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트레킹 길 9 選 -구불구불 찾아들어간 일본의 속살① 홋카이도 후라노
일본의 트레킹 길 9 選 -구불구불 찾아들어간 일본의 속살① 홋카이도 후라노
  • 트래비
  • 승인 2012.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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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걷기가 대세는 대세인 모양이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일이 물 흐르듯 쉬운 일이기는커녕 오히려 신발끈을 꽉 조여매야 하는 일이지만 야무지고 당찬 세 명의 트래비 라이터들이 배낭을 쌌다. 길을 걷으며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올라가, 가슴을 통과해 입 밖으로 나온 이야기들. 땀 냄새 폴폴 풍기며 그녀들이 묻는다. 일본의 ‘道’를 아시나요? 

에디터  트래비


AreaⅠ 후라노는
일본 열도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섬, 홋카이도. 그 한가운데 일본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다이세츠大雪산 국립공원이 있다. 다이세츠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다. 크게 외다이세츠 지역, 히가시다이세츠, 도카치 연봉 지역으로 나뉘고 지역마다 다시 여러 산과 봉이 이어지는 거대한 산군이다. 도카치 연봉 자락의 도카치다케十勝岳와 후라노다케富良野岳가 병풍을 두른 후라노富良野에 다녀왔다.


AreaⅡ 일본 북 알프스는
메이지 시대에 영국인들이 알프스 산맥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도야마현, 기후현, 나가노현에 걸친 히다산맥飛?山脈의 대산릉大山稜이다. 유명한 다테야마立山, 야리가다테槍が岳, 호다카연봉?高連峰 등을 포함하고 있다.


AreaⅢ 규슈는
일본 남부에 위치한 섬으로 화산지형에 아열대 기후 등 제주와 비슷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규슈 올레길은 규슈운수국과 규슈관광추진기구가 함께하는 ‘Visit Japan’ 사업의 일환으로 사가현, 오이타현, 구마모토현, 가고시마현이 각각 1개씩의 트레킹 코스를 개발한 것이다.  

 

 

AreaⅠ
홋카이도 후라노

Trekker 서진영은
독특한 감성이 녹아 있는 글과 사진으로 펜층을 거느리고 있으며 사람에 대한 시선을 놓지 않는 트래비의 객원기자다.   

초록에 물들어 자연과 수다를 나누다

간혹 이곳이 섬이란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계절 따라 색을 달리하는 자연이 옷을 갈아입는 후라노Furano. 이곳의 평온한 풍경은 산 능선을 따라 가미후라노上富良野와 비에이美瑛로 이어진다. 시골 농장길을 따라가는 가벼운 트레킹부터 만년설과 분화구 위를 헤쳐 가는 고난이도의 트레킹까지 후라노에서는 걸으면 걸을수록 생기가 돈다.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후라노·비에이 광역관광추진협의회 www.furano.ne.jp/furabi
              국토교통성 홋카이도 운수국 wwwtb.mlit.go.jp/hokkaido

 

trekking 1 후라노다케
자연과 나지막이 손잡고 걷는 산길

후라노다케(1,912m)로 길이 난 닝그루의 숲 등산로 입구, 트레킹 준비를 단단히 해 온 무리들이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가지런히 정렬을 한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트레킹이 가능하지만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이면 산사람들은 겨울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후라노다케를 향해 예를 갖춘다. 올 한 해도 산과 함께 무사할 수 있도록.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달콤한 아침잠을 놓친 아이들도 꽤 진지한 표정으로 눈치껏 고개를 숙인다. 후라노다케의 문이 열리는 날 이른 아침, 산 아래의 풍경이다.

산길에 익숙한 후라노다케 겐시가하라 등산회 회원들이 앞서며 길을 튼다. 시작점은 닝구르의 숲 오두막집. 닝구르ニングル는 작가 쿠라모토 소우倉本聰의 동명 저서 <닝구르>에 등장하는 숲의 요정으로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의 말로 ‘작은 사람’을 뜻한다. 이곳에는 후끼ふき라고 부르는, 얼굴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큼직한 머위 잎들이 무릎을 스치며 등산로 양쪽으로 숲을 이루니 정말 숲 속 버섯 집에 모여 사는 난쟁이 스머프가 어느 틈엔가 고개를 빼꼼이 내보일 것만 같다. 

