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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겡키데스카 센다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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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될 만큼 일본 신사 건축의 진수를 보여 주는 센다이 오사키하치만 신사


오겡키데스카 센다이

2011년 3월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1년 반이 지났다.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다 괜찮으니 한번 오라고. 초대를 거절할 수 없었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미야기현 www.miyagi.or.kr, 야마가타현 www.yamagata.or.kr, 센다이시 www.sentabi.jp 


단단하고 고귀한 일상 

센다이는 처음이었다. 지진과 쓰나미 전후에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첫 여행자의 눈에 보일 리 없다. 당시 3층까지 물에 잠겼었다는 센다이공항이 그랬듯 모든 것은 잘 작동하고 있었다. 공항 바로 옆에 폐가로 변한 식당 하나가 빈 들판에 허수아비처럼 서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기억을 위한 오브제처럼 보였다. 희망은 역시 사람에게서 나왔다. 복구지원은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센다이로 몰려오면서 지난 1년 동안 호텔과 근처 식당은 오히려 그전보다 호황이었다고. 그 덕에 지역 경제가 힘을 얻어 다시 바퀴를 돌릴 수 있었고 관광객의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 6월에는 68만6,000명이 센다이를 방문했는데 전년도보다 58% 이상 늘어난 숫자였을 뿐 아니라 3·11 지진해일 전보다 많은 인원이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한국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하다는 것은 인천과 센다이를 오가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읽어 주는 사람 없는 센다이공항의 한국어 안내문들이 쓸쓸하게 보였다.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방파제 역할을 해서 내륙의 피해를 줄여 주었다는 센다이동부도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인구 105만명의 센다이는 도호쿠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다. 지진으로 2~3일 동안 전기가 끊기고, 수돗물은 1주일, 가스는 1달 가까이 끊겼던 상황을 다 함께 이겨낸 사람들의 숫자이기도 하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준 또 한 가지는 종교였을 것이다. 오사키하치만 신사는 10번이 넘는 일본 여행 중에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보여 준 신사였다. 828년 창건했고 센다이를 통치했던 무장 다테 마사무네가 재건축한 뒤로 400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본전은 신사의 화려한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국보다. 그 본전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외부는 6년 전에 칠을 새로 했는데 파란색 염료가 특히 귀했던 그 옛날에도 아낌없이 파란색을 사용했다. 하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빛 바랜 채로 남아 있는 내부의 모습이었다. 당시 유명한 목공예 장인이었던 히다리 진고로씨가 하나하나 새겨 넣었다는 고양이, 목련 등의 목부조와 벽화들이 벽과 천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재단과 재실 사이에는 움푹 꺼진 공간이 있어서 계단을 오르내리게 되어 있는데,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라고 했다. 내가 가진 신사에 대한 거리감이 꼭 그만큼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 여전히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결 가까워진 느낌, 계단 몇 개쯤을 내려간 느낌이었다. 



1 센다이 아침시장에서 가장 신선한 것은 상인들의 친절이다 2 외부는 금박 장식과 화려한 채색, 내부는 정교한 목부조와 벽화로 가득한 오사키하치만 신사 3 전쟁 후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주었던 소혀 구이 요리, 규탄 4 귀한 염료였던 파란색을 아낌없이 쓴 본전의 단청 5 센다이시 최대 축제인 타나바타 축제에 쓰이는 종이 장식 6 비가 오는 날에도 신사 마당을 쓸고 있는 오사키하치만 신사의 신녀들 7 재고를 남기지 않기에 신선함을 보장하는 센다이 아침시장의 야채들

매일 신선한 센다이의 부엌 

살아있는 기운이 가장 가득한 곳은 역시 시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 공습이 끝나고 폐허가 된 센다이역 앞에 상점 1개, 2개가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100여 개의 점포가 모여 센다이 아침시장이 됐다. 정식 명칭은 아오조라이치바푸른하늘시장. 도호쿠 지역의 맛있는 것들이 다 모이는 센다이의 부엌이다. 오랜만에 장터에 나온 소년처럼 신이 난 센다이시 관광 홍보 담당자가 말했다. “상인들이 항상 가장 좋은 상품을 골라줘요. 아무리 물건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도 센다이 시장에서는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거죠.” 그날 들어온 물건은 그날 중으로 소진한다는 원칙. 

