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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생태관광 시리즈] 생태관광의 천국 스위스를 가다 3.상상을 현실로 만든 청정마을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0.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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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르마트는 알프스의 명봉‘마테호른’의 관문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없는 청정마을 체르마트에는 스위스 전통 가옥이 밀집해 있다

<게재 순서>

1   스위스 철도, CO2와 결별 선언
2  자연과 인간의 물아일체, 네이처파크
3  상상을 현실로 만든 청정마을
4  스위스모빌리티, 무공해 여행 시스템
5  하이킹 도우미, 트래블 트레이너

알프스는 유럽 4개국에 걸쳐 있음에도 스위스와 이미지가 가장 많이 겹친다. 이는 스위스가 알프스의 진면목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자연풍광뿐 아니라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마을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까닭일 것이다. 이 같은 명성에는 발레(Valais) 지역에 위치한 청정마을 체르마트와 사스페가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명봉 마테호른의 관문, 연중 스키를 탈 수 있는 리조트 마을이라는 수식어 이면에는 환경을 지키기 위한 스위스인들의 창의적인 발상과 각고의 노력이 숨어 있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스위스관광청 www.MySwitzerland.co.kr 02-3789-3200

*트래비가 국내 전문가들과 함게 에코투어리즘(Eco-tourism) 선진국 스위스를 방문했습니다. 
  2010년 1월호부터 5월호까지 관련 기사를 연재합니다. 


■Zermatt 체르마트

알프스의 수많은 고봉 중에서도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심볼로 유명한 ‘마테호른(Matterhorn)’을 가장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는 체르마트로 가야 한다. 히말라야, 안데스, 킬리만자로 등의 고봉이 등산 전문가만의 영역인 데 반해 해발 4,478m로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마테호른까지 오르는 길은 험난하지 않다. 열차와 케이블카 등 문명의 혜택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문명과 자연이 상반되는 개념이라는 ‘편견’을 떨칠 필요가 있다. 열차와 케이블카는 수력으로 움직이고 해발 3,000m 위에 설치된 건물들은 태양열로 유지된다. 마테호른의 관문, 체르마트에서는 전기 자동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2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는 4,000m가 넘는 알프스의 봉우리를 파노라마로 볼 수 있는 전망대다 3 체르마트에서 마테호른으로 오르는 길, 푸리 마을에서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다 4 마테호른으로 오르는 고속 케이블카 5 체르마트에 스키, 스노보드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알프스 설경을 파노라마로 즐겨 볼까 

체르마트는 여름에는 하이킹, 겨울에는 스키를 목적으로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데 액티비티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빙하와 설경, 산악지형이 뿜어내는 장관을 보기 위해 ‘스키’, ‘걷기’와 무관한 여행자들도 즐겨 찾는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고봉 정상까지 편리하게 연결하는 빼어난 접근성이다. 체르마트까지 가기 위해서는 빙하특급열차(Glacier Express)을 타야 한다. 생모리츠부터 체르마트를 연결하는 이 열차는 천장까지 유리로 된 파노라마뷰를 자랑하며 이름과는 달리 시속 30km로 달리는 거북이 관광열차다. 열차를 타고 체르마트까지 가는 순간은 단순한 ‘이동 시간’이 아닌 ‘여행의 일부’이다.  

체르마트에서 등산 열차를 타고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전망대에 올라 마테호른을 보는 것은 백미로 꼽힌다. 이 열차를 타면 몬테로자에서 마테호른까지 이어지는 29개의 4,000m급 명봉들과 고르너 빙하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재단장을 마친 호텔 레스토랑에서 절경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겨 보는 것도 좋다. 중간 기점인 리펠베르트역이나 리펠알프도역은 사계절 아름다운 마테호른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장소다. 겨울에는 유명 스키장이 형성되기 때문에 산악기차가 호텔리, 슈토크호른 등 더 높은 곳까지 운행되지만 기상 상태에 따라 운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확인이 필요하다.

케이블카로 알프스의 최고 높이까지 오를 수 있는 것도 이곳에서라면  가능하다. 체르마트에서 8인승 고속 케이블 ‘마테호른 익스프레스’를 타고 중간역인 푸리(Furi)까지 간 뒤 대형 곤돌라로 갈아타고 트로케너 슈테크(Trockener Steg) 전망대에서 한차례 더 곤돌라를 갈아타면 전망대에 닿는다. 여기쯤 오면 고도차로 인해 약간의 현기증을 느낄 수 있으니 절대 뛰어다녀서는 안 된다. 곤돌라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 올라가고, 여기서 또 몇십 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해발 3,883m의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Matterhorn Glacier Paradise, 클라인 마테호른)’전망대에 서게 된다. 융프라우, 몽블랑, 샤모니, 에이글 등 알프스의 명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장관에 여행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곳 전망대에는 이색 얼음궁전이 있는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케이블카 승차장 쪽에 있는 터널을 지나면 빙하동굴이 나오고 빙하 표면에서 약 15m 들어간 곳에 얼음궁전이 자리한다. 안에는 다양한 얼음 조각이 늘어서 있으며 청백색 빛을 뿜어내는 분위기가 이채롭다. 높은 고도로 인해 일었던 현기증도 이 세상이 아닌 듯한 궁전 안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가라앉는다.  

