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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변천사] 까마득한 해외여행의 추억 ‘그땐 그랬지’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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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해외여행의 추억 ‘그땐 그랬지’

신사유람단처럼 양복을 입고 태국으로, 일본으로 단체 패키지 여행을 떠났던 80~90년대 우리들의 아버지, 여권을 하루라도 빨리 찾기 위해 외무부 직원에게 뒷돈을 챙겨주던 여행사 직원들. 불과 20년 전, 우리의 이야기다. 여전히 여권에 찍힌 도장의 개수를 보며 흐뭇해 하는 우리들이 스쳐온 지난 몇 년간의 해외여행 풍경을 담아봤다. 

글  최승표 기자   사진  여행신문 CB   

* 이 기사의 자료는 관광산업 전문지인 <여행신문>에 실린 기사들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여행신문>은 올해로 창간 20주년을 맞이하는 <트래비>의 자매지입니다. 


1989 
여권 빨리 받으려 공무원에게 뇌물 주기도

여권 발급 대상을 확대하고, 신청절차를 간소화한 여권법이 개정된 것은 1981년으로 이때부터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이 본격화 됐지만 부부 동반을 제외하고는 연령 제한이 있어 여전히 해외여행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여기에 더해 200만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이 있었으니 외국 한번 나가기 쉽지 않았다. 또 여권 신청자는 소양교육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여간 복잡하지 않았다. 바야흐로 1989년에 이르러 연령 제한이 없어지면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여권 발급 절차는 여전히 까다로웠으니 1995년까지 외무부 여권과에서만 여권 발급이 가능했던 탓에 당시 서울에 위치한 외무부에는 전국에서 몰린 여행사 직원들로 늘 북적였다. 여권 발급 대기시간도 길어 외무부 여권과 직원에게 뇌물을 바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여권 브로커가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됐으니 외무부 여권과의 권력이 보통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여권 발급 대행은 여행사의 중요한 업무이기도 했다. 여권뿐 아니라 여행국가에 따라 비자 받기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특히 미국은 2008년 비자면제 프로그램 시행 전까지 이슈가 있을 때마다 비자 발급의 문턱을 높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는 신문지를 깔고 밤을 새우는 이들도 다수였고, 여행사 직원끼리의 말다툼, 인터뷰 예약 스티커를 암거래하는 사람까지 있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1992 
기내 금연 실시…애연가들 ‘청천벽력’

비행 중 니코틴을 흡입하지 않으면 손이 떨리는 이들이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다가 적발돼 해외에서 강제 출국, 구금을 당한 소식이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허나 1990년대 초반까지는 기내 흡연이 가능했다. 1992년 아시아나항공은 단거리 노선에 금연을 적용했고, 1994년을 기점으로 싱가포르항공, 캐세이패시픽항공 등의 항공사들이 안전 상의 이유로 금연을 실시하더니 아시아나항공은 1995년 전노선 금연 대열에 합류했다. 당시만 해도 금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던 탓에 흡연자들의 반발이 거세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흡연자를 배려한 시설이 비행기에 도입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에어프랑스가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사이,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 사이에 특별 흡연구역을 마련한 것. 흡연구역에는 담배 연기를 항공기 외부로 배출할 수 있는 환기장치와 담배 냄새를 흡수하고 자동 소화기능을 가진 재떨이가 설치돼 있었다. 흡연실은 한번에 5~11명이 이용할 수 있었다.  



1993 
하와이 50만원, 덤핑은 그때나 지금이나

20년 전에도 여행사들의 과당 경쟁에 따른 폐해가 적지 않았다. 당시 신문에 게재된 여행사 광고를 보면 파격적인 가격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항공사들이 특정 노선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되면, 덤핑 상품이 급증하게 돼 있는 여행산업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었다. 특히 1993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하와이 노선을 두고 ‘혈전’을 벌였다. 하와이 3박5일 상품이 49만9,000원에 출시됐을 정도다. 유류할증료 40만원가량(미주 기준)이 추가되는 지금과 비교하면 여행상품 가격이 절반도 되지 않았던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저가 덤핑 상품은 하와이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태국, 호주, 유럽 가릴 것 없이 100만원 이하의 상품이 넘쳐났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여행상품 가격이 20년 전과 비슷한 현재 여행사의 수익이 얼마나 박한지도 가늠할 수 있다. 1991년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1,200원, 무연 휘발유 1리터가 470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해 보자. 당시만 해도 여행사 숫자는 100개 이하였던 데 비해 지금은 1만개에 이를 정도로 경쟁이 심해졌다는 방증이다. 



