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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男子, 그 女子] 당신의 카메라는 꿈꾸고 있나요?"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7.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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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ing Camera 

그 男子, 그 男子
당신의 카메라는  꿈꾸고 있나요?

‘장롱 깊숙이 숨겨놓고 꼭 필요할 때만 꺼냈던 낡은 카메라는 아버지의 시대와 함께 사라졌다’ 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월남전에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아버지의 카메라는 지금 작동하지 않지만 여전히 내 서랍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흑백 사진 속에 젊은 내 아버지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내 컴퓨터 속 수 만장의 사진보다 귀하다. 질릴 만큼 찍어 놓고 다시는 보지 않는 그런 사진과는 다르다. 이렇게 필름 한 장 한 장을 아끼고 인화지를 귀하게 품고 사는 두 남자를 만났다. 천주교 사제인 차풍 씨는 전 세계 오지의 아이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나눠주며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자타공인의 필름 카메라 마니아인 라이언 코발Ryan Cobal은 잠시 머물고 있는 이국異國인 한국의 일상을 필름 카메라로 기록하고 있다. 두 사람의 필름은 단 27번의 기회만을 허락한다. 하지만 꿈꾸는 자에겐 이미 충분한 숫자다. 그들에게 사진은 꿈을 들여다보는 망원경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사진제공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팀, 브룬디아이들, 라이언 코발 

그 男子



필름으로 한국을 기록하는 라이언 코발
raian.tumblr.com 운영자

아날로그 라이프에 중독된 ‘괴짜’ 사나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스티브 맨 웡’이라고 소개했었다. 직업이 ‘로모카메라 개발자’라고도 했다. 그게 발단이 되어 성사된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마치 깜박하고 있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 맞다. 나는 스티브 맨 웡이 아니예요. 라이언 카발Ryan Cabal이라고 해요.” 감쪽같이 속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개봉한 케이크의 맛을 보지 않을 수 없듯이, 내 앞에 앉은 딸기맛 초콜릿 같은 남자에 대한 호기심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럼 당신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한마디로 그는 ‘괴짜 카메라 마니아camera geek ’였다. 태생은 필리핀, 국적은 미국, 직업은 영어선생, 나이는 20대 중반이라는 것은 부수적인 사실일 뿐, 현재 그는 필름 카메라로 찍은 한국의 사진을 블로깅하며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스티브 맨 웡’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홍콩의 유명한 사진 블로거이자 한 웹티비 프로그램의 출연자인 카이 맨 웡Kai Man Wong의 이름을 조합한 가상의 인물이었다. 신제품 로모카메라의 론칭행사에서 프리젠테이션을 돕기로 한 그가 급조한 ‘도플 갱어’라고 할까. 

최고 사양의 DSLR을 갈망하는 세상에서 그는 어떻게 필름 카메라의 마니아가 되었을까.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샌디에고, 시애틀, 오키나와, 필리핀,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그의 첫 카메라는 보통의 고등학생에게 그러하듯 ‘노멀 디지털 카메라’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좀 찍는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취미 삼아 찍었을 뿐이다. 필름 카메라의 세상에 눈을 뜬 것은 캘리포니아에서의 대학 시절 로모카메라를 사용하는 일본 친구를 통해서였다. 필름 사진만이 가진 색감, 특히 로모카메라의 치명적 매력인 비네팅Vignetting(사진의 테두리가 검게 보이는 현상)은 그를 필름 카메라 마니아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작고 가벼워 항상 휴대할 수 있고 풀프레임full frame으로 표준 화각을 잘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마음에 쏙 들었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요? 그건 왜 클래식 기타를 치냐고 묻는 것과 같아요. 그냥 달라요. 전 디지털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손으로 직접 써요. 생각해 보니 아날로그적인 삶이 저한테 맞네요. 음… 혹시 제가, ‘한 장 한 장 아껴서 사진을 찍는 맛’, 거기에 중독된 걸까요?” 

라이언은 지난 1년간 한국에서 찍은 2,000여 장의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 raian.tumblr.com에 올려 왔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시작한 ‘한국에서의 일상normal life around Korea’일 뿐이라지만 그의 사진은 특별한 광채를 가지고 있다.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개구쟁이 소년 같은 외모에 표정이 풍부한 그는 유투브Youtube에 재미있는 동영상을 올리는 데도 열심이다. 얼마 전에는 ‘실전 한국어 학습용 상황극’쯤 되는 코믹한 동영상을 한국인 친구와 제작해 올리기도 했다. 재미를 좇아 부지런히 사는 그다. 

