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열전 18탄 정동-서정과 낭만이 흐르는 정동 산책①정동 근대 문화유산 답사
서울열전 18탄 정동-서정과 낭만이 흐르는 정동 산책①정동 근대 문화유산 답사
  • 트래비
  • 승인 2010.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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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 와요”
-이문세 <광화문 연가> 중에서 

서정과 낭만이 흐르는 정동 산책

꽃향기 물씬한 5월도 아니고,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을 볼 수 있는 겨울도 아닌 10월, 서울열전의 열여덟번째 지역으로 정동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1999년 서울시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된 정동은 걷기 좋은 계절 가을에 더없이 찾기 좋은 거리이기 때문이다. 넓지도 않은 지역 안에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멋과 맛이 오밀조밀 담겨 있는지, 걸으면 걸을수록 놀라운 그곳 정동으로 떠나는 가을 산책.

글·사진   김영미 기자  

about 정동
정동(貞洞)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조선 태조 이성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이 현재의 정동 4번지에 자리해 있었기에 예부터 정릉동이라 불렸다. 193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동정(貞洞町)이 됐고 1946년 정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날 정동은 마치 복잡한 도심 속 한갓진 섬과 같은 곳이다. 돌담과 낮은 건물이 만들어내는 소담한 거리 풍경과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어 많은 이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산책01 정동 근대 문화유산 답사

정동 일대는 구한말 조선 땅에서 가장 서구화된 땅이었다. 개화 이후 정동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서구 열강의 공사관이 밀집한 ‘외교 일번지’였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신식학교, 개신교회 등의 서양 문물이 상륙하기도 한 정동에는 근대사의 흔적이 아직도 정동 곳곳에 호젓하게 남아 운치를 더하고 있다.   



1 덕수궁의 정관헌은 고종이 휴식을 취하며 커피와 차를 마시던 곳이다 2 붉은 벽돌과 흰색 아치가 어여쁜 정동제일교회 3 이화여고 내에 자리한 유관순 동상 4 구 러시아공사관에는 하얀 탑만이 남아 있다 5 덕수궁 중명전 6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7 정동 언덕에 자그맣게 자리한 정동공원


조선과 근대 사이 
덕수궁
정동 근대문화유산 답사는 덕수궁에서 시작해 본다. 덕수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더불어 서울 4대 궁 중 한 곳으로 학생들의 소풍지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시사철 인기다. 경운궁이라 불리던 이곳은 1907년 고종황제가 왕위를 순종황제에게 물려준 뒤 머물게 되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로 덕수궁이라 불리게 됐다.
덕수궁은 다른 조선 궁궐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녔다. 1904년 큰 화재로 인해 중화전, 석어당, 함녕전 등 궁 내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후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들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석조전에는 조선왕조의 쇠락과 나라를 빼앗겼던 아픈 역사가 담겨 있지만, 때문에 덕수궁은 조선 전통 목조 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혼재돼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게 됐다. 전통과 근대가 어우러진 덕수궁에서 조선말의 비통한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으니 아픈 역사도 그것으로 족하다 싶다. 덕수궁 가운데 자리한 조선 정통 양식과 서양식을 절충해 지은 ‘정관헌’은 고종이 자주 찾아 커피를 마시던 장소다. 정관헌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창밖 풍경을 감상하노라면 고종이 느꼈을 법한 구한말의 정서가 전해진다. 

덕수궁의 명물로 자리잡은 수문장 교대식도 볼 만하다. 이 행사는 조선 후기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을 재현한 것으로 화려한 전통 의상을 갖춰 입은 군사들의 행렬과 구수한 취타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덕수궁 정문(대한문) 앞에서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 3시30분 3회 치러진다. 월요일, 비 또는 눈 오는 날 제외. 덕수궁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둘러보고자 한다면 무료 안내 투어를 추천한다. 덕수궁에서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 국어로 무료 안내를 실시하고 있는데, 한국어 무료 안내는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 3시, 4시30분으로 약 1시간 소요된다.
관람 시간 오전 9시~오후 9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오후 4시엔 중화전 내부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
휴관일 매주 월요일
문의 02-771-9952 www.deoksugung.go.kr

