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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야 리조트-료칸의 오래된 미래를 만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0.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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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번째 호시노야 리조트가 드디어 교토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을 잠시 따돌리듯 작은 배를 타고 오오이카와강을 거슬러 올라간 곳에 100년의 무게감으로 앉아 있는‘또 하나의 일본’이 나타났다


호시노야 리조트
료칸의 오래된 미래를 만나다


지나간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미래의 역사마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호시노야 그룹은 ‘만약에’라는 가정으로 일본 료칸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만약’은 이런 것이다. “만약에 일본이 서양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통적인 가치를 보존하며 근대화되었다면 우리의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모습일까?” 이 대담한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2005년 오픈한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리조트였다면 2009년 12월12일에 오픈한 호시노야 교토 리조트는 그 두 번째 답안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천소현  




호시노아 교토 리조트 

교토(京都)는 옛날 영화 같은 독특한 서정을 지닌 도시다. 교토가 처음이었던 이들에게 가장 쉬운 비유는 ‘경주 같은 곳’이라는 한마디였다. 왜 한 나라의 옛 수도에서는 시간이 항상 느리게 흘러가는 것일까. 사람들이 도시의 과거를 즐겨 반추하며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 맛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럭셔리한 료칸 리조트로 유명한 호시노야도 그랬다. 400여 년 전에 유명한 해상 상인 료이 수미노쿠라(1554~1614)의 개인 별장이자 서재였던 건물은 100년 전부터 료칸으로 운영되어 왔고 호시노야는 그 건물을 다시 두들기고 조립해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내놓았다. 이로써 한 세기는 지난 세기와 만났다. 시계가 존재하지 않는 리조트에서 느끼는 시간은 강물 같았고, 구름 같았다. 

교토의 은밀한 강변 별장 

그 시작은 배를 타는 의식으로 찾아온다. 호시노야 리조트가 위치한 아라시야마(嵐山)는 벚꽃이나 단풍으로 유명해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부터 이어 내려오는 교토의 유서 깊은 별장 휴양지다. 호시노야 교토는 아라시야마에서도 오오이카와 강을 거슬러 올라가 더 깊은 계곡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예부터 부자들의 별장과 산 속 신사들만 고즈넉하게 숨어 있을 뿐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호시노야 교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도게츠 다리(渡月橋) 아래 위치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 정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막상 경험해 보면 이 짧은 배 여행은 소란스러운 세상을 떠나 조용한 안식처로 들어갈 때 마땅히 수행해야 할 ‘씻음’과 같았다. 엔진 소리는 낮고 물결은 잔잔해 배는 명상의 공간이 되어 버린다.   

호시노야는 고도(古都)에 부지를 결정하고 ‘은밀한 강변 별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난관을 넘어야 했다. 항공사진을 찍었을 때 달라진 모습이 없어야 한다는 엄격한 개발 기준을 통과하면서도 ‘현대식 안락함을 갖춘 진정한 일본’을 창조하기 위해 이들은 전통과 현대에서 빌려올 수 있는 모든 자원과 최고의 장인들을 끌어와야 했다. 원래 건물을 구성하던 낡은 목재를 재활용하기 위해 고목을 가공하는 장인을 고용했고, 격자 세공 장인이 창을 만들고 전통 기와 전문가가 지붕을 엮었으며 교토에서 생산되는 전통 문양지로 벽을 장식했다. 좌식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게스트를 위해 양식 소파를 만들되 전통 다다미방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대나무를 사용하도록 주문했고, 다도 재료와 소품을 쉽게 정리하도록 되어 있는 티 박스의 심플하면서도 매혹적인 디자인은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예가 된다. 물론 좀더 일본적인 분위기를 선호하는 게스트를 위해 다다미 스타일의 거실 유형도 있다. 그냥 바닥에 이불을 깔지 않고 나무단상을 올리고 그 위에 두툼한 요를 까는 푸통 침대(Futon Bed)를 설치한 침실공간은 동양적이면서 침대만큼이나 안락하다. 호시노야에게 있어서 럭셔리란 전통 속에 녹아 있는 품위와 모던함이 추구하는 실용성과 디자인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상태다. 