완만한 길이든 높낮이가 있는 길이든 걸음은 일정하고도 조금 느릿했다. 이따금 불곰이 남겨놓은 발자국이나 배설물들을 발견하면 멈춰 서서 후라노다케의 생태에 관한 도움말을 덧붙인다. 다이세츠산 국립공원은 불곰과 더불어 북방여우, 너구리, 족제비, 사슴, 다람쥐 등 다양한 산짐승이 서식하는 원시성 가득한 산지. 일본 환경성은 생태계를 보호하고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불곰정보센터를 설치해 트레킹 코스를 관리하고 불곰의 출현을 관찰, 등산객 안전교육을 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사람들은 산짐승의 흔적에 당황하기보다 반가움을 내보인다.

보이진 않지만 물 흐르는 소리가 발길을 따라 이어지는 것을 보니 산비탈 아래 계곡이 있나 보다 생각만 하고 있는데 이내 후도우不動폭포가 나타난다. 흐르는 물에 손도 씻고 입가심도 하며 가쁜 숨을 고른다. 그러는 사이 트레킹 시작부터 내리던 부슬비가 조금 더 굵어진다. 하나둘 우비를 꺼내 등산복 위에 덧입고 다시 걸을 채비를 한다.

비를 피해 보겠다며 질척이는 흙길도 요리조리 피하고 모자에 우비까지 중무장을 했건만 눈앞에 맞닥뜨린 것은 기다란 나무줄기 둘로 다리를 놓은 계곡이다. 난감해하는 무리 앞에 무릎까지 오는 장화로 갈아 신은 산악회 회원 하나가 계곡 가운데로 첨벙 들어가 손을 내민다. 대여섯 걸음이면 충분한 짧은 계곡이지만 자연이 놓은 다리와 서로가 맞잡을 손이 없다면 결코 쉬이 건너지 못할 물길이다. 

높낮음이 심하지 않았던 등산로가 계곡을 지나자 한층 가팔라진다. 균형을 잡기 위해 높은 바위나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하는 순간이 늘어났다. 옆으로 두리번거리던 눈짓도 확연히 줄고 다만 길을 따라 더욱 입을 앙다물 뿐이다. 슬슬 조바심이 날 때쯤 다다른 곳은 후라노다케 산허리의 습지대 겐시가하라原始ヶ原다. 침엽수림과 습지가 만나는 넓은 고원. 비가 오지 않으면 돗자리 깔고 살짝 졸다 가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비가 오지 않을 때에도 얼마간 축축한 기운이 있는 곳이라 소풍 기분을 내긴 힘들단다. 좁다란 숲길을 헤쳐 나와 탁 트인 겐시가하라 한가운데에 서니 이제야 나뭇가지에 매달린 핫핑크색 리본이 보인다. 

빗방울 머금은 바람꽃 곁에 앉아 꽃잎, 풀잎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초콜릿 몇 개를 오물거리는 동안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고, 자연 한가운데 앉아 본 것이 참 오랜만이다. 비가 많이 내려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하산해야 한다는 말이 저 쪽에서 들린다. 닝구르의 숲에서 겐시가하라까지 오르는 데는 2시간 남짓. 오늘은 여기서 발길을 돌리지만 보통은 후라노다케 정상에 올랐다가 도카치다케로 이어지는 온천 료운가쿠까지 간다고. 힘들던 차에 하산 소식을 들으니 아쉬움과 남모를 반가움이 일순간 교차하는데 이 산을 다시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더 크다. 그러나저러나 하산하는 발걸음은 들뜨기 마련. 오를 때보다 가슴 쓸어내리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 닝그루의 숲 초입까지 내려오니 야속하게도 빗줄기가 잦아든다. 자연과의 보이지 않는 밀고 당기기. 이런 것이 트레킹 하는 재미 아닐까 생각하며 아쉬움과 야속함 대신 다음엔 조금 더 깊숙이 문을 열어 달라며 상냥한 끝인사를 남기고 돌아선다.


후라노다케(1,912m)로 길이 난 닝그루의 숲 등산로 입구, 트레킹 준비를 단단히 해 온 무리들이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가지런히 정렬을 한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트레킹이 가능하지만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이면 산사람들은 겨울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후라노다케를 향해 예를 갖춘다. 올 한 해도 산과 함께 무사할 수 있도록. 부모님 손에 이끌려 달콤한 아침잠을 놓친 아이들도 꽤 진지한 표정으로 눈치껏 고개를 숙인다. 후라노다케의 문이 열리는 날 이른 아침, 산 아래의 풍경이다.

