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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女子, 그 男子] 행간行間에서 만난 그들의 소소하고도 특별한 이야기"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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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行間에서 만난 그들의
소소하고도 특별한 이야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저자가 됐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화려한 수식어로 책 소개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어찌 어찌’가 궁금했다. 공예 무형 문화재 12인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단지 ‘기록했을 뿐’이라는 서진영 작가, 어느 사외보의 여행 연재를 위해 한국의 오지마을을 여행하는 동안 가장 평범한 풍경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는 남윤중 작가. 그들을 붙잡고 ‘누구를 만났나’ 혹은 ‘어디에 갔는가’를 물어보는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풍경, 그런 주제에 매료될 수 있었던 당신의 안목은 너무 특별한 게 아닌가요? 정말 질투가 난다고요!” 

  천소현 기자   사진  서진영, 남윤중, 천소현 


그 女子
옛것을 기록하며 착해진다는 여자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의 저자 서진영

누구에게나 있는 ‘옛것’으로 행복 만들기 

좋은 인문학 서적만 팔기로 소문난 부산의 인디고 서원에서 서진영 작가의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작은 충격을 느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것일까. 그건 요즘 인터넷에 유행하는 ‘낚시 제목’과 상반되는 ‘솔직 담백’의 화법이었다. 작가가 자주 찾는다는 홍대의 이리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제목 이야기부터 물었다. 12명의 장인에 대한 책을 구상하면서 기획안 맨 첫 장에 써 넣은 글귀가 그대로 제목이 됐다고 했다. 그 생각이 고와 보였다. 

<몰라봐>는 그녀의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은 <한국의 시장>이었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젊은이가 관심을 가지기에는 너무 고루하고 따분한 주제가 아닌지…. 그러나 바로 거기에 반전이 있었다. 전문 작가나 학자였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었을 다정다감한 내레이션 같은 그녀의 글은 <몰라봐>를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되게 했고, 인문, 공예, 문화 분야를 넘나드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게 했다.  

사실 그녀는 전통 공예에 문외한이었다. 오히려 ‘노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여행과 여가를 학문으로 접근했으니 말이다. 대구에서 살았던 그녀는 아무 연고가 없는 제주로 가서 관광개발을 전공하고 명지대 대학원에서 다시 여가학을 전공했다. 대학원 은사의 소개로 문화마케팅 회사인 ‘기분 좋은 QX’에 취직해 전통시장활성화 프로젝트의 하나로 <한국의 시장>이라는 책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서울, 문화를 품다>, <새문길, 시간을 걷다> 등의 기획출판 작업에 참여하는 동안 그녀는 회사를 나와 출판기획자가 됐다. 지난해 초의 일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홍대 언저리, 온통 보라색으로 도배된 옥탑방 ‘보라보라 펜트하우스’는 멋지게 들리지만 사실 프리랜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녹록치 않는 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IMF를 경험했던, 힘들게 독립해 살아가는 홍대의 청춘이 제 현실이에요. 어차피 규정할 수 없는 삶이잖아요. 그래서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생각했어요. 결론은 뭔가를 배울 수 있고, 가슴이 설렐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거였어요.” 

생각까지는 쉽지만 실천까지 가기가 어려운 일. 처음 주어진 기회를, 다음 기회를 부르는 기회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꼼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그녀의 천성. ‘쪽 팔리는 게 싫고, 칭찬 받고 싶은 욕구가 많고’ 그래서 ‘스스로를 들들 볶는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꼼꼼함은 한 사람의 믿음직한 저자를 탄생시켰다. 학창시절부터 ‘한 정리’하셨다는 전설까지.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되기보다는 충실하게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읽어 봐서 어색하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서 그는 항상 낭독하면서 글을 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서진영 작가가 ‘요즘 젊은이’라고 불리는 ‘또래’와는 살짝 다르다는 점이다. 멋을 내고 싶었을 인터뷰 자리에 그녀는 어머니가 손뜨개로 짜 주신 파란 니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어머니가 물려주셨다는 결혼 예물 시계도 차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련되고 얌전한 스타일이었다. 긴 생머리와 어울려 더 예뻐 보였다. 옛날 것이라고 내치지 않고 소중히 써 주는 딸이 어머니는 얼마나 예쁘겠는가. 옛것을 공부하면서 그는 가족과 더 많이 대화하게 되었고 가까워졌다. 그러나 ‘전통 문화 계승’처럼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단순히 옛날 것, 시골 것을 좋아하는 게 아녜요. 오래 쓰고, 안목 있게 고르고, 물려주는, 그런 삶의 태도를 소중하게 여기는 거죠. 책을 쓰면서 삶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살이의 안목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예요.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감사하게 되고, 결국 제가 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에요.” 