21세기 리조트의 고취(高趣)  

아주 사적인 리조트가 모두 그러하듯 규모는 크지 않다. 25실의 객실은 대부분 별채로 독립되어 있고 저마다 공간 설계가 다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쪽마루 아래 신발을 벗어 두어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침실공간과 거실, 때로는 서재의 공간이 스튜디오처럼 모여 있기도 하고, 좁은 복도를 따라 나눠져 있기도 하고, 계단을 따라 1, 2층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창호지를 붙인 격자무늬 창을 열면 푸른 이끼를 품은 고목이 강 쪽으로 손을 뻗고, 지난밤 내린 비로 몸을 불린 강물 위로 청둥오리 한 마리가 자맥질을 반복하며 먹이를 구한다. 도쿄의 북적이는 관광지가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호시노야 교토는 옛 일본의 감각으로 충만해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자연과 맞닿아 있다. 정적인 느낌의 결정체라고 할 만한 전통 일본식 정원을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움을 고려해 새롭게 해석한 두 개의 정원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호사를 홀로 여행족도 만끽할 수 있도록 싱글룸이 있다는 것도 호시노야만의 특징이다. 

21세기의 료칸의 서비스는 어떨까. 호시노야 교토는 정중함과 치밀함을 유지하되 엄격함을 제거했다. 시계나 TV는 없지만 무선 인터넷이 잘 터지고, 24시간 오픈하는 ‘라이브러리 라운지’에는 언제든지 신선한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에스프레소 기계와 다양한 언어로 된 책, 대여 가능한 음악·영화  DVD가 비치되어 있다. 또 하나의 큰 개혁은 식사의 원칙이다. 

일반적으로 료칸에서는 식사 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고 메뉴도 세트화되어 있지만 호시노야는 게스트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원칙을 수정했다. 리조트 안이든 밖이든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시간에 먹도록 배려한 것이다. 교토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재료들을 사용한 교토 전통식은 물론, 그 이상으로 메뉴를 다양화, 고급화 했다. 아침식사도 일식과 양식 중에 선택할 수 있고 점심이나 저녁에 외식을 원할 경우 호시노야의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한 제휴 레스토랑으로 예약을 넣어 준다. 저녁식사 시간(오후 6시~밤 10시)를 제외하면 24시간 룸서비스도 가능하다. 

특히 호시노야 교토의 자랑이자 특색은 소바 요리에 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스타급 소바 요리사를 초빙해 직접 눈앞에서 면을 뽑아서 만들어 주는 ‘소바 바’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한 최상의 소바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생생한 질감이 살아있어 시원하기까지 한 와사비를 육수에 풀지 않고 금방 만들어 낸 소바에 살짝 발라서 육수에 적신 후 입 속으로 넣으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1 새것을 만드는 것보다 옛것을 새것처럼 바꾸어 쓰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호시노야 교토는 100년 된 별장 건물을 최신의 기술로 탈바꿈시켜 앤티크 라이프스타일을 가능하게 했다 2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먹는 아침식사는 양식과 일식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3 푹신한 푸통 침대는 동서양의 침실이 이상적으로 동침하는 곳이다 4 게이코가 된 홍콩 게스트. 옷을 입는 과정은 하나의 예식과 같았다

‘호시노야 귀족’만의 호사 

호시노야 교토는 평화로웠던 헤이안 시대에 귀족들이 즐겼을 만한 고급스러운 취미생활을 게스트 전용 프로그램에 도입했다. 일본 왕족과 귀족들만 즐길 수 있었던 침향(沈香)은 귀한 침향 조각을 태워(약한 숯불에 올려 천천히 향을 올린다) 향기를 음미하고 옷과 몸에 향이 스며들도록 하는 사치스러운 취미 생활 중 하나였다. 옛날 방식 그대로, 마치 수술실에서 집도하듯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 재를 쌓고 침향을 올려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어 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수양의 뜻도, 향기보다 깊다.  

기모노 체험도 길거리나 공원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옷을 두르는 것과는 수준이 다르다. 속옷부터 마지막 액세서리까지 마치 교도의 게이코(교토에서는 게이샤를 게이코라고 부른다)들이 그러했듯 오랜 시간을 걸쳐 단장한다.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도록 허리와 가슴 부분에 수건을 대고 칭칭 동여매어 일자형 몸매를 만들고 그 위에 가운을 몇 겹씩 덧대어 입고 나자 이국의 손님들은 아름다운 게이코들로 변신했다. 게스트들은 이런 차림으로 하루 동안 교토 시내를 여행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인근의 다이토쿠지 사원에서의 아침 명상은 호시노야 게스트에게만 주어지는 고요한 아침의 시간이다.