전기와 태양열로 탄소 ‘제로’에 도전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 전망대는 친환경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레스토랑이 2008년 문을 열며 주목을 받은 이 건물은 태양열을 이용해 자가 발전을 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를 절반 이하로 줄이거나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건축물에 주는 ‘미네르기(Minergie)’ 인증을 스위스 정부로부터 받았다. 

마테호른 익스프레스(Matterhorn Express)의 레토 뷔스(Reto Wyss) 디렉터는 “건물 자체는 나무로 지어졌지만 외벽을 태양열 전지로 도배했으며 100% 자생 에너지만을 이용해 실내 온도를 21℃로 유지하고 있다”며 “이외에도 케이블카는 수력에너지를 활용해 움직이고 물은 자체 정화시스템을 활용해 철저히 재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장실에서는 폐수를 정화해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물로 재활용한다는 사실도 놀랍다. 지하 한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정화 시설은 컴퓨터 시스템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다.

고르너 빙하 위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몬테로사(Monte Rosa) 산장도 눈여겨볼 만한 친환경 건축물이다. 스위스 알파인 클럽과 기후 보호 단체인 ‘Myclimate’가 기술 협력을 통해, 해발 2,883m 높이의 구식 산장을 최첨단 ‘에너지 절약형 현대식’ 호텔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산장은 최신식 기계 생산 공정으로 개발되어 내부는 목조, 외부는 태양광 패널로 설계되었으며 건축에 사용된 자재도 헬기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벼운 것만 사용했다. 오는 9월경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체르마트는 자동차 없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우려해 애초부터 마을 내 차량 진입을 금지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1970년대에 마차와 함께 전기자동차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는 전기자동차 공장이 총 3개 있으며, 그중 2개가 이곳 체르마트에 있다. 그중에서도 스테판, 브루노(Stefan, Bruno Imboden) 형제가 운영하는 자동차공장은 오랜 역사로 명성이 자자하다. 공장은 두 형제의 이름을 따 ‘스팀보(Stimbo)’라는 간판을 내걸고 1년에 12~14대 가량의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길이 4m, 높이 1.4m에 이르는 이 귀여운 차는 각 고객의 요구에 맞게 제작되며 용도에 따라 트럭, 택시, 버스 등으로 제작된다. 호텔, 식당, 농장 등 이곳에서 사업을 하지 않는 이들은 차를 구매할 수도 없는 까닭에 현재 500대 가량만이 마을을 굴러다닌다. 6만~10만스위스프랑(한화 약 6천만~1억원)이라 하니 가격은 만만치 않다.

이외에도 체르마트는 환경 보존을 위한 규제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체르마트관광청 마크 쉬어러(Marc Scheurer) 디렉터는 “케이블카 회사도 주민들의 투표와 승인이 있어야만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고, 마을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건물 외관의 3분의 1이상을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1 체르마트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직사각형 모양의 전기자동차이다 2 전기자동차는 9시간 충전하면 이틀 정도 탈 수 있다고 한다 3 해발 3,800m에 위치한 마테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


 Sass-fee 사스페 

체르마트와 마테호른을 사이에 두고, 사스(Saas) 골짜기의 중심에 위치한 사스페는 ‘알프스의 진주’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연중 스키,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고, 하이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아담한 규모의 마을과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고봉, 구석구석 매력적인 산책길 등은 ‘진주’라는 수식어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사스페는 체르마트 못지않은 친환경 청정마을로 유명하다. 자동차가 없으며, 재활용 에너지를 이용하는 호텔, 식당 등이 이곳에도 있다.