그래서 야채든, 생선이든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저렴하게 판매한다. 실제로 센다이 아침시장의 물가는 마트의 절반 정도라고 했다. 마트에서 한 토막에 1,000엔씩 하는 가쓰오부시 생선이 이곳에서는 한 마리 통째로 1,000엔이었다.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품목들도 있고, 고로케 등 먹거리를 파는 코너도 있다. 반갑게도 한국 김치나 조미료를 파는 상점도 있었다. 센다이 특산물 중 재미있는 것은 ‘굽은 파’였다. 이름 그대로 둥글게 휘어진 파. 파가 어느 정도 자라면 그 위에 흙을 덮어서 단맛을 강화시키고 모양을 잡는 것이 재배비법이다. 나베요리전골요리를 즐겨 먹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냄비에 넣기 쉽고 맛이 단 굽은 파는 인기가 높다. 

고백컨대 센다이에 도착하기 전까지 방사능 오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보란 듯이 파릇하고 싱싱한 야채와 생선들, 저녁 밥상에 그들을 올려놓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주부들을 보고 있자니 내 경계심이 그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를 좋아한다면서도 이번 여행에서는 식사에 회가 나올 때마다 찝찝하다며 손도 대지 않는 일행을 보면서 내 마음이 불편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생굴이든 회든 망설임 없이 먹어치웠던 내게 가장 어려웠던 음식은 사실 센다이의 ‘베코 마사무네’ 식당에서 먹은 ‘규탄’이었다. 없어서 못 먹는다는 센다이의 명물, 소혀 구이다. 소혀를 숙성시켜 밑간을 한 뒤 철판에 구워낸 규탄은 쇠고기와 간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식감에 고소한 끝맛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미군 부대에서 폐기처분 하는 부위 중에서 일본인들이 취한 것이 소혀였다. 옆에서 누군가가 ‘딱 소혀 모양이네’라고 김을 빼지 않았다면 두 번째 한 점, 세 번째 한 점에 손이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여성들이 남긴 규탄을 남자들은 사케를 곁들여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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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푸루센다이 순환버스 앤티크한 외모에 먼저 반하게 되는 시티 투어버스로 센다이역에서 출발한다. 1회 탑승권은 250엔. 종일권은 600엔이다. 어린이 요금은 각각 130엔, 300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중 20분 간격, 주말에는 30분 간격으로 도시의 주요 지점을 순환한다. 

센다이 사사카마보코 규탄과 함께 가장 유명한 센다이의 먹거리로 흰살 생선을 다져서 대나무 잎 모양으로 구워 낸 쫄깃한 어묵. 치즈 등 섞는 재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한데 가네자키 벨 팩토리에서 어묵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문의 www.kanezaki.co.jp


잃었으나 사라지지 않은 것 

센다이 시내를 벗어나 혼 시오가마역 근처 선착장에서 배를 탔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마저 거셌지만 258개의 작은 섬이 떠 있는 마츠시마만의 다도해 사이로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바람과 파도에 풍화되어 어떤 섬은 모자를 쓰고 담배파이프를 문 남자를 닮은 것도 있고, 파도가 칠 때마다 종소리가 난다는 섬도 있었다. 크기도 각각이라 새들만 발을 딛을 수 있을 만큼 작은 것도 있었고, 어떤 섬의 바위 끝에는 강태공들이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일본어와 한국어 안내 방송이 교대로 흘러나왔다. 그만큼 일본 3경 중 하나인 마츠시마만을 유람한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 회복되지 않는 것은 관광객의 숫자만이 아니었다. 260개의 섬 중에서 2개가 해일에 파손됐다. 

