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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이야기 5

  • Editor. tktt
  • 입력 200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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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

또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동천다려의 아침은 앞뜰을 비추는 햇살의 환한 빛으로, 밥 달라고 밥그릇을 덜그덕거리며 끙끙거리는 봉순이네 식구들의 소리로(특히 길동이^^), 그리고 객지(客地)에서 눈을 떴을 때의 낯섦을 잊게 만드는 그 특유의 편안함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정말로 집에 가야 하는 날이다. 어김없이 7시 10분에 일어나(난 이상하게도 7시도 7시30분도 아닌 7시 10분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기상습관을 가지고 있다.) 지난 사흘 내내 바닥에 깔아놓았던 이불을 개어놓고 청소를 했다. 나의 흔적을 정리한다는 것, 그래서 내가 없던 때와 똑같은 공간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내가 이 방을 그리워하는만큼 이 방도 나를 그리워할까. 갑자기 심술궂은 생각이 들어 머리를 감고 나서 머리카락 몇 개를 일부러 떨구어 놓았다.(나...성깔있는 X이다.--+)

아침 식사 시간이 썰렁하다. 선생님, 인희언니, 나. 이렇게 셋 뿐이다. 어제 새로 오신 손님은 아침 일찍 낙서재 쪽으로 나가셨다고 한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사실이었던지, 사모님은 아직까지도 주무신다고. 먹는 사람은 적지만, 아침 메뉴를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이름은 들어보셨는가? 굴국!!!


재료는 굴과 무와 소금. 딱 세가지만 있으면 된다. 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굴과 함께 물에 넣고 끓이다가 소금간만 조금 하면 된다. 식성과 기호에 따라 파를 조금 썰어넣어도 무방하리라 여겨지지만, 일단 그 세가지 재료만으로도 최고의 요리가 완성된다. 뽀얀 국물의 기름기 하나없는 담백한 맛. 이게 굴국이다. 이렇게 조촐한 재료로 이런 훌륭한 맛이 탄생한다는게 자못 놀랍기까지 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이 가장 뛰어난 요리라는 진리를 떠올려본다면 그닥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헬렌 니어링이 채식주의자가 아니었다면, 이 굴국도 그녀의 저서 ´소박한 밥상´에 추가되어야 할 목록이리라.

열정적으로 아침밥을 먹고 난 뒤, 인희언니가 먼저 동천다려를 떠났다. 이제 오랜 방황의 시간(?)을 접고 집으로 가신단다. 인희언니가 남기고 간 인사가 생각단다. 잘 가요, 앞으로 또 만날 날이 있겠지? ´언제 만날지 모르겠지만 잘가요´라는 말보다 희망적으로 들려서 좋고, ´우리 앞으로 꼭 다시 만나요´라는 말보다 현실적으로 들려서 좋다. 기다림의 여운을 남기는 인사. 인희언니에게 어울리는 작별인사다.
언니가 나간 조그만 방과 다실 문 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툇마루에 앉아 머리를 말렸다. 보길도의 공기와 바람을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한가득 품어서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이 그 속에 머리를 내맡기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늘 나는, 첫날 가보려다 실패했던 동천석실에 올랐다가 12시40분 배를 타고 나갈 예정이다. 가방을 챙겨서 마루에 내다놓고 죽장망혜(竹杖芒鞋)는 아니지만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동천다려 옆 오솔길을 따라 세연정을 지나 동천석실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길에는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무리를 지어 걷고 있다. 이 시간에 왠일일까, 지금은 수업 중일텐데 이렇게 많은 애들이 수업을 빼먹는단 말이야? 이런 생각에 아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니, 몇 몇 아이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열심히 외우고 있다. 아! 교과서에 실린 ´어부사시사´를 배울 차례가 되어, 야외 수업을 하러 가나보다. 웃음이 난다. 나도 학교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쯤 ´어부사시사´를 가르치고 있을텐데...내가 맡았던 학년도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말이다. 이런건 우연이라고 해야하나?
함께 같은 길을 죽 가다가 아이들은 「윤선도 문학공원」으로 들어간다. 내가 서울에서 아이들에게 ´어부사시사´를 가르친다면, 참고서에도 나오는 뻔한 지식들만을 열심히 칠판에 적고 있겠지. 보길도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윤선도의 문학 작품을 배울 때만은)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큰 행운임을 알까. 밝고 명랑한 대화들이 귓전에 남아 쉽게 미소를 지우지 못하고 동천석실 쪽으로 계속 걸었다.