알프스 봉우리가 돌고 도네

체르마트를 떠나 스탈덴 사스(Stalden-Saas)역에 도착해 우편버스로 갈아타고 사스페에 도착하니 밤이 깊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일행을 픽업하러 나온 네모난 버스를 보니 어딘가 익숙하다. 체르마트와 마찬가지로 사스페도 전기 자동차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사스페는 체르마트에 비해 유명세가 조금 떨어지지만 스키어, 스노보더들에겐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기자가 머문 기간에도 국가대표 스노보드 선수들이 대회 참가를 위해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 등정에 올랐다. 체르마트에서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핀 익스프레스(Alpin Express)를 타고 해발 3,000m의 펠스킨(Felskinn)에서 산턱에 깎인 터널을 기차로 달리는 메트로알핀(Metro Alpin)으로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알라린(Allalin). 세계 최고 높이를 달리는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곳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한 지구상 최고 높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먼저 발을 들인 곳은 얼음궁전으로  최고 높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미끄럼틀, 이글루, 각종 조각 전시품을 비롯해 알프스에서 조난당한 산악인들의 마네킹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입장료는 성인 3~5스위스프랑, 어린이 2~3스위스프랑이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명물은 회전 레스토랑. 해발 3,500m에 위치한 이 식당은 원형으로 지어졌으며, 1시간 동안 테이블이 놓인 자리가 천천히 회전하며 이용객들은 통유리로 융프라우, 마테호른은 물론 이탈리아까지 알프스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기게 된다. 스파게티, 스테이크, 소시지, 베이컨 등 맛도 일품이다. 

레스토랑 또한 철저하게 친환경을 표방하고 있다. 관계자는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있고, 음식도 양을 줄여 필요하면 더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에너지의 50%는 태양열, 풍력 등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6년 지역 주민들의 투자로 1,000만스위스파랑(약 100억원)을 들여 건설된 레스토랑은 1997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해 에코투어리즘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도 꼽히고 있다.   



1, 2 사스페는 연중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스키 파라다이스다. 해발 3,500m에 위치한 봉우리, 알라린(Allalin)에 있는 회전식당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스페의 명물이다 3 전망대 지하에 위치한 얼음궁전은 세계 최대 높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4 사스페에는 케이블카뿐 아니라 터널로 뚫린 산속을 달리는 지하털 '메트로알핀'이 운영되고 있다


럭셔리한 에코투어 ‘가능하다’ 

그동안 에코투어에 관한 기사를 숱하게 써 왔지만 사스페에서, 한 유명 호텔의 사장을 만나고 나서야 그 개념이 비로소 명확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호텔은 사스페에서 가장 럭셔리한 5성급 리조트였다. 편견은 사장을 만난 호텔 회의실에서부터 깨졌다. ‘럭셔리’와는 이질적인 초등학교 교실 분위기의 소박한 회의실에서 사장과의 만남은 이뤄졌다. 강의를 듣듯이 흘러간 1시간여의 시간 동안, 쉽고 합리적인 그의 설명에 100% 설득당했고, 최근 녹색성장을 부르짖는 우리 정부를 위해 초빙강사로 그를 초청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페리엔아트(Ferien Art) 리조트 & 스파. 1983년 지어진 이 호텔은 그동안 증축을 거듭했으며, 2008년에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실천한 업체에 수여하는 마일스톤(Milestone)상을 수상했다. 이는 스위스 관광업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이외에도 미네르기 인증을 비롯해 총 27개의 에코 관련 인증을 받았다. 호텔 식당은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3개를 받기도 했다. 

사스페관광청 대표까지 겸임하고 있는 비트 안다마텐(Beat Anthamatten) 사장은 “친환경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태양열, 풍력 에너지 등만을 떠올리는데 우리는 호텔이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며 “에코투어도 꼭 저렴하고, 소비를 자제하는 방식으로 이해되는데 럭셔리한 콘셉트로 충분히 구현이 가능하며 자본력이 있는 기업과 오너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안다마텐 사장이 에코투어의 선봉장이 된 데는 사스페에서 성장한 배경이 결정적이었다. 1890년 거주민 100명, 호텔 5개가 전부였던 사스페는 현재 1,600여 명이 살고, 60여 개의 호텔이 있는 관광지로 발전했다. 어찌 보면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다. 이는 사스페가 오래 전부터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해 온 덕이다. 사스페에서는 1년에 1,200㎡만큼의 공간에만 건축을 허용한다. 각 호텔은 1년에 2개월만 건축과 관련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1951년부터 ‘차 없는 마을’을 선포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만큼 개발과 관련된 규제가 많은 지역이 사스페이다. 