호시노야 교토 HOSHINOYA Kyoto  

객실(총 25실)
미주노네 Mizunone : Single room(33~36㎡, 1인) 4만엔
하시주쿠 Hashizuku : Deluxe room(42~60㎡, 2인) 7만엔
타니가수미 Tanigasumi : Semi-suite(54~75㎡, 2~3인) 7만8,000엔
야마노하 & 야마노하 마이소네떼 Yamanoha & Yamanoha
Maisonette  8만7,000엔 : Classic suite(60~93㎡, 2~4인)
추키하시 & 추키하시 마이소네떼 Tsukihashi & Tsukihashi
Maisonette 12만3,000엔 : Classic VIP suite(81㎡~, 2~3인)
아침 식사 시간 오전 7시~10시
                가격 일식(3,800엔)과 양식(2,900엔)
저녁 식사 시간 오후 6시~밤 10시(주문 마감┃밤 9시30분)
                가격 애피타이저 1,365엔부터, 그릴 4,410엔부터,
                        소바 1,260엔(세금 포함)
주소 Genrokuzancho 11-2, Arashiyama, Nishikyo-ku,
        Kyoto City
홈페이지 kyoto.hoshinoya.com 





1 작은 산촌 마을처럼 아늑한 풍경을 자랑하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매일 저녁 강물 위에 촛불을 밝힌다 2 전통 일본 요리의 미감을 느껴 볼 수 있는 레스토랑‘가스케’는 지형에 순응하며 층층으로 나눠져있다 3‘빛과 색’을 테마로 한 메디테이션 스파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4 호시노야 리조트는 전통 료칸을 개조해‘일본식 모던’양식의 모범적인 예를 제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리조트

‘호시노야 도쿄(HOSHINOYA Kyoto)’에 이틀을 머문 후 ‘호시노야 가루이자와(HOSHINOYA Karuizawa)’로 장소를 옮겼다. 호시노야의 리조트 철학을 알기 위해서는 그 첫 번째 작품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이 어떻게 다른지, 어디가 더 좋은지 말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도착했을 때 질문은 훨씬 어려워져 있었다. 늦봄의 폭설로 가루이자와의 풍경은 한겨울로 되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 옷장이 비어있지 않다. 가운 형태의 유카타(浴衣)가 비치되어 있는 것은 료칸에서 기본이 되는 서비스지만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에는 품이 넉넉한 상의와 바지로 된 일상복과 담요처럼 두꺼운 망토형 오버코트, 두툼하게 누빈 잠옷까지 구비되어 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다른 옷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빛과 어둠’을 테마로 빈 방에 물이 차 있는 것처럼 만들어진 온천장은 감각적으로 독특한 경험이다. 계단을 내려서면 허리쯤 물이 차오른다. 천장이 높은 방 안으로 들어서면 간유리를 통과한 노란 조명이 부드럽게 수면으로 떨어진다. 희미한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 한 구석에 검은 통로가 블랙홀처럼 또렷해진다. 팔로 물을 휘저으며 빨려 들어가듯 터널을 통과하면 이어지는 상자 같은 방. 푸른빛이 도는 물 속 조명이 비추는 것은 창백한 몸이라서 오싹한 기분마저 든다. 유황온천에서 한결 부드러워진 몸을 쓰다듬으며 다시 빛의 세계로 빠져나왔을 때의 극적인 안도감, 그것이 이 젖은 명상 끝에 얻게 되는 ‘정화’인 것도 같다. " 

초현실로 그린 일본의 산촌 풍경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게스트에게만 24시간 오픈하는 이 온천장의 경험은 호시노야에 대한 많은 설명을 단축시켜 주었다. 지극히 일본적인 감성이 모던한 감각과 버무려져 만들어진 결과물이 바로 호시노야 리조트이기 때문이다. 

감성은 100년의 시간 동안 무르익어온 것이다. 타이쇼 시대(1912~1926)부터 이 자리에는 호시노야 온천 료칸이 운영되고 있었다.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150km, 고속 기차로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가루이자와는 예술가, 지식인, 황실 가족들이 휴가나 결혼을 위해 즐겨 찾는 별장 지역이다. 아사마 산 기슭에 있는 고원지대는 여름에도 건조하고 시원했으며 맑은 온천이 솟았기 때문이다. 천황 부부가 처음 만난 곳도 가루이자와라고 했다. 1904년부터 호시노야 가(家)의 가업인 온천은 1991년 4번째 후계자 호시노 요시하루(星野佳啓·41) 사장을 만나 “만약에 일본이 서양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통적인 가치를 보존하며 근대화되었다면 우리의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2005년 지금의 리조트로 다시 태어났다. 

