에 띄였다. 그곳 역시 경주의 명소(?)라고 하는데 과연 그 유명세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눈이 휙휙 돌아가게 신비로운 인테리어와 말로만 들으면 전혀 맛이 없을 것 같은 ´레몬을 띄운 커피(이름이 알렉산더 커피였나?...하여간 그 비슷한..)´의 예상치 못한 맛, 그리고 친절한 웨이트리스들이 인상적인 곳이다.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중에 내 친구들과 꼭 같이 오고 싶은 곳들 중 하나이다. (내 친구들 역시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커피애호가들이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고스란히 살아 있는 신라의 향기가 너무도 생생하고, 찬란한 신라의 문화가 그대로 내려오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꾸 자꾸 기억을 더듬을수록 희미해져 간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되어서 잠시 감정의 홍수와 혼돈에 빠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 천천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로 인해서 난 일상의 안일함과 평온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점점 기억이 멀어져버려 그 1박 2일 동안의 시간이 정말 내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을까,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련함과 함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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