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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INAWA 일본이 아닌 일본의 섬, 오키나와"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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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코의 히가시헨나자키. 오키나와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이 아닌 일본의 섬
오키나와

하늘에서 내려다본 오키나와는 눈부시다. 산호의 퇴적으로 생성된 섬들과 섬들을 둘러싼 바다와  바다 아래 점점이 박힌 산호초들이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풍경은 왜 오키나와를 ‘일본 속 남국’이라 칭하는지를 여실히 입증한다. 광대한 자연과 유구한 문화로 축소 지향의 일본에 이채로운 색깔을 덧입히는 곳이 바로 오키나와다. ‘일본의 하와이’라 불리는, 일본이지만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 그 땅과 바다의 매력을 훑어봤다. 아름다운 자연과 섬 고유의 문화를 한껏 만끽하는 아일랜드 투어는 보너스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일본항공 www.kr.jal.com 02-757-1711


실리를 추구했던 독자적인 왕국 류큐


일본 최남단에 자리한 오키나와현은 40여 개의 유인도와 수많은 무인도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규모가 제일 큰 것이 오키나와 본섬이고, 현청 소재지인 나하시도 이 섬에 자리한다. 도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키나와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여. 서울에서 도쿄를 가는 시간보다 길다. 오키나와는 나하시 기준, 연평균 기온이 섭씨 22.3도에 달하는 ‘남국’이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한국인 가이드가 처음 꺼낸 말은 “오키나와는 일본 속 또 다른 일본입니다”였다. 날씨, 분위기, 문화, 음식, 얼굴 생김새 등이 일본 내 여느 지역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류큐(琉球)’라는 두 글자를 파고들어야 한다.

오키나와는 17세기까지 류큐라는 독자적인 왕국이 지배하는 땅이었다. 이들은 언어, 풍속, 신앙 등 모든 면에서 독자성과 고유성을 견지했다. 따지고 보면 일본보다 중국 남방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류큐라는 글자는 중국에서 가장 방대한 역사 기록물인 <명실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1368년 원나라가 패망하고 한족 국가인 명(明)이 들어섰다. 명나라의 태조는 주변 국가에 사자를 보내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알림과 동시에 복속을 요구했다. 류큐 왕국은 실리 외교를 선택했다. 아시아의 최강자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며 이후 청나라 말까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갔다. 왕국은  중국에서 구입한 도기와 비단으로 한국과 동남아시아 각지의 특산품을 가져왔다. 물질의 거래는 문화의 교류를 동반하게 마련인데, 흡수된 이질적인 문화는 오키나와의 전통문화와 서로 말문을 트며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류큐 왕국은 그러나 1609년에 허물어지고 만다. 지금의 가고시마에 해당하는 사쓰마번의 시마즈 가문이 보낸 군대에  함락당한 것이다. 이후 메이지 정부는 1879년, 류큐 사람들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쓴 채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섬 전체를 일본에 편입시킨다. 류큐에서 오키나와로 문패가 바뀐 뒤에도 수난은 계속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이 바로 오키나와인데, 1945년 3월부터 6월까지 발생한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민간인 포함 무려 20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쟁에서 패퇴한 이후 1972년 다시 일본 영토로 편입되기까지 오키나와는 27년 동안 미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치열했던 역사가 아로새겨진 성 나하  

오키나와 여행은 본섬의 나하시로부터 비롯된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역할을 단단히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남국의 자연을 풍성하게 갖춘 오키나와의 여행 지도에 쇼핑과 시티 투어의 무늬를 새겨 넣는다. 시의 상업 중심지는 국제거리.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겪으며 잿더미로 변한 거리였으나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환골탈태했다. 약 1.6km의 구간에 백화점, 기념품 상점, 영화관, 음식점 등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을 보면 국제거리를 두고 하는 말인 ‘기적의 1마일’이 실감 난다. 근처에 위치한 헤이와도리 역시 쇼핑의 거리인데, 국제거리에 비해 수더분한 인상이다. 채소와 해산물, 희귀한 식재료 및 약초 등이 유통되는 공설 시장이 가볼 만하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꾸려가는 홋홋한 살림살이의 일단을 엿볼 수가 있다. 

