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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Space] 삼간의 즐거움에 살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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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Space

삼간의 즐거움에 살다

한 수도자가 말했다. 시간時間, 공간空間,인간人間은 같은 것이라고. 시간이 없으면 공간을  쓰고 공간이 부족하면 시간을 더 쓰고 둘 다 없어도 사람이 더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강릉에 하슬라 아트월드를 만든 조각가 부부 박신정·최옥영씨와   지난 3월 보은에 펀파크를 개장한 에코 아티스트 오대호씨의 공통점은 그 조화로움을 일찍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열정과 재능을 쏟고 있는 공간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전 생애  라는 시간을 쓰기로 한 예술가들. 그들이 누리고 있는 지극한 즐거움의  사이 를 비집고 들어갔다.



보은 펀 파크에 전시되어 있는 오대호 작가의 소품


천소현·전은경 기자  사진 전은경 기자 

‘펀fun’하게 사는 것이 편하다
에코 아티스트 오대호

작품으로 말하는 에코 아티스트 오대호 
45살, 중년의 나이에 창작의 세계에 뛰어든 그는 현재까지 6,000여 점의 작품을 제작·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식지 않는 다작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시절 호원대 기계과를 전공했고, 몇해 전 관동대 조소과에서 만학의 길을 걸었다. 초대전 제의에 응하기도 바쁠 정도인 그는 현재 (주)정크아트 대표이사이며 소도읍 육성을 위한 국책사업으로 지난 3월20일 개장한 보은 펀 파크는 그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국내 최초의 친환경 복합문화놀이 공간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여러 번 산다. 삶이 한 가지 방향, 단 한 번의 기회로 이뤄지지 않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위기를 터닝 포인트로 삼아, 위대한 변신을 꾀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었던 오대호씨의 터닝 포인트는 45세에 왔고, 그 뒤 13년 동안 그는 에코 아티스트로 무려 6,000여 점의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매일매일 성실한 노동자처럼 창작해 온 그 결과물들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지난 3월에 문을 열었다. 오로지 오대호 작가의 작품만으로 꾸며진 국내 최초의 친환경 복합놀이문화공간 ‘펀 파크Fun Park’였다. 그 소식을 듣고 축하 전화를 했더니, 궁금함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개장 준비로 한창 바쁜 그를 만나기 위해 보은으로 향했다.

예술가라는 병을 멀리하다 

에코 아티스트 오대호씨를 처음 만난 것은 사실 충북 음성 가섭산 기슭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였다. 목을 길게 빼고 서 있는 기린, 눈을 부릅뜬 도라에몽 사이로 솜을 뭉쳐 놓은 것 같은 작은 강아지가 뛰어 나오면서 짖었고, 이내 ‘윙~’ 하고 돌아가던 그라인더 소리가 그치더니 창고 쪽에서 그가 걸어 나왔다. 카페인 듯, 갤러리인 듯, 작업실인 듯 정체가 불분명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백 점의 작품들은 콘셉트와 형태, 재료가 너무 다양해서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기가 힘들 정도였다. 

오대호 작가는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고, 자동차 튜닝 등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재미삼아 소품들을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초에 그 재능이 향한 방향은 창작이 아니라 생산이었다. 재활용 기계와 관련된 사업을 하면서 철공, 목공 등에 관련된 장비를 항상 가까이 접하고 기술을 익혀 왔던 그는 IMF 때 위기를 맞았다. 공장을 정리하고 힘겨운 모색의 시간을 가지던 그의 유일한 낙은 낚시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어느날 낚시터에 버려진 잡지를 뒤적이다가 뉴욕 빌딩 앞에 서 있는 고철덩어리(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에코 아티스트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이었다)가 30억이나 한다는 글을 읽고는 훨씬 저렴하게 ‘생산’해 팔아 보겠다는 사업적 결심을 하게 됐다.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본격적으로 에코아트에 뛰어들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제작하던 대형 작품에 깔려서 생명이 위험했던 사고까지 겪은 끝에 고철에서 태어난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자체의 아트 축제에서 초청이 들어오고 전시회도 열었으며 지금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만큼 유명해졌지만 그는 근엄한 아티스트가 아니라 작업복이 잘 어울리는 푸근한 아저씨 같았다. 작업실을 ‘공장’으로 부르고, 자신을 ‘사장’으로 지칭할 만큼 그는 명예보다는 실리를 가까이 하는 사람이다. 괜한 자존심과 선민의식을 가진 예술가 무리의 자만은 ‘창작’이든 ‘생산’이든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 왔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그의 공장에서는 열명 남짓한 직원들이 한 달에 100여 점의 작품을 생산하고 있다. 직접 가보니 공장 앞뜰에는 수백 점의 작품들이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마치 닥종이 공예처럼 백설공주, 심청전 등을 소재로 한 인형들이 고철로 만들어져 있는 것도 있다. 그가 요즘 주력하고 있는 스피커 작품은 독창성과 견고함이 어우러져 고가로 팔려 나가는 경우가 많다. 진행 중인 주문 제작이 많지만 가능한 팔지 않고 모아서 테마파크를 여는 것이 그의 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1년 전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은 드디어 실현되어 눈앞의 현실이 되어 있었다. 소도읍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180억원을 들인 보은 ‘펀 파크’가 오작가의 지휘아래 개장했다. 그가 직접 모든 것을 디자인했고, 더 이상 보관할 공간이 없어 고민이었던 그의 작품 중 1,500여 점이 이주를 마쳤다.


