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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위해 읽고, 읽기 위해 떠난다 -책과 함께 떠나는 가을 독서여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1.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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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위해 읽고, 읽기 위해 떠난다
책과 함께 떠나는 가을 독서여행

창가에 어른대는 나무 그림자도 가을 하늘 아래서는 유난하다. 여행 충동을 부추기는 이 즈음이다. 여름내 눅눅했던 몸과 마음을 가을볕에 내다 널고 어딘가를 향해 발길을 옮기고 싶은 계절. 만일, 가방 속에 여행지와 어울리는 한 권의 책을 넣고 떠난다면 여행자의 눈빛은 한층 깊어지고 낯선 공간은 보다 더 친밀해질 것이다. 누군가는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여행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아니 떠나지 않으면 또 어떤가. 장소가 가진 의미를 넘어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히는 것 또한 여행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이세미

Spain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
여행은 질러가는 길이 아니라 둘러 가는 길



흔히 순례의 길로 알려진 산티아고 여행은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여정이다. 다양한 경로 중에서도 여행자들은 프랑스 남부 국경의 ‘생장피데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어지는 800km의 길을 가장 많이 택한다. 도보 여행이니만큼 체력만 허락한다면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질로 표시된 길을 따라 누구나 최종 목적지에 이르러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산티아고 가는 길>의 저자는 그 길을 체험하는 최고의 방식으로 자리잡은 도보여행 대신, 자신만의 순례길을 개척했다. 네덜란드의 대표 시인이자 소설가, 여행작가인 세스 노터봄은 빨간 고물 자동차를 타고 스페인의 광활한 공간을 누비고 다닌다. 이 책은 그가 오랜 시간 여행과 집필을 반복하며 탄생시킨 새로운 순례 여행의 결정판이다. 

그는 배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자동차를 타고 사라고사를 거쳐 최종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여정을 마무리할 때까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내륙의 작은 도시와 마을 구석구석 숨어 있는 교회와 수도원을 살펴본다. “스페인은 유럽에 매달려 있지만 유럽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만 가서는 스페인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미로처럼 복잡한 스페인의 역사를 거닐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스페인을 돌아다녀도 보고 느끼는 것이 없다. 스페인은 평생을 바쳐서 사랑해야 할 땅이다. 스페인이 주는 경이로움은 끝을 모른다.”

530여 페이지에 걸쳐 작가는 고대에서 중세와 현대에 이르는 유럽 수도원의 역사를 명쾌하게 정리해 주고, 스페인의 철학과 정치, 문학, 문화 등을 총망라하며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핵심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여행기를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책.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행간을 서성이게 된다. 

“확인한 길은 없지만 나는 안다. 돌아오는 사람, 떠나가는 사람의 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서 그곳에만 가면 어쩐지 반가움도 더 부풀려지고, 아쉬움도 더 부풀려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 이 세상에는 있음을.”

세스 노터봄 지음/ 민음사


Vietnam 베트남   <끝없는 벌판>
꿈, 사랑, 희망이란? 



맛있는 음식과 서정적인 풍광, 따뜻한 사람들. 우리와 비슷한 분단과 전쟁의 역사, 그로 인한 상처들. 한국 남성과 결혼해 정착해 있는 수많은 베트남 이주 여성들까지. 베트남을 여행하는 것은 늘 설렘과 애틋함을 동반한다.
여행객들이 넘쳐나는 호치민이나 하노이의 거리, 리조트 휴양지로 유명한 나짱, 유럽의 풍광이 가득한 달랏과 동양의 정서가 가득한 호이안을 걷노라면 전쟁의 상흔은 찾아보기 어렵고, 중국과 국경지대에 있는 산간마을 사파나 후에의 강가에 사는 이들을 보게 되면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여행이 사람 사이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소설 <끝없는 벌판>은 베트남 서민들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줌으로써 오늘의 베트남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메콩강의 수상 가옥에서 오리를 치며 살아가는 18세의 화자와 남동생 디엔은 가난과 불행, 비합리만이 가득 찬 세상에서 희망조차 품지 않는다. 문명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유린당하며 삶과 미래는 ‘끝없는 벌판’ 저 너머의 안개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세상과의 갈등 속에서도 남매는 성장해 간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일그러진 상처를 이야기하지만 문체는 침착하고 아름답다. 여기에 함께하는 베트남 화가 쩐루언띤의 삽화는 메콩강 삼각주의 독특한 풍경을 담아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반하고 희망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베트남에서 작품이 발간될 당시의 파장은 엄청났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모으며 베트남작가협회 최고작품상을 수상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떠도는 삶>이 상영됐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베트남은 당신에게 더 먹먹하고 더 사랑스러운 나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응웬옥뜨 지음/ 아시아


대한민국에서 쿠바까지  <지구 반대편 당신> 
‘어디’가 아닌 ‘사람’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