나하시 동부의 슈리는 류큐 왕국의 수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핵심은 역시 슈리 성. 13~14세기에 걸쳐 류큐에는 호족들의 침략이 빈번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혼란은 1429년 쇼하시라는 인물에 의해 정리됐다. 그는 호족들과의 거듭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류큐 왕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수립했다. 왕위에 오른 쇼하시는 남아 있는 성들 가운데 하나인 슈리 성을 정비하고 확장해서 정치의 중심지로 삼았다.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류큐 왕국의 슈리 성은 일본 본토의 성들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중앙의 광장을 정전, 북전, 남전 등의 건물이 에워싼 공간 구성부터가 자금성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궁전 양식과 흡사하다. 슈리 성에서 가장 화려한 곳은 왕이 거주했던 공간인 ‘정전(세이덴)’이다. 류큐 왕국이 남긴 최대의 목조 건축물로, 무엇보다 붉은색의 외관이 인상적이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금박과 33마리의 용 문양, 그리고 햇볕을 가리거나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중앙 부분에 설치한 반곡선 형태의 구조물 등이 당시의 영화로움을 넌지시 일러준다. 지난 2000년에는 슈리 성터를 비롯한 류큐 왕국 관련 유적들이 일본에서는 11번째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슈리 성은 나하시에서 가장 높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덕분에 쪽빛 바다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나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1 류큐 왕국 최초로 통일 왕조를 수립한 쇼하시가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 삼았던 슈리 성. 건물의 배치에서부터 중국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난다 2 슈리 성의 용머리 장식 3 전통 복장을 한 슈리성의 안내원 4 슈리 성의 정전과 그 앞에서 벌어진 왕실 행사를 재현한 미니어처 5 왕이 거주했던 공간인 정전 내부

Okinawa Island Tour

이제 오키나와 본섬에서 벗어나 외곽의 섬들로 날아갈 차례다.
오키나와를 구성하는 40여 개의 유인도 중 이시가키 섬을 위주로 섬 탐험을 시작한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섬들이니 입맛대로 풍성한 투어 일정을 짜 보자.




1 미야코 히가시헨나자키에서 바라본 오키나와의 찬란한 바다. 푸른빛의 거대한 스펙트럼이 인상적이다 2 유부 섬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물소 마차 3 이시가키 섬 서쪽에 자리한 우간자키 등대. 등대 너머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4 이시가키 카비라 만의 수중 세계를 보여주는 글래스 보텀 보트 5 이리오모테 섬과 인접한 유부 섬. 규모는 작지만 풍성한 자연이 깃들어 있다

등대와 갈대가 있는 풍경 이시가키 

가장 먼저 찾을 곳은 오키나와 본섬에서 남서쪽으로 43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시가키다. 이시가키의 주인은 자연이다. 섬을 둘러싼 순정한 자연을 마주하노라면 오키나와가 감내해야 했던 역사의 통증은 전달되지 않는다. 이시가키의 바다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카비라 만으로 향해야 한다. 투명한 바다는 제 속내를 고스란히 내보인다. 물속 산호의 색깔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몰디브에 견줘 뒤떨어지지 않는 정온하고 맑은 바다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는 글래스 보텀 보트에서도 수중 궁궐의 현란한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카비라 만 부근에는 섬 유일의 리조트이자 다채로운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갖춘 클럽메드 카비라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호응이 높다.  

