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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 포르투갈 두 나라 기차여행 이야기下. 마드리드+리스본+코임브라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0.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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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 포르투갈 세 도시 이야기

글·사진  김선주 기자   취재협조  유레일그룹 www.EurailTravel.com/kr  유레일 블로그 blog.naver.com/goeurail  한국홍보사무소 02-553-4696 



3rd Destination Madrid

마드리드에서 집중해야 하는 몇 가지

계획성 없는 여행객에게 마드리드는 당혹스러운 도시다. 스페인 제1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볼 것, 들를 곳 많고 여행의 재미와 낭만도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톨레도(Toledo) 등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인근 여행지도 많다. 자칫했다가는 한정된 여정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후회를 남길 수 있는 여지가 큰 이유다.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절실한 이유다. 마드리드의 알짜배기로 선택한 것은 투우, 플라멩코, 미술관 그리고 광장이었다.


1 마드리드‘솔 광장’과 카를로스 3세의 기마상 2 라스 벤타스 투우장 밖에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



무참한 투우, 그래도 ‘살우(殺牛)’가 아닌 이유

햇살 따가운 날, 마드리드의 라스 벤타스 원형 투우장(Toros de las Ventas) 그늘 좌석 한 자리를 차지했다. 흥분과 설렘, 과연 투우사의 화려한 기교에 ‘올레(ole)’ 소리로 격려할 수 있을까 하는 괜한 걱정들….
어리바리 첫 관람자에게 투우는 무참했다. 박진감, 정열, 기교 따위의 용어들은 관념 속 허상일 뿐, 마지막 일침을 받고 채 10초도 되지 않아 털썩 주저앉는 소의 허망한 죽음은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갈린 투우장의 생과 사는 묵직한 충격이었다. 해가 떨어질수록 시나브로 영역을 더해 가는 경기장의 그늘처럼, 소의 그 죽음은 애초부터 불가피의 숙명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최후의 결정적 순간에 투우장의 외로운 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의 죽음은 정말일까. 양지와 음지, 생과 사, 꿈과 현실은 늘 그렇게 함께 붙어있으면서도 경계가 분명했던 것이었나 보다. 순식간에 경계를 넘어 버린 소의 생사 앞에서 제3의 시선은 부질없는 우문에 그저 흔들릴 뿐이었다.   

소의 허망한 죽음만을 생각한다면 투우는 분명 인간의 잔인하고도 불공정한 유희일 뿐이다. 여러 명의 인간이 미리 짜고 연습한 대로 실컷 약 올리고 아프게 하고 지치게 한 뒤 단칼에 목숨을 앗아가고, 그 모습에 열광하니 말이다. 어떤 죽음이든,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을 직접 목격한다는 것은 참으로 버거운 일일 터. 스페인에서조차 투우를 금지한 지방이 있고 동물학대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구태여 투우라고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살우(殺牛)’면 족했기 때문이다. 소를 죽이는 살우가 아니라 소와 싸우는 투우로 경기를 바라보고자 한다면 시선의 분산이 필요하다. 죽임에만 얽매인 시선으로는 죽임은 그저 투우의 한 부분일 뿐 궁극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목축업의 번성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에서 기원한 만큼 투우의 시작은 생각보다 경건하며 나름의 원칙과 순서도 분명하다. 최후의 순간에 소의 급소에 칼을 꽂는 투우사(마타도르)와 그를 돕는 다른 수하들(반데릴레로, 피카도르)도 위험을 무릅쓰기는 마찬가지다. 황소에게 결정적 공격을 당한 투우사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지 않는가. ‘올레’ 소리로 원형 경기장을 휘감는 관중의 찬사가 죽임의 순간보다는 ‘카포테’와 ‘물레타’로 불리는 붉고 빨간 천 하나로 성난 황소에 맞서는 순간에 더 집중되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소에게는 너무 잔혹한 거 아니냐”는, 미처 시야를 넓히지 못한 여행객의 물음에 투우장을 안내한 마드리드 가이드는 “우리 안에 갇혀 던져주는 먹이나 받아먹다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오히려 더 불쌍한 것 아니냐”고 되레 물었다. 그의 말마따나, 한 번이라도 그렇게 처절했던 적이 없었다면 결코 투우장의 소를 불쌍타 말 일인지, 그것은 여전히 갈피를 잡기 힘들다.
양지의 영역에 있던 황소가 경계를 넘어 음지 속 투우사를 향해 최후의 돌진을 할 때, 그 처절하지만 거침없음은 쉬이 지워지지 않을 잔상으로 새겨졌다.

