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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히로시마-설경 속에 빛나던 기타히로시마의 하루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3.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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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 속에 빛나던 기타히로시마의 하루 

떠나기 전에 이 여행은 ‘일본 스키, 온천 여행’이 될 것이라고 들었다. 그것은 ‘혹’할 만한 광고였지만 결과적으로는 평가절하의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기타히로시마에서의 시간은 스키나 온천처럼 표피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난생 처음 여행을 통해 보통의 일본인이 살아가는 내밀한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귀한 대접을 받고 감사의 마음을 주고 오는 진정 ‘공정한 여행’이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천소현   취재협조  헬로재팬투어 www.hellojapantour.co.kr


보통 일본인의 내밀한 일상

지난달 ‘100년 만’이라는 기록으로 찾아왔던 한국 동해안의 폭설은 대란을 가져왔었다. 하지만 기타히로시마(北廣島)에서는 그런 폭설이 일상이라고 했다. 부산보다 위도가 낮은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작은 마을(町)이지만 이미 쌓여 있는 눈의 높이만 1m50cm가 넘었다. 그리고 또 눈이 오고 있었다. 집집마다 소형 제설기가 바삐 움직이고, 오후에는 지붕에 올라가 눈을 쓸어내리는 사람이 가끔 보일 뿐, 아무런 소동은 없었다. 다만 여행자에게는 작은 불편이 있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제주항공을 이용해 규슈 공항에 내리면 기타히로시마까지 세 시간 정도를 예상했다. 그러나 눈으로 다져진 도로를 다섯 시간 정도 달려서야 민숙(民宿)에 도착했다. 저녁때를 한참 넘긴 9시경이었다.
‘민숙’은 말하자면 일본식 민박이다. 보통 2층 구조의 큰 집에 여러 개의 방이 있고 손님용 욕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아침과 저녁, 두 끼의 식사를 제공한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여느 민박과 큰 차이가 없는 것도 같지만 일본의 민숙은 보통의 가정집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 된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소박하지만 주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인테리어와 가구는 물론이고 테이블 위에 얌전히 놓여 있는 차와 간단한 스낵, 깨끗하게 빨아서 다림질까지 해 놓은 이불 시트까지, 단순 소박하지만 모든 것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알펜야(あるぺん屋, www.alpenya.jp)는 기타히로시마에 있는 60여 곳의 민숙 중에서 꽤 규모가 큰 편이었다. 1층에 넓은 거실 겸 식당과 공동욕실, 화장실이 있고 2층에 3~5인을 수용하는 5개의 방이 있었다. 조금씩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과 마룻바닥이 정겹고, 거실의 벽난로에서는 가끔 ‘딱’하는 소리와 함께 장작이 갈라지며 불길이 일어나곤 했다. 거실의 벽면을 장식한 가족들의 사진과 각종 상장과 상패, 미처 먼지를 털어내지 못한 낡은 소품들이 이 가족이 살아온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안주인 수기하라 케이코 여사는 일본 100대 부녀회장으로 꼽혔을 정도로 살뜰한 살림의 여왕이었다. 젊은 시절 스키 선수였던 남편에게 반해 일찍 결혼했고 스키장이 많다는 이유로 남편을 따라 이곳, 기타히로시마로 이사와 민숙을 경영하면서 이제는 십여 명 손님들의 식사를 뚝딱 만들어내는 억척 여사가 되었다. 그녀가 내놓은 수제 치즈는 마치 크림처럼 입 안에서 살살 녹았고 집에서 누룩을 띄워 직접 담근다는 탁주는 탁 쏘는 탄산의 알싸한 느낌과 밥 알갱이가 씹히는 독특한 식감을 지니고 있었다. 여러 가지 짠지와 반찬으로 예쁘게 차려내는 조식은 물론이고 오뎅나베, 오리전골, 대게찜 등을 주메뉴로 한 저녁식사는 매번 너무나 훌륭한 만찬이었다. 이런 민숙의 요금은 보통 1박2식에 6,500엔부터 시작된다니 후한 대접이었다. 


1, 2 산들바람이라는 뜻을 지닌 소요카제 민숙의 객실과 정이 많은 주인 부부 3 알펜야 민숙의 게이코 여사는 뛰어난 음식 솜씨와 살림 솜씨로 일본 100대 부녀회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4 객실에 항상 준비되어 있는 차와 스낵 5 가미오카 민숙의 깨끗한 담요 6 고급 료칸 부럽지 않은 푸짐한 아침 상차림

스키를 탈 수 있는 일본의 남방한계선

해발 1,000가 넘는 산지에 둘러싸인 기타히로시마는 스키를 탈 수 있는 일본의 남방한계선이다. 기타히로시마 남쪽으로는 더 이상 스키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오사(大佐) 스키장, 게이호쿠분카(芸北文化)랜드, 스키파크칸비키, 파인릿지리조트게이호쿠국제(芸北國際), 야와타코겐(八幡高原) 191등 여러 스키장이 호황을 누렸었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고 최신 시설의 스키장들이 차즘 늘어나면서 이곳의 스키장은 조금 활기를 잃었다. 일본 사람들조차 히로시마현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를 정도다. 좁은 스키장에서 바글바글 인파에 밀려서 타는 스키에 익숙한 우리의 입장에서 그렇게 널찍한 자연설 스키장이 사람조차 많지 않으며 3월 중순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배가 아프도록 부러운 일이었다. 

게이호쿠국제스키장(www.geihokukokusai.com)은 상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두 개의 스키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2km에 이르는 최장 슬로프의 정상에 서니 주변의 산지와 작은 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본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홋카이도 부럽지 않은 설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스키 손님이 물러가는 봄, 여름, 가을에 기타히로시마는 더 바빠진다고 했다. 농촌 체험을 위해 학생 단체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농촌 체험으로 유명한 기타히로시마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추천이 결정된 하나타우에(모내기) 축제의 무대이기도 하다. 모내기가 시작되는 6월 초가 되면 중요무형민속문화재인 이 축제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온다. 기타히로시마는 수려한 너도밤나무숲과 희귀동식물이 살고 있는 초원, 습지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일본의 중요한 생태답사지역이기도 하다. 상수원 보호를 위해 모든 민숙은 자체적인 정화시설을 갖추어야 하는 등 엄격한 환경 관련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지역 발전을 위한 마을 사람들의 협력도 인상적이다. 일례로 우리가 민숙에서 맛있게 먹은 만두는 민숙의 안주인이 제공한 조리법에 따라 인근의 공장에서 지역의 농축산물만을 이용해 대량 생산한 것으로, 지역 내의 일부 민숙이나 온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뜻이 귀한’ 만두였다. 

2박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기타히로시마의 시간은 ‘정’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그 어떤 쾌적한 호텔이나 료칸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따스한 경험이었고 귀한 선물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면서도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자발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떠나는 버스 안에서 오랫동안 손을 흔들며 자꾸 뒤돌아보게 되었다. 손님들의 떠날 때 눈물을 쏟는 경우가 많을 만큼 오염되지 않는 곳이라,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곳이 너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마저 있었음을 살짝 고백한다.



 7, 8, 12 게이호쿠국제스키장의 최정상 리프트와 슬로프. 해발 400~800m의 고지대에 자리한 기타히로시마는 일본에서 스키를 탈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다 9, 10 기타히로시마의 학생들에게 스키는 학교 교과과정의 일부다 11 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폭설은  이곳의 익숙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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