1995 
관광공사, 대학 돌며 배낭여행 ‘예절’ 설명회

해외여행 자유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대학생이었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거나, 부모가 준 여행경비를 가진 대학생들은 여름방학 기간을 이용해 유럽을 중심으로 3~4주의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 유행이었다. 90년대 중반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들을 일컬어 ‘배낭여행 1세대’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당시 에주투어, 내일여행, 블루여행사 등의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들은 대학을 순회하며 설명회를 개최하고 포스터를 방방곡곡에 부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혈기 왕성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에 따른 부작용도 따랐다. 이에 한국관광공사는 한국학생여행협의회와 함께 건전 배낭여행을 위해 대학을 돌며 설명회를 가졌다. 교육 내용은 해외 배낭여행시 지켜야 할 예절이었으며, 공사에서는 해외여행 예절 비디오까지 제작했다고 한다. 외국인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관광공사가 비전공 업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1996 
곰 쓸개 찾으러 태국 간 여행사 사장

한국인의 보양 문화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지금까지도 해외여행 중 건강식품을 구매하는 일정이 없으면 발끈하는 어르신들이 있으니, 이 같은 여행 문화는 ‘한국인의 건강 사랑’에 기인한 것도 있지만, 저가 덤핑 여행상품의 수익 보전을 위해 형성된 문화라는 사실도 우리 해외여행 역사의 씁쓸한 단면이다. 1996년 야생곰 밀도살 사건이 국제문제로까지 비화돼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으면서 웅담과 사향을 구입하기 위해 태국을 방문하는 한국여행객이 주춤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추태 관광이 횡행했던 때였다. 당시 군산의 모여행사 대표 등 4명은 태국에서 곰을 밀도살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태국에서 야생동물보호법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국내에서는 쓸개와 웅담, 곰 발바닥을 ‘구입’만 했을 뿐 곰을 ‘도살’한 것은 아니라며 무혐의 처리됐다. 태국에서는 이때부터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됐다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여행 풍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베트남을 찾는 한국 여행객이 크게 늘었는데 더불어 베트남에 반달곰 농장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베트남 정부는 2010년 세계동물보호협회와 함께 곰사육농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고, 국내 여행사들도 불건전 선택관광을 자제하자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 과연 보신관광이 주춤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2003 
사스·쓰나미·신종플루 재난에 속수무책 

해외여행 시장은 외부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침체, 환율 상승, 재난 발생 등은 여행업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소식이다. 여행업계 최악의 시련은 1997년 IMF였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환율과 경기 침체에 여행사의 줄도산이 발생했고 살아남은 여행사들은 감원, 급여 삭감, 사무실 축소 등 고육지책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로, 해외 항공 노선이 급격히 확대됐던 것이 원위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외국계 항공사는 한국 노선 운항을 포기했다.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2009년 델타항공에 합병)의 경우, IMF 전까지 한국에서 10개 이상의 노선을 취항했다가 현재는 인천-디트로이트, 인천-도쿄만 남아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우리나라는 예상보다 IMF 체제를 일찍 벗어나 해외여행 시장의 회복세도 가파랐다. 1999년부터는 자고 일어나면 여행사가 몇 개씩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IT 붐에 힘입어 인터넷 전문 여행사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2003년 중국을 휩쓴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SARS) ▲2005년 동남아 쓰나미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 ▲2009년 신종플루 창궐 등 2~3년 주기로 악재가 반복됐으니 그때마다 여행시장은 널뛰기를 반복했고, 폐업하는 여행사가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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