플라멩코, 그 정열적 관능의 춤에 빠져

투우사의 춤이 죽음이라는 비극적 파국을 내포한 직선의 춤이라면, 플라멩코(Flamenco)는 시종 흥을 테마로 한 곡선의 춤이다. 누군가에게 투우는 거북하기 짝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플라멩코는 기쁨과 열정을 돋울 것이다.

격정적이고도 빠른 템포의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플라멩코는 투우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상징 중 하나이자, 그네들 정서가 듬뿍 담긴 문화적 아이콘이다.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을 본고장으로 치는데, 로마인과 아랍인 등 과거 이베리아 반도에 유입된 여러 민족들이 안달루시아 지방의 춤과 노래를 그네들의 것과 조화시켜 탄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랑민의 애환을 달랜 것은 그 반대의 것이어서, 플라멩코의 격정적이고도 정열적인 춤과 음악의 기원이 됐다. 본래의 것에 외래적 요소가 곁들여져 스페인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플라멩코로 거듭난 것이다. 

원색의 강렬한 드레스를 입은 무희는 강약과 고저를 넘나드는 갖은 묘무(妙舞)로 관중을 사로잡는다. 그 몸태는 탭 댄스의 발장단과 교태를 부리는 손놀림으로 어지러운데, 뚝뚝 끊어질 듯 지속되는 주법의 기타 반주와 다른 무희들의 손뼉장단은 그 어지러움의 기교를 한껏 부추긴다. 고양이처럼 앙증맞던 무희의 춤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워지고, 급기야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북받침에 속수무책으로 빠진다. 따따따따, 따따… 바닥을 치는 발장단의 템포는 속도를 더해 가고 휙, 휙, 휙, 무희의 잽싼 몸 회전이 거듭될 때마다 치맛자락은 무대 위 허공에 현란한 원들을 그려낸다. 더운 숨이 가빠지고 땀방울은 땀줄기로 얼굴을 흐르는데, 무희는 이리저리 나부끼는 빨간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며 노려보듯 도발적인 시선을 던진다. 관능의 춤이요 유혹의 춤이다. 절정에 오른 무희의 춤이 마치 모든 격정에서 해탈하듯 외마디 비명처럼 일순 멈출 때, 기타소리와 손뼉장단도 짧고 강렬한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아주 잠깐 동안의 침묵을 뒤흔드는 것은 관중의 뜨거운 환호다.


1 플라멩코 무희의 몸놀림을 더욱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흥겨운 기타반주와 손뼉장단, 그리고 관중의 환호다 2 마드리드 솔 광장 

 
피카소, 벨라스케스, 고야와 만나다

마드리드 미술관 투어의 핵심라인은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레이나 소피아 예술센터(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티센 보르네미스사 미술관(Museo de Thyssen Bornemisza)의 3대 미술관이다. 이들 미술관은 마드리드 아토차(Atocha) 역 주변에 있어 한번에 들르기에도 편리하다.

개인적으로 3개 미술관 중에서도 첫 순위로 꼽았던 미술관은 레이나 소피아 예술센터. 바로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Guernica)’를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1937년 4월26일 독일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게르니카 마을의 참상을 그린 피카소의 대표작인데, 게르니카를 완성하기 위해 피카소가 그렸던 수많은 습작들도 함께 전시돼 있어 감흥을 키운다. 피카소뿐만 아니라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도 만날 수 있다. museoreinasofia.mcu.es

프라도 미술관은 소장 작품수가 회화만 해도 8,000점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많기 때문에 특히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작품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은 각종 작품으로 유명한 벨라스케스, ‘옷을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고야, 바로크 시대의 거장 루벤스 등 세계적 화가들의 대표작들이 전시돼 있다. 고야의 1814년작 ‘1808년 5월3일’도 만날 수 있는데, 피카소가 한국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릴 때 그 구도를 따온 작품이다. museoprado.mcu.es

