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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파는 사람들] 프로젝트 장-전국 팔도 12개 오일장, 그곳은 ‘사람 숲’"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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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프로젝트 장>을 만든 한동대학교 서영주 선생과 학생들


전국 팔도 12개 오일장, 그곳은 ‘사람 숲’

재기발랄한 그림과 글이 통통통 튀어 다닌다. 끼가 넘치는 친구들이 일을 저질렀구나! 전국 팔도의 오일장을 그림과 글로 엮은 책, <프로젝트 장>을 우연히 펼쳤던 날, 그들을 언젠가 꼭 한번 만나 보리라 했다. “우리 밖으로 나가지 않을래?” 가장 먼저 깃발을 든 사람은 한동대학교 산업정보디자인학부 서영주 선생이었다. 2010년 3월 시작된 그들의 장터 행진은 2011년 1월에서야 막을 내렸다. 10명이 합류했으나 책 <프로젝트 장>이 엮어지는 동안 몇몇 팀원은 직장으로, 군대로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그래도 괜찮다. 프로젝트 장을 풀고 끝까지 매듭지은 핵심 팀원 5명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구명주 기자   사진 Photographer옥지윤  그림제공  출판사 비즈앤비즈 

프로젝트 장 

프로젝트 장을 집필하기 전 팀원들은 전국의 오일장을 낱낱이 사전조사했다. 시장의 특산품부터 현지 음식까지…. 고르고 고른 시장은 총 12곳. 버스로 이동한 강구장과 비행기로 이동한 제주민속오일장을 제외하고는 승용차로 탐방했다. 아직 때묻지 않은 학생들의 시선은 참으로 따뜻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한 가지 팁! 각각의 그림 밑에는 ‘빨간 전각’이 새겨져 있다. 빨간 전각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를 담고 있는 일종의 암호다. 인터뷰에 참가한 사람들의 가명은 어셀, 닛시, 미쵸이, 깜시, 쑤이니 참고하시길. 
출판사 비즈앤비즈(www.vizandbiz.co.kr) 정가 1만8,000원  

서영주 
“얘들아 우리 시장으로 나갈래?”

시장에 간 적이 언제였던가. ‘시장에 가면 신발도 있고 옷도 있고 채소도 있고…’ 있는 것  투성인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시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끊었다. 시장만큼 사람이 사람을 애타게 찾는 곳이 또 있을까. ‘파격, 통큰, 1+1’이라는 자극적인 수식어는 찾아볼 수 없고, 상품 가격이 얼마인지 뚜렷하게 알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거 얼마예요?”라며 꼬치꼬치 캐묻고, 때론 “100원만 더 깎아달라”고 옥신각신 실랑이도 해야 한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덤을 주는 인심 후한 주인도 있다. 

한동대 산업정보디자인학부 서영주 선생은 이런 시장의 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 사는 세상’을 아이들이 직접 보고 느꼈으면 했다. 서 선생은 “승용차에 3~4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죠. 때론 악역도 맡았어요. 과제가 많기로 유명한 학교거든요. 과제 소화하랴 오일장 찾아다니랴 또 결과물 제출하랴, 모두가 고생이었죠”라며 “아이들은 오래도록 장을 그리워할 것”이라 강조했다. 

서영주 선생은 도입 글에 “대가들이 그린 그림보다 날생선 같은 학생들의 그림이 더 좋다”고 써 두었다.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생선. 학생들의 그림을 하나의 사물에 비유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해답을 얻었다. 아이들의 그림이 날생선이라면 서영주 선생의 그림은 생선구이다. 그냥 생선구이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 불 앞에 서서 구운 엄마 표 생선구이다. 혼자 사는 딸자식은 생선 한 마리 구워 본 적이 없었고 집에 가야만 내공이 묻어나는 제대로 된 생선을 맛볼 수 있었다.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고 괜스레 마음이 짠해지는 그림, 바로 그녀의 손에서 나왔다. 미나리 좌판을 펴고 있는 할머니, 시장에서 수건을 두르고 파마를 푸는 할머니, 더덕 안주에 소주 한 잔 건네는 뜨거운 할머니 등 주인공은 주로 할머니다. 


송주은  
사람은 사람으로 극복하는 것 

사교성이 좋은 사람조차 생전 처음 보는 타인을 능숙하게 대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사람이지만 사람과의 교감에 가장 서툴다. 송주은씨는 프로젝트에 결합했을 당시만 해도 관찰자에 가까웠다. 강구장에서 사람들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는 주은씨의 모습이 상상됐다. 주은씨는 “사람을 사람으로 극복했어요”라고 말했다.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뒷걸음질치는 순간, 손을 내민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언양장에서 ‘마’를 팔던 아저씨다. 주은씨의 다크서클을 발견한 아저씨가 다짜고짜 “학생 간이 안 좋아서 그래. 자주 먹어. 건자두는 더 좋아. 아프면 그림이고 디자인이고 무슨 필요 있노. 제때 밥 챙겨 먹고.” 물건을 팔기 위해 건네는 사탕발림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아저씨가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유수향·송주은 says [언양장] “아지매~”하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 여기는 경상남도 언양장입니다. 어느 시장이든 ‘정’이 넘치지만 언양장은 특히 더 사람냄새가 진하게 난답니다. 설탕커피로 통하는 달짝한 시장 커피를 건네는 아주머니는 더없이 반가웠죠. 언양장에는 33년째 곤충을 조각하는 아저씨가 있으니 꼭 만나 보세요.”

