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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레만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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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ZERLAND
레만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알프스 없는 스위스를 만났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꼭대기에 올라 장엄한 풍광을 보는 대신 호수 주변을 찬찬히 산책했고, 지중해 분위기의 도시와 마을의 골목을 느긋하게 서성였다. 거기 호수를 사랑해 머물다간 예술가들의 흔적이 있었고, 잔잔한 호수처럼 여행자의 마음에 안식을 주는 여유가 가득했다. 그 길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스며 있었고, 오감을 자극하는 맛과 멋이 그득했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스위스정부관광청 www.myswitzerland.com

Lake  Leman 
예술혼 가득한 스위스의 지중해


이 호수에는 어떤 힘이 있어 숱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일까.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레만호(혹은 제네바호)는 스위스가 간직한 또 하나의 보석이다. 195km에 이르는 호수 둘레 중에서도 40km에 이르는 몽트뢰(Montreux)에서 브베(Vevey)에 이르는 지역은 유럽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로 꼽힌다. 지중해나 카리브해의 근사한 해안을 일컫는 리비에라(Riviera)를 이 호수에 붙여 ‘스위스의 리비에라’라 이름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멀리 알프스가 호수를 굽어보고 있는 풍경은 어떠한 바다보다 운치 있는 까닭이다. 한때 유럽 지도를 보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사이에 ‘갇혀 있는’ 스위스를 보고, 바다 없는 나라의 문명적 궁핍성을 생각했고, 스위스의 산 속을 거닐며 치즈와 고기에 슬슬 입이 질릴 즈음에 소금기 어린 바다가 주는 축복을 떠올렸는데 레만호를 만난 후, 그 모든 생각이 뒤집어졌다.
 
제네바에서 기차를 타고 몽트뢰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생의 마지막을 몽트뢰에서 보냈고, 퀸의 마지막 앨범이자 머큐리의 유작인 <Made in Heaven>도 이곳에서 만들었다니 어떤 사연이 있을까도 궁금했다. 머큐리와 몽트뢰의 인연은 197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룹 퀸은 이곳 몽트뢰에서 <Jazz> 앨범을 녹음했다고 한다. 머큐리는 수시로 이곳을 방문해 레지던스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그가 머물던 방에서는 레만호의 장관이 내려다보였다고 한다. 머큐리는 생전에 “진심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면 몽트뢰로 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제 머큐리는 차가운 동상으로 남아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모습으로 호수를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기리는 관광객들은 동상 앞에 꽃을 가져다 놓는다. 

호수를 오른편에 끼고 싱그러운 꽃들이 늘어선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시옹성이 나타난다. 상인들의 통행세를 징수하던 성벽에서 프랑스 사보이 왕가의 별장으로, 또 죄수들의 감옥으로 쓰였던 이곳은 이제 몽트뢰의 관광 아이콘이 됐다. 특히 16세기에 종교죄로 이곳에 갇혔던 보니바르를 주제로 한 바이런의 시 덕에 이 고성은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입장료 12스위스프랑을 내면 성 내부의 곳곳을 관람할 수 있으며, 해질 무렵 아름다운 조명과 잔잔한 호수가 어우러진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Montreux - Vevey  
시인의 발자취 따라 모여든 사람들
 

사실 바이런은 몽트뢰가 관광지로 급부상하게 된 단초를 제공한 주인공이다. 그의 시 <시옹성의 죄수>를 읽고, 감흥을 얻어 시옹성을 보기 위해,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몽트뢰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이 호텔 하나 없던 몽트뢰 인근 지역에서 민박을 했는데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에 감탄해 또 오고 또 오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고, 상인이 몰려들고, 교회가 생기고 철도가 개통되면서 관광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시인 바이런도 제네바에서 출생한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발자취를 찾아 몽트뢰로 왔다는 사실. 이처럼 하나의 관광지가 만인의 사랑을 받게 된 배경에는 우연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레만호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안식처로 그 품을 열어줬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브베에 잠시 정착했고, 톨스토이도 몽트뢰를 스쳐갔다. 빅토르 위고는 브베의 온화한 기후에 감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희극 활동을 펼친 찰리 채플린도 레만호를 사랑한 예술가다. 1943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채플린은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스위스로 망명했다. 그는 24년간 브베에서 살다가 숨을 거뒀고, 그의 생가는 지난 2009년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이제는 햇볕이 잘 드는 호수변에 동상으로 서 있는 채플린은 수많은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편 19세기 산업화의 물결에 따라 나란히 발전한 몽트뢰와 브베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발전돼 갔다. 몽트뢰가 고풍스러운 호텔들이 들어선 고급 휴양지로 발전했다면 브베는 생기 넘치는 산업도시로 부상했다. 현재 몽트뢰에는 스위스에서 손꼽히는 호텔학교가 다수 위치하며, 브베는 초콜릿 회사인 네슬레의 본사가 자리하고 있는 것만 봐도 흥미롭다. 이같은 배경 때문일까? 몽트뢰가 고풍스럽다면 브베는 활기차다. 레만호의 보석 같은 두 도시를 함께 여행하는 방법은 기차로 이동하면 빠르고 편리하지만 여유롭게 크루즈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좋다. 크루즈로 이동하면 육지를 가까이 끼고 운항해 온갖 다채로운 풍경에 눈은 즐겁고, 쾌적한 공기와 햇볕에 마음까지 풍요해진다. 