티센 보르네미스사 미술관은 ‘티센 보르네미스사’ 남작의 개인 소장품을 일반에 공개한 미술관으로 1층에는 피카소, 미로, 달리 등 근대 및 현대미술을, 2층에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부터 세잔,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3층에는 16~17세기 스페인 및 프랑스 회화를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www.museothyssen.org




3 피카소의 대표작‘게르니카’를 전시하고 있는 레이나 소피아 예술센터 4 프라도 미술관 내부 5 마요르 광장 부근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는 레스토팡 ‘보틴(Boti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불린다. 1725년부터 영업을 시작했고 헤밍웨이가 애용했다고 한다 6 소금에 절여 말린 돼지 다리로 만든 햄인‘하몽(Jamon)’. 스페인 전통음식으로 곳곳에서 팔고 있다

광장과 광장을 잇는 실핏줄 같은 골목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마드리드에도 광장이 숱하다. 시내 곳곳에, 꼭 있어야 할 자리에 크고 작은 광장이 들어서 있고, 광장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흥미를 돋우고 개성 넘치는 표정으로 여행객들을 반긴다. 광장으로 흘러들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는 여행객들로 광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치고 북적댄다. 태양의 문이라는 뜻의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 sol)’을 비롯해 ‘마요르 광장(Plaza Mayor)’,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na)’, ‘오리엔트 광장(Plaza de Oriente)’ 등등…. 

솔 광장에서는 마드리드의 상징인 곰 조각상이 여행객들의 기념촬영지로 인기를 끌고, 마드리드를 기점으로 각 도시로 뻗쳐나가는 국도의 시발점을 알리는 0km 도로원표도 만날 수 있다. 마요르 광장에서는 거리예술가들의 공연이 두드러진데, 이곳의 시계탑은 매년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 이뤄지는 곳이란다. 스페인 광장은 로시난테에 올라탄 돈키호테 동상만으로도 여행객들의 발길을 이끌며, 오리엔트 광장은 마드리드 왕궁(Palacio Real)으로 향하는 길목이어서 만남의 장소로 활용된다.

광장은 마치 인체의 장기처럼 마드리드 시내 이곳저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그 광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핏줄은 바로 골목들이다. 광장과 광장은 수많은 골목으로 연결되고, 골목마다에는 선술집인 ‘메종’이며 재래시장이며, 레스토랑이며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 등이 점점이 박혀 있어 광장투어를 더욱 빛낸다.  


Travie tip. 마드리드에서 투우 체험하기
마드리드의 투우장은 라스 벤타스(Toros de Las Ventas)로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5호선 벤타스 역에서 내리면 된다. 일반적으로 투우 시즌은 3월에서 10월인데 라스 벤타스 투우장의 경우 매주 일요일에 경기를 한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 사이에는 매일 개최한다. 시기에 따라서 경기장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오후 5~7시 사이에 경기를 시작해 2시간 동안 진행된다. 2시간 동안 3명의 투우사가 각각 2마리의 황소를 상대로 싸우는데, 1경기당 15~20분 정도 소요된다. 
좌석은 투우장과 얼마나 가까운지, 또 그늘좌석(솜브라, Sombra)인지 햇빛이 드는 좌석(솔, Sol)인지에 따라 다양하게 책정된다. 경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수록, 그늘좌석일수록 요금이 비싸다. 처음에는 햇빛이 들지만 나중에 그늘이 지는 좌석(솔이솜브라, Sol y Sombra)도 있다. 이번 취재에는 중간 위치의 그늘좌석을 구매했는데 요금은 24.90유로였다.
투우는 ‘마타도르(Matador)’로 불리는 메인 투우사뿐만 아니라 그를 돕는 ‘반데릴레로(Banderillero)’, ‘피카도르(Picador)’, ‘페네오(Peneo)’ 등 여러 수하들이 함께 참가한다.