때로 여행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내가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지에서도 누군가의 일상은 계속되고 그들의 미소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도쿄, 덴마크, 멕시코, 중국, 베트남, 태국, 터키, 쿠바, 독일, 미국 등에서 만난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작가는 번화한 곳을 피해 작고 조용한 곳, 시골 골짜기와 산꼭대기 어느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쿠바 산티아고 시계수리공 마르꼴과 베네치아의 가면공, 플렌스부르크의 바이올린을 고치는 안토니오, 그리고 박달재를 넘는 할머니 등이 이 에세이의 주인공이다.
시시콜콜한 설명 따위는 없다. 책에는 그저 지구 반대편 어디쯤에도 밥 먹고, 일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머물게 된다. 조용하다 못해 지면에 내려앉은 문체와 달리 화려한 색감과 생생한 표정들의 사진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과연 길 위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당신에게 외친다. 당신이 있어 내가 여기 있다고. 그러니까 울지 말라고. 문득 지구 반대편이 궁금해지거든 거기서 손 한번 흔들어 달라고. 갓 구운 빵처럼, 갓 누른 두부처럼 우리 그렇게 순하게 살다 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뿐이지, 뭐가 더 필요하겠냐고.”

정영 지음/ 달


제주도   <올레, 사랑을 만나다>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 



제주 올레길은 우리나라 도보여행의 상징이다. 올레길 이후로 전국에는 많은 도보여행길이 생겨나고 걷기 열풍이 일었다. 더불어 올레길에 대한 책들도 연달아 출간됐다. 하지만 이 책은 올레길에 대한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1년 동안 저자가 올레를 걸으며 그 길과 함께 사는 제주 사람들의 사연을 담았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반갑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보길도에서 찻집을 운영하던 저자 강제윤 시인은 2005년부터 보길도를 떠나 전국 500여 개의 섬 여행을 하는 중이다. 그 여정에서 시인은 제주도에 무려 1년의 시간을 머물렀다. 무엇이 그렇게 시인의 발걸음을 잡았을까. 

17년 기다림 끝에 사랑을 이룬 부부, 원수 집안 여자를 사랑한 가파도 이장 얘기부터 캐나다에서 온 문학청년의 제주 사랑, 4·3항쟁과 훼손되는 제주의 자연 등 저자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제주의 속살까지 사랑했다. 또한 이 책에는 ‘연인이 걸으면 좋은 올레길’, ‘사색하며 걷기 좋은 올레길’ 등의 제목으로 수록된 올레길 지도도 실려 있다. 작가는 정신없는 발걸음으로는 올레 길에 얽힌 이야기와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고 말한다. 해서 올레 길을 찾는다면 이렇게 걷는 것이 좋겠다. 

“그러므로 이 길에서는 느리게 걸어야 하리라. 온갖 해찰을 부리며 걸어야 하리라. 올레길에서는 도달해야 할 목적지 따위는 잊자. 목적지에 가지 못한들 어떠랴. 길을 벗어나 낯선 길로 들어선들 또 어떠랴.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 그 자체가 아닌가. 여행을 떠난 순간 우리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강제윤 지음/ 예담

영주 무섬마을 + 예천 회룡포  <모래강의 신비> 
마지막 기억 속을 걷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모두가 아는 소월의 시다. 산허리를 휘감은 모래사장과 어우러진 강의 풍경은 비단 소월이 아니더라도 누구나에게 시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다. 특히, 경북 봉화에서 발원해 영주와 예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110km의 내성천은 비단결 같은 금모래로 유명한 곳으로 모래강 걷기 여행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진행되면서 아쉽게도 모래를 품은 강의 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듯하다. 이 책은 TV에서도 방영된 다큐멘터리 ‘강과 생명-모래강의 신비’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엮어내고 있다. 저자는 내성천이야말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Slow Walker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모래강을 순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권유하고 있다. 내성천 여행은 봄과 가을이 최적기에다 2012년에 영주댐 완공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행은 내년 봄까지만 유효하다. 저자는 말한다.

“모래강 순례는 모래와 물과 동행하는 행위이다. 흘러가면 그만인 강물, 강물이 떨어뜨린 모래, 이 둘의 공존 속을 잠시나마 걷는 일은 조화와 모순을 동시에 맛보는 진기한 체험이다.”
책은 내성천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중하류를 총 11구간으로 나누어 ‘강모래를 밟고 걸으면 좋은 곳,’ ‘강둑 위로 걷기 좋은 곳’, ‘강 주변을 돌아볼 만한 곳’, ‘차로 이동하면서 볼 만한 곳’, ‘건너뛰어도 좋은 곳’으로 분류하고 영주시의 아름다운 무섬마을, 예천군의 비경인 회룡포 등 내성천과 어우러진 추천 여행지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또한 병산서원과 하회마을, 섬진강 하류의 평사리 등 내성천 이외의 모래 풍경이 있는 여행지도 적어놓았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모래가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러 내성천으로 떠나 보자.

손현철 지음/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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