1 버려진 너트와 볼트, 나사에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에코 아트다 2 故 노무현 대통령의 흉상. 가슴 한 가득 박힌 못 투성이다 3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인 스탠드 조명

견고하고 단단한 꿈을 이루다 

개장을 두어 주 앞둔 시점에 방문했던 펀 파크는 전시물과 공간의 재배치를 거듭하며 최상의 관람과 놀이 환경을 위한 최종 점검이 한창이었다. 갤러리 벽면 상단,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부착한 돈키호테 조형물이 바로 그 자신이라고 했다. 고집스럽게 달려온 그의 삶이 버려진 고철, 지금은 수억대를 호가하는 작품에 다 녹아 있었다. 자신의 이름에서 이니셜을 딴 ‘갤러리 O’에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주었던 작품 ‘에일리언’을 포함해 애장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로봇이나 동화 등 귀여운 상상력에서부터 가슴팍이 온통 못으로 되어 있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흉상까지, 그의 세계는 여전히 넓고 깊었다. 

하지만 펀 파크의 탄생 목적은 아이들을 위한 재미있고, 친근한 공간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활용 재료들을 이용해 오대호 작가가 만들어낸 기발하고도 의미 깊은 작품은 격이 다른 놀이터를 탄생시켰다. 아이들을 특히 좋아하는 그는 동화나 만화의 캐릭터는 물론이고 실제로 만져 보고 굴려 볼 수 있는 장난감이나 탈 거리까지 제작했다. 펀 파크에 전시된 모든 작품들은 누구나 만져 볼 수 있으며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처음부터 날카로운 부분이 없도록 디자인했다. 어른보다 아이들의 입장료가 비싼 이유도 펀 파크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공간임을 알려주는 정책이다. 그저 보고 만지고 노는 것만으로 상상력이 늘어나고,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재료들의 새로운 가치를 배우는 교육적 효과도 뛰어나다. 

펀 파크를 가득 채운 것은 철이지만, ‘철’이 주는 견고하고 삭막한 느낌이나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사실 철은 나무나 천처럼 친환경적인 소재가 아니기에 더더욱 재활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자원일지도 모른다. 견고한 소재의 특성상 누구나 쉽게 변형하고 가공할 수는 없지만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작품들은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장된 의미부여에만 몰두하는 예술가이기보다는 작품 자체로 모든 것을 말하는 장인으로 남고 싶은 작가에게 철은 가장 적절한 소재였던 것 같다. 그것은 쉽게 변하지도 않고 화려하게 포장을 하기도 어렵지만 쉽게 부서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소탈하게 살고 있는 오대호 작가의 철학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권위’의 갑옷을 입지 않으려는 그는 자유롭고 가벼워 보였다. 그 갑옷마저 자르고 붙여서 지금도 친근한 로봇 하나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여러 번 산다. 삶이 한 가지 방향, 단 한 번의 기회로 이뤄지지 않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위기를 터닝 포인트로 삼아, 위대한 변신을 꾀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었던 오대호씨의 터닝 포인트는 45세에 왔고, 그 뒤 13년 동안 그는 에코 아티스트로 무려 6,000여 점의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매일매일 성실한 노동자처럼 창작해 온 그 결과물들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지난 3월에 문을 열었다. 오로지 오대호 작가의 작품만으로 꾸며진 국내 최초의 친환경 복합놀이문화공간 ‘펀 파크Fun Park’였다. 그 소식을 듣고 축하 전화를 했더니, 궁금함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개장 준비로 한창 바쁜 그를 만나기 위해 보은으로 향했다. 



