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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한왕용-“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0.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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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세요? 사회에서 아무리 높은 권력을 지닌 사람이라도 산에만 가면 순해진다는 거. 자연을 접하면 동화가 되기 때문이예요.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산의 가장 큰 매력이죠."

세계에서 열한 번째,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한왕용 대장은 최근 신발끈 여행사에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아니 3막이다. 그는 14좌 완등 후 자신이 다녀간 산들의 쓰레기를 스스로 치우겠다며 다시금 그 험악한 산들에 올랐었다. 어쩌면 ‘클린마운틴’을 외치며 14좌를 두 번이나 다녀온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다시 시작하는 여행사에서의 도전은 좀더 나은 트레킹 문화를 고민하는 그에게 있어서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도선미 기자   사진  박우철 기자

트래비  
대장님은 14좌 완등보다 클린마운틴으로 더 유명하시더군요. 국내에서 클린캠페인도 꾸준히 하시고요. 
한왕용  
2003년부터 시작한 14좌 청소등반이 2008년에 끝났죠. 그뒤로 국내 산들을 돌며 한 달에 한번씩 클린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청소 등반예요. 제가 40인승 차량을 지원해 주고 있고, 나머지 비용은 참가자들 부담이죠. 벌써 14번째 가까이 됐네요.

트래비  
클린마운틴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한왕용  
제가 2002년 K2에 올랐을 때 근처에 있던 일본 텐트에 놀러간 적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녹슨 통조림캔을 따고 있어서 어디서 난 거냐고 물었더니 “캠프2에 가면 한국인들이 버리고 간 통조림이 하도 많아서 이렇게 가져다 먹는다”고 하더군요. 그때 퍼뜩 내가 버린 게 아닐까, 나 때문에 한국인들이 이렇게 욕을 먹는구나 싶어서 충격을 받았죠.
한국은 세계에서 원정을 가장 많이 가는 나라 중 하나예요. 좀 의외죠. 하지만 왜 한국 사람들만 왔다 가면 신라면 봉지가 남아 있냐고들 해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겠기에 쓰레기를 치우러 다시 올라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4좌 등반이 끝나고 목표를 이룬 뒤 허무감에 시달리게 되면서 행동으로 옮긴 거죠. 클린마운틴은 아마추어 산악인들이 직접 경비를 들여서 참여를 많이 했고, 덩달아 외국인들이 놀라워하면서 함께하기도 했어요. 

트래비  
한국 사람들이 히말라야에 그렇게 쓰레기를 많이 버리나요? 충격적이네요.
한왕용  
저도 그랬지만 한국 사람들이 히말라야 규정을 많이 어깁니다. 정상을 오르고 나서 쓰레기나 장비를 직접 수거해 내려와야 하는데 몸만 빠져나오기 바쁘죠. 다들 셰르파(산악가이드)에게 돈을 주면서 뒷처리를 맡겼어요. 하지만 그들이 책임을 지겠습니까? 그걸 그냥 빙하 속에 파묻고 내려오는 거예요. 그렇게 쌓인 쓰레기들이 에베레스트의 50%라는 UN보고도 있어요.

트래비  
14좌를 완등하고 나서 다시는 그 산들에 오르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대단한 결심입니다. 
한왕용  
사실 저는 사고도 없었고, 한번도 후원을 안 받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산에 가면 제일 편안한데 왜 안 오르겠어요. 하지만 기업에서 자꾸 후원을 받고,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면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트래비  
기업체 후원이 없었다면 자비로 충당하기는 힘든 돈일 텐데요? 다른 직업이 있으셨나요?
한왕용  
돈은 쓰기 나름예요. 보통 한 팀에 5,000만원 정도 들어요. 직업은 클린마운틴 등반이 끝나고 밀레 홍보부장으로 들어가기 전까진 따로 없었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고,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많이 외조를 해줬어요. 저는 이제 외박을 안 합니다. 그동안은 집을 너무 많이 비워서 요즘에는 저녁 약속도 웬만하면 시간을 당기고, 일찍 들어가고 있어요.(웃음)

트래비  
LNT라는 건 뭡니까? 
한왕용  
풀어쓰면 ‘Leave No Trace’라는 미국환경단체예요.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뜻인데, 클린마운틴도 넓게는 이 범주에 속해 있는 거죠. 미국은 70년대에 낚시, 산악, 사냥 등 아웃도어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어요. 지금 등산 인구 1,000만명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었죠. 그러면서 자연 공해가 심해졌고, 결국 정부 주도하에 규제가 만들어졌죠. 특이한 건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의 정화 능력에 맞췄다는 점이예요. 산의 정화 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트레킹을 허용한 거죠.
저는 단순히 그걸 한국에 소개한 것뿐이예요.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쓴 LNT에 대한 글을 보고 자비로 보스턴에 가서 일주일간 교육을 받았고, 그걸 한국에 소개했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LNT가 여기저기 퍼져 나가면서, 연맹이나 기업에서 환경캠페인을 펼치니까 뿌듯합니다.

트래비  
미국에 가보니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요?
한왕용  
대학교수나 환경단체뿐 아니라 대형 아웃도어 회사의 홍보교육담당 이사가 와서 교육을 받더군요. 아웃도어 회사야말로 등산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이고, 산악 관련 통계가 시작되는 곳이죠. 이 회사에서 보니까 교육을 받고 산에 오르는 경우 환경에 미치는 결과가 그렇지 않은 경우와 통계적으로 굉장한 차이가 있었대요. 그래서 아웃도어 회사에서 소비자 교육에 나서게 된 거에요. 산이 오염되지 않아야 산악 인구도 꾸준히 늘고, 정부 규제도 줄어들 테니 어떻게 보면 그들에게도 당연한 일이었죠. 

