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을 떠받치는 영롱한 풍경과 오래된 이야기들
영암을 떠받치는 영롱한 풍경과 오래된 이야기들
  • 트래비
  • 승인 2012.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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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겨울을 뚫고 푸른 빛을 피워낸 덕진면의 차밭


영암을 떠받치는 영롱한 풍경과 오래된 이야기들

전라남도 장흥에서 출발한 시외버스가 강진을 거쳐 영암 버스 터미널에 멈춰 섰다. 한산한 터미널을 빠져나오니 택시 승강장과 주차장 너머로 영험한 자태의 월출산이 펼쳐졌다. F1이 열리는 가을의 영암은 최첨단 머신들의 아찔한 속도전으로 부풀어 오르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영암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를 꼽으라면 역시 월출산이 맨 앞자리를 차지해야 마땅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1 월출산이 바라다보이는 덕진면의 백룡산 자락에 펼쳐진 선암마을 차밭 2 영암도기박물관의 학예사가 준비해준 향긋한 녹차 3, 4 영험한 기운이 물씬한 영암의 상징, 월출산

산을 등지고 산을 바라보는 차밭

영암군사회단체협의회 전갑홍 회장과 영암군향토축제추진위원회 박경옥 사무국장의 안내로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덕진면 선암마을의 차밭이었다. 2월이 다 저물어 갈 즈음의 찻잎들이 제법 푸르렀다. 압권은 입지 조건이었다. 백룡산 자락의 비탈면을 따라 들어선 차밭은 정면으로 월출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산을 등지고 산을 바라다보고 있으니 ‘배산임산’이라 이를 만했다. 녹색의 물결이 끝나는 곳에서 넉넉한 들판이 이어졌고, 들판의 가장자리에서 월출산이 불쑥했다. 햇살 한 점 없는 날씨 탓에 산은 디테일을 드러낼 수 없었으나 아스라한 실루엣만으로도 자족한 풍경이었다.

이곳에서 차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박찬씨를 만났다. 몸은 강파르고 행동은 느릿했으나 차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빛은 형형했다. “35년 전 차 농사를 시작했어요. 보통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차를 수확합니다. 밭은 3만2,000평가량 되는데 기계를 쓰지 않아요. 일일이 손으로 따지요.” 일정이 빠듯했으나 그의 살림집에 잠시 들러 녹차 한 잔을 얻어 마셨다. 차나무에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우직한 농부의 수고로움이 새삼 느꺼워서였을까. 그의 녹차는 지금껏 마셔 본 어떤 차보다 진하고 웅숭깊었다.

전설의 명필 한석봉이 현판 글씨를 썼다는 영보정을 잠시 살펴본 후 영암의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에 이르자 비가 듣기 시작했다. 휴식 공간이 마련된 2층에 자리를 잡고 다과를 대접받았다. 따끈한 차로 몸과 마음에 훈기를 불어넣으며 건물 통유리를 통해 월출산의 풍모를 감상했다. 잿빛 하늘은 표정이 없었고 매지구름이 비를 흩뿌렸지만, 궂은 날씨가 오히려 월출산의 신묘한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겸재 정선이 먹의 농담만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저와 같을까.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산봉우리들이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자아냈고, 뻗어 내린 산의 등줄기는 더없이 강고했다. 월출산을 한 번이라도 마주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영암이 왜 ‘기氣의 고장’으로 일컬어지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도선국사의 사찰, 왕인 박사의 샘물

월출산 자락에 깃든 도갑사로 향했다. 사찰로 오르는 길 주변의 수목들에는 여전히 봄이 당도하지 않은 상태였다. 수축된 몸피와 앙상한 가지들이 맹렬한 화신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절집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가 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알려진 도갑사 역시 시간의 아수라를 통과하는 동안 증축, 화재로 인한 소실, 개축 등을 경험했다. 국보 50호인 해탈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섰다. 사찰의 중심인 대웅보전은 3년 전 복원돼 한층 더 화려해지고 훨씬 더 웅장해졌지만 대신 고졸한 맛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장구한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아야 해결될 문제였다.

