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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아마시아-미지의 터키 AMASYA 아마시아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0.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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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 혹은 역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모습은 아마시아 같아야 한다. 예실으르막 강변의 전통 가옥들

미지의 터키 AMASYA 아마시아   

불과 한 시간 반 전에 떠나 온 이스탄불과 비교하면 아마시아의 풍경은 적막에 가까웠다. 이 드라마틱한 변화 때문인지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미루나무와 양떼의 풍경에도 바보처럼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견디다 못한 아마시아의 사람들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해도 다시 ‘우와’를 연발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들의 예고대로 아마시아의 본편은 거장의 작품과 같았다. 첫 장면부터 관객들을 사로잡더니 끝까지 감동에 감동을 더하며 기립박수와 함께 끝난 엄청난 수작, 미지의 터키 ‘아마시아’로 초대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천소현   
취재협조  터키정부문화관광부 한국사무소 02-336-3030  카타르항공 02-3708-8571  아마시아 관광정보 www.amasya.gov.tr


아마시아를 이해하는 4가지 키워드
 

7,500년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아마시아’라는 방대한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뽑은 4가지 키워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터키의 중북부, 흑해에서 75km 남쪽에 위치한 아마시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세계사의 중요한 역사적 무대였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 히타이트와 우라르트, 프리기아, 스키타이, 페르시아와 헬레니즘, 로마와 비잔틴,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 등 14개 문명의 흔적이 이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왕조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아마시아에 대한 권력자들의 편애는 시들 줄 몰랐다는 뜻이다. 무엇이 언어도, 종교도 달랐던 그들을 이 땅에 매료시켰는지를 묻고 싶지만 그들은 이미 단단한 돌무덤 속에 누워 있다. 다만 이 도시가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왕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할 뿐이다. 7,500년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아마시아 사람들에게 역사는 강물 속에, 바람 속에, 그리고 숨결 속에서도 살아있는 무엇이다. 아마시아박물관은 작지만 감탄이 나올 만큼 알차고, 아직 발굴하지 못한 무수한 유적이 발밑에 존재하고 있다. 



2 작은 도시의 화덕에서 바로 구워낸 케밥은 오리지널 터키의 맛을 그대로 담고 있다 3 카펫을 까는 것만으로도 장터에는 근사한 간이 카페가 만들어졌다 4 아마시아 박물관은 작지만 알차고 도시의 땅 밑에는 아직도 무수한‘보물’들이 숨겨져 있다

왕과 왕자들의 도시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왕들의 무덤이다. 예실으르막(Yesilirmak) 계곡을 따라 하르나 산(Mt. Harsena) 중턱에서 발견되는 23개의 돌무덤군은 세계의 불가사의에 포함되어야 할 만큼 경이롭다. 큰 것은 높이가 15m, 폭이 8m나 되기도 한다. 시대가 흐르면서 감옥이나 종교 집회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던 이 무덤들이 헬레니즘 시대(BC333~AD26)에 만들어진 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밝혀낸 사람은 아마시아 출신으로 기원 전후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고고학자 스트라본(Strabon)이었다. 또한 아마시아는 ‘왕자들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스만제국의 왕자들(Shahzadahs)은 누구나 왕이 되기 전 아마시아에서 도지사로 군림하며 군주 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시아는 위치적으로 이스탄불에서 그리 멀지 않고(671km) 산과 계곡으로 이뤄진 천연 요새였기에 왕자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을 다스렸던 왕은 총 36명이었는데 12명의 왕자가 아마시아에서 성장했고, 그중 6명이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 1453년에 이스탄불을 정복한 메흐멧 2세도 그중 한 명이다. 아마시아에 학교, 도서관 등의 교육시설이 발달한 것은 왕자를 포함해 인재를 양성했던 정책이 전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폐랏과 쉬린의 사랑 이야기 

터키 사람들이 가장 아낀다는 슬픈 사랑 이야기의 무대 또한 아마시아다. 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화가였던 페랏(Ferahat)은 아마시아 왕의 여동생인 쉬린(Sirin)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를 반대한 왕은 페랏을 멀리 보내기 위해 엘마 산을 통과하는 수로를 완성하면 동생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예상을 깨고 페랏이 18km 떨어진 곳에서부터 돌을 깎아 물길을 만드는 데 거의 성공하자 다급해진 왕은 페랏에게 쉬린이 죽었다는 거짓 전갈을 보낸다.
절망에 빠진 페랏은 손에 쥐고 있는 연장을 머리에 던져 죽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쉬린도 현장으로 달려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상되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페랏이 만들었다는 수로에 가 보면 그 진정성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제 2km 정도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는 수로는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넓고 가슴팍까지 올라올 정도로 깊으며 물이 막힘 없이 흐를 수 있도록 경사까지 계산했다. 오직 ‘사랑’만이 이룰 수 있는 기적이다.