트래비  
처음 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한왕용  
산을 ‘안’ 좋아했어요.(웃음) 대학교 때 주변 권유로 철 모르고 산악부 활동을 했는데 군기가 너무 심하고 훈련이 고되서 박차고 나왔었어요. 그때는 산을 다니는 재미를 몰랐어요. 근데 등반은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더라고요. 거길 나와서 전국 대학 산악 연맹에 가입했는데 그때 같이 활동한 다른 학교 동기 때문에 다시 산에 재미를 느꼈고, 히말라야에 대한 꿈도 함께 꾸게 됐었죠.

트래비  
산을 아무리 좋아해도 14좌 등정을 마음먹기란 쉽지 않은 일 아닌가요?
한왕용  
등산인구 1,000만명의 꿈이 뭘까요? 청계산 다녀온 사람은 북한산에, 북한산 갔다온 사람은 지리산에 가고 싶어해요. 그리고 나중에는 세계 정상을 꿈꾸죠. 더 나은, 더 어려운 산을 찾는 건 산악인들의 자연스러운 욕구예요. 에베레스트는 저뿐만이 아니라 산을 타는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예요. 제가 트레킹 시장을 무궁무진하다고 보는 이유도 이겁니다.

트래비  
왜 처음부터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선택하셨나요?
한왕용  
제 선택이었다기보다는 전라북도 산악 연맹에 마침 에베레스트 등정팀이 있어 대원으로 참가를 했던 거죠. 그전에 첫 해외 원정으로 92년도에 일본 북알프스에 갔어요. 날씨나 지형이 히말라야와 비슷해서 많은 사람들이 훈련 삼아 오르죠. 그리고 나서는 점차 3,000m, 6,000m, 7,000m를 섭렵했어요. 하지만 에베레스트 도전에는 실패했죠. 사실 저는 한번도 14좌 전체를 목표로 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하나하나의 산들에 최선을 다하며 오르다 보니 결국 14좌를 다 오르게 된 거죠.

트래비  
어떤 매체에 ‘더 이상 탐험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하셨던데요.
한왕용  
맞아요. 2003년 이후로는 한번도 개인적인 원정을 가지 않았어요. 제 역할은 선배로서 다음 세대들을 위해 길을 내주고, 고스란히 산을 물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간 사람이 계속 가면 후배들이 후원을 받기도 힘들고, 더 전위적인, 더 나은 등반 방식이 나오지 못하잖아요.

트래비  
그럼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싶으신가요?
한왕용  
우선 클린마운틴과 LNT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예요. 아직 틀만 잡혀 있거든요. 최근 산악 단체들이 연맹체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LNT를 알리고, 교육하려 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 들여온 사람이다 보니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14좌 완등자로서 올바른 트레킹 문화와 코스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예요. 올해 1월부터 하고 있는 신발끈여행사 이사 일이 그 연장선입니다. 



1 요즘 드라마 <동이>에서 맹활약 중인 탤런트 김유석씨와는 자주 등반을 함께하는‘절친’사이다. 2008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쪽 베이스캠프에서 2 한왕용 대장의 청소 등반(클린 마운틴)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뜻에 동참한 아마추어 산악인들이 든든한 힘이 돼 주었다. 사진은 2007년 9월 안나푸르나 등반 때 해발 3,000m 지점에서 찍은 것. 뒤의 배경은 다올라기리산이다

트래비  
여행객들을 직접 인솔하며 다니시는데, 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요?
한왕용  
첫 번째가 안전, 두 번째가 정상 등반이라는 목표 달성이죠. 정상을 가겠다는 여행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적을 안전하게 달성시켜 줬을 때 보람을 느껴요. 트레킹은 가이드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얼마 전 킬로만자로에 갔을 때 18명 손님 중 한 분이 제 말을 안 듣고 도중 하산했어요. 정상을 100m 남겨둔 5,700m에서요. 새벽에 추우니까 보온에 신경을 써 달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제 말을 듣지 않고 춥게 입고 온 거였어요. 국내에서 산을 타 봤다고 해외에서도 자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트레킹에서는 가이드와 인솔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위험한 경우도 많고, 목표를 이루기도 힘듭니다. 

트래비  
앞으로 여행사에 있으면서 어떤 일들을 하고 싶으신가요?
한왕용  
저는 우선 산악가이드(셰르파)들이 인정받는 풍토를 만들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가이드를 괄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외국에서는 전혀 달라요. 알프스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 바로 셰르파입니다. 산악운동의 발원지인 몽블랑에서는 셰르파자격증이 시장(市長)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일 정도예요. 셰르파 자격증은 프랑스 국립등산스키학교(ENSA)에서 7년간 교육받은 졸업생들에게 주어지므로 매우 명예롭죠.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주는 산악가이드들이 좀더 존중받았으면 해요.
또 잉카트레일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킹 코스인데도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는 곳들을 발굴하고, 트레킹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알리고 싶어요. 같은 산이라도 코스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초·중·상급자에 따라 갈 수 있는 코스와 가이드 1인당 적정 인원 등을  매뉴얼화하고, 교육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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