의 다음 프로젝트는 부산이다. 보수동, 남포동 등 숨은 문화공간을 여행자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스스로 정한 가제는 <부산스러운 여행>. 해운대나 부산국제영화제로만 알려진 부산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서 진정한 부산스러움을 발견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만의 고상한 더듬이로 감지해 낸 내 고향 부산의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진다. 또다시 제목만으로 나는 그 책의 팬이 된 걸까.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 글 서진영/ 시드페이퍼/ 1만7,000원
장인들의 기술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까지 담아 낸 책, 그리고 공예 분야에 문외한이었기에 더욱 마음으로 다가간 청년의 정성스러운 태도가 엿보이는 책이다. 의·식·주·멋이라는 4가지 카테고리에서 무형문화재 12분을 선정한 이유는 조선 시대 공예 명품을 만들던 통영 공방이 12개였기 때문. 한산모시짜기 장인, 염색장, 침선장, 옹기장, 사기장, 나주반장, 소목장, 염장, 나전장, 백동연죽장, 낙죽장도장, 배첩장 어르신들은 마치 옆집 할머니,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 돌아오는 길, 그 사이에 저자에게 일어난 사고의 전환까지를 담은, 여행 같은 문화재 이야기여서 올 초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선정하는 ‘청소년권장도서’가 됐다. 청소년이 읽어도 좋은 책이지만 이 책은 일상의 행복을 놓쳐 버린 동시대의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한국의 시장>, <서울, 문화를 품다>, <새문길, 시간을 걷다> 등이 있다. 


도시 여자, 서진영의 오래된 현재  
사진  서진영   정리  천소현




할아버지의 족보와 아버지의 윷
초등학교 때까지 달성 서씨 집성촌,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장국리에 살았어요.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갓을 쓰셨고 할머니와도 사랑채, 안채를 나눠 쓰셨죠. 할아버지 방에 가면 족보가 있었고, 따로 욕실이 없는 집이니 마구간 같은 곳에서 목욕을 했어요. 옆 마당에는 텃밭이 있었고, 여름날에는 온가족이 모여 다 쓴 페인트통에 숯을 넣고 고기를 구워 먹곤 했어요. 살구나무 흔들어 떨어진 살구로 술도 담갔죠. 명절 때는 아버지가 나무를 대충 깎아 만든 윷을 굴리며 온 가족이 많이도 웃었죠. 아무리 봐도 저 투박한 윷은 참 멋진 것 같아요. 

묵은 쌀로 뭘 하지?
어머니는 지금도 미숫가루를 만들어 보내 주곤 하세요. 지금이야 미숫가루를 특별한 건강 음료라며 일부러 만들어 먹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묵은 쌀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죠. 아껴쓰고 재활용하는 지혜였던 거예요. 전에는 예사롭게 보아 넘겼던 이런 일들에 부쩍 ‘촉’을 세우게 되네요. 엄마가 미숫가루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다 이번에도 한 봉지 터지게 가져왔어요.

우린 참 닮았어요.
지금도 어머니는 생일 때마다 직접 손으로 뜬 옷을 선물해 주세요. 젊었을 때 입으셨던 모시 원피스를 집에서 새로 염색해서 주신 적도 있죠. 어느날 장롱을 열어 보니 제가 어렸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까지 고이 간직하고 계시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미술 시간에 만든 보석함을 10년이 넘도록 사용하고 계시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랐으니 저도 작은 것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항상 ‘공주야’로 시작되는 엄마의 작은 메모들을 모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거든요. 우린 참 닮았어요.