산길에 익숙한 후라노다케 겐시가하라 등산회 회원들이 앞서며 길을 튼다. 시작점은 닝구르의 숲 오두막집. 닝구르ニングル는 작가 쿠라모토 소우倉本聰의 동명 저서 <닝구르>에 등장하는 숲의 요정으로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의 말로 ‘작은 사람’을 뜻한다. 이곳에는 후끼ふき라고 부르는, 얼굴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큼직한 머위 잎들이 무릎을 스치며 등산로 양쪽으로 숲을 이루니 정말 숲 속 버섯 집에 모여 사는 난쟁이 스머프가 어느 틈엔가 고개를 빼꼼이 내보일 것만 같다. 

완만한 길이든 높낮이가 있는 길이든 걸음은 일정하고도 조금 느릿했다. 이따금 불곰이 남겨놓은 발자국이나 배설물들을 발견하면 멈춰 서서 후라노다케의 생태에 관한 도움말을 덧붙인다. 다이세츠산 국립공원은 불곰과 더불어 북방여우, 너구리, 족제비, 사슴, 다람쥐 등 다양한 산짐승이 서식하는 원시성 가득한 산지. 일본 환경성은 생태계를 보호하고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불곰정보센터를 설치해 트레킹 코스를 관리하고 불곰의 출현을 관찰, 등산객 안전교육을 하는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사람들은 산짐승의 흔적에 당황하기보다 반가움을 내보인다.

보이진 않지만 물 흐르는 소리가 발길을 따라 이어지는 것을 보니 산비탈 아래 계곡이 있나 보다 생각만 하고 있는데 이내 후도우不動폭포가 나타난다. 흐르는 물에 손도 씻고 입가심도 하며 가쁜 숨을 고른다. 그러는 사이 트레킹 시작부터 내리던 부슬비가 조금 더 굵어진다. 하나둘 우비를 꺼내 등산복 위에 덧입고 다시 걸을 채비를 한다.

비를 피해 보겠다며 질척이는 흙길도 요리조리 피하고 모자에 우비까지 중무장을 했건만 눈앞에 맞닥뜨린 것은 기다란 나무줄기 둘로 다리를 놓은 계곡이다. 난감해하는 무리 앞에 무릎까지 오는 장화로 갈아 신은 산악회 회원 하나가 계곡 가운데로 첨벙 들어가 손을 내민다. 대여섯 걸음이면 충분한 짧은 계곡이지만 자연이 놓은 다리와 서로가 맞잡을 손이 없다면 결코 쉬이 건너지 못할 물길이다. 

높낮음이 심하지 않았던 등산로가 계곡을 지나자 한층 가팔라진다. 균형을 잡기 위해 높은 바위나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하는 순간이 늘어났다. 옆으로 두리번거리던 눈짓도 확연히 줄고 다만 길을 따라 더욱 입을 앙다물 뿐이다. 슬슬 조바심이 날 때쯤 다다른 곳은 후라노다케 산허리의 습지대 겐시가하라原始ヶ原다. 침엽수림과 습지가 만나는 넓은 고원. 비가 오지 않으면 돗자리 깔고 살짝 졸다 가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비가 오지 않을 때에도 얼마간 축축한 기운이 있는 곳이라 소풍 기분을 내긴 힘들단다. 좁다란 숲길을 헤쳐 나와 탁 트인 겐시가하라 한가운데에 서니 이제야 나뭇가지에 매달린 핫핑크색 리본이 보인다. 

빗방울 머금은 바람꽃 곁에 앉아 꽃잎, 풀잎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초콜릿 몇 개를 오물거리는 동안 만져도 보고, 냄새도 맡고, 자연 한가운데 앉아 본 것이 참 오랜만이다. 비가 많이 내려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하산해야 한다는 말이 저 쪽에서 들린다. 닝구르의 숲에서 겐시가하라까지 오르는 데는 2시간 남짓. 오늘은 여기서 발길을 돌리지만 보통은 후라노다케 정상에 올랐다가 도카치다케로 이어지는 온천 료운가쿠까지 간다고. 힘들던 차에 하산 소식을 들으니 아쉬움과 남모를 반가움이 일순간 교차하는데 이 산을 다시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더 크다. 그러나저러나 하산하는 발걸음은 들뜨기 마련. 오를 때보다 가슴 쓸어내리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 닝그루의 숲 초입까지 내려오니 야속하게도 빗줄기가 잦아든다. 자연과의 보이지 않는 밀고 당기기. 이런 것이 트레킹 하는 재미 아닐까 생각하며 아쉬움과 야속함 대신 다음엔 조금 더 깊숙이 문을 열어 달라며 상냥한 끝인사를 남기고 돌아선다.


