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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나일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②Central Nile Luxor 룩소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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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Nile Luxor
Luxor  룩소르  

룩소르에 이르러 나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된다. 약 1,000년 동안 고대 이집트 중왕국과 신왕국의 수도였던 테베(현재의 룩소르)는 강을 중심으로 태양이 뜨는 ‘산 자들의 도시(아크로폴리스)’와 태양이 지는 ‘죽은 자들의 도시(네크로폴리스)’로 나뉘어져 있었다. 동쪽에 신전들이 위치해 있고, 서쪽에 암굴무덤군과 장제전 등이 자리잡은 이유다. 


1 룩소르 신전의 문이 잠기고 나서도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이집트의 신전은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다 보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룩소르 신전의 람세스 2세 석상 3 카르나크 신전에 있는 134개의 대열주는 신상 못지않은 장엄한 위용을 뽐낸다 4 왕가의 계곡에서 현재까지 63개의 무덤이 발굴되었지만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것은 투탕카멘의 무덤뿐이었다

해와 달이 깃든 신전

전성기였던 BC 1500년경에 인구가 1,000만 명이 넘었던 도시의 땅 밑에서 최대 크기의 신전 카르나크(Karnak)가 발견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참배의 길을 지날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도 신전 내부에 들어가 막상 134개의 대열주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습지에서 자란다는 파피루스와 연꽃 문양을 한 기둥들은 천지 창조때의 혼란을 상징한다지만 내 눈에는 모두 거대한 신으로 보였다. 나무든 돌이든, 물이든 수천년을 살아온 것들은 이미 신이다. 높이 23m와 15m의 기둥마다 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역대 파라오들도 이곳에서 신들의 재가를 받고 취임식을 거행했다. 국가 최고신 아멘(Amen), 그의 아내 무트(Mut )여신과 아들 콘스(Khons) 신이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10분의 1밖에 발굴이 진행되지 않은 신전은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아 보였지만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았다. 카르나크 신전과 그의 부속 신전인 룩소르(Luxor) 신전 사이에는 3km에 이르는 승리의 길을 따라 7,000여 개의 스핑크스가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룩소르 신전은 카르나크 신전에 비하면 무척 아담한 편(260m)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카르나크는 해를, 룩소르는 달을 숭배하는 신전이다. 그래서인지 카르나크는 무수한 열주 사이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을 때 가장 아름다웠고, 룩소르는 어둠이 내릴 즈음 노란 조명을 받아 마치 황금처럼 빛나고 있을 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집트 사람들도 강렬한 이미지의 신전을 원했던 모양이다. 밤마다 카르나크 신전을 포함해 피라미드 등의 유적지에는 사운드 앤 라이트 쇼(Sound and Light Show)가 펼쳐진다. 그것은 빛과 소리로 이루어진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

파라오는 왕좌에 오르고 난 그 순간부터 죽음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보다 두려워한 것은 도굴이었다. 그래서 BC 1550~1075년(제 18~20 왕조) 사이 신왕국의 왕들은 룩소르 서쪽에 서 있는 바위산 알쿠른을 주목했다. 피라미드를 닮은 삼각산 아래의 계곡 깊은 곳에 각자의 무덤을 만들었다. 왕뿐 아니라 왕비들, 귀족들도 인근의 계곡에 자신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왕들의 계곡에서 1.5km 거리에 있는 왕비의 계곡에는 70여 개의 무덤이 있고, 귀족의 계곡에는 약 500여 개의 고분이 있다. 현재까지 62기의 무덤이 발굴되었고 그중 일부를 개방하고 있다. 긴 통로를 따라 무덤 안에 들어가면 몇 개의 석실이 나오는데 규모에 따라 그 개수가 다르다. 방마다 쌓여 있었을 유물과 시신들은 대부분 사라졌으니 죽은 자들의 소원은 이뤄지지 못한 셈이다. 신왕조 말기에 도굴을 우려해 다른 장소로 옮긴 시신들 중 일부만 발견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18세에 단명한 소년왕 투탕카멘의 무덤이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 박사에 의해 온전한 상태로 발굴됐다. 20세기 고고학계 최대의 사건이었다. 이 하나의 무덤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의 호화로움은 카이로 박물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계곡의 무덤은 텅 비어 있지만 볼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벽면마다 빼곡하게 채색된 벽화들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생생하다. 