갑자기 어느 집에서 어린 강아지 두 마리가 달려나온다. 반짝반짝 빛나는 검고 큰 눈을 가진 이 강아지들은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내게 뭘 바라는 건지 계속 따라온다. 너무너무 귀엽다. 어릴 적의 길동이처럼 붙임성도 좋다. 과자라도 있으면 나눠 주었을텐데, 얘네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아쉽다. 그러다가 풀섶에서 어떤 곤충을 발견하더니 그 곤충을 잡으러 간다. (매정한 것들...)


길가에 코스모스가 곱게 피어있다. 하지만 보길도는 어느 노래처럼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곳이 아니다. 보길도 코스모스는 다들 키가 작다. 꽃의 크기도 작다. 보통 코스모스의 축소판이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그렇단다. 키가 크면 꺾여버리니까 살기 위해 자연스레 그렇게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고 아담한 이 코스모스들이 다른 덩친 큰 코스모스보다 훨씬 강인하게 느껴진다.

동천석실 입구에 도착했다. 동천석실은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라는 뜻을 가진, 윤선도가 책을 읽고 차 마시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을, 낙서재 맞은편 산 중턱의 한칸짜리 정자이다. 동천석실로 올라가는 산길 바로 앞에는 작은 개울이 졸졸 흐르는데, 이 개울이 선계(仙界)와 인간계(人間界)를 구분지어주는 경계선 같다. 개울 앞까지만 해도 왁자지껄 생동감이 넘치는데, 이 개울만 건너면 고요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산길은 나무가 머리 위로 드리워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둡다. 길은 좁아 나란히 세 사람이 함께 걸을 수 없는 정도이며, 차차 좁아져 나중에는 딱 한명 만이 오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사는 큰 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둥치의 입구처럼 아늑하다. 저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설레이는 기대감... 동천석실로 올라가는 산길에는 그런 느낌이 있다. 동천石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눈 앞에 바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싶으면 길 안내용 주황색 빨랫줄이 보인다. 새로 걸어놓았는지 색깔은 선명하고 깨끗하다. 쇠줄도 밧줄도 아닌 주황 빨랫줄이라니... 역시 보길도는 서민적인 곳이다.^^ 그 빨랫줄을 따라 올라가면 금방 동천석실이 나타난다.


동천석실에서 마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낙서재에서처럼, 그 위치에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까지 올라온 길도 보이지 않을만큼 나무가 빽빽한 산의 중턱에 딱 정자 한 칸만큼의 공간,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지만 완벽하게 소통이 단절될 수 있는 곳. 그곳에 동천석실이 있다. 참 머리좋은 양반이다. 하지만 그 절묘하고 은밀한 곳에 윤선도가 정자를 직접 지었을리는 없을 테고, 양반의 한가하고 사치한 휴식을 위하여 피땀 흘렸을 옛적 주민들의 노고가 안쓰럽게 여겨진다.
미천한 내 글솜씨로는 이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 없으니, 책의 한 대목을 빌려보자.
〈동천석실의 건축물로서의 실용적 기능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나절쯤 들어앉아 책을 읽다가 끼니때가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에 적합한 거리이다. 그러나 동천석실은 독서의 자리라기보다는 풍경 전체를 인도하는 형이상학적 상징물인 듯 싶다. 그 들판은 낙서재나 동천석실에 공간적으로 소속되는 들이 아니다. 그러나 동천석실의 존재는 그 들판을 기획된 공간 안에 끌어들이면서, 그 기획의도를 감춘다. 윤선도는 거점과 거점 사이의 큰 공간을 비어있는 채로 놓아두면서, 그 공간을 다시 거점들이 이루어내는 구도 안으로 편입시킨다. 그때 민생의 들이라는 삶의 현장은 형이상학적 질서 안으로 흡수되어 자리잡는데,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물론 동천석실에서 들을 내려다보는 사람의 언어이다. 김훈 『풍경과 상처』「낙원의 치욕-보길도/소쇄원」中에서 〉