Travie tip. 플라멩코 관람은 타블라오에서
플라멩코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이 본고장이지만 마드리드 등 대도시에서도 수준 높은 공연을 쉽게 관람할 수 있다. 현대의 플라멩코는 발전을 거듭해 일종의 예술 장르로 승화됐는데, 전통적인 리듬에 재즈나 팝 등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전문적으로 플라멩코 공연을 하는 곳을 ‘타블라오(Tablao)’라고 부르는데, 식사를 겸할 수도 있고 맥주 등 음료만 포함해서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다. 마드리드에도 여러 곳의 타블라오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코랄 데 라 모레리아(Corral de la Moreria)’로 1956년에 오픈한 마드리드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마드리드 왕궁(Placio Real)과 알무데나(Almudena) 대성당 근처에 있다. 음료만 포함한 관람비는 34유로. www.corraldelamoreria.com

 


Portugal 4th Destination Lisbon

마드리드에서 출발한 야간 침대열차는 밤사이 국경을 넘어 리스본(Lisbon) 산타 아폴로니아(Santa Apolonia) 역에서 멈췄다. 기차의 낯선 흔들림에 바로 눕다가 모로 눕기를 한참이나 반복했지만, 경계를 넘어 새로운 대지에 발을 딛는 설렘은 선잠의 찌뿌드드함을 너끈히 씻어냈다. 밤새 기차가 바꿔 놓은 것은 비단 물리적 공간만은 아니었다. 공간의 변화는 새로운 풍경을 낳았고 그 새로운 풍경 속에는 스페인과는 다른 포르투갈만의 색다른 감흥이 서려 있었다. 이른 아침 리스본은 북새통의 하루를 시작하기 전의 차분함으로 가득했는데, 왠지 모르게 아스라이 바다 향기가 나고 파도가 일렁이는 듯 했다. 그 가마득한 향기는 포르투갈 여정 내내 사그라지지 않았다.


파두, 포르투갈의 내면으로 통하는 노래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3F’의 나라다. 파티마(Fatima), 풋볼(Football), 파두(Fado)의 나라라는 의미다. 포르투갈 중서부의 작은 마을인 파티마는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를 권했다는 유래를 지닌 순례지인데, 인구의 대부분(94%)이 가톨릭인 포르투갈의 종교적 성향을 설명한다. 풋볼의 F는, 구태여 말하자면 축구에 울고 웃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축구사랑 이야기일 테다. 포르투갈의 종교와, 종교나 다름없을 정도로 사랑을 받는 축구와 어깨를 견주는 게 바로 파두다. 그만큼 파두는 포르투갈의 정서적 색채를 아우르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 전통의 민요로 삶의 애환과 슬픔, 향수, 비탄, 그리움의 감정을 노래하는 애잔한 음악’이라는 게 파두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파두의 영혼으로 불리며 파두를 세계에 알리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전설적인 파두 가수(Fadista)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의 파두가 대체로 그러했다는 점도 현재의 그런 정의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문외한의 여행객들은 그 정형화된 이미지에만 의존하기 십상인데, 어찌할 수 없다고는 해도 여행 중 맞닥뜨릴 시행착오를 감안하면 대비가 필요하다. 파두를 듣고도 파두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시행착오들 말이다.

포르투갈의 옛 수도였고 대학도시로 유명한 코임브라(Coimbra)에서 자정이 코앞인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여장을 푸는 둥 마는 둥 곧바로 파두 선율을 찾아 나섰다. 어딘가에서 유혹하듯 흐릿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그 음악의 끄트머리는 파두를 공연한다는  지하 카페였다. 드디어 파두를 듣게 되는구나 하는 기대의 느낌표는 노래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허탈의 물음표로 바뀌었다.

애잔하다고 하기엔 그 음역이 높고 리듬이 경쾌했기 때문이다. 흡사 성악의 테너 같았다. 어떤 대목에서는 손님들이 흥겹게 손뼉장단을 맞추기까지 했다. 포르투갈어를 모르니 더욱 답답할 수밖에.
하지만 그 경쾌하고 음역 높은 노래도 파두였다. 기어이 파두를 듣겠노라고 작정하고 찾아 나선 리스본의 파두 하우스 역시 비슷했기 때문이다. 비좁지만 나름 무대가 있고 파두 가수도 숄과 정장으로 차려 입어 격식을 갖췄다는 정도만 다를 뿐, 그곳의 파두도 죄다 애잔한 것만은 아니었다. 
    