77개의 객실은 강 양쪽의 수상가옥처럼, 언덕 위의 별장처럼, 일본의 작은 촌락을 형성했다. 다다미방은 사라지고 테라스와 이탈리아에서 만든 푹신한 푸통(Futon) 매트리스를 갖춘 와모던(和modern·일본풍 모던양식) 스타일의 료칸은 호텔보다는 넉넉하고 다정하며, 전통 료칸보다는 익숙한 편안함을 준다. 말하자면 호시노야는 이곳을 ‘또 하나의 일본’으로 만들었다.

연못 위를 떠다니는 촛불이 점화되는 늦은 오후, 혹은 하늘이 마지막으로 파랗게 타오르는 이른 저녁이 되면 정적인 감상이 최고조에 달한다. 객실의 창이나 테라스를 통해 바라보는 평화로운 마을의 야경은 촛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살아왔던 시절의 향수를 환기시켜 준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2006년 ‘환경과 건축을 위한 좋은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클럽하우스라고 할 수 있는 ‘쓰도이’도 프런트데스크, 리조트숍, 어린이 놀이방, 라이브러리 라운지 등을 품고 경사면의 굴곡을 따라 편안하게 누워 있다. 호시노야 온천 창설자의 이름을 딴 정통 일본 레스토랑 ‘가스케’도 지형에 순응하여 계단식 논처럼 몇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계단식 정원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먹는 아침과 저녁은 매번 특별했다. 눈으로 먼저 즐기는 가이세키요리(會席料理)를 경험할 수 있는 식도락의 세계가 두 시간씩 이어지곤 했다. 온천물로 익힌 야채 요리와 죽, 양배추나 당근 등으로 만든 두부 요리는 이곳의 명물이다. 신선한 재료의 위력을 절감케 한 것은 사과를 먹여 키웠다는 쇠고기를 살짝 데쳐먹는 샤브샤브 요리였다. 머릿속에 객실의 히누끼(사이프러스 나무로 만든 욕조) 탕마다 놓여 있던 목욕용 사과(물에 동동 띄운다)가 떠올랐다. 

호시노야에 돌려진 자연의 보은

호시노야의 질문에는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이 시대의 화두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단한 해결방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은 오지에서 선조들은 강물을 이용한 수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 화산 지형의 지열과 온천수의 열을 객실의 난방열로 활용하는 기술 등을 도입한 끝에 현재는 필요한 에너지의 75%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이 보이지 않는 혁신이야말로 료칸의 미래를 꿈꾸는 그들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모법답안임이 분명하다. 맑은 강물과 오래된 숲은 보은하듯 더 많은 것을 돌려주고 있다. 

호시노야의 계열사인 피끼오(Picchio)는 게스트 전용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야행성인 ‘나는 다람쥐’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그 흔하다는 피키오(이탈리아어로 딱다구리)도 볼 수 없었지만 피키오 비지터 센터에 들려 작은 새들의 지저귐을 귀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훨씬 생기가 돌았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가루이자와 야생조류 보호 구역(1974년 국가 지정)인 들새의 숲을 천천히 산책하는 동안 사람들은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브라운 베어와 사랑에 빠졌다. 피키오는 호시노야 투숙객을 위해 계절별로 프로그램을 바꾸는데, 그중 별자리 관찰(Star gazing)은 예기치 못한 감동이었다. 날이 아직 추웠고, 개인 망원경을 나눠 줄 것도 아닌 것이 뻔해서 티끌만한 별자리를 헤는 일에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다만 연일 이어지는 진수성찬으로 부풀어 오르는 몸을 움직일 요량으로 뒷동산에 따라 올라갔다. 

그곳에는 예상만큼 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야외용 간이침대 위에 잘 펴져 있는 두툼한 침낭이었다. 신발을 벗고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가니 밤의 추위는 사라졌고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목이 아프지도 않았다. 빌딩도 가로등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는 손전등의 불빛이 충분히 하늘에 가 닿았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별자리에 대한 설명, 그리고 글루바인(와인에 계피 등 허브를 넣고 끊인 유럽인들의 겨울 음료)과 쿠키가 각자의 침상으로 배달되었다. 문득 있지도 않은 애인이 그리워졌을 정도로 그 밤은 로맨틱했다.  