유수향   
그녀의 손끝에서 인물이 움직인다 

주은씨에게 잊지 못할 ‘마 아저씨’가 있다면 수향씨에게는 ‘꽃 아저씨’가 있다. 언양장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꽃 좀 사이소~” 하고 외쳤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사람, 주인이 아니다. 주인을 대신해 꽃을 팔고 있는 손님이었다. 수향씨는 시장을 일컬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졸업반인 그녀는 졸업작품의 주제도 ‘시장’으로 잡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수향씨는 이메일로 꽃 아저씨의 사진을 보내 왔다. 어찌나 사진과 똑같이 그렸는지 사진과 그림을 견주어 보다가 그만 크게 웃어 버렸다. 유수향씨 그림의 특징은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잔주름 하나하나까지도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평면 그림이 마치 3D화면마냥 실룩샐룩 움직일 것만 같다. 

최미진  
먹고 만나고 그리고 또 그리다
 
서영주 선생의 말을 빌리면 미진씨의 그림에서는 ‘고통의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최미진씨는 실제로 “그림 그리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아니, 산업정보디자인 학부를 다니는 친구가 그림을 힘들어하다니. 이유인즉슨 그녀의 세부 전공은 산업디자인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사물의 외형을 그린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주로 사람을 그려야 했기에 프로젝트는 어려운 과제였다. 그림을 그리는 데 쓴 스케치북만 3권. 특히 아우내장의 김 굽는 아주머니를 완성하는 과정은 책에도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몇 개의 선으로 툭툭 그렸던 아주머니의 모습을 다듬고 다듬어 결국 멋진 그림으로 마무리했다. 7년째 김을 구워내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고소한 참기름 향이 감돈다. 미진씨는 졸업을 앞두고 있다. 미진씨는 “졸업작품은 한 MP3 업체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거였어요. 이제는 디자인하기 전,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예측하기 쉬워졌어요”라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과 소통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미진씨뿐만 아니라 나머지 8명도 모두 입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장 프로젝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모인 팀이 아니라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팀이었다.   

미진씨는 먹거리 가득한 아우내장 곳곳을 누비며 ‘식신’의 면모를 보였다. 시식용으로 썰어둔 깻잎맛, 매운맛 등의 튀김어묵을 당당하게 이것저것 시식했던 그녀. 주인아저씨가 한마디를 던졌다.“학생 같은 사람 처음이야.” 당연히 미진씨가 가장 좋아하는 장터도 바로 아우내장이다. 음식 얘기에 신이 난 미진씨의 얼굴 위로 엄마를 따라 시장을 나서던 그때가 겹쳤다. 생각해 보면 짐꾼이 되기 일쑤였는데도 왜 기를 쓰고 나는 시장을 따라나섰을까. 엄마를 조르고 졸라, 먹었던 시장의 떡볶이, 호떡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시장의 간식에는 사람을 이끄는 신비한 힘이 흐른다. 

미진 says  [아우내장] " 떡, 번데기, 돼지 껍데기, 닭발, 동동주, 부침개, 어묵….  아우내장에 가면 모두 먹을 수 있어요. 또 오징어젓, 명란젓, 조개젓 등 맛난 젓갈도 챙길 수 있으니 놓 치지 마세요.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바로 병천 순대죠. 순대공장에서 맛본 기다란 생 순대의 맛은 잊을 수 없어요.”


유아셀 
사람이 머물다간 자리에서  

책을 펼칠 때면 습관처럼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파악한다. 지은이를 소개한 짧은 몇 문장은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장>을 집필한 10명 중 9명은 한동대학교 산업정보디자인 학부 소속이다. 미술 전공이 아닌 나머지 1명이 궁금해졌다. 유아셀씨는 상담 사회 복지를 전공했다. “오히려 미술을 전공한 우리보다 더 편하게 그림을 그렸어요.” 동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림이 좋아서 무작정 도전했다는 아셀씨는 프로젝트팀에서 감초와 같은 존재다. 깨알 같은 이야기 만화와 팀원들의 캐리커처는 모두 아셀씨가 그린 것이다. ‘순허요~ 매우요~’ 구수한 사투리가 보이는 담양장의 어묵부터 ‘통일되면 국산, 북한산 송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힌 평창장의 버섯까지…. 그녀의 관찰력은 참 뛰어나다.  

아셀씨는 책에서, 장터는 자신에게 ‘사람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만큼 면역력이 약한 곳이 있을까. 아셀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으로 상주장을 꼽았다. 아셀씨는 “상주장에 도착했더니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해 오일장을 폐쇄한다는 표지판이 서 있었어요.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얼마나 허무하던지…”라며 그때를 떠올렸다. 시장은 폐쇄됐지만 그날 그들은 곶감 공판장을 구경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사람이 떠나간 빈자리는 아프다. 비단 구제역과 같은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시장은 날로 쓸쓸해져 가고 있다. 대신 대형마트는 전국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그곳에는 판에 박은 듯 비슷비슷한 분위기가 흘렀다. 심지어 매장 배치와 물품까지도 소름 끼치게 같았다. 아셀씨는 “전국 8도의 장을 다니면서 똑같은 시장이라도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젝트 장팀이 두 발로 누빈 전국팔도의 시장 12곳은 고유의 색깔이 선명해 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유아셀 says  [상주장] “상주장 하면 곶감이죠. 꼭지가 네모나고 하얀 분이 많이 일어난 곶감은 주로 중국산! 곶감에 묻어나는 하얀 분은 감의 떫은맛이 밖으로 나오면서 생기는 겁니다. 상주장에서 알게 됐지요. 상주 곶감의 특징은 너무 달지 않아 질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찢으면 곶감의 결대로 죽죽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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