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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바다-바다를 향한 빗물의 운명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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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우철 기자      

바다에 대한 짧은 고찰은 엉뚱하게도 사진작가 강운구 선생의 사진집 <마을 삼부작>에서 시작한다. 까까머리로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2001년 봄, 광화문 어느 갤러리에서 강운구 선생의 ‘마을 삼부작’을 만났다. 

그는 30년 전 전라북도 어느 마을에서 평범해 보이는 초가집 한 채를 찍었다. 그러나 이 집은 빗물의 운명을 가르는 특별한 집으로 알려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 초가지붕 위로 빗물이 내릴 때 북쪽에 떨어진 것은 금강으로, 남쪽으로 떨어진 것은 섬진강으로 흐른다고 믿는다. 특별할 게 없어 보였던 초가집 덕에 이 마을은 ‘수분리水分里 ’라는 이름까지 얻게 됐다.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진 초가집 따위가 빗물의 운명을 가른다니 그저 흥미로운 일이었다. 

오랜만에 그의 책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그 초가집은 빗물의 운명을 가른 게 아니라 단지 길을 나눌 뿐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섬진강이든 금강이든 먼 길을 내달려 바다로 흘러들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빗물의 운명은 ‘바다’였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물의 순환’이라는 말로 비가 내리고,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한다. 그러나 “강물은 결코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빗물(강물)을 보고 있자면 자연의 섭리 이상의 운명적인 게 있는 것 같다.

사람에게도 빗물이나 강물처럼 바다를 갈구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 역시도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아 공포에 질렸던 적이 있지만 바다를 그린다. 마치 빗물과 강물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빗물의 운명과 비슷한 끌림이 있는 게 아닐까. 사진가 김태균이 2006년 발표한 ‘마을 삼부작 그리고 30년 후’를 통해본 수분리는 무척이나 많이 바뀌어 있다. 그러나 빗물은 오늘도 어딘가에 내리고 또 바다로 흘러간다. 나도 끊임없이 바다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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