1 후라노다케의 문이 열리는 날, 산행에 앞서 후라노 신사 신관의 인도로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을 행한다 2 끊어진 길 앞에선 서로가 내민 손이 유일한 길이다 3 빗방울이 무거웠는지 고개를 살짝 떨군 바람꽃. 지금 나에게 인사하는 거야? 꽃과 대화를 시도한다 4 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향하는 차 안. 뿌옇게 서린 차창에 남긴 손가락 글씨. 그 너머로 싱그러운 초록빛 후라노가 비친다


▶course 닝구르의 숲 등산로 입구→후도우폭포→천사의 샘→겐시가하라→후라노다케(1,912m)→료운가쿠(거리 약 12㎞, 소요시간  6시간 30분, 난이도 ★★★☆☆)

▶point 누노베강布部川을 따라 오르는 이 코스는 중간중간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후도우不動폭포를 시작으로 킨시錦? 폭포, 니단二段폭포, 소우텐蒼天폭포, 코겐?原폭포 등 조금씩 지친다 싶을 때마다 나타나는 시원한 물줄기. 그 곁에서 잠시 숨 돌리는 여유를 누려 보자. 

▶must 트레킹 전이라면 준비운동 삼아, 트레킹 후라면 회복운동으로 후라노 자전거 하이킹에 나서 보자. 후라노에서는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고운 꽃들이 조각보를 기운 듯 언덕 위로 융단을 펼친다. 시가지 한 바퀴를 돌아 후라노와인공장 곁으로 포도밭과 꽃밭이 펼쳐지는 부도가오카 공원에 이르는 길이 하이킹에 제격. 후라노역 앞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 대여가 가능하다. 시간당 200엔부터.



1 가미호로카멧토쿠야 정상에서 도카치다케 방향으로 난 내리막길. 구름인지 안개인지 눈앞이 자욱하다 2 걷는 길 내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해맑은 미소 머금고 카미후라노다케 정상에 오른 사호.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3 에조노쯔가자쿠라. 우리나라에서는 가솔송이라 부르는 꽃분홍의 진달래과의 고산식물 4 오물오물 산열매로 배를 채우는 산골짜기 다람쥐


 trekking  2 도카치다케
도카치다케의 맛깔스러운 여름 눈밭 트레킹

보통날보다 조금 이르게 잠에서 깨났다. 후라노의 태양은 새벽 4시면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태세로 창문을 두드려댄다. 도카치다케 중턱에 위치한 온천 가미호로소에서 밤을 보낸 날 아침, 눈 아래로 옅은 구름이, 다시 그 아래로 후라노 분지가 내다보이는 풍경이 이내 마음을 달뜨게 한다. 

도카치다케는 다이세츠산군의 도카치 연봉 지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표고 2,077m의 고봉이다. 일본의 등산가이자 문필가인 후카다규야深田久?가 산의 품격과 역사, 개성을 토대로 선정한 100곳의 산을 100편의 수필로 풀어쓴 <일본백명산日本百名山>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1988년 대폭발이 일어나 1990년까지 입산 자체가 금지되었던, 지금도 여전히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활화산. 분화구에서 하늘을 향해 뿜어내는 유황가스가 구름과 엉겨 주변을 온통 하얗게 만드는데 설렘과 긴장 사이의 떨림이 그 속으로 함께 실타래처럼 풀려 들어간다. 

도카치다케온천 등산로 입구에 다다르니 ‘토바’상이 기다리고 있다. 토바상은 오늘의 트레킹에 길잡이가 되어 줄 등반 가이드. 가미후라노다케上富良野岳(1,893m)를 시작으로 가미호로카멧토쿠야마上ホロカメツトク山(1,920m), 도카치다케十勝岳(2,077m)로 이어지는 고봉을 오르자면 토바상과 같은 전문 가이드의 도움이 필요하다. 홋카이도에만 40여 명의 등반 가이드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짧은 첫인사를 나누고 그가 안내하는 대로 등산로 초입의 작은 우편함을 열어 입산기록을 남긴다. 혹여 안전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정확하게 사고현황을 파악하고 이후 원활한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대비를 하는 것. 여전히 화산활동이 일어나는 지역이니 더욱 조심할 수밖에. 동행이 있을 경우 대표로 한 사람이 작성하되 동행하는 인원수를 기재하면 된다. 

