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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dinary Story 캐나다에서만 흔한 이야기 ①Prince Edward Island 캐나다의 오가닉 정원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08.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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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입이 떡벌어지는 상차림이 캐나다에서는 삼첩반상 수준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빛나는 자연도 집앞의 풍경일 뿐. 질투심을 들킬까 싶어 티 안 내려 애썼던 감탄과 찬사를 비로소 이 지면에 한껏 풀어 본다. 두 기자가 들려주는 오로지 캐나다에서만 흔하디 흔한 그 이야기.



Prince Edward Island
캐나다의 오가닉 정원

PEI. 이렇게 지명을 쓰고 나니 침이 꼴깍 넘어간다. PEI에 머문 3박4일 동안 경험했던 일들에 대한 조건반사다. 그 맛있었던 순간들을 되새김질하듯 꺼내 놓아야 하니, 독자들이여 경고를 드린다. 타액 분비 주의!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 www.canada.travel, PEI관광청 www.tourismpei.com


인정할 것과 찬양할 것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우선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과자 대신 오징어포를 간식으로 먹으며 자랐지만 회 맛을 익히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육식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가끔 삼겹살을 즐길 뿐 단 한 번도 자발적으로 스테이크를 주문한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말 그대로 ‘환장’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면 와인을 붓고 끊여낸 홍합요리, 살이 몽글몽글 차오른 로브스터, 짭조름하니 국물까지 들이켜고 싶은 조개찜, 레몬즙을 살짝 뿌려 단숨에 흡입하는 생굴 등이다. 이 요리들이 매일 번갈아 가며 식탁에 올라온 PEI를 파라다이스였다고 찬양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무 배은망덕한 사람일 터. 그 은혜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은 역시 배움의 전당인 학교다.  

주도인 샬롯타운의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전에 일행이 끌려간 곳은 캐나다 요리학교The Culinary Institute of Canada였다. 이른바 요리 사관학교Culinary Boot Camp 체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치마가 아닌 셰프 재킷을 입고 모자까지 쓰니 제법 요리사 폼이 나지만 살아 움직이는 로브스터 앞에서 다들 수족관 관람객 모드로 돌아갔다. 이 상황에서 가장 분주하지만 여유로운 사람은 교수셰프인 제프 맥커트Jeff McCourt였다. 그가 ‘굴은 마치 와인과 같아서 어느 해안에서 채취하느냐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고 말한 뒤 생굴1) 하나를 들어 꿀꺽 삼킬 때는 후광이 빛나는 것 같았다. PEI 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는 그의 크림 차우더 수프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재료, 긴 조리 시간의 산물이었다. 그 사이 빨갛게 쪄진 로브스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홍합찜에는 국물이 자작자작했고, 게살 샐러드 위에는 꽃잎들이 뿌려졌다. 

두어 시간 동안 땀 흘려 만든 요리들을 각자 먹을 만큼 그릇에 옮겨 담은 후 완벽하게 세팅된 테이블이 있는 카페테리아로 올라갔을 때 나는 약간의 전율을 느꼈다. 손님의 자격으로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대충 훑어보고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부엌에서 어떤 난리북새통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버린, 깨달음의 반응이었다. 한 접시의 요리를 놓고 어부와 농부의 땀뿐 아니라 요리사들의 땀과 노동까지 느끼게 되었으니 이제 그 어떤 요리도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됐다. 이제 요리사관생도의 기본자세를 익힌 것이다.


1 명망 있는 캐나다 요리학교에서의 수업은 그 자체로 영광이자, 맛있는 경험이었다 2, 3, 4, 5, 6, 7 지역별로 맛이 다른 굴과 큼지막한 조개와 홍합, PEI의 육질 좋은 쇠고기와 흔하디흔한 로브스터까지. PEI는 미식가들의 천국이다 8 빨간 지붕의 등대가 서 있는 작은 어촌들은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부른다 9 때마침 바다에서 돌아온 로브스터잡이 배는 만선이었다