멋스럽고 지혜로운 일상
아직도 여름이면 손톱 끝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가을이면 낙엽을 주워서 책장 사이에 넣어 말리죠. 꽃잎에 백반을 넣고 찌어서 물감을 만드는 원리는 쪽물감을 얻는 원리와 비슷하죠. 그렇게 소소하지만 멋스럽거나, 되돌려 생각해 보면 행복해지는 것들, 생활의 지혜가 담긴 것들이 참 많아요. 어렸을 때 목이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면 어머니가 인삼과 배, 귤을 넣고 오래 끓여 차를 만들어 주셨죠. 그 따스한 기운과 약효는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그 男子
오지마을의 마음공부에 빠진 남자 
<풍경이 있는 감동여행 50>의 저자 남윤중

‘특별한 여행’ 말고, ‘좋은 여행’을 하라

남윤중 작가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보다 ‘정성을 다한다’는 말이 더 값지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다. 소위 ‘꺼리’가 되기 어렵다고 말하는 열악한 상황, 평범한 대상 앞에서 그가 사진가로서 더욱 오래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건 노력의 차원이 아니라 마음의 차원이었다. 그래서 그가 오지마을을 담은 <풍경이 있는 감동여행 50>이란 책을 낸다고 했을 때 그곳에 추천 여행지가 아닌 다른 무엇이 담겨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찍으면 쉽겠죠. 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하니까요. 처음 오지마을에 갔을 때는 사실 막막했어요. 뭘 찍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죠. 그러면 일곱 시간이고 여덟 시간이고, 하루 종일 마을을 계속 뱅뱅 도는 거예요. 그리면 차츰 보이기 시작하죠. 영원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골마을에 비로소 사건과 이야기가 시작되죠.” 

그는 2004년부터 간이역, 오지마을, 소읍, 옛길처럼 이른바 ‘비주류’ 여행을 해 왔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매는 호사가적 취미를 지녔던 것은 아니다. 어느 사외보의 사진촬영을 담당하면서 시작한 여행 연재였다. 말하여지기를, 남윤중 작가의 사진은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으나 평범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그를 닮았다.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과 태도의 산물이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비포장도로를 헤매며 쌓아 온 그의 경험은 마치 골동품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희귀하고 값진 기록이 됐다. 비수구미 마을, 아침가리 마을, 몰로리, 높은벼루마을, 두음리 듬골, 설보름 마을, 장항선 임피역, 영동선 하고사리역 등 이름도 기막히게 예쁜 오십 개의 마을과 기차역에 얽힌 기억들을 그는 조근조근 책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 이렇게 썼다.

‘내가 갔던 곳은 그랜드캐니언이나 백두산 천지처럼 사람을 압도하는 자연이 아니다. ’ 눈이 번쩍 열릴 만큼 화려한 경관이나 역사유적을 자랑하는 유명 여행지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지난 7년간의 여행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누구나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다. 멀리 가거나 비싼 돈을 들일 필요는 없다. 타인을 향해,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오랜 시간 들여다볼수록 풍경도, 정물도, 사람도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사진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사진을 생업으로 삼아 온 남윤중 작가에게 사진은 밥벌이의 기능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아니다. 명상법이자 마음공부다. 사진의 대상에 집중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어지러웠던 마음이 씻은 듯 맑아지기 때문이다. 흥분하는 법도, 찡그리는 법도 없을 것 같은 그에게도 마음의 고비가 있었다. 마흔의 문턱을 넘으며 사진이 두려워지는 고비를 함께 넘어야 했던 것. 그러나 그가 아는 한, 비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든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어요. 대상을 향해 그것이 ‘무엇’이라고 정의하지 않고 오래도록 정성스럽게 바라보는 것. 그건 기교가 아니거든요. 사진 찍는 후배들이 사진 잘 찍는 방법을 물어보면 항상 ‘정성을 다하라’고 말해요. 그래야 감동을 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사물을 바라보는지는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여름 오래된 흙집에서 풍겨 나오는 시원한 냄새’를 맡고 ‘구들장에 놓을 돌을 얻으려 커다란 바윗돌을 깨는 희망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것은 10년을 여행한 기자도 맡아 본 적 없는 냄새, 들어 본 적 없는 소리다. 그가 ‘혼자 가슴에 품고 말하지 않았다’던 ‘여행의 절정’은 그런 것이었다고 했다. 깊어 가는 밤,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아리랑 한 소절을 멋지게 불러 주셨던 할아버지, 갓 딴 산딸기를 안겨 주었던 분교 아이들, 때로는 도시생활보다 더 치열한 깊은 산 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여 준 ‘삶의 기적, 행복, 사랑, 희망, 조화’ 말이다. 