현재 라이언이 보유한 필름 카메라는 콘탁스Contax, 코니카Konica, LC-A+등 총 여덟 개다. 그리 비싸지 않지만 수집의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모아두고 혼자만 쓰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친구들의 원하면 언제든지 공짜로 빌려주기도 한다. ‘정말 사람 좋아하는 괴짜’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매주 신촌의 카페에서 열리는 ‘랭귀지 익스체인지’ 모임에 나간다. 유명한 ‘유투버Youtuber’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꽤 있다. 하지만 그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각오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그로부터 ‘필름 카메라와 사랑에 빠지는 병’에 전염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먼 곳과 비경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뿐 아니라 사진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이들도 그의 ‘일상적 촬영’이 보여주는 ‘감성 가득한 사진’에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사진을 잘 찍느냐고요? 글쎄요. 근데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줘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해 주죠. 저는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을 찍는 것뿐예요. 그래도 한번쯤은 제 전시회를 열고 싶기도 하죠.” 언젠가 열리게 될 그의 전시회에는 ‘방독’마스크라도 쓰고 가야 할 것 같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로모카메라에 자꾸 시선이 가는 걸 보면 말이다.


라이언 코발이 찍은 한국의 거리 풍경


"At least, I work in Seoul!"
라이언이 한 사진에 붙인 제목이다. 무심한 표정의 행인들 사이에 섬처럼 앉아 있는 노점상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그가 읽어낸 감정은 고단함이 아니라 ‘적어도, 나는 서울에서 일한다고!’라는 당당함이었나 보다. 선입견을 입지 않은 외국인의 감성이 묻어나는 해석이다. 그가 블로그에 올린 사진에 반한 전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을 매력적인 곳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이만한 홍보대사도 드물다. 한국에 꼭 와 보고 싶고, 언젠가 사진가가 되고 싶다는 한 루마니아 청년의 댓글에는 흥분이 묻어 있었다. 더 많은 라이언의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고 싶다면 그의 블로그를 클릭하시길. raian.tumblr.com

필름 유저를 위한 라이언의 추천 사이트 6 

1. www.flickr.com/photos/mijonju
미정주Mijonju는 나에게 ‘아날로그 중독’을 일으킨 친구다. 몇 장의 사진만 봐도 알게 될 것이다.
2. seoulordinarydays.com
‘그사람’이 가진 사진에 대한 콘셉트는 명료하면서도 놀랍다. 그 어떤 평범한 것ordinary도 특별한 것extraordinary이 될 수 있다.
3. charliesuh.tumblr.com
찰리Charlie는 몇 안 되는 나의 캘리포니아 친구다. 그가 자연광선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포착한 사진들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4. yeonju.tumblr.com
연주Yeonju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이자 가장 좋아하는 서울의 사진가다. 그녀는 ‘인물 모드’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항상 ‘풍경 모드’로만 촬영한다.
5. digitritus.tumblr.com
한국에 있는 동안 텀블러tumblr 사이트에서 발견한 블로거인 디지트리투스Digitritus는 한국의 거리풍경을 다큐멘터리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6. youngandhungry.tumblr.com
제이콥Jacob은 로모카메라인 LC-A+를 사용한다. 초점을 맞추기 힘든 카메라지만 그의 사진들은 예외다. 그는 전문가다!


그 男子

27컷의 꿈을 후원하는 神父
차풍 요한드라살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


브룬디 아이들이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개최한 차풍 신부(좌)와 드로잉 작품으로 전시에 함께 참가한 아티스트 하수아씨