아일랜더들의 유별난 식탁 

그렇게 시작한 매일매일의 정찬과 만찬에서 일행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싱싱한 해산물을 탐닉했다. 특히 셰프들이 최상품으로 친다는 PEI 로브스터2)의 인기는 도무지 경쟁할 메뉴가 없었는데, 25캐나다달러 정도면 살집이 넉넉한 로브스터 한 마리가 통째로 접시에 담겨 나온다. 발라먹는 기술이 없다는 핑계로 한국에서는 게 요리도 멀리하는데, PEI의 로브스터는 손가락을 더럽힐 가치가 있었다. 번거로운 노동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입 안을 꽉 채우는 속살의 풍미라니. 사실 점잖게 먹기 힘든 요리로 통째로 나오는 로브스터만한 것이 있을까? 로브스터 온 더 와프Lobster on the Wharf라는 로브스터 전문 레스토랑에서 7명이 한 마리씩의 로브스터를 해치운 후 테이블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토화’와 ‘난장판’이었다. 다리를 부러뜨리고 구석구석 남은 속살들을 파먹다 보면 얼굴 전체로 게살이 튀게 마련. 그런 상황에 익숙한 PEI 주민 이사벨은 긴 머리는 묶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잊지 않았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며 누군가 아쉬운 마음과 겸연쩍은 마음을 섞어 던진 한마디가 압권이었다. “내 생전 이렇게 더러운 식탁은 처음 보는군!” 

어장이 풍족했던 PEI에는 1810년대에 이미 선착장에 110여 대가 넘는 배들이 입출항하고 있었고, 1857년부터 로브스터 통조림 산업이 성황을 이뤘다. 크기가 작은 로브스터는 통조림 상태로 가공하고 큰 것은 그대로 수출했다. 그러니 섬사람들에게 로브스터는 너무 흔한 요리였다. 1839년에 작성된 메모에 의하면 ‘섬사람들은 저녁으로 로브스터를 절대로 먹지 않았으며 아침이나 점심 식탁에도 일주일에 1번 이상 오르지 못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섬사람들이 이웃을 초대하거나 모처럼 외식을 할 때 즐겨먹는 요리는 해산물보다는 스테이크 등의 육류다. 오죽하면 메뉴판에 아일랜더 메뉴Islander Menu란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까. PEI를 떠나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던 에어캐나다 파일럿 출신의 할아버지는 은퇴 후 고향인 PEI로 돌아와 살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날 아침에 어시장에서 커다란 로브스터 1파운드를 10달러가 채 안 되는 돈으로 구입했다는 믿기 힘든 팩트를 보태 주었다. PEI를 떠나는 마음이 어찌 서운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1) PEI 굴 
수확한 지역의 수질과 미네랄, 염분 등에 따라 맛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PEI산 굴이라고 해도 라즈베리 포인트Raspberry Points, 콜빌 베이Colville Bays, 피클 포인트Pickle Points, 럭키 라임스Lucky Limes 등으로 세분되며 가장 유명한 것은 말피크 굴Malpeque Oyster이다.
2) PEI 로브스터 
북대서양에서 자라는 PEI 로브스터는 딱딱한 껍질, 육즙이 넉넉한 부드러운 속살 때문에 최상급으로 친다. 5~6월과 8월 중순~10월이 제철인데 캐나다 로브스터 생산량의 20%가 PEI에서 잡힌다.

싱싱한 셰프 되기
The Culinary Institute of Canada
1일 혹은 반나절 요리교실을 신청하면 캐나다 최고의 요리학교에서 교수셰프들의 지도를 받으며 홍합, 로브스터, 조개, PEI 쇠고기 등 신선한 PEI의 식재료로 만든 다양한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기념품으로 제공되는 셰프 재킷은 오래도록 자랑스럽게 간직할 만한 선물. 단, 발끝이 보이는 신발이나 슬리퍼는 착용 금지다.
주소 4 Sydney Street, Charlotte town, PEI 
문의 및 예약 902-566-9305 www.culinarybootcamps.com
참가비 프로그램(Healthy Eating 101, Seafood 101, Summer Desserts 등)에 따라 199~269달러(세금 별도).


Experience PEI!

신성한 노동 끝에 얻는 식도락의 기쁨이 이토록 큰지 몰랐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과 이용하는 것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미처 몰랐다.