50분 정도의 유람을 마치고 도착한 마츠시마 해안지구에는 인파가 넘치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몇분 거리에 있는 즈이간지절에는 유난히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의 국보라는 것 외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즈이간지 참배길 양옆에 도열한 100~400년 수령의 삼나무 숲을 곧 베어낼 예정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넘어온 해일의 여파로 염수에 특히 약한 삼나무들은 껍질이 붉게 변해 이미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그나마 벼랑쪽 참배로의 석굴과 불상들이 손상을 입지 않아서 다행이다. 전성기에는 3,0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수행했을 정도로 규모가 컸던 즈이간지절에는 스님들이 생활했던 석굴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주변으로 많은 불상들이 세워져 있다. 좀더 햇볕이 잘 드는 2층의 석굴도 있고, 모래를 덮으며 사용했다는 공중 화장실용 석굴도 보였다. 일본에는 33관음성지를 모두 순례하면 무병장수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중 하나인 즈이간지절에도 연중 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 즈이간지절의 국보 지정에는 사찰이지만 성의 역할과 구조를 가진 특이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구리선종사찰의 부엌을 일컫는 말의 굴뚝을 높이 올려서 마치 성의 천수각처럼 적을 감시하는 망루역할도 겸했다고 한다. 지금 센다이성은 건물 하나 없이 그 성터만 남아 있는데 즈이간지절은 대지진 때도 기와 한 장 깨지지 않았다니 선견지명이 있었나 보다. 일본인들이 33이라는 숫자를 특별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국보 고다이도 사당五大堂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당 안에 모신 5대 명왕상은 33년에 한번씩 올리는 제사 때만 공개하는데 가장 최근이 6년 전이었다고 했다. 이생이 아니면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으니 불교도들의 마음은 여유롭다. 2개의 빨간 다리를 조심조심 건너는 재미, 그리고 멋진 바다풍경만으로도 족한 곳이다. 

도도한 물은 알고 있다 

미야기현 북쪽의 오사키 지역에 위치한 나루코鳴子온천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첫째는 온천백화점이라는 별칭이다. 일본에서 나오는 11가지의 온천수 중에서 9가지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 1,100년 전에 만들어진 온천 마을에는 200여 개의 원천이 있는데 원천마다 천공의 깊이가 달라서 단층별로 성분이 다른 온천수가 나온다고 했다. 

나루코에서 유명한 또 한 가지는 일본 전통공예품인 고케시다. 어린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고케시는 팔, 다리가 없이 머리와 몸통만으로 이루어진 나무 인형인데 지금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수집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나루코에는 1877년부터 대를 이어 고케시를 제작해 온 공방이 있는데, 마침 고케시 장인 세이시 오카자키씨가 아내와 함께 기꺼이 시연을 보여 주었다. 도호쿠 지역 어디를 가도 고케시를 볼 수 있지만 머리를 회전시킬 수 있는 것은 나루코 코게시밖에 없다. 힘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하는 마음을 담아야만 고운 모양이 나온다는 그런 수공예품이었다. 

나루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기차로 이동한 야마카타현 후루구치역 근처에는 작은 배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체 229km의 모가미강에서 12km를 잘라내어 따라가는 모가미강 뱃놀이다. 육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헤이안 시대에 쌀이나 홍화 등을 싣고 북쪽으로 올라갔던 배들이 옷감이나 인형 등을 되싣고 내려오던 뱃길이었다. 하지만 뱃길이 항상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겨우 내내 하룻밤 만에 3~4m 높이로 쌓이곤 했던 눈이 봄이 되어 녹기 시작하면 수위가 한없이 높아지고 급류가 형성되곤 했다. 지금도 5월이 되면 일본 3대 급류로서의 면모가 제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모가미강 뱃놀이는 전천후다. 여름에는 지붕을 말아 올려 시원한 바람을 통하게 하고, 겨울에는 코타츠(탁상난로)를 설치하고 담요를 나눠 준다. 평균수심 2m,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13m 정도다. 연어, 장어, 잉어가 많은 1급수로 1m 이상의 큰 잉어들이 잡히기도 한다. 10분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중간 선착장에서는 불에 구운 은어꼬치구이를 1마리 400엔에 맛볼 수 있다. 지루해질 때쯤이면 뱃사공의 창이 터져 나온다. ‘그 여자가 없었으면 사공이 되지 않았어요~’ 일본의 3대 뱃노래 중 하나다. 앵콜 요청에 흥이 오른 아줌마 뱃사공은 8월에 열리는 하나가사 축제의 노래에 이어 보너스로 우리 민요 ‘달타령’을 서툰 발음으로 불러 주었다. 힘껏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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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시마만 유람선 마츠시마만 일주 코스와 시오가마행 코스가 있는데 둘 다 시간은 50분 정도 소요된다. 성인 요금을 기준으로 1층 선실 1,400엔, 2층 선실 2,000엔, 3층 선실 2,800엔  문의 0223-65-3611