1 레만호는 수많은 예술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 이곳에서 유작을 만들고 생을 마감했다 2 시옹성은 19세기부터 여행객을 끌어모은 장본인이다 3 레만호는 지중해를 연상시킨다. 온화한 날씨, 맑은 물은 바다보다도 매력적이다 4 형형색색의 꽃이 늘어선 레만호 산책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을 받는다 5 브베는 지중해 도시 니스, 베네치아의 분위기를 띄고 있다. 여름철이면 거리공연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6 미국에서 망명한 찰리 채플린은 25년간 브베에서 살았다. 브베 호수변에는 그의 동상이 쓸쓸히 남아 있다 7 몽트뢰나 브베의 호수 곳곳에는 첨벙첨벙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Lavaux 
기이한 포도밭길, 걷는 재미 솔솔


레만호가 주는 또 하나의 축복은 스위스 최고 수준의 와인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레만호를 따라 40km가량, 로잔과 브베 사이에 펼쳐진 라보(Lavaux)의 포도농장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모습일 것이리라. 라보의 계단형 와인농장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와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와이너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다랑이논 같기도 하고, 보성 녹차밭을 연상시키는 풍경에 왠지 모를 정감이 간다. 

라보의 포도농장은 800km2에 이르러 스위스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산비탈에 형성된 포도원 테라스는 2007년 이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기도 하다. 라보의 진면목을 경험하고 싶다면 두 발을 이용해 하이킹을 즐기는 게 좋다. 라보는 가족형 포도농장으로 곳곳에 들러 와인을 시음하며 다양한 맛을 감상해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단순히 포도밭길이라는 차원을 뛰어넘는 장엄하면서 친근한 풍경에 산책이 마냥 즐겁다. 14개의 아기자기한 마을로 이뤄진 라보에서는 맛깔난 스위스 전통음식도 맛볼 수 있고, 정감 가는 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포도밭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보이(Savoy)와 발레(Valais) 알프스의 경관을 감상할 수도 있다. 중세의 전통을 그대로 지켜 오고 있는 생-사포랭에 들르면 옛 풍취가 물씬 나는 좁다란 골목길 사이를 다니며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지어진 유서 깊은 포도원을 방문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라보의 포도농장은 우리나라에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바로 제주올레와 공동 협력을 체결한 것이다. 제주도에 ‘스위스-올레 우정의 길’을 낸 후,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스위스로 건너가 체르마트와 라보 포도농장에 올레길을 냈다. 당시 서 이사장은 “가파른 산기슭에서 흘린 농부들의 땀방울에 감동을 받았고, 포도밭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뭉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뤼트리에서는 등반객들이 열차 안에서 쉬면서 경치를 볼 수 있도록 매주 수요일, 토요일마다 ‘라보 익스프레스’ 열차를 운행한다. 이름이 특급열차이지, 놀이동산에서 유아들이 타는 꼬마열차와 흡사한 열차의 모습에 정감이 간다.