배고픈 자여, 파고 또 파라! Digging for Dinner 

썰물이다. 바다가 멀어진 사이 떠오른 숨겨진 땅은 미식가들의 보물창고다. ‘디깅 포 디너Digging for Dinner’의 참가자들은 삽과 양동이를 들고 갯벌로 흩어졌다. 뽕뽕 숨구멍이 뚜렷한 곳일수록 조개가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삽을 쑥 박고는 크게 한 삽 떠내는 동작이 빨라야 조개들이 더 깊은 뻘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잡은 조개를 양동이에 넣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으니, 크기를 재는 것이다. 50mm 폭의 홈이 파져 있는 나무틀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다면 미성년 인증을 받은 셈이니 다시 놓아주어야 한다. 가리비와 굴을 채집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허가증recreational fishing licences을 발급받을 필요는 없지만 대합과 우럭 조개는 최소 50mm 이상의 것만 잡을 수 있고, 기다란 함박조개는 102m 이상이 되어야 한다. 또 종류에 상관없이 하루에 채집할 수 있는 조개는 300개를 넘지 못한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일행은 뼈져린 후회를 하고 있었다. 피크닉 장소로 자리를 옮겨 커다란 들통에 한꺼번에 쩌낸 조개들은 식탁에 올리자마자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조개잡이보다는 사진촬영에 열중했던 결과였다. 서운함이 커서인지 간혹 씹히는 모래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역시 일하지 않은 자, 먹을 자격도 없나니,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장소 서머사이드에서 차로 30시간 정도 떨어진 해변에서 진행된다  시기 5~10월 사이에는 물때를 맞춰서 매일 가능하다(일요일 제외)
문의 866-887-3238 www.experiencepei.ca  참가비 85캐나다달러(최소 2인 이상), 3~6인 65캐나다달러. 8세 이하 어린이 20캐나다달러


1 썰물 때가 되면 미식가들의 보물창고가 열린다. 그저 땅을 파기만 하면 된다 2 초콜릿이 굳어지기 전에 모양을 잡는 것이 수제 초콜릿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요령이다 3 가업을 이어받은 에릭씨가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은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착한 초콜릿 만들기 Island Chocolates

북쪽의 작은 해변마을 빅토리아 바이 더 시Victoria by the Sea는 우선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그 경치에 반한 많은 예술가들과 크리에이터들이 이 마을에 자리잡으면서 쇠퇴해 가던 어촌이 아기자기한 예술가 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갤러리와 스튜디오를 다 제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코지 스트리트에 자리잡은 아일랜드 초콜릿Island Chocolates이었다. 음식의 맛은 재료에 의해 좌우된다는 원칙은 초콜릿에도 예외가 아니다. 공정무역을 통해 수입하는 최고급 코코아 파우더와 부재료로 사용되는 과일, 땅콩류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맛도 있고 뜻도 있는 재료들이다. 기자였던 아버지 론이 시작한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 에릭Eric이 진지하게 풀어내는 초콜릿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을 듣고 있으니 입맛이 살짝 써지는 듯도 싶었다. 하지만 이들은 매년 초콜릿 축제(올해는 9월17일이다)를 개최하며 질리지 않는 달콤함을 지닌 초콜릿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어머니 린다와 누이 엠마도 초콜릿처럼 달콤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한 수제 초콜릿 만들기는 짧았지만 감각적인 경험이었다. 초콜릿이 굳어버리기 전에 재빨리 옷을 입히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손끝에 오래 남았다. 이 초콜릿 가족에 대한 기억처럼 말이다.
주소 Victoria by the Sea Prince Edward Island   문의 902-658-2320 www.islandchocolates.ca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Prince Edward Island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주province로 빅토리아 여왕의 아버지인 켄트공 프린스 에드워드의 이름을 땄다. 줄여서 흔히 피이아이PEI라고 부른다. 한국과 일본 사람들에게는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의 무대로 기억되지만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작고 평화로운 휴양지로, 그리고 신선한 해산물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주도인 샬롯타운Charlottetown을 중심으로 1,100마일 해안선을 따라 정감 넘치는 어촌과 해변, 그리고 공원의 풍경이 어우러진다. 

달빛 아래에서 양지로 나온 술 
The Myriad View Distillery & Prince Edward Distillery 

술에 애정이 깊지 못한 관계로 양조장의 값비싸 보이는 증류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알코올 함량이 75%였던 스트레이트 라이트닝Strait Lightning의 충격적인 목 넘김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첫 번째로 방문한 미리어드 뷰 아티잔 디스틸러리Myriad View Artisan Distillery는 해변 풍경과 포도밭을 지닌 농가주택을 개조한 곳이었다. 버로우Berrow씨 부부는 수익보다는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라고 했지만 2006년 문을 연 PEI 최초의 개인 양조장은 47년 동안이나 지속됐던 밀주령 때문에 달빛 아래에서만 제조했던 밀주(그래서 문샤인moonshine이라고 불렀다)의 비법을 합법적으로 이어가고 있으니 장인 정신이 필요한 일이다. 또한 40도의 보드카, 51도의 진, 57.1도의 럼 등을 사양하지 않고 맛보는 일에는 대단한 애주 정신이 필요하다.  