1 펀 파크 개장 전부터 손님맞이로 바쁜 오대호 작가 2 1,500여 점에 이르는 오대호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만져 볼 수 있는 것들이다 3 펀 파크는 막바지 점검 작업이 한창이었다 4 오대호 작가의 이니셜을 딴 ‘갤러리 오’의 입구



5 자동차 라디에이터를 재료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카페 벽면의 부조 6 작가가 스스로의 분신으로 여기는 돈키호테 조형물 7 ‘오대호’라는 이름이 새겨진 가죽 의자도 직접 만들었다

놀면서 배우는 상상력과 에코의 가치,
펀 파크 Fun Park 

3월20일 오픈한 친환경 복합문화놀이공간으로 에코 아티스트 오대호씨의 작품 1,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의 놀이와 학습을 위한 공간이자 어른들에게는 기발한 상상력과 동심을 일깨우는 공간이다. 메인 전시관인 갤러리 오, 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스튜디오, 전망대를 겸한 펭귄환경조형, 야외작품공원, 펀바이크 체험장, 카페테리아 등이 있다.
주소 충북 보은군 보은읍 길상리 329
입장료 유아·청소년 9,000원, 성인 7,000원.
문의 1600-7175 www.funpark.kr



자연을 품고 예술을 낳다
조각가 박신정 최옥영 부부

2000년부터 이화여대, 경일대에서 강사와 교수를 역임하며 7번의 개인전을 치른 박신정 대표(왼쪽)와 강릉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16번의 개인전과 단체전, 심포지움 등에 활발히 참여하는 최옥영 대표(오른쪽)은 조각가이자 교수이기 이전에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을 아끼는 금슬 좋은 부부다. 이력을 내세우자면 조각품만큼이나 견고하고 화려하지만 평생을 예술가로 살기 위해 강릉에 하슬라아트월드를 조성했다. 이제 약속이 있을 때나 한두번 서울에 들른다는 이들의 몸은 아무래도 하슬라에서의 삶이 완벽히 체화된 것 같다.


모든 것이 정점에 이른 순간, 어떤 것은 완전히 새로 시작한다. 안정적인 삶의 한가운데에서 박차고 나와 대규모의 아트월드를 조성하려 한 박신정 최옥영 부부처럼. 조각가이자 교수인 박신정·최옥영 부부는 지난 2003년 대학교 강단을 떠나 강릉으로 왔다. 그리고는 인적이 드문 장소에 터를 잡고 ‘하슬라’라는 이름을 내건 아트월드를 조성했다. 33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아트월드 부지에 조각공원, 전시관, 호텔이 차례로 들어서기까지 자그마치 10년이 걸렸다. 마치 거북이 경주를 하듯 차츰차츰 흘러간 시간 동안 하슬라아트월드는 몇 번의 진통을 겪으며 부화하고 또 진화했다. 그리고 지금, 하슬라아트월드는 여전히 이 외딴 곳에서 멀리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는 산과 바다를 품은 채.



1 전면이 컬러 유리로 만들어진 하슬라뮤지엄호텔은 객실마다 각기 디자인이 다르다 2 하슬라아트월드를 감싸는 것은 바다만이 아니다. 야외공연장으로도 조각공원으로도 활용되는 ‘하늘전망대’

차가운 바다 위에 우뚝 서다

박신정·최옥영 부부는 오래전부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적합한 장소를 찾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남해까지 전국을 여행하던 이들은 강릉의 바다를 마주하고선 비로소 정착을 결심했다고 한다. 남해 같은 쪽빛은 아니지만 약간만 손을 보면 그 어떤 곳보다 빛날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어딘가 거칠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바다. 부부는 그 매력을 ‘감칠맛’ 같다고 표현했다.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선택이죠. 당시는 IMF 직후라 경기가 한창 안 좋았어요. 그 때문에 인사동이나 삼청동 등지에 팔려고 내놓은 건물들이 많았어요. 그때 그곳을 선택했더라면 하슬라아트월드의 모습은 지금이랑은 완전히 달라졌을 거예요. 운영도 훨씬 편했을 테고 수익도 많았겠죠. 어쩌면 요즘 트렌드처럼 레스토랑을 접목한 갤러리가 됐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저희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아트월드를 시작한 것이었어요.” 