우리가 때론 공허하고, 쓸쓸하고, 냉정한 것은 우리 삶의 따뜻한 것들을 오래 전에 마음 속 ‘오지’로 몰아넣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곳으로 가서 되찾아 와야 할 시간이다. 남윤중 작가가 먼저 가 ‘확인’하고 왔으니, 그의 발자취를 쫓아가기만 하면 되겠다.   


<풍경이 있는 감동 여행> 글·사진 남윤중/ 상상출판/ 1만5,000원
나는 정말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는 않다. 꼭꼭 숨겨두고 싶은 아름다운‘오지마을’들을 먼저 발설하고 싶지도 않지만, 남윤중 작가가 이제 막 선물처럼 풀어 놓은 이야기들의 흥을 깨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다음 페이지에서 보여 주는 것은 무작위로 선정한 몇 장의 사진과 약간의 발췌일 뿐이다. 잠시 한국의 아름다운 여름을 만끽하시라. 그리고 진짜 감동은 그의 책에서 얻으시라. 책 홍보원이 되고 싶지도 않지만, 그의 책은 여행 안내서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순도 높은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봐도 무방하다. 소장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참!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고 있는 그가 정리한 50가지 사진 촬영 테크닉까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국내여행 20% 할인 쿠폰도 있다. 이런, 결국 스포일러가 되고 말았네! 그의 또 다른 저서로는 <365일 마음의 사색 자유로운 상상>, <서로 반대야>, <종묘에 가자>,<경주에 가자>가 있다. 블로그 주소 blog.naver.com/lin2015




사진가 남윤중이 본 한국의 여름, 시골  
글·사진  남윤중

연포 마을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낮잠에 빠진 할아버지를 깨운 건 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였다.
셔터를 누르지 못한 터라 눈을 뜬 할아버지께
“다시 잠들어 주세요” 하고 부탁을 드렸다.
할아버지는 ‘이상한 놈이다’ 하지 않고 눈을 스르르 감으셨다. 

운정리 전북 임실군 운암면 운정리
다시 배를 타고 바로 옆 고제마을로 갔다. 이 마을에도 한 가구만 있었다. (중략) 할아버지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환경에 맞는 장비들을 구비해서 사용하셨다. 밤에는 기름을 넣은 호롱불을 주로 이용하고, 손님이 오셨을 때는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백열등을 켤 수 있는 자동차 배터리를 사용하신단다. 그리고 보니 집 안 여기저기에 자동차 배터리 여러 개가 보인다.

방우리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
사람의 믿음은 물이 흐르는 방향도 돌릴 수 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삶의 터전이 필요했다. (중략) 논물에 산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물길이 뚫리던 그날까지 이 마을을 만들려고 애쓰셨던 큰 산 같은 분들의 모습도 그려 보았다. 그분들 덕에 이 마을은 지금도 풍족하게 물을 쓰며 농사를 짓고 있다.

덕산기 마을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북동리
덕산기 마을로 갈 때는 어떤 상황이라 해도 운이 무조건 좋은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만큼 아름답다. 강원도 정선에 자리한 덕산기 마을로 가려면 계곡 물길을 길로 삼아야 한다. 계곡에는 잔돌들이 깔려 있다. 물이 적을 때는 잔돌을 밟고 가고, 물이 많은 계절에는 물속을 헤치고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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