느릅나무 사이를 걸으며

리조트를 몇 걸음만 나서도 돈보노유 온천장, 손민식당, 피키오 비지터센터 등 가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일반 온천욕객을 받고 있는 ‘돈보노유(簿の湯)’는 넓은 노천탕과 빛이 잘 들어오는 실내 온천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 한 시간씩은 료칸 투숙객을 위한 전용 시간으로 비워두고 있으니 이 시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온천욕 후에는 항상 배가 출출해지는 법. ‘손민소쿠도(村民食堂)’에서는 가벼운 일식을 즐길 수 있다. 이름처럼 산촌의 작은 식당이라기보다는 모던한 카페테리아의 분위기에 가까워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이왕 여기까지 나왔으며 그 다음 방문지는 하루니레 테라스(ハルニレテラス)다. 셔틀버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걷기에도 나쁘지 않다. 유카와강을 따라 아사마 산 기슭의 해발 1,000m 고지대에는 지금도 호젓한 별장들이 강을 따라 줄지어 있다. 여름이면 수령 100년이 된 느릅나무(하루니레)가 짙은 녹음을 드리우는 테라스는 최고의 피서지가 되기 때문이다. 별장 주민뿐 아니라 골프, 테니스, 스키, 하이킹, 뮤지엄 방문, 명품 아울렛 쇼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루이자와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2009년 7월 문을 연 하루니레 테라스는 여유로운 쉼터가 되고 있다. 스파, 타이 마사지, 소바 전문점, 이탈리안 레스토랑, 카페, 프렌치 베이커리, 와인숍, 서점, 미용실 등 17개의 상점이 자리잡고 있는 테라스는 주변의 자연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가루이자와는 결혼식 장소로도 유명하다. 2곳의 유명한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1921년에 세워진 가루이자와 고원교회(Karuizawa Kogen Church)는 삼각 형태의 목조 예배당으로 수많은 커플들이 결혼식을 올린 명소다. 호시노야 그룹은 1965년 인근에 호텔 브레스톤 코트(Hotel Bleston Court)를 오픈해 신혼부부와 문인, 예술인들을 받고 있다. 특별한 디자인의 우치무라 간조 기념 석조 예배당(Uchimura Kanzo Memorial Stone Church)은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반구형 도미노를 겹겹이 세워놓은 송충이 같은 모습인데, 그 마디마디는 후면으로 갈수록 간격이 좁아지고 기울어져 있다. 1988년 미국인 건축가 켄드릭 켈로그(Kendrick Kellogg)가 부부가 되어 살면서 차츰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형상화했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쯤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돌아가도 좋지만 조금 아쉽다면 호텔 브레스톤 코트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노 원스 레시피(No One’s Recipe)’에서 달콤한 케이크에 커피 한잔을 곁들이기를 권한다. 화려한 수상 경력의 셰프들이 어떻게 인근 별장주인들의 마음을 앗아 버렸는지 알 수 있다.

 


1 가루이자와는 예부터 귀족들의 별장 휴양지이자 결혼식 장소였다. 1988년 만들어진 석조 예배당은 부부가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2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수력발전과 지열 활용 등으로 에너지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3 작은 별장 건물에서는 요가, 종이 오리기, 다도 등의 게스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들새의 숲’을 걷는 에코투어는 가루이자와 야생조류 보호구역을 천천히 산책하는 시간이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HOSHINOYA Karuizawa 

객실(총 25실)
미즈나미(Mizunami) : 강변 빌라(일본식 거실형, 양식 거실형)
니와로지(Niwaroji) : 가든 빌라(일본식 거실형, 2층형, 벽난로형)
야마로지(Yamaroji) : 마운틴 빌라(거실 A형, 거실 B형,
                                  킹사이즈 침대형, 일본식 거실형)
찾아가는 길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도쿄역까지 60분 소요. 도쿄에서 신칸센 아사마(Shinkansen Asama)를 타고 가루이자와역까지 70분 소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까지 택시로 15분. 셔틀버스 서비스도 이용 가능.
주소 Hoshino, Karuizawa-machi, Nagano
홈페이지 www.hoshinoy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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