뿌옇게 흩뿌려진 구름과 새벽안개 너머로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던 후라노다케가 보인다. 후라노다케 아래로 울창한 삼림과 달리 가미후라노로 향하는 삼단야마三段山 분기점에서 안세이安政 화구에 이르는 길은 큰 바위와 퍽퍽한 흙바닥으로 황량한 사막을 떠올리게 했다. 그 와중에 스키 슬로프 같은 눈 덮인 경사면과 가파른 나무계단이 번갈아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산 위쪽에서 양 손에 등산스틱을 쥔 중년 등산객 하나가 마치 스키를 타는 듯한 자세로 천천히 다가온다. 눈길이 길지 않았지만 방수기능이 약한 워킹화는 열 걸음도 걷기 전에 축축하고 묵직해졌다. 토바상이 뒤를 살피더니 보폭은 조금 좁히고 발은 더 힘차게 굴러 눈 계단을 만들어 준다. 아빠 새 뒤를 쫓는 아기 새처럼 토바상의 발자국을 따라 첫 번째 목표점인 가미후라노다케까지 힘을 낸다.

“휘르르 휘호 피리리 피피 피빅픽픽” 새소리가 참 구성지다. 토바상은 새소리가 날 때마다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고 배낭에서 책을 꺼내 “이 녀석의 목소리에요”라며 알려주었다. “까꺅꺅꺅꺅” 이번엔 무슨 새일까 눈짓을 하니 이번엔 새가 아니라 토끼란다. 나키우사기ナキウサギ. 멸종 희귀동물 ‘우는 토끼’다. 귀가 작은, 포켓몬스터 게임 캐릭터 ‘피카추’를 닮은 토끼가 우는 거란다. 실제 피카추 캐릭터는 나키우사기와 햄스터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한 번 보고 싶은데 영 나타나진 않는다. 그 사이 토바상이 북방 여우 발자국이 있다고 손짓을 한다. 여우 발자국은 이렇게 생겼구나. 몰랐으면 분명 그냥 밟고 지나쳤을 자연의 움직임이다. 

안개가 시야 가리기를 여러 차례. 어느덧 보이지 않던 가미후라노다케 정상이다. 그제야 오른 길을 뒤돌아본다. 반대편 등산로로 가족 등산객의 모습이 보인다. 분홍색 등산복과 인형 가방을 등에 업은 꼬마가 두 손, 두 발 모두 짚어야 하는 가파른 경사면을 씩씩하게 오른다. 살짝살짝 미끄러지는데 엄마, 아빠는 바로 손을 잡아 주기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힘내라는 말과 느긋한 발걸음으로 보조를 맞추며 아이를 기다려 준다. 네 살배기 꼬마 사호. 사호가 정상에 다다르자 모두들 힘껏 박수를 보낸다. 토바상도 기특하다며 사호의 작은 손에 간식으로 챙겨 온 모찌와 초콜릿 몇 개를 쥐어 준다. 수줍게 배시시 웃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힘든 기색 하나 없는 사호를 보니 몸 사리지 말고 부지런히 걸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절로 다져진다.

