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이야기 2
보길도 이야기 2
  • tktt
  • 승인 200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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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5日의 시작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맞았다.
두시간 반 동안 버스를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5분마다 한번씩 시계를 봤다. 너무 지루해서 생수 한 병을 다 마시고,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다왔다.
스코트 니어링·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기 시작했지만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 한시쯤에 선생님이 조심히 오라고 이따 보자고 전화를 주셨다.
그제서야 아...이제 곧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방을 다시 꾸리고 옷을 추스리고 칫솔을 새로 사는 등 혼자 부산을 떨었다.


버스에 올랐다.
심야우등고속버스는 참 편하고 아늑했다.
코고는 손님들만 없었다면...

결국 나는 광주까지 가는 동안 잠을 설쳤다. 광주에 도착해서 또 생수 한병을 샀다. 물을 마시면서 땅끝행 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좀전에 버스에 책을 두고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메라에, 핸드폰에, 책까지......
혼자 여행할 때마다 꼭 한번씩 사고를 친다. 버스 도착홈까지 달려가 보았지만 버스는 없었다. 아끼는 책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비싼 책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며 책을 포기하고 있을 때 눈앞에 분실물 신고소가 보였다.
휴... 다행히 책을 찾았다.


땅끝행 버스를 탔다. 이번에는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그리고 중간에 터미널에 도착할 때마다 클락션을 눌러서 표시를 해주는 친절한 기사아저씨 덕에 잠을 설쳤다.

심야버스와 새벽버스는 승객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분위기에서는 뭔가 묘한 차이점이 있었다.
심야버스가 무겁게 내리깔리는 적막(寂寞)이라면 새벽버스는 소리없이 술렁이는 활기참이랄까.
역시 아침 태양빛은 생(生)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


며칠전부터 기상청에서 월요일에 비가 온다고 예보했다. 땅끝행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동안까지도 구름이 별로 없고 햇볕이 들기에 비가 안오려나보다 하고 속으로 좋아하고 있는데, 땅끝항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 차창(車窓)으로 한두방울씩 빗방울이 스쳤다.
우리나라 일기예보가 모처럼 딱 들어맞는 기쁜 순간이었다.


빗방울로 올록볼록해진 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풍경은 그새 참 많이도 변해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한적한 시골길이었는데, 이제는 콘도도 생기고, 청소년 수련원도 생기고, 카페와 음식점도 많이 생겼다.

이 좋은 경치를 나 혼자만 독차지하고픈 마음도 욕심에 불과하겠지만, 자연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케케묵은 논리도 한번 스쳐지나가는 여행객의 사치스런 불평에 지나지 않겠지만,
가슴 한구석 씁쓸한 기분은 어쩔수가 없었다.


보길도로 들어가는 첫배시간 8시 20분. 현재시간 8시 10분.
이러다가 첫배를 놓쳐 내리 두시간을 또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하다. 이런 내 심정을 눈치챘는지, 버스 속력이 높아진다. 다행이다. 잘하면 화장실에도 들를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물을 두병이나 마신 탓에 자꾸 속이 불편하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화장실을 다녀와 표를 끊었다.
보길도로 들어가는 배표는 외지인(外地人)은 6700원이고, 섬 주민(住民)은 4900원인가...하여간 더 싸다.
표를 살 때 표 파는 오빠(정말 오빠인지는 모르겠지만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으니까 오빠라고 불러준다.)가 어디사세요 하고 물어보면 알아서 대답하고 사가는 거다. 증명서를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더 싸게 살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 앞에 줄을 선 청년은 어디사세요 라는 질문에 보길도요 하고 싼 표를 샀지만, 내가 보기엔 여행객이 틀림없었다. 나 역시 내 앞의 그 청년 때문에 잠깐 고민했다.

보길도에 산다고 할 것인가, 서울에 산다고 할 것인가...

하지만 차마 돈 몇 푼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디사세요?...... 서울이요...... 네, 6700원입니다.

배표 파는 오빠에게 나의 순간적인 고민이 슬쩍 비춰졌는지, 싱긋 웃는다.
그 순간 보길도에 산다고 거짓말하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그래, 난 양심적인 사람이다, 우하하하∼∼


드디어 배가 출발한다. 지난번처럼 선실(船室) 밖에서 바다를 보면서 가고 싶었지만 비가 오는데 그럴수는 없었다. 선실에 앉아 책을 좀 읽다가 잠시를 못참고 일어서서 창문에 붙어섰다. 분명히 비는 흩뿌리는데 바다가 너무 잔잔하다. 한발 내딛으면 그대로 서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휴... 참아야지. 이러다 멍청하게 죽고말지...

배가 넙도에 도착했다. 보길도에 가려는 여행객들이 내리려고 짐을 챙긴다. 하지만 난 창으로 이곳이 넙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번 했던 실수를 또다시 하면 안되지. 역시 경험은 중요한거야...(지난 번에 중간 기착지인 넙도를 보길도로 착각해 내렸던 적이 있음)

내렸던 여행객이 선실로 올라오고 다시 배가 움직인다. 그리고 보길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선실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릴 생각을 안한다. 나도 가만있었다. 여기가 보길도 아닌가...하면서 창 밖을 내다보니 마중 나오신다던 선생님의 하얀 승용차가 보인다. 이런!!! 재빨리 옷과 가방을 챙겨들고 뛰어내렸다.