프린스 에드워드 양조장Prince Edward Distillery의 양조기계는 함박웃음이 매력적인 줄리 쇼어Julie Shore씨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섬의 북동쪽 해안에 존슨 쇼어 인Johnson Shore Inn이라는 B&BBed & Breakfast를 운영하던 그녀는 오래전부터 PEI의 질 좋은 특산물인 감자1)를 주원료로 하는 보드카 양조장 운영을 꿈꾸었다. 그러나 캐나다 최초, 유일의 감자 보드카를 생산하는 일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 수입한 양조 기계의 조립부터 작동법까지 독학으로 깨우치는 과정에서 숱한 밤을 샜다. 감자뿐 아니라 야생 블루베리, 레몬그라스, 생강 등의 재료에서 추출한 보드카들을 맛보고 나면 그녀처럼 빅 스마일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The Myriad View distillery┃주소 1336 Route 2 Rollo Bay, PEI  문의 www.straitshine.com
Prince Edward Distiller┃주소 RR3, Rte 16, Souris, C0A 2B0  문의 www.princeedwarddistillery.com


1, 3 프린스 에드워드 양조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라임 조각을 띄운 한낮의 보드카였다 2 PEI 특산품인 감자를 주원료로, 각종 허브와 과일을 부재료로 사용한다 4 직업이 의사인 버로우씨와 아내는 2007년 독일에서 들여온 양조기계로 밀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샤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부업이지만 연간 2만 병 이상을 생산한다

1) PEI 감자 
철분 함량이 높은 토양에서 재배되어 맛있기로 유명한 PEI 감자는 캐나다 감자 생산량의 3분의1을 책임지고 있으며 30개국 이상으로 수출되고 있다. 2011년에 PEI의 감자밭 면적은 8만5,500에이커였으며 360 여개의 감자농장이 있다. www.peipotato.com

 

댄싱 본능을 자극하는 선셋 파티 Ceilidh on the Water 

PEI의 내항을 도는 작은 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바다로 나가야 선셋의 장관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에 지체된 출발을 만회하려는 듯 배는 가속을 붙이고 있었다. 라이브 연주를 시작한 두 바이올린리스트가 흥에 겨워 쿵쿵 바닥을 구르는 발놀림도 그 가속에 힘을 보탰다. 차가운 맥주와 스낵, 그리고 갓 삶아 내어 윤기가 흐르는 푸른 홍합찜을 먹으며 즐기는 여유로운 선상 파티. 방금 로브스터 한 마리를 해치우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는 다시 식욕이 솟았다. 

승선 인원이 불과 10여 명인지라 금방 친구가 되어 서로 사진을 찍어 주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떠났던 고향을 다시 방문했다는 한 할머니는 상전벽해의 시간을 먹먹한 눈빛으로 회상하고 있었다. 우리가 보는 샬롯타운의 항구와 등대2)의 실루엣, 멋진 석양과 상기된 듯한 보름달 너머로 그녀는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배 안의 분위기는 상념에 젖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힘찬 발장단은 배가 다시 항구에 돌아오는 70분 동안 잠시도 멈추지 않았는데 그 흥겨움이 모든 승객에게 전염되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이며 춤을 추게 될 정도였다.
문의 902-566-4458 www.peakeswharfboattours.com
요금 선셋 크루즈(6월1일~8월21일 운행) 성인 25달러, 아동 12.5달러  


1, 2 흥겨운 바이올린 연주는 석양을 축제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2)PEI 등대
 
PEI에는 1,100마일의 해안선을 따라 64개의 등대와 선박 안내등이 있는데 그중 40개 이상이 아직도 작동 중이다. 북미에서는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등대가 설치되어 있는 셈이다. www.peilighthousesociety.ca


Taste PEI!

누군가 PEI에 간다면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은 맛집들. 캐나다 특유의 친근함과 캐주얼함이 요리 장인들의 직관적인 요리와 만났다.  