삶의 애환과 그리움, 회한 등을 노래해 구슬프고 애잔한 느낌이 파두의 주를 이루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모양이다. 그 경쾌했던 파두 선율은 삶의 환희와 해학을 노래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소중한 추억이 그리움의 모태가 되고, 절망의 끝자락에 비로소 희망이 보이는 것처럼 희, 노, 애, 락은 파두에서도 공존의 요소여야 맞다.
또 파두는 ‘리스본 파두’ ‘코임브라 파두’ 등 각 지역별로 그 색채와 특징이 다르다고 하니 무조건 무겁고 서글프기만 하다고 뭉뚱그릴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코임브라 파두의 경우 남자가 여성에게 바치는 세레나데의 특색이 강해 밝은 노래가 많다고 한다. 

그런 다양한 면모는 아마도 파두가 어부, 노동자 등 서민들의 고된 하루를 달래고 내일의 희망을 불어넣은 대중의 노래였다는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래서 파두는, 비록 이방인이 온전히 감정을 이입하기 힘든 존재라고 하더라도, 포르투갈의 내면으로 통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1 리스본 파두 공연 모습 2 마누엘 양식의 걸작품으로 꼽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3 리스본 시내곳곳에서는 파두 하우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4‘테주강의 공주’로도 불리는 벨렘 탑 5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안치돼 있는 바스코다 가마의 관 6 발견기념비 광장의 세계지도 7 발견기념비에는 해양개척에 공헌한 여러 인물들이 부조돼 있다


리스본, 대항해 시대를 향한 향수의 파두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을 파두 선율로 표현하자면 그리움의 파두, 향수의 파두가 될 것이다. 바로 15세기 말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의 영광에 대한 그리움이다. 대항해 시대를 이끌며 남미, 아시아 등 세계 각지로 영토를 넓히고 부를 축적했던 영광이 무색하게, 현재는 유럽의 빈국 중 하나로 전락했으니 이방인의 시각에서는 당연한 느낌일 수도 있다.

실제로 대항해 시대의 추억을 되짚는 것은 리스본 여행의 메인 테마 중 하나다. 대항해 시대에 대한 포르투갈의 자부심과 그리움이 동시에 배어 있는 곳은 바로 벨렘(Belem) 지역. 벨렘 지역 내 테주 강(Rio Tejo)가에 서 있는 탑이 바로 ‘발견기념비(Padrao dos Descobrimentos)’인데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나라의 꼿꼿한 자부심이 배어 있어서인지 실제 높이 53m보다 더 높고 위용스럽다. 

발견기념비는 ‘해양왕’으로 불리는 포르투갈 해양개척의 선구자 엔리케(Henrique, 1394~1460) 왕자의 사후 500년을 기념에 1960년에 세워졌다. 기념비가 들어선 위치 또한 1498년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가마(Vasco da gama)가 항해를 떠났던 자리라고 한다. 기념비의 양쪽 측면에는 여러 인물들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맨 앞의 엔리케 왕을 필두로 천문학자, 선교사, 선원 등 대항해 시대에 기여했던 각종 인물들이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항해를 떠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기념비 광장 대리석 바닥에는 태양을 형상화한 듯한 커다란 원형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세계 이곳저곳에 포르투갈이 발견(?)하고 정복했던 연도가 표기돼 있어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컸는지 실감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발견기념비에 올라 인근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테주 강을 따라가다 보면 강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강이 되는 지점에 벨렘탑(Torre de Belem)이 떠 있는 듯 서 있는 듯 자리잡고 있다. 이 역시 대항해 시대의 영광이 한창이던 1519년에 대서양으로 드나들던 선박들을 통제하고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마누엘 1세(Manuel 1, 1469~1521)가 세운 탑이다. 마누엘 1세는 대항해 시대 황금기의 왕이다. 1층은 죄수 수용소로 사용됐다고 하는데, 조수 차에 의해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구조여서 가혹함마저 느껴진다. 