뭍과 물이 어우러진 탁월한 풍경은 섬의 서쪽에 자리한 우간자키 등대에서 눈에 넣을 수 있다. 바다를 향해 툭 불거진 언덕에 새하얀 등대가 우뚝하고, 등대 너머로는 비탈진 면을 따라 산책로가 놓여 있다. 간단없이 밀려드는 바닷바람에 억새는 끊임없이 춤을 추고, 바다는 쉴 새 없이 갈기를 세운다. 섬의 안쪽으로 더 진입하면 옥수수 줄기를 연상시키는 사탕수수가 다문다문 눈에 띈다. 이시가키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탕수수로부터 뽑아낸 흑설탕이다. 흑설탕과 더불어 미네랄을 다량 함유한 소금과 일본에서도 최상급 육질로 통하는 쇠고기가 이시가키의 자랑거리다. 이시가키 투어의 마지막은 우리네 민속촌에 해당하는 야이마무라의 몫이다. 전통 가옥을 비롯해 오키나와 특유의 공예와 음악을 접할 수가 있다.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앙증맞은 다람쥐원숭이도 볼 수 있다.
 
이시가키는 우리나라의 김태균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팀 지바 롯데의 전지훈련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겨울에도 롯데 선수들이 이곳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우리나라의 프로야구 인기도 대단하지만 일본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정규 시즌은 말할 것도 없고 경기가 열리지 않는 비시즌에도 훈련장을 따라다니며 선수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골수팬들이 많다.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를 보이는 도시들은 프로야구 구단의 스프링캠프를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본섬의 나하시 같은 경우는 일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군림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지훈련 장소로 간택받기 위해 전용 구장을 건립했을 정도다. 그 결과 올해 처음으로 나하에서 훈련하는 요미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보게 됐다.

샤미센 가락이 흐르는 물소 마차 이리오모테

이시가키 항에서 배를 타고 50분이면 도착하는 이리오모테는 오키나와현을 통틀어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남쪽으로 튀어>에서 희망의 낙원으로 그려진 곳이기도 하다. 인구가 2,000여 명에 불과한 섬이 연간 35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식물군의 역할이 크다. 특히 일본 최대의 맹그로브 보존 지역으로 널리 이름이 나 있어 에코 투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앞 다퉈 찾는다. 보트나 카누를 이용해 해수와 담수가 몸을 섞은 나카마 강을 따라 올라가면 맹그로브 숲의 장관을 가까운 거리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야생 고양이인 야마네코는 이리오모테의 상징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으며, 현재 10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난히 다리가 짧은 편인데, 섬에 천적이 없는 야마네코가 재빨리 도망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자연스레 퇴화됐다는 설명이 그럴싸하다. 우리나라 돈으로 개당 1억원을 웃도는 야생동물 이동 통로를 무려 100개나 섬 곳곳에 설치했을 만큼 야마네코 보호를 위한 섬의 노력과 정성은 지극하다. 물론 야마네코는 티셔츠와 캐릭터 인형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섬의 경제 활성화에 일조한다. 

이리오모테의 또 다른 명물은 물소 마차다. 커다란 뿔과 육중한 체격을 자랑하는 검은 물소는 70여 년 전 타이완에서 농업용으로 처음 수입됐다. 타이완과 오키나와는 비행기로 불과 40여 분 거리다. 관광객을 태운 물소 마차는 아주 얕은 바다를 건너 이웃한 유부 섬으로 들어간다. 물소 주인은 짧은 이동 시간 동안 세 줄로 된 오키나와의 전통악기인 샤미센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준다. “활짝 갠 날도 비 오는 날도 떠오르는 그 웃는 얼굴, 추억이 멀리 빛바래도….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그대를 향한 생각에 눈물이 주룩주룩.” 꽤나 구슬프게 들린다. 이리오모테에 비하면 ‘손바닥만한’ 크기지만 유부 섬에도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나비가 가득하다. 건강식으로 차려진 점심식사를 마친 후 산책 삼아 여유롭게 둘러보면 좋다.


푸근한 돌담길과 별모래의 섬 다케토미

이시가키 인근의 바다에는 이리오모테와 유부 이외에 다케토미라는 섬도 있다. 이시가키에서 쾌속선으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인구 350여 명의 다케토미는 고요함으로 충만한 섬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기보다 오키나와의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을 유유자적 돌아보는 것이 다케토미를 즐기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 물론 이리오모테와 유부 섬에서 소개한 물소 마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도 있다. 다케토미는 산호가 융기한 섬이다. 마을의 돌담도 산호로 되어 있는데,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의 모습은 제주도의 어느 마을을 연상시킨다. 