선생님은 하나도 안변하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물으신다.

선생님: 왜 이렇게 늦게 내렸어?

영옥: 사람들이 아무도 안내리길래요.

선생님: (웃으신다.) 그럴 줄 알았어. 난 또 노화도까지 갔다오나 했지.

영옥: --; !!


이 배는 땅끝 넙도 보길도 노화도로 가는 배였다.
역시 처음 경험이 중요하다.

청별항에서 동천다려까지 걸어가면 오래 걸리냐고 여쭈었더니, 평소 같으면 그냥 걸어오라고 했을텐데 비가 오니까 데리러 나오셨단다. 지난번에는 날이 너무 춥고 어둡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마중 나오셨었는데......
내가 보길도에 오는 날은 이상하게도 안좋은 날씨 덕(?)에 호사(豪奢)를 한다.


동천다려에 도착해 짐을 풀고, 그곳에 이미 묵고 계시던 선생님 세분과 대구에서 왔다는 병진언니와 과일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했다. 원래 선생님 세분과 병진언니는 일행이 아닌데, 해남에서 만나 친해져서 같이 보길도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세분 선생님은 오늘 가시고 병진언니는 하루 더 있다 간다고...

선생님들이 나가시고, 선생님과 병진언니와 다실에서 차를 마시며, 각자 책을 읽었다.
새로 지은 다실은 예전의 다실보다 훨씬 크고 깔끔하고 환했지만......

추웠다!!

나는 원래 (스스로도 변온동물이 아닐까 의심스러울만큼) 온도에 민감한지라 먼저 방에 올라와 이불을 덮어쓰고 배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잠들었다.

두세 시간쯤 잤을까. 눈을 떠보니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고 날은 더욱 흐려졌다. 비... 난 비가 정말 싫다. 오늘은 집에만 있어야 하나...하며 책을 읽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이번에도 방에만 있을거냐고 하신다.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했던가...
선생님의 그 한 말씀이 여린 내 가슴을 파고든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목도리를 두르고, 혹시나 하고 준비했던 털모자까지 뒤집어쓰고, 두꺼운 점퍼로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바람아, 내게로 와라!!! (비만 오지마라, 제발...ㅠㅠ)

가까운 곳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세연정 곡수당 낙서재 동천석실로 일정을 잡았다.

세연정(洗然亭)은 자연을 씻는 정자라는 뜻일까,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정자라는 뜻일까. 하여간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창작하고 읊었던 무대이며, 고산의 기발한 착상이 잘 나타나 우리나라 정원유적 중 독보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라 하는데, 건축양식이나 연못조성원리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어부사시사´ 역시 세연지(洗然池) 앞 슈퍼 이름으로만 남아있어, 별다른 역사적·문학적인 감흥은 없었다. 다만 동천다려에서 세연지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참 예쁘고 그 오솔길 끝이 나타나는 아늑하고 단정한 풍경이 세연지와 세연정이라는 점에서 난 이곳을 좋아한다.

세연정은 처음으로 가까이서 봤는데, 정자에 문(門)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문이 모두 천장 쪽으로 90 올려져 매달려 있는 것도 특이했다. 세연정을 한바퀴 돌아보고 길 쪽으로 나오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보길초등학교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야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보길도는 걸어서 돌아다니기에 참 좋다. 서울처럼 여러 갈래로 길이 나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한 길만 쭉 따라가면 된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고, 차도 별로 없다. 곳곳에 이정표가 아주 적절한 위치에 자주 있다. 나처럼 지도도 볼 줄 모르고, 방향 감각이 둔한 사람도 문제없다.

세연정에서 도로로 다시 나와 동천다려 반대쪽으로,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하염없이 걷다보면 V자 모양의 갈래길이 있는데, 왼쪽길이 곡수당과 낙서재로 가는 길이다. 왼쪽길로 접어드니 동백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아직 때가 일러서인지 동백꽃이 드문드문 눈에 띤다.
유명한 보길도동백을 보지 못해 아쉽다.

처녀 혼자 다니는 것이 보기 안쓰러우셨던지 지나시던 할머니 두분이 말을 건낸다. 풀 뜯던 아기염소 세 마리도 말을 건낸다. 내가 신기하게 생겼나?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자꾸 ´엄마∼´를 부른다. 나도 가만히 서서 아기염소들에게 대답해줬다. ´음메에에∼´ 내 말을 못알아듣나보다. 계속 ´엄마´를 찾는 걸 보니...... 괜히 나 때문에 애기들이 밥먹는데 신경쓰일까봐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다보니 ´지압도로´라고 돌을 박아 글씨를 쓴 재미있는 길이 있다. 도로포장공사를 하면서 비슷한 크기의 돌을 심어 울퉁불퉁하게 해놓은 것이다. 돌이 튀어나온 높이가 높아서 그 위로 걷는게 조금 힘들어 발바닥 지압이 정말로 될까는 의심스럽지만, 돌을 열 맞추어 박아놓은 중간중간마다 ´사랑´, ´통일´ 등의 글자를 만든 것이나, 집·네잎클로버 등의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 애교있어보여 즐거웠다.