그 가혹함과는 달리 마누엘 양식의 아름다움이 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레이스 장식의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테주 강의 공주’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마누엘 양식은 마누엘 1세의 재위 기간에 번성했던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건축양식인데, 바다를 개척하고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16세기 포르투갈의 영예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건물의 외벽이나 천장 등을 장식할 때 산호나 조개, 해초, 항해도구, 부표, 밧줄 등 바다나 항해와 연관된 이미지들을 활용한 게 주된 특징이다. 마누엘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이 바로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omimos)’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1세가 엔리케 왕자 등 선조들의 위업과,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업적 등을 기리기 위해 1502년에 건축을 지시, 1551년에 완공됐다고 한다. 수도원 외벽에는 엔리케 왕자의 동상을 비롯해 성 제로니무스의 생애, 수태고지와 그리스도의 탄생 등을 표현한 조각이 있는데 그 섬세함과 화려함에 마누엘 양식의 걸작품이라는 데 곧 동의하게 된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면 바스코 다 가마의 관과 함께 대항해 시대 개척자들의 업적을 서사시로 노래했다는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Luis de Camoes)의 관이 안치돼 있다. 밧줄을 꼰 듯 독특한 형태의 기둥 등 내부 장식에도 마누엘 양식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1 리스본 호시우 광장 2 알파마 전망지구의 풍경 3 피게이라 광장 4 리스본 곳곳을 들르는 28번 트램 5 트램 운전법이 궁금하다면 앞쪽으로

‘덜컹덜컹 땅앙~땅앙~’ 트램을 타고

리스본 구시가지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이 물씬한 트램(시가전차)이 달린다. 여러 노선의 트램이 리스본 구석구석을 누비는데, 여행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것은 단연 28번 트램이다. 리스본의 옛 가옥들과 골목들이 온전한 알파마(Alfama) 지역 등 관광명소들을 두루두루 들르기 때문. 덜컹덜컹 흔들리다가 땅앙~땅앙~ 소리를 내며 철로를 달리는 트램에 몸을 싣고 있노라면 광장이며 성당이며 옛 건물이며 리스본의 갖가지 표정들이 창문 밖으로 스치고, 골목이든 전망 좋은 곳이든 정차할 때마다 내리고 싶은 충동에 절로 즐거워진다.  

하차 충동이 가장 큰 곳은 알파마 전망대 역할을 하는 ‘포르타스 도 솔(Portas do sol)’ 광장 부근이다. 알파마는 서민들의 주거지역인데 언덕 비탈을 따라 옛 가옥들이 빼곡하고 가옥 사이사이마다 꼬불꼬불 골목길이 이리저리 뻗어 있어 정겹다.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너는 아낙네는 수줍은 미소를 던지고, 동네 꼬맹이들의 재잘거림도 상쾌하다. 알파마 전망대는 언덕 중간쯤에 형성돼 있는데 이곳에 서면 산 쪽으로는 성 조르지(St. Jorge) 성이 반기고 저 멀리로는 바다를 닮은 테주 강의 짙푸름이 넘실댄다. 

‘7개 언덕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만큼 리스본 시가지는 언덕이 많다. 시내 중심부 평지대를 고지대가 감싸고 있는 형국이어서 평지대와 고지대를 연결하는 지그재그 계단과 샛길도 많다. 걷는 여행이 버거워지면 트램을 타거나, 평지대와 고지대를 오가는 케이블카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다. 

호시우(Rossio), 코메르시오(Comercio), 피게이라(Figeuira) 광장 등 리스본의 숱한 광장들은 대부분의 트램이나 시티투어버스가 거치기 때문에 여행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 목적지이기도 하다. 근사한 카페나 쇼핑타운, 유적지 등 여행의 볼거리들도 이곳 광장 언저리에 산재해 있으니 광장에서도 여유를 만끽하는 게 당연하다.


Travie tip. 리스본 파두 박물관과 파두 거리
포르투갈 각 도시에는 카페나 레스토랑 형태의 파두 공연장이 있어 여러 가지 형태의 파두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리스본에는 일종의 ‘파두 밀집거리’가 형성돼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서민 주거지역인 알파마(Alfama)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데, 산타 아폴로니아 역에서 구시가지 쪽으로 도보로 10~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이곳에는 파두 박물관이 들어서 있어 파두 연주에 사용되는 기타와 역사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박물관 맞은편 광장 너머 주택가에는 파두를 공연하는 여러 파두 하우스들이 골목골목에 들어서 있다. 저녁식사를 겸해서 파두를 감상할 수도 있고, 음료만 주문할 수도 있는데 일부 파두 레스토랑의 경우 식사를 주문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추가요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요금은 비싼 편이다. 저녁식사를 할 경우 주문음식 등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략 1인당 40유로 정도는 예산으로 잡아야 한다.


