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증도-“그 섬에 가면 느리게 걸어 보세요”
슬로시티 증도-“그 섬에 가면 느리게 걸어 보세요”
  • 트래비
  • 승인 2010.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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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연이 살아 숨쉬는 증도의 갯벌은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됐다 2, 4 증도에서는 이른 아침 그물을 걷으러 앞바다로 나가는 어부가 노를 젓는 속도마저 느릿느릿 급할게 없다 3 썰물 때는 갯벌에서 뛰노는 짱뚱어와 집게다리를 높이 들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슬로시티 증도-“그 섬에 가면 느리게 걸어 보세요”

우리나라는 반도국가지만 ‘섬들의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는 1만개가 넘는 섬이 있고, 필리핀에는 7,000개, 그리스에는 6,000개가 넘는 섬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3,000여 개의 섬이 있으니 숫자상으로 크게 뒤질 바 없고,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가진 비경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바삐 굴러가는 일상에 지쳐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의 깊은 안식을 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섬은 더할 나위 없는 여행지가 된다. 외진 섬은 다소 불편하고 고립감이 느껴지지만 뭍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연과 생활방식을 경험할 수 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증도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섬 여행의 매력을 느껴 보자.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전남대학교 생태관광연구센터 062-530-4087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섬’

공정여행, 책임여행, 대안관광 등의 개념이 최근 들어 자주 회자되고 있다. 기존의 여행이 불공정하고 무책임하기라도 했다는 말일까? 소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여행에 사람들이 지친 까닭일 테다. ‘옛 것’으로 회귀하고픈, ‘낯선 공간’으로 도피하고픈 인간의 욕구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해져 간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섬’이라는 공간이다. 

3,000개가 넘는 우리나라의 섬 중에서도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남 신안의 증도는 예스럽고, 낯선 것을 찾는 여행자의 욕구를 가장 훌륭히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섬이라 할 만하다. ‘슬로시티’ 운동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맥도날드의 상륙을 반대하는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됐으며, 지금은 국제적인 조직망까지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증도와 함께 완도군 청산면, 장흥군 유치면, 담양군 청평면, 하동군 악양면, 예산군 대흥면이 인증을 받았다. 이중에도 증도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지정된 슬로시티로서 이름처럼 ‘느린 마을’의 요건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네스코에서 갯벌과 독특한 생태자원을 간직한 증도를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증도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점점이 흩어진 1,004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섬이라고 하지만 지난 3월 지도읍과 증도면을 잇는 증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자동차로 통행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지난 9월까지 이미 지난해의 2배에 달하는 60만명이 방문했을 정도로 대중적인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허나 대다수 여행객들은 ‘추천명소’라고 불리는 몇몇 관광지에 눈도장을 찍고는 도시로 돌아간다. 엄밀히 말해 느릿느릿 여행할  때 더 매력적인 증도의 진면목을 절반도 느껴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1 슬로시티 증도의 진면목을 경험하고 싶다면 현지인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천사의 섬’답게 증도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하다 2 태평염전에 위치한 염생식물원에는 뭍에서 볼 수 없는 다종의 식물이 분포한다. 독특한 생태를 간직한 증도는 체험여행, 교육여행에 최적의 장소다 3, 4 470m에 달하는 짱뚱어다리에서는 썰물 때 갯벌에 서식하는 짱뚱어와 게들을 볼 수 있으며, 일몰시에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5 찜질방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소금동굴힐링센터는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6, 7 소금박물관에서는 소금의 역사부터 소금을 테마로 한 다양한 볼거리가 갖춰져 있다

‘염전과 갯벌’ 도시인들이 열광하는 증도의 아이콘 

증도가 간직한 가장 큰 매력은 염전과 갯벌로 압축된다. 단일 염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460만 평방미터의 태평염전은 1953년 전증도와 후증도 사이의 갯벌을 막아 형성된 간척지로 연간 1만5,000톤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증도를 찾는 이라면 빼놓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전국 생산량의 6%에 달하고, 소금의 질은 최고로 손꼽힌다. 김장용부터 조리용까지 다양한 종류의 천일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방문객들이 소금을 직접 제작해 보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국내 최초로 개장한 태평염전 내의 갯벌 습지는 다양한 종류의 염생식물과 갯벌 생물을 구경할 수 있는 자연의 보고다. 함초, 나문재, 칠면초, 해홍나물 등은 육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희귀식물이다. 형형색색의 염생식물과 60여 채의 소금창고가 어우러진 풍경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비경을 연출한다.

태평염전의 입구에는 소금창고를 개조한 소금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소금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역사를 소개하고 있으며, 소금에 얽힌 인간 생활사까지도 살펴볼 수 있어 방문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태평염전은 소금을 테마로 소금레스토랑, 소금동굴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또한 증도에서만 체험이 가능한 것들이다. 올해 문을 연 소금동굴힐링센터는 호흡기질환과 피부병에 좋은 소금을 이용한 시설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등에서 이미 대중화된 시설이다.  