한없이 부드러운 터키의 알프스 

그들은 감히 이렇게 말했다. ‘아마시아를 보지 않고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자부심이 강한 터키 사람들다운 표현이라고 치부했지만 그것은 이유 있는 자부심이었다. 이곳의 풍경은 이스탄불, 파묵칼레, 카파도키아와 달랐고, 세상 어디와도 달랐다. 계곡 사이로 푸른 강, 예실으르막(Yesilirmak)이 흐르고 그 계곡을 둘러싼 780~910m 높이의 돌산은 수천년 역사의 고성과 왕들의 무덤을 품고 있다.
강변을 따라 도열한 전통 가옥과 모스크들을 담느라 밤이 늦도록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고, 돌아서면 또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정말로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르게 했던 힘은 다정한 아마시아의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아마시아에서의 3일 밤과 낮

예실으르막(Yesilirmak) 강 하류, 말하자면 도시의 초입에 위치한 호텔의 정원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셀주크 시대에 세워졌다는 다리를 열심히 촬영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내 중심가로 산책을 나섰을 때 그것이 얼마나 ‘헛수고’였는지를 깨달았다. ‘서프라이즈’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야경은 그전의 모든 풍경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풍경 속에는 까만 하늘에서 유난히 하얀 달, 강변 쪽으로 목을 빼고 있는 전통 가옥들, 노란 조명을 받고 있는 왕들의 무덤, 여름 저녁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산책은 아마시아처럼 오래된 도시를 찾을 때 반드시 올려야 하는 방문자들의 예절 같은 것이었다. 우리를 환대해 준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과 왕들의 정령에 대한 인사였다. 

현대에 만난 근대의 사람들

다음날, 본격적인 여행은 태양이 산을 오르기 전에 먼저 꼭대기를 점령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무너진 돌과 복원된 벽으로 이루어진 아마시아 성(Harsena Castle)을 오르는 길은 가팔랐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하루에 두 번씩 터키 국기를 게양하고 내리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 내려가고 나자 성에는 우리밖에 남지 않았다. 해발 700m, 도시로부터 300m 높이에 자리잡은 북쪽의 수비성은 8겹의 벽을 두른 채 여러 문명의 전쟁을 견디며 무수히 무너졌다 다시 복원되곤 했다. 이 성이 결코 완전히 복원될 수 없듯이 아마시아의 풍경도 아직 ‘현대’에 도달하지 못한 듯 보였다. 

이 느낌은 강변을 따라 서 있는 얄르보유 전통가옥(Yaliboyu Houses)에서부터 비롯된다. 로마 시대의 성벽을 배경으로 강가에 도열한 이 가옥들은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샘플이기도 했다. 나무 서까래를 세워 강변 쪽으로 돌출시킨 2층은 내부 공간을 더 넓게 사용하기 위한 아이디어였으며 1층의 정원에는 아직도 물이 솟는 우물이 있다. 전통 가옥들은 박물관, 부티크 호텔, 레스토랑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부 구조와 일상생활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하제란라 주택(The Mansion of Hazeranlar)을 방문했다. 

1865년 세워진 주택을 1976년 정부에서 구입해 개보수 작업을 마친 후 지금은 아트 갤러리와 주택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왕자 박물관’을 뜻하는 셰자데 박물관(Shahzadah Museum)도 얄르보유 전통 가옥 중 하나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완벽하게 의상을 갖춰 입은 왕자들의 왁스 인물상은 기대만큼 잘 생기지 않았지만 박물관 내부는 품격있게 꾸며져 있다. 



1 강변을 따라 늘어선 얄르보유 전통 가옥의 야경 2 슬픈 사랑의 여주인공 쉬린 3 하르세냐 산 중턱의 크랄카야 무덤군 4 아마시아 성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풍경은 왕들이 이 도시를 편애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5 아마시아 고고학 박물관의 미이라 6 정신질환자를 위한 음악학교였던 아쉬룸 7 캘리그래피가 발달했던 아마시아에는 오래 되고 희귀한 고서적들이 소장되어 있다

돌과 흙이 말하는 역사

아마시아 풍경은 이처럼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주택들과 그 위에 배경처럼 서 있는 하르셰나 산, 그 중턱의 크랄카야 무덤군이 만들어내는 유일무이한 비경이다. 강을 따라 걸으며 주위를 탐색하다 보면 시선이 가 닿는 마지막 장소는 항상 크랄카야 무덤군(Kral Kaya Mezarlari)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거대한 석실형 무덤은 돌을 파고 또 파는 고된 노동의 산물임이 분명했다. 큰 것은 높이가 15m, 폭이 8m에 이르고 깊이도 6m나 되며 이후 시대에 따라 감옥, 형집행장소 등으로 사용됐다. 우리는 비탈길을 올라가는 대신 시내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이날르 무덤(Aynali Magara)을 찾아갔다.