도갑사에서 내려와 왕인 박사 유적지로 차를 몰았다. 문패가 일러주듯 일본 아스카문화의 시조로 추앙받는 왕인의 자취를 복원한 공간이다. 멎었던 빗방울이 다시 떨어졌다. 서책을 들고 있는 왕인 동상이 빗속에서도 인자해 보였다. 한국식 전통 연못인 성담을 지나 왕인 박사가 마셨다는 성천에 닿았다. 표주박으로 물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목이 탔던 것도 아닌데 물이 달고 시원했다. 아스카문화의 ‘원천’인 왕인 박사의 가르침과 학식이야말로 당시 미개했던 일본의 문화적 갈증을 달래 주는 엄청난 축복이었을 것이다. 박사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사당을 찾아 시대를 앞질러 간 성현의 위대함 앞에 고개 숙였다.

비는 하염없었다. 구림마을의 영암도기박물관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영암을 특징짓는 또다른 키워드 중 하나는 도기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원류인 황토 자기의 발상지가 바로 영암, 그중에서도 구림마을이다. 마을 곳곳에서 발굴된 대규모의 가마터와 유물이 이를 증명한다. 구림은 또 우리나라 최초로 유약을 입힌 시유 도기의 출토지이기도 하다. 그러니 도기박물관이 마을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학예사의 설명을 길라잡이 삼아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데면데면하게 인사를 나눴던 도기들이 그의 해박한 지식과 일목요연한 해설에 힘입어 부쩍 친근하게 다가왔다.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들은 도기에 관한 내 판무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채로웠으며, 익명성으로 일관하는 줄 알았던 질그릇과 옹기들 역시 저마다의 내력으로 흥미로웠다.


1 원래 모습으로 중창을 마친 도갑사의 대웅보전과 그 앞에 자리한 보물 제1433호 오층석탑 2 불사 복원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도갑사 3 영암도기박물관의 가마 4 왕인이 마셨다는 성천

손에 흙 마를 날 없는 남자

영암도기박물관의 지기상씨를 만난 곳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였다. 그의 삶 한복판에 도기가 자리했다. 1991년부터 영암군청 문화관광과에서 근무하던 그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목전에 둔 1999년 9월9일 도기박물관의 전신인 도기문화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도기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자부심이 그로 하여금 ‘도공’의 길을 걷게 했다. 박물관 공방에서 도기를 빚거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체험 교실을 여는 그의 손에는 흙이 마를 날이 없다. 그는 내게 “사람 냄새 나는 게 도기의 진짜 매력”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술이 몇 순배 돌고 취흥이 도도해지자 그가 도기인 듯, 도기가 곧 그인 듯 생각됐다.

지기상씨가 운영하는 구림마을 한옥 민박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이튿날 새벽 6시. 영암 도기의 역사를 잇고 있는 도공이며, 구림마을의 주민인 동시에 민박집 주인장인 지기상씨의 손에 이끌려 월출산 아침 산책에 나섰다. 정신은 몽롱하고 신발조차 천근만근 무겁게 여겨졌지만 매일같이 산을 오르는 그는 잰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호흡이 점차 거칠어질 무렵, 왕인 박사가 공부했다는 터에 건립된 문산재가 마중을 나왔다. 문산재 바로 위에는 역시 왕인 박사가 책을 쌓아두고 공부했다는 책굴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책굴의 입구를 지키는 것은 2.7m 높이의 왕인 석상이었다. 박사의 후학들이 일본으로 떠난 스승을 그리워해 고려 초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손을 소매에 가지런히 넣은 석상 속 인물은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갈 때 이용했던 포구인 상대포를 향하고 있었다. 조금 더 길을 재촉해 집채만한 암봉에 올라서니 안개의 바다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몽몽한 안개를 뒤집어쓴 마을들이 신생의 시간 속에서 고요했다.