전국 갯벌의 50%가 사라진 만큼 증도의 갯벌은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있다. 도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갯벌에는 만화 캐릭터처럼 생긴 짱뚱어들이 뛰놀고, 두 눈을 곧추세운 게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갯벌 위에 떠 있는 ‘짱뚱어다리’도 증도의 명물 중 하나다. 증도면사무소 방향에서 짱뚱어다리를 건너면 짱뚱어해수욕장, 우전해수욕장이 나타나고 이곳에서는 잿빛 갯벌이 노을에 붉게 물드는 환상적인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태평염전│주소 전남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1931번지  주변 볼거리 염전 주변에는 소금박물관, 염생식물원, 소금동굴힐링센터 등이 밀집해 있다  문의 061-275-0370 www.saltmuseum.org


‘느릿느릿’ 증도의 시간 만끽하기 

슬로시티를 여행하려면 마음만 느긋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여행지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속도에 동화되는 적극성을 발휘해야 섬의 매력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여행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느릿한 섬의 생활에 어울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도보 여행’이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에 뒤지지 않을 증도의 도보여행 코스가 있으니 바로 ‘모실길’이다. 마라톤 코스에 가까운 4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모실길은 증도의 해안을 따라 테마별로 5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10km), 보물선 순교자 발자취길(7km), 천년의 숲길(4.6km), 갯벌공원길(10.3km), 천일염길(10.8km)까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간직한 길들을 걷는 재미가 여느 섬의 산책길과는 다르다. 

700년 전의 해저유물이 1976년 발굴된 것을 기념해 지어진 해저유물기념관 ‘700년전의 약속’은 당시의 배 모양을 본따 언덕 위에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당시의 도자기 및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근사한 카페도 있으니 해안길을 산책하다 잠시 들러 쉬기에 좋다. 한국 최초의 여성 기독교 순교자가 나온 증도는 주민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토테미즘이 강한 일반적인 해안지방과 분위기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증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엘도라도리조트다. 해외의 고급 리조트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랑하는 이 리조트가 증도의 명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증도가 간직한 호젓한 매력과는 다소 동떨어진 공간이다. 오히려 전통가옥의 뜨끈뜨끈한 온돌에서 휴식을 취하고, 주인집에서 차려주는 남도식 백반을 즐기는 게 어울린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화도에 위치한 에벤에셀민박은 최근 신축한 한옥 민박집과 지역에서도 소문난 가정식 백반으로 인기가 많다. 주인이 ‘직접’ 논밭에서 기른 쌀과 배추, 고추와 주인이 ‘직접’ 바다에서 잡아온 낙지, 농어 등으로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에는 따뜻한 정까지 담겨 객들의 영혼까지 배부르게 해준다. 소금의 맛이 탁월한 까닭에 사소한 밑반찬 하나까지 꿀맛이다.
에벤에셀 민박│주소 신안군 증도면 대초리 화도 1852-2  문의 061-261-5569



1 증도에서는 호남 음식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다. 낙지를 볏짚에 말아 구워낸 낙지호롱의 맛은 일품이다 2 슬로시티 여행의 진면목을 경험하고 싶다면 호화로운 리조트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일상과 어울려야한다. 훈훈한 한옥집 민박에서 보내는 밤이야말로 호젓한 시간이다 3 증도는 숱한 사연을 간직한 섬이다. 700년 전 침몰했던 보물섬의 유적을 복원한‘700년 전의 약속’은 새로운 증도의 명물이다


 interview

전남대 강신겸 교수
“섬에서 걷고 배우고 나누자”

‘환경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여행,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즐겁게 배우는 여행’을 지향하는 섬 여행 학교는 여행사에서, 지자체에서 추진한 것이 아니다. ‘섬 여행 전도사’를 자처한 전남대학교 강신겸 교수는 “현대인들이 여행을 떠날 때 동경하는 모든 것들이 전라도의 섬에 있다”며 “단순히 슬로시티로서 증도가 유명세를 타고, 방문객이 늘어나는 것으로는 여행객과 관광지 주민, 자연이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관광’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가 지향하는 새로운 개념의 섬 여행을 증도에 대입해보면 태평염전과 엘도라도리조트 같은 몇몇 관광 아이콘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것은 ‘슬로시티’의 개념과 괴리감이 있다. 섬 입구에 차를 내려놓고 두 발과 무공해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에 머무는 것이 진정한 슬로시티 여행법이다. 여기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바다 쓰레기를 여행객들이 직접 치우고, 섬 곳곳에 자원봉사자들이 예술품을 전시하는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도 섬 여행 학교의 과제다. 

강 교수는 “제주 올레의 사례에서 보듯 사람들은 이제 소비 지향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여행보다는 여유롭고 자연 친화적인 여행을 원한다”며 “무궁무진한 전라도 섬의 관광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지역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며 섬 여행의 트렌드를 형성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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