동천석실에서, 땀 흘려 일하는 백성들을 발 아래 굽어보며 신분과 권력이 주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윤선도의 모습이 떠오른다. 휴∼∼ 예나 지금이나 위에 계신 분들의 작태는 한결같으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러나 저러나 동천석실에 오르면서 사고가 생겼다. 이제 딱 한발짝만 내딛으면 동천석실인데, 바로 그 코앞에서, 끈을 헐렁하게 매어놓았던 신발이 미끄러져 벗겨지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엄마얏! 괴성을 지르며 바위에 손을 짚었는데 작은 돌이 손바닥에 박히면서, 난 부상자가 된 것이다. 아주 작은 상처였지만 난 슬펐다. 워낙 잘 넘어지고 부딪히기는 하지만, 보길도에 들어와서는 한번도 안넘어져서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결국... 신발 주워신고 손바닥 호호 불면서 동천석실로 올라갔더니, 거기에 아까 아침 일찍 동천다려에서 나갔다는 그 언니가 와 있었다. 창피하다. 내가 넘어지면서 소리지르는거 다 들었겠지..--;


어색하게 웃으며 사태를 수습하고, 내가 둘러본 보길도·앞으로 언니가 돌아볼 보길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산을 울리도록 소란스럽게 20여명 정도의 아줌마 부대가 동천석실로 올라왔다. 순간 언니와 나는 긴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아줌마들은 동천석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누가 긴 호흡을 가지고 있나 ´야호´ 소리로 내기를 하며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누가 이들을 막을 수 있으랴. 언니와 난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빨리들 내려가 주시기를.


모두들 돌아가며 ´야호´를 외치고, 언제 또 여기에 와보겠냐며 동천석실에도 한번씩 들어갔다 나오시더니, 이윽고 줄지어 산을 내려가신다. 보이지는 않지만 산을 내려가는 내내 목소리가 동천석실까지 들려온다. 그 아주머니들이 산에서 한명씩 빠져나와 관광버스에 올라타고, 버스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다시 조용해졌다.


난 동천석실 바로 앞의 넓적한 바위 위에 올라앉아 건너편 산등성이부터 연두색 갈색 천으로 퀼트를 해놓은 것 같은 밭과 집, 길까지를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달력 그림으로 등장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 아름다운 마을을 마음 속에 고대로 찍어두고 싶어서...

이제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언니는 좀더 계시겠다고 한다. 혼자 산을 내려왔다. 그늘진 시원한 산길 저 앞에 환하고 따뜻한 바깥 세상이 보인다. 역시 개울을 건너니 전혀 딴 세상에 있다가 나온 느낌이다. 복숭아 꽃잎따라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발견하고 사흘을 머물다가 나온 어부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후에 다시 무릉도원을 찾으려했으나 찾을 수가 없더라는 이야기처럼 내가 지나간 후 동천석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닫혀버리지나 않을까 자꾸자꾸 뒤를 돌아다 보았다.

동천다려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 같아서는 ´윤선도 문학체험 공원´에도 들러보고 싶었으나 배시간이 촉박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다음에 또 다시 보길도에 올 빌미를 만들어 두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었다.

동천다려에 들어서니 뭔가 윙윙거리고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이 다실의 나무바닥 튀어나온 곳을 고치고 계신다. 참 재주도 많으시다.^^ 선생님께 ´보길도에서 온 편지´ 책에 싸인을 부탁드려 받아들고, 가방을 매고 동천다려를 나섰다. 선생님은 한결같은 인자한 눈빛과 미소를 얼굴에 가득 담고 배웅을 해주신다.
청별항에 도착해 표를 끊어 배에 올랐다. 짧고도 길었던 나흘간의 기억이 머리 속에 하나하나 떠오른다. 멀어져가는 보길도를 차마 바라볼 수 없어 선실에 올라와서 바로 자리를 깔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쉬움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혹시 누가 보았을까.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리 아쉽더라도 보길도의 뒷모습을 보아두어야겠기에... 하지만 이미 보길도는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무언가를 떠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만남. 그게 바로 여행의 경이로움일까.
난 올해 가을, 안락한 일상의 서울을 떠나 머나먼 곳 보길도에서 산과 들과 바다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오늘도 난 떠남을 꿈꾼다.

 

<글/사진 = 가을바람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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