1 레만호반의 독특한 지형에서 자란 라보의 포도는 스위스에서도 일급 와인으로 빚어진다. 특히 화이트와인의 맛이 일품이다 2 라보에서는 산책을 하다가 어디서든 편하게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다 3 라보의 계단형 포도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전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 Travie tip. 스마트폰, 태블릿PC를 활용하라
 
 ▶스위스정부관광청은 여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스마트폰, 태블릿PC의 어플리케이션으로 출시해 여행객의 짐을 덜어 주고 있다. 지역별, 테마별로 만들어진 어플을 여행 전, 다운로드 받는 것은 필수다. 특히 여행 중 가장 필요한 열차정보를 꼼꼼히 볼 수 있는 열차 어플 <SBB>는 반드시 챙기도록 하자. 태블릿PC용 어플은 트위터, 페이스북과도 연동된다. 
 ▶대한항공의 직항편을 이용해 취리히로 들어가거나 유럽, 중동 항공사를 이용해 제네바로 들어갔다가 다시 기차를 이용해 몽트뢰까지 이동하면 편리하다. 
 ▶스위스 레만호 지역은 해발고도가 낮은 만큼 온화한 날씨를 자랑한다. 한여름 최고기온이 20~25도 정도로 덥지 않고, 겨울 평균 기온은 서울과 비슷하다. 
 ▶1스위스프랑 = 1,159원(2월15일 기준)
 ▶한국보다 8시간 느리다. 
 ▶한국과 같은 220V이지만 플러그 모양이 달라 어댑터가 필요하다.  



4 13세기에 세워진 그뤼에르 고성은 그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성 안에는 미로 모양의 프랑스식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5 그뤼에르치즈는 스위스 3대 치즈로 꼽힌다. 라보의 와인과 함께 최상의 궁합을 이룬다 6 그뤼에르는 동화마을 같다. 초록을 뽐내는 산야에 안긴 마을은 동화책에서 보던 스위스 마을 그대로다 7 몽트뢰와 그뤼에르를 연결하는 초콜릿 열차. 실제 기차에 탑승하면 달콤한 스위스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Gruyeres  
초콜릿 열차 타고 동화마을로
 

몽트뢰에서 기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1시간만 가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스위스 3대 치즈 중 하나로 꼽히는 그뤼에르 치즈를 맛볼 수 있고, 고스란히 중세의 유적을 간직한 아름다운 고성을 방문해 볼 수 있다. 그뤼에르 주변은 먹거리가 가득하고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하이킹 코스로도 추천할 만하다. 

그뤼에르를 가는 길에 누릴 수 있는 재미는 독특한 초콜릿 열차를 타면서부터 시작된다. 오리엔트익스프레스 풍의 인테리어로 10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주는 이 열차는 승차하자마자 달콤한 핫초콜릿 한잔과 크로아상, 초콜릿 한조각을 준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레만호를 보며 중세의 고성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 오묘하다. 골든패스라인 루트의 일부인 초콜릿 열차는 5월부터 10월까지만 운영하며 매일 아침 9시 12분에 몽트뢰에서 출발한다. 사전예약은 필수다.
그뤼에르역 바로 앞에는 방문자센터를 갖춘 치즈공장이 있다. 스위스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입장 가능한 이곳에서는 치즈의 제조과정을 관람할 수 있고,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맛보고 구매할 수 있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그뤼에르 치즈는 맛과 향이 강하고, 수분이 많지 않은 특성을 지닌다. 치즈공장은 그뤼에르 마을을 둘러보고 몽트뢰로 돌아가는 길에 방문하는 것도 좋다. 고소한 치즈는 선물용으로 좋기에 가방이 무거워질 수 있는 까닭이다. 

그뤼에르역에서 중세마을까지 가려면 경사가 얕은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야 한다. 웅장한 알프스와 완만한 구릉지대에 펼쳐진 전원의 풍경을 만끽하면서 걷기에 안성맞춤인 하이킹 코스다. 서둘러 중세마을로 가고 싶다면 버스를 타면 된다. 마을 입구에 이르면 테마파크 같은 공간이 방문객을 맞아준다.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호텔, 토산품점이 마주하고 서 있으며 북쪽으로 그뤼에르 호수와 남서쪽으로 몰레종 산이 펼쳐져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13세기에 세워진 그뤼에르 성은 고스란히 형태를 보존하고 있으며, 당시 귀족과 기사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가득하다. 미로처럼 생긴 프랑스식 정원은 고성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모를 더한다. 그뤼에르는 그저 중세시대를 박제시켜 놓은 마을은 아니다. 마을 곳곳에는 현대 예술을 맛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인 기거(H.R. Giger)의 작품 <에일리언>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으며, 히말라야의 예술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티벳박물관도 명물로 손꼽힌다.  

브록(Broc)에 있는 전통 깊은 초콜릿 회사 ‘까이에(Cailler)’에 들러 보는 것도 좋다. 까이에는 2010년 4월‘순수한 초콜릿-순수한 감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700만스위스프랑을 투자해 방문자센터를 열었다. 20분가량 진행되는 초콜릿공장 투어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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