안다마텐 사장은 호텔 경영에 있어서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부분까지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다. 100명의 직원에게는 에너지 절약을 위한 10개의 규정을 몸에 지니고 다니도록 하며, 교대로 ‘그린팀’을 운영해 직원들을 감시하고 결과에 따라 상벌을 준다. 사장은 나아가 해외봉사와 지역 사회 발전에도 적극 가담하고 있다. 그린피스와 연계해 지역 어린이들과 함께 마다가스카르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고, 다른 호텔에서는 채용하지 않는, 일이 서툰 어린 직원을 17명까지 고용하고 있다. 이 호텔이 EU 및 스위스 정부로부터 숱한 상패를 수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친환경이라고 하면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안다마텐 사장의 지적은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듯하다. 그는 “스위스 관광 역사 140년에 에코투어의 역사는 고작 30년밖에 안 됐다”며 “그런 의미에서 나처럼 발벗고 나서는 이가 성공해야 에코투어의 바이러스가 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www.ferienart.ch 



1 페리엔아트 리조트의 객실. 자쿠지가 침실 옆에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리조트는 환경 보호를 위해 사용하지 않은 수건은 교체해 주지 않는다 2 리조트는 스위스 전통 주택양식인 샬레 스타일로 지어졌다 3 비트 안다마텐 사장은 사스페에서도 지속가능한 개발, 에코투어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4 사스페는 알프스의 진주라 불린다. 소박하고 아리따운 마을 풍경이 인상적이다


<체르마트의 아주 신선한 실험>

스위스는 세계여행을 꿈꾸던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하나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기자 생활로 20여 년 시달리는 사이에 그 꿈은 시나브로 엷어지고, 종래에는 사그러들고 말았다. 정작 기자를 그만둔 뒤에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를 가면서도 스위스는 가지 않았다. 왠지 굉장히 물가가 비쌀 것 같다는 선입견에, 다른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그러던 중 지난해 우연히 그 로망을 실현할 기회가 생겼다. 스위스관광청 초청으로 ‘생태관광’을 테마로 한 여행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원래 일본 여행 계획이 잡혀 있었지만, ‘스위스’라는 말을 듣자마자 계획을 급히 변경하고 따라나섰다. 스위스를 동경하는 불씨가 마음 한구석에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게다. 

일주일간의 스위스 여행은 전반적으로 기대 이상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을은 단연 체르마트였다. 주민 4,000여 명이 모여 사는 조그마한 마을이 알피니스트들의 꿈인 웅장한 마테호른 봉우리 발치에 조붓하게 엎드려 있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림 같은 곳’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자그마한 열차역과 마을 광장을 중심으로 카페와 기념품 가게와 스키용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간판의 크기와 건물의 높이가 서로 근사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풍경이 유난히 평화로워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럽의 스키 관광객이 가장 즐겨 찾는다는 유명 관광지인 체르마트인데도 이곳에는 장난감처럼 작고 귀여운, 각기 다른 디자인을 뽐내는, CO2를 전혀 내뿜지 않는 친환경적인 전기자동차만 ‘돌돌거리면서’돌아다녔다.

알고 보니 체르마트는 오로지 그 유명한 산악철도로만 방문할 수 있었고, 이곳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전기자동차와 케이블카뿐이었다. 눈과 코를 시원하게 하는 알프스의 풍광과 공기는 신이 내린 선물일 터. 그러나 그 선물을 지혜롭게 지키고 보물처럼 아끼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체르마트는 ‘보석 중의 보석’이 된 것이다.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동안에 내내 고향 제주섬을 떠올렸다. 제주의 한라산은 마테호른보다 낮지만 독특한 아름다움과 너른 품을 자랑하는 영산(靈山). 거기에 제주에는 이곳에는 없는 끝없이 푸른 매혹적인 바다가 있다. 신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이곳 체르마트에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는 ‘세계자연유산’의 섬이다.

그럼에도 제주는 자동차 문화가 극성을 부리는 대한민국에서도 1가구당 자동차 보유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떠올랐다. 옥빛 바다와 산호 해수욕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우도의 경우,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에도 수백 대의 차량이 좁은 섬을 휘젓고 다니면서 소음과 매연을 내지르고 내뿜는다. 섬이 주는 고요한 매력, 단절의 특별함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스페인 ‘산티아고길’ 체험이 고향 제주에 올레길을 개척하도록 내게 영감을 주었다면, 지난해 스위스 체르마트 여행은 제주의 작은 섬 하나만이라도 자동차가 다니지 않거나 전기자동차만 돌돌거리는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소망을 품게 해주었다. 



1, 2 체르마트는 스키 여행지뿐 아니라 사계절 아름다운 하이킹 루트를 자랑한다 3 사스페의 산책길은 샬레풍의 가옥들과 어우러져 전형적인 스위스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서명숙 이사장은 시사주간지에서 오랫동안 정치부 기자로 일하다가,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마지막으로 언론계 생활을 접었다. 2007년부터 고향 제주에서 도보여행자의 트레킹코스인 ‘제주올레’ 길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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