나루코 온천순례입욕패 센다이에서 1시간 30분쯤 걸리는 나루코 온천은 역에서 내리면 바로 온천 거리가 시작된다. 최소 2개, 최대 6개의 온천을 이용할 수 있는 입욕패는 1,200엔. 입욕패를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싶다면 1,500엔짜리 패스를 구입하면 된다. www.naruko.gr.jp 

나루코 쿠리단고 밤으로 만든 쿠리단고는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간식이다. 유통기한이 단 하루이기 때문에 하루에 300세트만 만든다. 쿠리단고가 인기를 끌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밤만으로는 모자라 지금은 전국에서 밤을 들여오고 있다.

모가미바쇼라인관광 야마가타신칸센의 종점 신조역에서 내려 리쿠오우니시센 사카타행으로 갈아타고 후루구치역에서 내리면 도보 5분 거리에 선착장이 있다. 선상에서 먹을 도시락도 별로도 주문할 수 있다. 요금 편도 1,970엔, 왕복 2,600엔  문의 0233-72-2001 www.blf.co.jp


모가미강 뱃놀이의 선장 중 가장 젊다는 산빼씨는 급류를 피하는 기술을 지녔고, 아줌마 뱃사공 하루미씨는 일본 3대 뱃노래를 멋지게 불러 주었다


아주 오래된 온천 이야기

해발 1,600~1,800m 높이의 봉우리 8개가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있는 자오연봉은 원래 에머랄드빛 칼데라호, 겨울에 10m 이상 세워지는 설벽, 스노 몬스터라고 불리는 기이한 모양의 수빙으로 유명한 스키여행지이자, 여름 트레킹의 메카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키마니아가 아닌 사람들은 자오라는 지명에서 온천을 더 인상 깊게 기억할지도 모른다. 우윳빛 물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높은 산도. 금속 액세서리를 그대로 하고 들어갔다가는 변색을 각오해야 한다. 1900년에 개장해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인 자오藏王온천에는 지금도 매일 8,700톤의 원천이 솟아난다. 1716년에 문을 연 고급 료칸 미야마소 다카미야(0236-94-9333)에서도 건물 뒤쪽에서 나오는 원천을 24시간 그대로 흘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자오에서 가장 비싼 이 료칸은 객실마다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른 복층 구조라서 손님을 위한 방을 따로 내어 줄 수도 있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가이세키요리는 각 료칸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 8개의 료칸을 운영하고 있는 다카무라 그룹의 명성은 미야마소 다카미야 료칸의 요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의 고지대에 위치한 공용 대노천탕 역시 산에서 내려오는 온천수를 바로 사용하는 곳이다. 입욕료는 불과 450엔. 마음먹고 훔쳐본다면 남탕이든 여탕이든, 내부를 흘낏거릴 수 있을 만큼 보안이 허술하다는 점만 빼면 부러운 호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현지인들은 훔쳐보지도 않고, 봐도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야마가타시에서 멀지 않은 오바나자와시의 긴잔銀山온천마을은 400년 전 은광에서 태어났다. 한여름에도 14℃를 유지하는 서늘한 은광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한 온천수. 그 물이 모락모락 연기를 뿜는 긴잔가와 강변을 따라 다이쇼 시대1912~1926년에 만들어진 3~4층 규모의 목조 료칸들이 줄지어 있다. 마을 규모는 크지 않아서 총 13개의 료칸 중 11개는 강변에, 2개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숙소가 많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당일 코스로 방문하는데 마을 안쪽까지의 거리는 불과 300여 미터다. 각 료칸에서 놓았다는 9개의 다리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을이 끝나고 시원한 물줄기를 12m 아래로 떨어뜨리는 시라가네폭포가 나온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밤이면 노란 불로 색다른 정취를 선사한다는 가스등들. 그리고 회벽 위에 그려 넣은 벽화들이었다. ‘고테에’라는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이 전면부를 모두 덮고 있는 오래된 료칸 건물은 마치 미술관의 액자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에 비하면 하룻밤 숙박료가 3만엔이 넘는 후지야 료칸藤屋旅館은 찾기 어려울 만큼 수수한 외관을 지니고 있었다. 네즈 미술관, 산토리 미술관을 디자인한 유명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곳으로 아쉬운 대로 그의 건축을 느껴 보고 싶다면 마을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공용탕을 방문하면 된다. 공용탕은 300~500엔 정도의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1 짧은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약수에 담가 두었던 오이와 자두를 달게 먹었다 2 100년 전 온천 마을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긴잔온천 3 자오온천 최고급 료칸인 미야마소 다카미아에서 준비한 화려한 가이세키 요리 4 노천 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있는 긴잔온천 안내소의 가이드 도즈 나오꼬씨 5 트레킹 코스를 설명하고 있는 가미노야마시온천 쿠어오르트 협의회 소속 가이드 게이코씨