한 땀 한 땀 올랐던 길을 한걸음에 되짚어 내려와 추어탕으로 속풀이를 했다. 그리고는 영암도기박물관이 적을 두고 있는 구림마을에서 한 시간 정도 소요했다. 8년 전 영암에 처음 내려왔을 때보다 말쑥해졌지만 전통 가옥과 돌담, 오래된 정자와 노거수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여전히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느긋한 호흡으로 둘러본 구림마을은, 투박하지만 볼수록 깊은 멋이 배어나오는 도기와 일맥상통하는 듯했다.


2 왕인 박사가 공부했다는 터에 새롭게 건립된 문산재 3, 4 천년 세월을 흘러온 고즈넉한 구림마을

Travel to 영암

왕인 박사 
익히 알려진 대로 왕인 박사는 일본 땅에 문명을 꽃피운 백제시대의 학자다. 영암에서 태어난 왕인이 일본행을 택한 것은 일왕의 요청 때문이었다. 고구려에 맞서 백제가 일본과 협약을 맺었는데, 일왕이 백제의 이름난 학자를 청했던 것이다.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 그리고 도공 및 기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건너간 왕인은 일본인들이 대대손손 큰 자랑으로 여기는 아스카문화의 원조가 됐다. 왕인 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 시에 있으며, 1938년 5월 사적 제13호로 지정됐다.

영암왕인문화축제 
벚꽃이 만발하는 4월이 되면 영암이 자랑하는 왕인문화축제가 막을 올린다. 왕인 박사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고 그 뜻을 전승할 목적으로 시작된 축제는 올해로 15회째를 맞는다. ‘왕인의 빛, 문화의 길을 열다’라는 주제 아래 4월6일부터 9일까지 왕인 박사 유적지, 구림마을, 도기박물관 등지에서 개최된다. 왕인 박사의 탄생과 학문 수학에서부터 일본으로 건너가는 과정까지를 연기와 거리 퍼레이드로 재현하는 ‘왕인 박사 일본 가오’가 관람객의 가장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도포제 줄다리기, 자전거 답사, 기찬들 대동놀이, 퀴즈 대회, 공예 체험, 연날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곁들여질 예정이다.
100리 벚꽃길
봄이 찾아오면 월출산 앞마당에 환한 벚꽃길이 열린다. 영암읍에서 시작해 군서면 왕인 박사 유적지를 거쳐 학산면 독천리에 이르는 아름다운 길이다. 실제는 30km에 못 미치지만 흔히 ‘100리 벚꽃길’로 불린다. 개화 시기는 해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보통 4월 상순이면 만개한다. 드라이브 코스로 손색이 없다.

음식 
영암의 먹거리 중 널리 소문난 것이 갈낙탕이다. 말 그대로 소갈비와 낙지를 함께 넣고 끓인 탕이다. 학산면 독천리 일대에 갈낙탕을 내는 식당들이 몰려 있지만 갈비와 낙지 이외에 전복까지 넣어 주는 군서면 월곡리의 기찬정식(061-472-4722)도 추천할 만하다. 추어탕도 일품이다. 이 밖에 살아 있는 세발낙지를 젓가락에 감아 양념해 살짝 구워서 내놓는 낙지구이도 영암의 별미다. 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으로 특히 술안주로 인기가 좋다.

가는 방법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호남고속도로 광산 IC에서 나와 13번 국도를 이용한다. 나주 영산포를 지나면 영암읍에 다다른다. 서해안고속도로 종점인 목포까지 간 다음, 2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학산에서 818번 지방도로로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1 벚꽃이 활짝 필 때쯤 영암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왕인 박사를 테마로 다양한 부대 행사가 마련될 예정이다 2 백제의 학자로 일본 태자의 사부가 됐던 왕인 박사 동상 3, 4, 5 기찬정식 식당의 갈낙탕, 낙지 호롱구이, 숭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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