꿈을 찍는 아이들, 아이들을 찍는 사제 

홍해바다가 그렇게 넓었을까. 차풍 신부는 넓디넓은 몰이해의 바다를 이제 막 건너온 것 같다. 아니, 아프리카의 사막을 건넜다고 하는 편이 나을까. 천주교 의정부 교구에서 청소년 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그가 아프리카에 가서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원래 사제란, 뜻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는 2009년 10월에 사재를 털어 아프리카 잠비아의 무탄다와 메헤바 난민촌으로 향했다. 배송 기간을 고려해 2,000대의 일회용 카메라를 먼저 보내 놓은 상황이었다. 선교 중인 동료 신부들의 도움을 받아 몇몇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배포했다. 마지못한 표정으로 시간을 내주던 교사들은 막상 카메라를 건네받은 아이들이 활기에 넘치는 것을 보고서야 경계를 풀었다. 난생 처음으로 카메라를 손에 쥔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이 마을 일대에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다시 학교를 찾아가서 카메라를 회수한 프로젝트팀이 현상한 사진을 들고 다시 오겠다고 했을 때,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허언’에 만성이 된 아이들의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팀은 3개월 후에 약속을 지켰고, 비로소 ‘신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원래 그의 계획은 좋은 사진을 찍어 와 사진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선교 중인 사제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느날 신부들의 그동안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다고 하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 장의 사진을 보기 위해 하루를 꼬박 걸어온 소년도 있었다. 그들은 박수치고 환호하며 몇 번이고 다시 보여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차풍 신부는 사진과 관련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평소에도 사진을 좋아하던 그에게 어느 수녀님이 추천해 준 영화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영국 사진작가 자나 브리스키Zana Briski의 프로젝트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꿈꾸는 카메라:사창가에서 태어나Born Into Brothels:Calcutta's Red Light Kids, 2003>였다. 한 사진가가 인도 캘커타 사창가의 아이들과 몇 년을 함께 살면서 사진가가 될 수 있도록 후원했던 실화를 담은 영화다. 잠비아를 시작으로 차풍 신부와 프로젝트팀들은 몽골(2010년)과 부룬디(2011년)에도 다녀왔다. 카메라뿐 아니라 여러 가지 후원물품과 장학금을 전달했고, 사진전을 열고 작은 컨테이너 도서관을 지어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사진을 막 찍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진을 보면 볼수록 알겠더라고요. 얼마나 철저히 계산하고 준비해서 찍은 것인지를요. 목욕을 하고, 가장 좋은 차려입고, 갑자기 온 가족이 소풍을 나서기도 하죠.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자기 모습을 찍는 아이들도 있어요. 27장밖에 허락되지 않는 일회용 카메라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죠.” 

돌아와서 인화한 수만장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모두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어떤 사진과도 달랐기 때문이다. 공개되지 않았던 아프리카 사람들의 일상이 처음 세상에 공개된 사건이자 열악한 상황에서 그들이 겪고 있는 유년 시절의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되는 ‘사진테라피’이기도 했다. 그동안 15차례 이상 개최된 전시회를 관람했던 사람들도 선입견에 대한 ‘치유와 감동’을 받았다. 지난 5월에 열렸던 꿈꾸는 카메라 전시회에 드로잉과 설치 작품으로 동참한 아티스트 하수아씨도 아이들의 사진에 감동을 받아 마음이 움직인 경우다.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3,000~4,000만원의 경비가 든다.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적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여전히“그 돈이면 다른 도움을 줄 수 있지 않는가? 왜 ‘밥’이 아니라 ‘카메라’인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다. 사진을 찍는 동안 아이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모든 꿈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


브룬디 아이들이 찍은 생애 첫 사진들




‘가족’ 사진이 되다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 in Burundi
 

부룬디 돈보스코센터 기숙사에 사는 아이들부터 빈민지역 싯다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유치원생까지, 500명의 아이들이 난생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았다. 처음에는 신기한 마음에 마구 셔터를 누르던 철부지들은 ‘27번의 기회’를 금방 상기하고는 슬며시 카메라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에 내 친구, 내 가족, 내 염소,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찍어 두고 싶었던 것이다. 열흘의 촬영 시간 동안 아이들은 필름 한 장 한 장을 아껴가며 사진을 찍었다. 유명한 말썽꾸러기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카메라를 다시 제출했다. 회수율이 90%를 넘었다. 그 모든 필름들은 약속한 대로 5월 후에 그 아이들의 손에 인화된 형태로 되돌아갔고 지금, 집 안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어 있다. 아이들이 직접 찍은 ‘첫 가족 사진’들이다.


꿈꾸는 카메라 프로젝트 후원 방법 

티셔츠 구입 1벌을 구입하면 또 한 벌이 현지의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1대1 후원 방식이다. 원하면 두 벌 모두 현지로 보낼 수도 있다. 1구좌 1만8,000원(배송료 포함). 이 밖에도 수익금은 아프리카 부룬디의 학교시설 개보수, 학용품 구입 등 교육지원에 전액 사용된다.
네이버 블로그 cafe.naver.com/cumca
장학금 후원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는 어려운 사정의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브룬디의 경우 1년 학비는 25달러 정도가 든다. 후원을 원할 경우 카페에 댓글을 달거나 쪽지를 보내면 된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501-306544(의정부교구 문화사업)
티셔츠 구입 및 후원 문의 트위터 @chapoong
이메일 chapoong@y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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