헬레니즘 시대의 무덤은 그 공간으로만 존재하지만 아마시아 고고학 박물관(Amasya Archeology Museum)의 안뜰에서 만난 14세기의 시신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한국의 지배계층 가족으로 밝혀진 미라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은 채 보존했기에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다. 히타이트 시대의 바람신 ‘톄슈웁’의 조각상(BC 14~12C), 도미니아누스 황제의 옆모습이 새겨진 금반지(AD 95), 비잔틴 시대의 성모 마리아상를 포함해 12개 문명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고고학 박물관은 인상적인 보물창고였다.

뿌리 깊은 교육의 전통 

다른 곳에서라면 근처에도 못 갈 귀한 유물을 스스럼 없이 보여 주는 특별한 ‘환대’는 술탄 바예지드 2세 콤플렉스(Bayezid Kulliyesi)의 대학 도서관에서도 이어진다. 캘리그래피가 발달했던 아마시아에는 오래 되고 희귀한 고서적들이 소장되어 있다. 건드리기만 해도 풀썩 먼지로 주저앉을 것만 같은 오래된 책들이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서가에 꽂혀 있는 장면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특히 16세기의 캘리그래피 대가였던 세이크 함둘라(Shikh Hamdullah)를 포함해 아마시아에 캘리그래피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다. 술탄 바예지드 2세는 11세에 아마시아의 도지사가 되어 27년간 다스리다가 1481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된 인물이다. 그가 1486년에 세운 모스크, 대학, 빈민급식소 등으로 구성된 콤플렉스는 지금도 아마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다. 웅장한 돔을 가진 모스크뿐 아니라 아마시아 시의 미니어처 모형도는 여행자를 위한 선물이다. 

왕자들의 도시였던 아마시아에서 교육은 항상 중요한 부분이었다. 의료 학교로 세워졌던 아쉬룸(Asylum)은 중요한 의료 교육 자료의 보고이자 후에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음악치료소라는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화려한 현관 장식이나 정교한 문양 등 건축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주립음악학교로 사용되고 있어서 항상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던 곳은 코란학교, 카피 아가시 학교(Kapi Agasi Medresesi, Buyuk Aga)였다. 코란을 독송하는 소년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애환이 담겨 있었고 그 소리는 학교로서는 드문 구조를 가진 팔각형 건물 안을 오래 맴돌고 있었다. 계곡에서 메아리쳐 돌아오는 아마시아의 코란 독경 소리는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아마시아, 그들만의 여행법 

누군가 ‘아마시아에는 석굴 무덤과 강변에 있는 전통 가옥뿐’이라고 쓴 글을 봤다. 파리에는 센 강과 에펠탑만 있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마시아는 하루살이 여행자에게도 ‘살아 봤다’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다른 ‘관광 도시’들이 이방인을 환영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구경만을 강요한다면 아마시아는 전혀 다르다.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사실은, 자신의 손으로 문을 밀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마시아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형제의 나라에서 온 한국 사람들에게 더욱 그랬다.

체리보다 싱그러운 그들의 웃음

아마시아에서 하루, 이틀, 사흘을 ‘살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관광객의 딱지를 떼고 그들처럼 먹고, 자고, 마시고 있었다. 아직 ‘관광객만 득시글대는 장소’ 따위가 없는 탓이다. 호텔에서도 우리는 아마시아 사람들과 함께였고, 동네를 산책하다 아무 집에 불쑥 들어가 빈대떡을 얻어 먹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아마시아의 일상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들은 이야기는 아마시아에서는 체리(Kiraz, 카라즈)가 돌멩이만큼 흔하다는 것이다. 터키에서도 최대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과일이 마침 수확기라 그들이 끊임없이 권하는 이 체리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그런 과일을 한국에서 먹으려면 만만치 않는 돈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듣고, 어디 한번 원 없이 먹어 보라는 뜻인지 체리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양동이 가득 체리를 수확하던 여인들의 반가운 웃음은 체리보다 더 싱그러웠다. 우리가 ‘세상에 이렇게 크고 싱싱하고 맛있는 체리가 있구나’하고 감탄하는 동안, 그들은 형제의 나라인 한국 사람들이 체리를 비싸게 먹는다는 것을 진심으로 애석해하고 있었다. 

차는 다시 인적이 드문 들판 길을 1시간 정도를 달린 후 아마시아 시내에서 65km 정도 떨어진 보라베이(Borabay)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아마시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말 나들이 장소이자 낚시로 유명한 호수 공원이다. 해발 1,050m 지대에 형성된 고요한 호수는 높이 솟은 소나무, 전나무들로 둘러싸여 짙은 에머랄드빛을 띠고 있었다. 숲 속에 마련된 방갈로와 벤치마다 휴일을 즐기러 온 터키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의 테이블에는 어김없이 차와 빵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터키인들에게 돗자리만큼이나 중요한 피크닉 필수품은 차 주전자다. 