Travie tip. 대서양을 품은 휴양지 카스카이스
카스카이스(Cascais)는 리스본에서 기차로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휴양지다. 대서양의 움푹 팬 곳에 소담스레 들어서 있어 차분하고 홀가분한 맛이 물씬한 곳이다. 해변은 길거나 넓지 않지만 여러 개가 모두 아기자기해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휴양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작은 시내 또한 같은 분위기인데, 앙증맞은 장식으로 눈길을 끄는 숍부터 그리스 분위기가 느껴지는 하얀 외벽의 레스토랑이 즐비해 두어 시간 미니 시티투어를 하기에도 제격이다.


5th Destination Coimbra

고풍스런 대학 도시, 코임브라

리스본이 포르투갈 정치의 중심지이자 제1의 도시이고, 포르투(Porto)가 상업을 근간으로 한 제2의 도시라면 제3의 도시인 코임브라(Coimbra)는 대학의 도시요, 문화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언덕 위 코임브라 대학(Universidade de Coimbra)의 시계탑이 코임브라의 상징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코임브라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코임브라 대학은 1290년에 리스본에 처음 세워졌다가 코임브라로 옮겨지고 다시 리스본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거쳐 1537년부터 코임브라에 정착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오래 된 대학 중 하나로 손꼽힌다. 

코임브라는 몬데구 강(Rio Mondego)을 중심으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는데, 코임브라 대학과 카테드랄 등 코임브라의 역사와 고풍스런 문화적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구시가지다. 구시가지 중심은 역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코임브라 대학. 언덕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카테드랄과 미술관, 대학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코임브라 대학은 역사가 긴 만큼 시계탑, 갤러리 등 유럽 내에서도 문화적 가치가 높은 요소들이 많은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도서관이 압권이다. 소장된 고서만 30만권에 이르며 원근감의 시차를 활용한 실내 천장 장식 등이 눈길을 끈다. 5월은 졸업시즌이어서 그야말로 축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법학, 의학, 약학, 문학, 과학 등 각 학부별로 특정한 색의 망토를 입고 행진하는 게 최대 볼거리라고 한다. 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의 흔적은 검은 망토 자락을 너덜너덜 입고 있는 교내 동상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건물 외벽 또한 학생들이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키보드며 전화기 등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코임브라 구시가지의 중심 광장은 산타 크루즈 수도원(Mosteiro de Santa Cruz) 앞의 광장으로, 유럽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수도원 광장에서 시가지 입구까지는 석회암으로 깔린 도로가 거의 일직선으로 나 있는데, 밤이면 가로등 불빛이 반질반질해진 바닥에 튕겨져 나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코임브라의 전경을 감상하는 법은 두 가지를 추천할 만하다. 하나는 코임브라 대학에 올라 내려다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몬데구 강 유람선에 올라 반대로 올려다보는 것이다.     




 6 코임브라 구시가지와 몬데구 강을 오가는 유람선 7 코임브라 골목에는 요새로 쓰였던 건물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Travie Info.
↘항공
 
현재 한국에서 포르투갈로 향하는 직항 항공편은 개설돼 있지 않다. 인근 스페인 마드리드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유럽 허브공항을 거친 뒤 갈 수 있다. 항공편뿐만 아니라 기차를 이용해 스페인-포르투갈 연계 여행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스페인-포르투갈  유레일 패스 가격
유럽내 인접한 2개국을 여행할 수 있는 ‘리즈널 패스’는 2개월 안에 기차 탑승 5일짜리 1등석 요금이 286유로. 3~5개국을 여행할 수 있는 ‘셀렉트 패스’의 경우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외에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추가한 3개국 5일짜리 1등석 요금이 324유로다. 자세한 정보는 유레일 그룹 한국어 홈페이지(www.eurailtravel.com/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포르투갈 구간별 예약비(1등석 기준)
바르셀로나-발렌시아 Euromed(EUR), Altaria(AA), Alvia(AA) 23.5유로(음료, 식사 포함)
발렌시아-마드리드 Alris(AS) 23.5유로(음료, 식사 포함)
마드리드-리스본 Lusitania Comboio Hotel train(HTL) 좌석 10유로, 더블룸 51유로, 싱글룸 96유로(침대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리스본-코임브라 Alfa pendular(AP), InterCity(IC) 두 종류의 열차 모두 4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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