다케토미에는 오키나와의 전통 가옥이 잘 보존돼 있다. 저마다 정사면체의 형태에 주황색 기와지붕을 얹었으며, 사자 모양의 수호신인 시사가 집의 지붕이나 담 위에 놓여 있다. 입을 벌린 모습의 남신은 지붕에, 입을 다문 여신은 집 안에 위치하는 것이 상례다. 4.5m의 나고미 탑에 오르면 주황색 지붕의 옛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살가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케토미는 이리오모테와 함께 별모래 해변으로도 유명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래가 아닌 유공충이라는 원생동물의 시체인데, 오각형의 모래처럼 보인다고 해서 별모래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키나와 어디를 가더라도 이 별모래를 이용한 기념품을 쉽게 구입할 수가 있다.   
    

황홀한 레인보우 바다 미야코

오키나와현 아일랜드 투어의 마지막 주인공은 미야코다. 이시가키에서 비행기로 30분 거리에 위치하며,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약 300km 떨어져 있다. 미야코는 물빛이 아름다운 오키나와에서도 가장 황홀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햇살이 비추면 무지개와 같이 여러 빛깔로 아롱져 보인다고 해서 레인보우 바다로 불린다. 미야코의 바다를 감상하기 전 잠시 들른 곳은 ‘아와모리’를 생산하는 타라가와 주조. 아와모리는 600년 역사를 지닌 항아리 저장법으로 만들어지는 오키나와의 전통술로, 지역의 자부심이 응축돼 있는 세계적인 명주다. 아와모리 전문 상점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국립대학인 류큐대학과 오키나와대학에서는 아와모리 전문 강좌를 운영할 정도다. 누룩만으로 증류해 만드는 30도 이상의 독주지만 뒤끝이 깨끗하다. 오키나와의 아와모리 공장은 모두 합쳐 45개가 산재하는데, 그중 7개가 미야코에 있다.   

미야코 섬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히가시헨나자키다. 굴곡진 해안선 덕분에 미야코에서는 바다를 향해 돌출된 지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 동쪽에 위치한 곶이 바로 히가시헨나자키다. 바다를 향해 2km가량 뻗어 있는 육지가 현란한 물빛과 융기 산호초,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과 어우러져 무한 감동을 선사한다. 스나야마 해변은 미야코를 대표하는 해변이다. 부드러운 감촉의 모래언덕을 넘어가면 창창한 바다가 펼쳐지는데,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한 분위기 속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미야코에서는 해마다 7월이면 철인 삼종 경기가 개최된다. 참가자들은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거치며 섬을 한 바퀴 반 정도 일주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작 미야코 주민들 중에는 수영에 능숙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수영하다’라는 표현도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지 놀이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지만 수영에 서툰 사람들. 이른바 미야코의 역설이다.

Travie info.

김포-하네다, 김포-오사카 구간의 직항 편을 운영 중인 일본항공(JAL)을 이용하면 오키나와 본섬은 물론이고 외곽의 다양한 섬들로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다. 우선, 오키나와 본섬의 나하에서 이시가키까지의 비행시간은 약 50분. 이시가키-미야코, 미야코-나하 구간의 비행시간은 각각 30분과 50분이다. 일본항공은 도쿄와 오사카를 경유해 오키나와로 향하는 왕복 항공권을 3월까지 최저 42만원에 판매한다. 일본 국내선 요금이 구간당 6~7만원으로 저렴하고, 하네다 공항의 신청사 오픈으로 환승이 쉽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원할 경우 도쿄나 오사카에서 며칠간 머무를 수도 있다. 일본항공의 오키나와 특가 항공권은 김포-오사카-나하-오사카-김포 42만원, 김포-하네다-나하-오사카-김포 48만원, 김포-하네다-이시가키-오사카-김포 48만원, 김포-하네다-나하-이시가키-오사카-김포 55만원, 김포-하네다-이시가키-미야코-나하-오사카-김포 58만원이다. 유효기간은 14일이며 마일리지는 국제선 70%, 국내선 100%가 적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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