무수한 갤러리 중 하나가 되기를 포기한 하슬라아트월드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렇게 이곳 강릉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핫플레이스’가 되진 못하겠지만 한번 다녀간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하는 유일무이한 공간, 자연과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 그리하여 그들은 정부의 도움이나 다른 작가들의 도움 없이 온전히 두 사람만의 힘으로 공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예술을 이룩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이 없었다면 힘든 일이었다.


1, 2, 3 하슬라뮤지엄호텔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을 내려가면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서는 착각이 든다. 피노키오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목각인형이 조명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4 호텔 로비를 장식하는 기묘한 의자와 테이블 역시 박신정 대표의 작품 5 창을 통해 가득 쏟아지는 햇살이 조명을 대신한다 6 미술관의 역할도 겸하는 호텔 로비. 편견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제목도 작가도 표기하지 않았지만 그중에는 피카소의 작품도 있다

예술가와 경영자 사이의 줄타기

“사실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일까. 박신정 대표의 고백은 꽤 뜻밖이었다. 성공한 조각가이자 교수, 거기다 경영자로 이어지는 화려한 이력 탓에 고민이나 후회 같은 단어들은 그녀와 멀기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는 박 대표의 모습엔 예술가의 허세도 경영자의 거드름도 없었다. 그저 예술가와 경영자 사이에서 매번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허가와 개발, 분양과 영업으로 무장한 비즈니스 과정에서 결국 그녀는 경영자의 이윤보다는 예술가의 완벽을 선택했다. 힘든 길이란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음은 태생이 예술가인 탓이라고, 스스로 자조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정부에서도 문화산업의 일환이라기보다는 개인사업자로 치부했죠. 매년 전세계에서 예술가들을 초청해 레지던시를 열곤 하는데 올해는 이마저도 우리 힘으로 해야 해요. 묵묵부답인 관청의 행정을 보면서 마음고생도 많았죠. 설계과정에서 기술자들과 마찰을 빚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생채기가 아물면서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 모든 시행착오에도 두 조각가의 꿈은 도통 끝이란 걸 모른다. 박신정·최옥영 부부는 아직 남아있는 4만여 평방미터의 땅에 개인을 위한 빌라를 지을 예정이다. 건물 디자인부터 인테리어까지 모두 맞춤 디자인으로 구축할 모양이다. ‘공간에 예술을 품겠다’는 그들의 꿈은 지난 2009년에 문을 연 하슬라뮤지엄호텔로부터 시작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에는 독창성 있는 건물이 드물죠. 특히나 대부분 아파트는 가격은 비싼데 디자인은 형편없는 수준이에요. 우리가 호텔에 디자인을 가미해 뮤지엄호텔을 만든 것처럼 개인의 집에도 예술을 접목하려고 해요. 박제된 박물관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예술을 접하는 것, 앞으로 하슬라아트월드가 추구하는 방향이 될 겁니다.”

인터뷰는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에 끝이 났다. 시계를 들여다본 두 사람은 이내 행동이 분주해졌다. 호텔 곳곳을 관리하고 문제가 있는 곳을 정비하기 위해서였다. 교수로서 안정적인 삶을 살던 이들은 이제 이곳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때로는 커피를 내리기도 하고 눈을 치우기도 하면서.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조각공원부터 호텔, 전시관 등 아트월드 곳곳을 돌아봤다. 앞으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텅 빈 공간은 지난 10년의 세월과 마찬가지로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고되지 않은 삶은 없으며, 다만 열정이 실현되는 공간이 있을 뿐”이라는 그들의 말처럼 우려는 이내 새롭게 거듭날 공간에 대한 기대로 바뀌었다.


하슬라아트월드

‘하슬라’는 해와 밝음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로 고구려 신라 시대부터 불리던 강릉의 옛 이름이다.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정동진에 위치해 있으며 2003년 이후 조각공원, 카페, 호텔 등이 조성됐다. 특히 2009년에는 26개 객실을 갖춘 부티크 호텔이 들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됐다. 곳곳에 조각품과 회화가 장식되어 있는 하슬라뮤지엄호텔은 전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유선형 타월 욕조와 여성의 자궁을 본딴 침대는 호텔을 대표하는 가구이자 박신정·최옥영 부부의 조각품이기도. 찬찬히 둘러보면 호텔 어디에서나 두 사람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이용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6시30분  이용요금 공원+카페음료 8,000원, 미술관+공원+카페음료 1만원
객실요금 스탠다드스위트 1박 28만원  주소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산 33-1  문의 033-644-9419 www.hasll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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