<광화문연가>의 그 교회당
 정동제일교회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주욱 올라가다 보면 소담한 삼거리와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 1896년 준공된 정동제일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건물. 1977년 사적 256호로 등록된 역사적·상징적 건물이지만 겉모양은 담백하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곳곳에 아치형 창문이 나 있다. 절제된 고딕 양식을 선보이는 이곳은 본래 십자형의 건물이었으나 1926년 증축하면서 양쪽 날개 부분을 넓혀서 현재 약 579m2의 네모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겉모양 외엔 딱히 볼 게 없지만 가을이면 노란 단풍과 붉은 벽돌이 어우러진 어여쁜 풍경을 뽐내 더욱 운치 있다.
문의 02-753-0001

한국 신교육의 발상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이다. 이곳에 남아있던 당시 건물은 모두 헐리고 유럽식 붉은 벽돌 건물인 동관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며 서울시 기념물 16호로 지정됐다. 2008년 만들어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는 배재학당의 역사를 비롯해 고종의 자필 편판, 서유견문록 등 근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또 이승만, 주시경, 김소월 등 매재학당 출신 역사 인물을 소개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옆 배재학당 터에는 배재공원이 자그마하게 둥지를 틀고 근처 직장인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문의 070-7506-0072 appenzeller.pcu.ac.kr

대한민국 신여성의 요람 
이화여고
1886년 미국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은 정동에 한국 최초의 사립 여성 교육기관 이화학당을 설립했다. 양반이 아닌 민중에겐 배움의 기회가 제한돼 있던 당시, 여자들이 학문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였다. 이 학당의 첫 학생들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거나 부모에게 버려진 여자 아이들이었으나, 학생의 수가 꾸준히 늘어 1887년엔 46명에 이르자 고종은 이곳에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화학당 부지엔 오늘날 이화여자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이화여고는 100년 전의 역사와 현대가 어우러진 곳. 소담한 돌담과 전통 한옥식으로 된 정문 ‘옛 대문’ 너머로 현대식 건물인 ‘100주년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이화학당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은 1915년 지어진 심슨관으로, 현재는 이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옛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 심슨관의 실내 공간은 그 자체로 색다른 감흥을 준다. 2009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학교숲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화여고는 도심 속에서 123년 된 고목과 풍성한 숲을 만날 수 있어 둘러볼 만하다.

아관파천의 역사적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
1895년 10월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살해당했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세자와 함께 러시아공사관으로 급히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했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서 머물렀다. 정동공원은 예전에 러시아공사관이 있던 자리로 아관파천이 있었던 역사적 장소. 1890년 러시아공사관을 준공할 당시, 이 건물은 정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지어져 정동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고 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것을 1973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했으며, 보수공사를 거쳐 지난 1월 시민들에게 새롭게 공개됐다. 자그마한 공원의 동산 위에 세워진 르네상스 풍의 3층짜리 새하얀 탑은 우아하면서도 쓸쓸하다. 탑을 감상하는 것 외엔 딱히 볼 게 없다는 게 아쉽지만, 아담한 정동공원에서 잠시 쉬어 가는 셈 치고 방문하면 좋겠다.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중명전
지난 8월27일 덕수궁 중명전이 복원 개방됐다. 왕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중명전은 1897년 덕수궁 확장 당시 궁궐로 편입됐다가 1920년대에 다시 덕수궁에서 제외됐던 곳으로, 현재는 예원학교 옆 골목길 안에 자리하고 있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현장이자 1907년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역사적 장소라 의미가 깊다. 2층 벽돌 건물에 아치형 창과 문이 대칭적으로 나 있는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안내 해설사의 인솔 하에 하루 6회 관람 가능하며 각 회당 관람인원은 25명으로 제한된다. 덕수궁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20명)할 수 있으며 현장 접수(5명)도 가능하다.
관람시간 오전 10시, 11시, 오후 1시, 2시, 3시, 4시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문의 www.deoksugung.go.kr


Travie tip. 정동은 한국 커피숍의 출생지
정동은 한국 최초의 커피숍이 들어선 곳이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시기는 1980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형이었던 독일 여인 손탁(Antoniette Sontag)은 고종의 각별한 신임을 얻어 현재 이화 100주년 기념관이 있는 터에 땅을 하사 받아 1902년 손탁 호텔을 세웠는데, 이곳에 커피를 파는 다방이 국내 최초로 들어섰다 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서양인들과 조선의 상류층 등이 주 고객이었다.
정동과 관련된 구한말 시대의 이야기를 보다 자세히 알고자 한다면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jungdong.culturecontent.com)를 찾자. 정동의 유래와 연혁, 개화기 정동의 스토리, 정동의 외국인들 등 구한말 정동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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