찾았다! 숨은 진주 The Pearl

진주는 조가비를 열어 보기 전에는 그 속을 알 수 없다. 더 펄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외지인이라며 십중팔구 잘 꾸며놓은 시골 농가려니 하고 지나치기 쉬운 외관도 그렇지만 다소 고립되어 보이는 위치도 반전을 위한 완벽한 조건이었다. 노스 루스티코North Rustico와 카벤디시 관광구the Cavendish Tourist Area 사이, 겉모양이 전혀 레스토랑 같지 않은 주택 안으로 들어가면 갤러리처럼 작은 작품들이 가득한 홀이 나온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의 오너인 맥신 델라니Maxine  Delaney씨는 혀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것이 눈의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그녀의 개인 소장품인데, 직접 그린 인상주의 그림도 있다. 그녀의 높은 안목에 어울리는 요리에는 셰프 앤드류 밀라Andrew Millars의 재능이 녹아 있다. 더 펄은 2010년에 테이스트 아워 아일랜드 어워드Taste Our Island Award1)를 수상한 바 있다. 
주소 7792 Cavendish Road North Rustico PEI  문의 902-963-2111  www.thepearlcafe.ca  영업시간 디너┃오후 5시부터, 선데이 브런치┃오전 10시~오후 2시.  가격대  셰프 추천 3코스 정찬 45캐나다달러. 

집밥처럼 맛깔스런 Cafe Maplethorpe

객실 5개의 작은 B&B를 운영하고 있는 다이애나Dianna가 요리를 공부하고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했을 때 남편 짐Jim의 반응은 이를 테면, ‘그렇게 원하면 한번 해 봐라. 단, 크게 망하지만 말고’였다. 2001년 미국 몬타나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그들은 1784년에 지어진 빅토리아 스타일의 농가를 숙소로 개조하는 데 이미 많은 지출을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순간은 다이애나가 신선한 오가닉 재료들을 사용해 만들어내는 가정식 요리를 먹는 바로 그때다. 매플토프는 토박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PEI산 식재료를 사용해서 ‘테이스트 아워 아일랜드 어워드’의 첫해 수상자로 꼽히기도 했다. ‘비밀 레시피’를 고집하지도 않아서 손님이 요청하면 기꺼이 요리법을 공개한다. 좌석이 25석밖에 되지 않아 예약이 필수다. 
주소 2123 Highway 112, Bedeque PEI  문의 902-887-2909 www.cafemaplethorpe.com
가격대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를 메뉴 중에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3코스 식사 24.95캐나다달러.

 

매일매일 진화하는 메뉴 LOT30

스타 셰프 고든 베일리Gordon Bailey를 만나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는 동안 가슴이 콩닥거렸다. 5가지 코스로 나온 그의 요리들을 하나씩 맛볼수록 그를 만나고 싶은 열정이 더욱 커졌으니 말이다. 주방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요리가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를 모니터로 생중계하고 있었지만 셰프들은 손으로만 출연하고 있었다. 과식을 넘어 폭식이라고 할 만큼 가득 차오른 포만감과 그럴수록 더 증폭된 호기심. 그 호기심을 또 기분 좋게 충족시켜 준 것은 고정관념을 깨는 요리사들의 펑키한 스타일이었다. 후끈한 열기가 가득한 주방에는 피트니스 센터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건장한 남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가장 근육질의 남자가 고든 베일리였다. 호남형의 얼굴뿐 아니라 성격도 시원시원한 이 남자는 4살 때 고향 만니토바에서 접시닦이로 시작해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신메뉴 개발을 위해 한동안 문을 닫곤 하는 유명 레스토랑들의 저속 경영은 이 남자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매일매일 새로운 메뉴를 내놓는다.
주소 151 Kent Street Charlottetown PEI   문의 902-629-3030 www.lot30restaurant.ca
가격대  테이블 기준으로 주문 가능한 셰프 추천 5코스 요리는 비싸지만 가치가 충분하다. 1인당 85캐나다달러.

입 안에 살살 녹는 바다 Lobster on the Wharf 

최고의 로브스터, 최고의 경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곳. 식도락 여행자라면 바다 전망이 확 펼쳐진 야외 데크에서 짭쪼롬한 소금끼를 와인으로 씻어가며 음미하는 해산물 정찬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다. 여러 가지를 다 맛보고 싶다면 로브스터, 조개, 새우, 스테이크가 함께 나오는 PEI 특유의 서프 앤 터프 Surf N’ Turf메뉴를 시도해 볼 만하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큰데 해산물 외에도 스테이크, 파스타, 어린이 메뉴 등도 판매한다. 원래 이곳은 맥키넌스 로브스터 파운드MacKinnon’s Lobster Pound라는 로브스터 가공공장이 17년간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1981년 짐 라킨씨가 공장을 구입하고 5년 후부터 지금의 레스토랑을 시작했지만 PEI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맥키넌스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레스토랑 한쪽에서 운영하고 있는 씨푸드 마켓에서 살아있는 로브스터나 가공된 해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주소 2 Prince Street Charlottetown I  문의 902-968-2888 www.lobsteronthewharf.com
비용 애피타이저 6~15캐나다달러, 메인 12~32 캐나다달러.