가미후라노다케에서 두 번째 목표지점 가미호로카멧토쿠야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다. 그러나 한눈을 팔 수는 없었다. 완만한 반면 좁다란 길 아래로 조금만 발을 비켜 디뎌도 바로 굴러 떨어질 급경사, 그 아래는 안세이 화구다. 이런 곳일수록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한다. 화구 능선을 지나자 무릎께 높이로 다양한 고산식물이 작은 수풀을 이룬다. 그 사이엔 잘 익은 열매도 방울방울. 열매를 따먹고 싶을 정도로 슬슬 시장기가 돈다. 가미호로카멧토쿠야에서 토카치다케 방면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살짝 오목하게 들어간 너른 눈밭 곁에 통나무 오두막 한 채가 그림같이 나타난다. 가미호로 피난 산장이다. 이곳에서 가방을 부리고 가미호로소 온천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중간 지점이기도 하거니와 등산로 초입과 이곳을 제외하면 등산로 가운데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겸사겸사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이곳을 기점으로 쉬어 간다. 역시나 땀 흘린 다음 먹는 한 끼는 꿀맛. 너무 배부르지 않게 적당히 허기만 채우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도카치다케에 이르는 마지막 산등성이는 호락호락 길을 터 주지 않았다. 용암이 분출되면서 그대로 굳은 크고 작은 돌덩이로 뒤덮여 발을 디디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자욱한 안개가 부슬비처럼 날리며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2,077m 도카치다케 정상. 안개와 구름 천지로 딛고 서 있는 산꼭대기 외엔 온 세상이 하얀 도화지다. 비록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할 순 없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잠시 머무는 정상에서나마 복잡했던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낼 수 있었으니까. 매일같이 짊어지고 다니던 노트북 대신 내가 먹을 도시락과 주전부리 몇 가지를 어깨에 메고,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휴대전화 대신 풀잎과 꽃잎을 매만지다 보니 머리도 마음도 자연히 정화가 된다.
도카치다케에서 입자 작은 화산재로 단단히 다져진 스리바치 화구를 지나 보카쿠다이까지 내려오는 하산 길은 막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급경사면이다. 정상을 오를 때 뭉친 근육이 내리막에서 거슬리기 시작하고, 저 멀리 도착점이 보이는데 가도가도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답답함까지. 그렇다고 조급하게 굴었다간 작은 자갈에 여지없이 발이 미끄러진다.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산행. 산을 오르내리며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는 산사람들의 말이 거들먹거림으로 들렸는데 그게 아니네. 뒤늦은 깨달음. 최소 일주일간은 근육통으로 온몸이 찌뿌듯하겠지만 트레킹 종료지점 보카쿠다이에 도착하니 오히려 몸이 가뿐해진다. 얼마 만에 이토록 뜨겁고 끈끈한 땀을 흘린 것인지. “그래, 이 맛이야.” 도카치다케에서 맛깔스런 자연을 꿀꺽한다.


1 정상에서 느끼는 기분과 트레킹 후 산 아래에서 느끼는 기분은 분명 다르다. 오늘의 도착점 보카쿠다이에서 바라본 도카치다케 정상. 애증 비슷한 감정이 폴폴 일어난다 2 화산활동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파른 자갈길. 이 산등성 꼭대기가 바로 도카치다케 정상이다. 두 발도 부족해 두 손도 땅을 밟게 만들었던 길


▶course 도카치다케온천 등산로 입구→가미후라노다케(1,893m)→가미호로카멧토쿠야마(1,920m)→도카치다케(2,077m)→스리바치 화구→도카치다케 대피소→보카쿠다이(거리 약 10㎞, 소요시간 7시간, 난이도 상 ★★★★☆)

▶point 고산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다양한 야생 동물이 서식하는 도카치다케. 주위를 살피면 그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에조노쯔가자쿠라, 에조쯔쯔지, 미네즈오우 등 진달래과의 식물들이 특히 곱다. 미리 몇 가지 알아두고 가면 트레킹하는 동안 수많은 자연의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운 좋으면 산열매 따먹는 다람쥐나 붉은 여우와 조우하거나 불곰 발자국이나 그들이 남긴 배설물을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으니 두 눈을 부릅뜨고 걸을 수밖에.

▶must 트레킹 후 뭉친 근육을 풀어 주는 데는 냉찜질이 좋다지만 도카치다케 지역은 화산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활화산지대로 천연온천이 흐른다. 가미호로소 온천과 도카치다케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시로가네 온천은 국민보양온천지로 지정된 홋카이도의 대표 온천지. 트레킹 전후 온천욕을 즐기기에 좋다. 근육이야 뭉치든 풀리든 뜨끈한 노천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으니 머리는 더욱 맑아지고 몸은 더더욱 개운해지는 듯하다.