과학으로 걷는 쿠어오르트 워킹 체험 

휴식과 보양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처방이다. 이런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돌아온 사람들을 야마가타현 가미노야마시의 쿠어오르트Kurort 워킹 체험에서 만났다. 몸풀기 체조는 기본이고 의료용 기계로 맥박을 재더니 스트레스 지수를 책정한다면서 혀를 내밀어 보라고 하기도 했다. 가미노야마시는 일본에도 아직 생소한 개념인 쿠어오르트를 도입하기 위해 2년 전 20여 명을 선발해 독일 뮌헨 대학으로 연수까지 보냈다. 독일어로 쿠어kur는 치료, 요양을 뜻하고 오르트ort는 장소를 뜻한다. 독일에는 국가에서 지정한 쿠어오르트가 2,000여 곳 이상이고 의료보험까지 적용된다. 이 종합의료복지 제도에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곳이 일본이고 그중에서도 가미노야마시였다. 자오연봉의 일부와 낮은 산, 분지 지형, 온천을 포함하고 있는 가미노야마시는 30분 만에 해발 180m의 평지에서 1,000m의 고지로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추고 있다. 소위 ‘기후성지형요법’에 유리한 환경을 갖춘 셈이다.

 쿠어오르트협의회에서 나온 귀여운 가이드 게이코양을 따라 몸을 풀고 자오온천스키장에서부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표고 1,100m에서 시작하는 트레킹. 힘들이지 않고도 2배의 워킹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원래는 6.8km를 걷는 하루 코스지만 일부를 생략하고 샛길을 통해 길 중간으로 접어들었다. 해발이 높아지자 어느 순간 삼나무가 사라지고 느티나무가 펼쳐졌다. 세 줄의 곰 손톱자국이 선명한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다 보니 바위 덤불 사이로 부처상들이 웃고 있기도 했다. 나무 이야기, 동물 이야기, 그리고 트레킹과 건강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들.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또 멈추어 다시 심박수를 재기도 했다. 맥박이 너무 빨리 뛴다면 운동을 잘 한 것이 아니다.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 올라가면서 얼음 약수에 넣어 두었던 오이와 자두를 꺼내서 한입 무니 벌써 한 열 배쯤은 건강해진 것 같다.
그 건강한 느낌을 더 풍족하게 채워 준 것은 야마가타 베니노쿠라(www.beninokura.com)에서 먹은 2,500엔짜리 ‘소바고젠’이었다. 붉은 염료로 사용되는 홍화가루 사업으로 거부가 된 마루타니 하세가와씨의 창고를 지자체에서 구입해 레스토랑, 갤러리, 기념품점, 카페 등으로 개조한 곳인데, 이곳의 메밀국수 가게 ‘베니산수이’는 홍화가루를 넣어 붉게 반죽한 소바로 특히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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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어오르트 워킹 체험 야마카타에서 30분 거리, 센다이에서는 1시간 거리다. 겨울에는 센다이에서 자오온천까지 직통버스가 운행되기 때문에 찾아가기가 더 편리하다. 체험료는 1인당 500엔. 가미노야마시온천 쿠어오르트 협의회에 문의하면 가이드 동행 트레킹을 할 수 있는데 5명 기준으로 1만2,000엔이다. 코스는 총 8개, 한국인 가이드도 있다. 문의 0236-72-1111 www.zao-kaminoyama-de-kenko.com 

긴잔온천 서서 먹는 두부 관광안내소 근처에 위치한 100년 된 노가와 두부가게에 가서  ‘서서 먹는 부두’를 주문하면 살살 녹는 두부를 소스와 함께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준다. 16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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