1) 테이스트 아워 아일랜드 어워드Taste Our Island Award 
PEI의 요리사와 레스토랑 주인들이 함께 제정한 상으로 얼마나 많은 로컬 식재료를 창의적으로 사용하는지, 손님에게 로컬 식재료의 우수함을 명확하게 드러내는지 등을 심사 기준으로 한다. PEI는 전체 140만 에이커의 땅 중에서 62만 에이커의 땅이 농지로, 지역 농가 후원과 지역 내 푸드 시스템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PEI 여행자를 위한 ★★★★★
천소현 기자의 ‘주관적인’ 여행 정보

친절한 PEI식 거래 샬롯타운 파머스 마켓 Charlottetown Farmers’ Market ★★★★☆
1984년에 문을 연 시장은 짧은 기간 안에 PEI 전 주민의 ‘주말 일상’이 됐다. 신성한 빵과 커피, 흙냄새가 가시지 않은 채소와 과일, 고기와 해산물은 지역의 푸드 생산 시스템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PEI 사람들에게 보물과도 같은 수확물들이다. 또 지역의 아티스트들이 선보이는 작은 소품이나 기념품들, 장인 정신으로 만든 수제품들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기 때문에 주말 브런치를 해결하기도 좋은 곳이다. 특히 시장 밖 간이천막에서 금방 구워낸 소시지가 일품이다.
주소 100 Belvedere Avenue, Charlottetown 문의 902-626-3373 www.charlottetownfarmers market.com  개장시간 토요일 오전 9시~오후 2시(6~10월에는 수요일에도 개장)


25년 만의 새 호텔 홀맨 그랜드 호텔 Holman Grand Hotel ★★★☆☆
2010년 타계한 PEI의 유명한 상공인 알란 홀맨씨를 기리기 위한 후손들의 마음이 모여서 샬롯타운에 25년 만에 새로운 호텔이 탄생했다.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민 80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은 시설면에서는 PEI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타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시를 걸어서 여행하기 편하고 카페, 레스토랑, 상점 등이 모두 가까이 있다. 다만 일행이 묵었던 시점에는 룸서비스만 가능한 조식메뉴가 부실했고, 작동이 어려운 난방시스템 등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1층의 바는 늦은 시간까지 항상 손님이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은 곳. 객실 요금은 300캐나다달러부터 시작한다.
주소 123 Grafton Street Charlottetown PEI  문의 877-455-4726 www.theholmangrand.com  

명불허전은 아닌 그린 게이블 하우스 Green Gable House ★★☆☆☆
PEI를 찾는 아시아 여행객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지만 <빨강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의 열렬한 팬이 아니라면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 수도. 소설에도 등장하는 산책로Haunted Woods, Balsam Hollow Trails를 따라 걸으며 프린스 에드워드 국립공원의 풍광을 즐긴다는 목적을 설정하는 것이 만족도를 더 높이는 방법이다. 5~10월에 운영하는 통역 프로그램이나 개인 안내 투어를 이용하면 몽고메리와 앤의 스토리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국립역사지구 바로 옆에 있는 골프장의 그물망이 마음에 걸리지만 야생 여우를 조우하는 기쁨도 있다. 여름 시즌 동안 샬롯타운에서 상영되는 뮤지컬은 좋은 관람평을 얻고 있다.
위치 Cavendish in the Prince Edward Island National Park

자연이 스스로 그린 연대기 그리니치 파크 PEI National Park Greenwich ★★★★☆
어느날 PEI 북동쪽 해안의 세인트 피터만의 끄트머리 부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드문 해안 사구 시스템과 습지, 작은 면적에서 발견된 다양한 지형과 생태계는 높은 보존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생각보다 긴 산책이었다. 지루함에 지칠 즈음 갑자기 숲길이 나타나더니 2배속으로 테이프를 감듯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곧 모습을 드러낸 해안가의 하얀 사구들. 수천, 수만년이 걸리는 자연의 변화가 스스로 자신의 연대기를 이곳에 펼쳐놓은 듯한 곳이다.
문의 캐나다국립공원 www.pc.g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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