그들이 하루에도 수십잔씩 차를 마신다는 사실이 새로운 것은 아니나, 그들이 공원으로 소풍을 가면서도 전통 차 주전자 사모바르(Samovar)를 챙겨가고 숯을 피워 물을 끊인다는 사실은 아마시아에서 처음 알았다. 특히 아마시아는 양철과 구리로 만든 사모바르 생산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하는 터키 사람들도 반드시 하나씩 구입해 가곤 한다. 아마시아 시내의 양철제품 상점 사이에서 활활 불꽃이 타오르는 대장간을 본 적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하나 구입해 소풍을 왔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와서 차와 빵을 먹으라는 아마시아 사람들의 손짓이 사방에서 팔락이고 있었다.

정성 가득한 식도락에 여유가 가득

휴일을 보내는 방법에 어떻게 식도락이 빠질 수 있겠는가. 터키의 대표적인 음식인 케밥 레스토랑 ‘악바시(Ocakbasi)’는 이미 현지인들로 만원이었다. 방금 토막낸 야채와 고기류가 커다란 꼬챙이에 엮어져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화덕에 들어갔다  나오면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케밥이 된다. 초원 스프라는 이름처럼 허브가 씹히는 ‘야일라(Yayla) 스프’, 밀, 견과류, 고기를 섞어 화덕에 12시간을 구워낸 ‘케시켁(Keskek)’, 호박꽃으로 만든 새콤한 ‘바미야(Bamya)’, 포도잎 안에 곡류를 넣어 싸맨 ‘바클라(Bakla)’, 쇠고기철판 요리인 ‘사츠 카부르마(Sas Kavurma)’ 등이 아마시아의 대표적인 요리들이다. 음식뿐 아니라 앞서 여러 차례 강조한 아마시아의 멋진 풍경을 내려다보고 싶다면 그 선택은 단연 ‘알리 카야 레스토랑(Ali Kaya Restaurant)’이다. 해발 200m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전경에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다. 여름이면 600명을 수용하는 야외 공간도 꽉 차 버린다.

아마시아의 이색적인 호텔들

아마시아에는 전통 가옥을 개조한 부티크 호텔을 포함해 시내에 45개 정도의 숙소가 있으며, 침대수로는 1,545개 정도가 된다. 가장 좋은 호텔은 4성급인 ‘더 애플 팰리스(The Apple Palace, www.theapplepalace.com.tr)’로 산 중턱에 위치해 뛰어난 야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때 마침 풀 사이드 야외 연회장에서는 저녁 행사가 한창이었고, DJ가 직접 믹싱을 하는 나이트클럽의 조명도 시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터키탕 안에서 무희가 댄스를 선보이는 프로그램도 특색 중 하나다. 

애플 호텔과 같은 계열사이자 일행이 묵었던 ‘부육 아마시아 호텔(Bu˙˙yu˙˙k  Amasya Hotel)’은 예실으르막 강의 아름다움과 한적함을 최대한 누리는 동시에 걸어서 5분이면 도심 중심광장으로 걸어갈 수 있는 이점을 가진 3성급 호텔이다. 아마시아에는 온천 호텔도 있다. 일행이 또 다른 1박을 보냈던 ‘고즐렉 테르말 호텔(Gozlek Thermal)’은 도심과 멀지 않으면서도(13km) 한적한 시골 농장 분위기를 풍기는 곳으로 일반 객실의 욕실이 방의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넓었다. 커다란 실내 온천 수영장과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한 간이 방갈로가 특색 있다. 이 밖에도 시내에서 3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마시아 테르지쿄이 온천(Terziko˙˙y Thermal)’은 유명한 종합휴양지로 72개 객실을 갖춘 호텔과 45개 객실을 갖춘 모텔이 있다. 



1 카피 아가시 코란학교에서 코란 독경 중인 학생 2 아마시아 사람들은 여름이면 강변에서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고 마을에서 소박한 그들만의 축제를 즐긴다. 페스티벌이 마무리되는 날, 사람들이 마을에 모여 여유롭게 전통악기 악단의 연주를 감상한다 3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아마시아 사람들의 웃음 4 고즐렉 테르말 호텔(Gozlek Thermal)은 도심과 멀지 않으면서도 한적한 시골 농장 분위기를 풍긴다 5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값에 팔리는 체리가 아마시아에서는 돌멩이처럼 흔하다 6, 7 아마시아 사람들은 피크닉을 갈 때도 정성들여 음식을 준비한다


Travie info.

아마시아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도착해 버스(6시간)를 이용하는 것이다. 카타르 항공은 도하를 경유해 앙카라까지 가는 항공편을 매일 운행하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를 타면 11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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