하지만 곡수당터는 인적(人跡)이 있는 곳인지 없는 곳인지, 잡초가 너무 무성하고 벌레도 많아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비까지 와서 바닥이 질척질척하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그 잡초들을 헤치고 들어가보면 그냥 작은 터가 있다고 한다.
못가봤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곡수당터에서 가까운 낙서재터도 현재는 거의 남아있는게 없는 집터인데, 정말 이곳에 집을 지으면 딱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터다운 집터(?)였다. 뒤쪽으로는 산이 버티고 섰고, 양옆에는 나무가 빽빽하며 앞쪽은 트여있다. 그 사이에 집 한채 지을만한 공간이 생긴다. 그리고 길보다는 단(壇)처럼 조금 높다. 이게 말로만 듣던 명당 자리가 아닐까 싶다.


다시 길을 되돌아나와 아까 그 아기염소들한테 인사를 하고 동천석실 쪽으로 향했다. 요즘 보길도는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길을 가다보니 고구마가 자루에 한가득씩 담겨 쌓여있다. 자루 옆 구멍 사이로 보이는 고구마에 자꾸 눈길이 간다. 맛있겠다. 몰래 가져갈까...? 흠... 하지만 난 배표를 솔직한 값에 산 양심인이다.(누가 양심 냉장고 안주나?)


동천석실 입구에 도착했다. 날도 어두운데 혼자 갔다올 수 있겠느냐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또 걱정을 해주신다. 여기서 먼가요? 물었더니 멀지는 않다고 하신다. 그럼 빨리 갔다 오지요, 뭐 하고 큰소리치고는 산길을 올라갔다.
그런데!!!! 어두워도 이건 너무 어두웠다.
나를 잡아먹으려고 대기중인 커다란 짐승의 입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결국 몇 m 못가서 포기하고 내려왔다.
이건 내가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순전히 날씨탓이다.(진짜다...^^;) 아까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나면 너무 민망할 것 같아서 주위를 살피니, 다행이 안계시다.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열심히 걷고있는데 옆에 택시 한 대가 선다. 괜찮다고 했더니 돈 때문에 그런줄 아셨는지, 그냥 태워다 주겠다고 하신다.
걸어가고 싶다고 사양하고, 택시는 떠났다.

택시가 떠난 후,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후회하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거세지고, 웬 바람은 또 이렇게 심하게 부는지. 세상에 세상에 그간 약 사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이런 바람은 첨봤다.
우산은 이미 우산으로서의 자아를 상실하고 바람막기에 급급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않아 이리 뒤집히고 저리 뒤집히고 야단이다. 우산 든 메리포핀스처럼 우아하게(?) 바람에 날려가버릴 것 같다. 신발과 옷과 모자가 모두 젖었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간신히 동천다려에 도착했다.

옷을 벗어 말리고, 따뜻한 물로 씻고, 낮에 펴놓고 나간 이불 속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은 별로 한 게 없다. 곡수당터와 동천석실은 가보지도 못하고...

몸이 따뜻해질 즈음, 다실로 내려와 저녁을 먹자고 하신다. 가보니 선생님이랑 병진언니 말고 한분이 더 계시다. 선생님과 오다가다 만난 사이(?)라는데, 그간 보름정도 절에 계시다가 내려오셨단다. 단아한 체구와 외모에,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쁜 인희언니다.(부럽당.)

특이하게도 덩치 큰 멸치를 통째로 넣은 콩나물국과 두께 5mm의 당근이 잔뜩 들어간 제육볶음이 상에 올라있었고, 동천다려의 필수 구성 요소인 술도 빠지지 않았다. 조용진 선생님께서 병진언니 편에 보내셨다는 제주 오메기술, 선생님이 직접 담그신 매실술, 호랑가시나뭇잎술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이다.

밥을 다 먹어갈 무렵, 보길도에 외할머니댁이 있어 자주 내려온다는 진강이가 놀러왔다.

진강이는 실제 나이 20대이나, 외모와 목소리와 말투는 10대이고, 30대의 사상을 가진 신비의 여인이다. 게다가 선생님을 ´제윤오빠´라고 물러 나머지 세 여자를 섬뜩섬뜩 놀라게했다.

강제윤 선생님의 여복(女福)이 많은건지, 동천다려 터의 음기가 센건지, 동천다려에는 여자 손님이 많다.

여인네들의 수다 속에서, 선생님의 커다란 웃음소리 속에서, 빠르게 오고가는 술잔 속에서.... 보길도에서의 첫째날은 사그라지고 있었다.

 

<글/사진 = 가을바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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