▶more info 가미호로소 온천 +81-167-45-2970, http://tokachidake.com/kamihoro, 요금은 1박 2식 1만700엔, 당일치기 온천 입욕은 어른 1인 기준 600엔
시로가네 온천 +81-166-94-3111, www.shirogane-kankou.com, 요금은 1박 2식 겨울 비수기 7,500엔, 7~8월 성수기 1만2,000엔(세금 별도)


 trekking 3  센보토게
초록빛 수채화 속으로 발을 내딛다

‘홋토빠스?’ 한참을 갸우뚱한 후에야 풋패스foot path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드넓게 펼쳐진 농장과 오래된 주택이 드문드문 보이는 전원 사이를 천천히 거니는 산책길. 제주 올레와 닮은 가미후라노의 홋토빠스, 센보토게干望峠를 거닐었다.

후라노와 비에이 사이 여름이면 보랏빛 라벤더가 흐드러지게 피는 가미후라노 일대는 쌀, 밀 등의 곡물과 감자, 당근, 양파 등의 채소를 경작하는 논밭이 완만한 언덕을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목가적 풍경이 인상적이다. 이곳에 홋카이도가 선정한 9개의 워킹코스 가운데 하나이자 가미후라노 8경에 손꼽히는 센보토게가 있다. 후라노다케, 도카치다케와는 또 다른, 타박타박 걷는 재미가 있는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시작점인 센보토게 주차공원 전망대에 섰다. 밀밭 너머 마을이 보이고 그 뒤로 다이세츠산의 고봉들이 마을을 든든히 감싸 안고 있다. 전망대 코앞 밀밭에서 자라는 밀은 주로 맥주 원료로 재배하는 것이라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생각나 침이 꼴깍 넘어간다. 못 마시는 술이지만 홋카이도에 왔으니 삿포로 맥주 한 번 맛보고 가야 할 텐데. 편의점에 들러 한 캔 사올 걸 그랬나, 싱거운 생각을 하며 길을 나선다.  

초록 화살표를 따라가는 총 9.3km 길이의 카미후라노 홋토빠스, 센보토게. 참 평온했다. 과연 이 길 끝엔 무엇이 있을까, 언덕 너머엔 또 어떤 풍광이 펼쳐질까. 너른 언덕배기 논밭에서 분주하게 일손을 움직이는 몇몇의 주민들이 멀찍이 보이긴 했지만 대체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시골길이다. 쉽사리 정상을 열어 주지 않았던 후라노다케, 한여름에도 녹지 않은 눈과 화산활동의 흔적으로 까다로워 보였던 도카치다케마저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수채화 풍경이 된다. 

초록은 동색이라 하지만 센보토게에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 듯하다. 같은 무리끼리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면에선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럼에도 다 제 나름의 옅고 진한 살아 숨 쉬는 초록을 뽐낸다. 트레킹으로 노곤해진 몸을 녹음과 논밭 사이를 걸으며 달랜다. 자연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에코힐링, 후라노에서 누리는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생각하며 싱그러운 이 자연을 만끽한다.


센보토게에서는 이어폰으로 흘러 나오는 노래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더욱 리드미컬하다. 자연의 소리를 반주 삼아 제 멋대로 지어 부르는 노래를 흥얼흥얼 해본다



course 센보토게주차공원→트렉터 돔→에호로 저수지→마두관음→센보토게주차공원
(거리 약 9.3㎞, 소요시간 약 2시간 45분, 난이도 ★★☆☆☆)

point 드넓게 펼쳐진 농장 길에 혼이 쏙 빠지겠지만 가끔은 언덕 너머로 시선을 넘겨 보자. 이곳은 도카치다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상의 뷰포인트이다. 

must 후라노산 주전부리를 미리 챙겨 가자. 커피보단 차갑고 신선한 우유가 더욱 입맛을 돋우는 후라노인 만큼 작은 병에 담아 판매하는 후라노 우유와 후라노 우유를 넣어 풍미가 깊은 빵과 치즈 정도가 딱 좋다. 후라노산 과일과 야채로 만든 각종 주스와 푸딩과 잼도 곁들여 먹기 좋다. 센보토게 고개 인근에 편의시설이 없기에 더더욱 챙겨 가야 한다. 

여행정보 (사)후라노관광협회 홈페이지는 현재 한국어 여행정보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일본어가 익숙하지 않다면 후라노시청 상공관광과에 근무하는 한국인 담당자의 개인 블로그 ‘마리 이야기 in Furano’를 참고하자. 후라노의 다양한 정보와 실시간 문의가 가능한 연락처를 공지하고 있다.
(사)후라노관광협회 +81-167-23-3388 http://www.furanotourism.com
* 마리 이야기 in Furano http://blog.naver.com/songnuns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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