장제전은 죽은 왕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음식과 예물을 저장하던 곳이다. 계곡에는 람세스 2세의 장제전(라메세움), 람세스 3세의 장제전(메디나트 하부) 등 여러 장제전이 있지만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것은 핫셉수트 장제전(Temple of Hatshepsut)이다. 섭정 끝에 스스로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가 된 핫셉수트 여왕(제18왕조 제5대)은 자신이 사랑했던 건축가 세넨-무트에게 장제전의 설계를 맡겼다. 일부러 남장을 하고 가짜 수염을 붙이면서까지 파라오로 인정받고 싶었던 그녀에게 사랑은 금기였다고 한다. 무수한 기둥으로 견고하게 세워진 장제전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보인다. 어쨌든 그들의 장제전은 아직 살아남아 있고 사랑의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계곡 초입에 서 있는 멤논의 거상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은 무너지고 높이 21m의 석상만 살아남았지만 얼굴은 우상파괴의 명목으로 훼손되었고, 남은 몸도 노화를 거듭해 온전치 못하다. 주변의 황량한 풍경과 파손된 몸에도 불구하고 거상은 짝을 이루고 있어서 덜 외로워 보였다. 이들의 서러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로는 제 이름을 찾아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석상의 얼굴에 이슬이 맺히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인 멤논이 어머니에게 인사하는 소리라고 생각해 멤논의 거상으로 부르기 시작했을 뿐, 원래의 이름은 아니다. 얼마 전에 인근에서 거상의 얼굴 부분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제 얼굴과 이름을 찾게 되는 날 석상은 다시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토록 황홀한 럭셔리 

나일강은 아침 햇살에 은빛 비늘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 바스락거리는 비늘을 밟으며 강의 서편으로 건너갔다. 제 몸을 부풀린 열기구들이 기지개를 펴듯 일어나 승천하는 장관을 한참이나 구경한 후에야 차례가 왔다. 네 칸의 열기구 바구니에 올라탄 승객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이·착륙시에 깊숙이 주저앉아야 하는 요령뿐, 비행하는 모든 시간은 황홀한 자유였다. 캡틴은 유머 섞인 설명을 줄줄 엮어내면서도 기구를 천천히 회전시켜 멋진 풍경에 대한 균등한 기회까지 세심히 배려했다. 발아래 펼쳐지는 룩소르의 신전들, 왕의 계곡, 왕비의 계곡, 귀족의 계곡이 그려내는 비밀스런 곡선보다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이었다. 매일 아침 하늘을 수놓는 열기구가 일상의 풍경일 텐데도 여전히 반가운 표정이었다. 멀리서도 미소는 선명하게 보였다. 날개가 녹아버린 이카루스의 심정이 이해가 될 만큼 사막의 아침 해는 머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착륙은 이륙만큼 순조롭지 못해 두어 번의 실패 끝에 농경지에 내려앉고 말았다. 그것은 위험하다기보다 미안한 결말이었으나 소동은 금세 가라앉았고, 룩소르의 하늘에는 다시 열기구가 뜰 것이 분명했다. 주민들은 또다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 것이 분명했다. 


1 아침마다 룩소르를 흐르는 나일강의 서쪽 하늘에는 색색의 열기구들이 꿈꾸듯 부풀었다가 스러지곤 했다 2 핫셉수트 여왕이 그 어떤 파라오보다 번듯한 장제전을 세운 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처럼 보인다 3, 5 아버지의 보트에서 매일 밤 나일강의 석양을 받으며 자라는 소년은 수줍음이 많았다 4 서럽게 울었던 멤논의 거상은 형태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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