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는‘빵’을 굽다
타협하지 않는‘빵’을 굽다
  • 트래비
  • 승인 2012.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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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 빵집 이은영 대표

타협하지 않는‘빵’을 굽다

빵 구경은 즐겁다.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식빵, 묵직한 팥을 품은 단팥빵, 바삭바삭 노래하는 바게트, 울퉁불퉁 투박스러운 곰보빵 등…. 빵집에 가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연스레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먹음직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첨가물의 세례를 받았는지도 잘 안다. 무심코 놔둔 빵이 일주일 넘게 원상태 그대로 보존되는 것을 목격한 뒤론 의식적으로 빵집 출입을 자제했다. 빵 금단 현상이 절정에 달했던 날, 병원에 가는 마음으로 ‘나무 위에 빵집’을 찾았다. 

  구명주 기자   사진  박우철 기자

사 먹던 빵을 끊고 빵을 굽다 

이화여대 정문 앞에 자리잡은 ‘나무 위에 빵집’(이하 나·빵)은 이름만 빵집이지 ‘빵 연구실’에 가까웠다. 완성된 빵은 온데간데없고, 각종 제빵기구와 재료만이 곳곳에 진열돼 있었다. 이은영 대표는 “서서 인터뷰해도 되죠? 시간에 맞춰 빵을 오븐에 넣어야 하거든요”라며 양해를 구했다. 주방에서 미리 준비해 둔 반죽을 내오고 다시 시계 타이머를 맞추고 또 오븐에 빵을 넣으며 바삐 움직였다. 

빵을 키운 건 팔할이 버터와 계란이라 믿었건만, 이 빵집은 버터와 달걀을 일절 쓰지 않는다고 했다. 유기농 밀가루와 식물성 기름을 쓰며 트랜스 지방이나 화학첨가물은 당연히 멀리한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빵을 지향한다. 설탕과 쇼트닝, 생크림, 마가린 등 각종 유지류가 과하게 뒤범벅된 빵은 한국 빵이 아니다. “한국인이 바게트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누룽지와 비슷해서예요. 바게트는 속이 아니라 거죽을 먹는 빵이거든요. 그 거죽이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누룽지의 맛을 닮았어요.”

어깨너머로 봤을 뿐이지만 빵 하나 만드는 일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이토록 수고로운 일을 그녀는 왜 시작한 걸까. “빵을 먹고 싶어서 빵을 구웠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빵을 사 먹던 시절, 그녀는 빵을 먹을 때마다 항상 망설였다. 빵을 먹으면 속이 쓰렸고, 배가 더부룩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소화 장애가 더 심해졌다. 처음에는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정작 칼국수나 수제비는 먹어도 무탈했다. 계속된 고민 끝에 왜 빵을 먹으면 복통에 시달리는지 실마리를 잡았다. “문제는 첨가물이었던 거죠.” 

사 먹던 빵을 끊고 집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이왕 만들 거라면 쉽게 술술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빵, 내가 먹어도 괜찮은 빵을 원했다. 빵의 크기가 작아질 것을 각오하며 달걀을 뺐고, 설탕과 소금의 양도 조절했다. 특히 소금은 빵을 만들 때 필수 요소다. 이 대표의 말을 빌리면 ‘소금이 빠진 빵은 떡’이 된다. 보통 빵에는 밀가루 100g당 소금 2g이 들어가지만 이 대표는 0.5g을 덜었다. “0.5g이 작아 보이죠? 빵의 모양과 맛에 영향을 줄 정도로 상당한 양이에요. 설탕이나 빵에 녹아든 다른 물질이 소금의 맛을 숨길 뿐이지, 시중의 빵은 정말 짜요”라고 꼬집었다. 이미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에선 저염빵, 무염빵 연구가 활발하다고 했다.
“내일은 초콜릿이 들어간 빵을 만들까? 치즈가 들어간 거? 시금치도 말려 넣어 보자.” 빵을 굽고 나서는 침상에서도 머릿속으로 빵이 둥둥 떠다녔다. 연애 초기 그 사람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것처럼, 그녀는 빵 생각에 쉬이 잠들지 못했다. 행복한 불면증이었다. “지금 제가 만들 수 있는 빵이 100여 가지가 되는데, 모두 초창기에 굽던 것들이랍니다. 그땐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그 다음날 딱 그렇게 빵이 구워지더라고요. 이제는 공부해야죠.” 나·빵의 대표 메뉴인 ‘시금치 요구르트 치즈빵’도 그때 탄생한 것이다. 곱게 말린 새파란 시금치와 직접 만든 요구르트가 더해져 색감이 곱고 맛도 풍부하다. 



구운 지 2년이 넘은 바게트, 지금은 가게의 예쁜 장식품이 됐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있다 

이은영 대표는 빵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나누기를 꿈꿨다. 집에서 구운 빵을 지인에게 나눠주다 작업실을 차리기에 이르렀고 2008년에는 ‘열린 시식회’를 개최했다. 이 대표는 빵을 굽고 시식회 참가자들은 맥주나 와인을 들고 찾아왔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좁은 작업실에 모여 함께 따끈따끈한 빵을 공유하고 품평하며 또 자신의 일상을 풀었다. Companion친구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Companion의 어원은 ‘빵’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빵을 구우면서 친구가 생겼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아이만 키웠던 저를 사람들 사이로 끌어낸 거죠.” 빵이 잔잔했던 그녀의 삶에 물살을 일으켰다. 아내이자 엄마이기 이전에 이제는 ‘빵 굽는 이, 이은영’이다.    

도자기가 아니라 빵을 구워 다행이다. 이 대표는 “도자기 하는 분이 그러더라고요. 도자기는 어렵게 구워 와장창 깨부수기도 하고 창고에 쌓아두기도 하는데 빵은 그때그때 구워 먹어 치울 수 있으니 부럽다고요. 또 사람들은 빵을 좋아하잖아요?”라며 발랄하게 웃었다. 어디 도자기만 버릴까. 도장 찍듯 나오는 이 시대의 빵은 쉽게 버려지고 창고에 오랜 시간 쌓아 두기도 한다. 나·빵의 빵은 아니다. 100% 주문형이다. 주문형을 고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빵을 버리기 싫어서, 둘째 빵 먹는 사람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서. 이은영 대표는 주 고객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를 예로 들며 “제 빵에는 달걀과 기름이 기본적으로 빠져 있으니 비건이 먹기 좋아요. 탈지유만 안 쓰면 되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생각해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는 취향을 잃었다. 입이 자본에 길들여진 까닭이다. 

갑자기 못 견디게 나·빵의 빵을 주문해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대표는 일시적으로 주문 빵 제작을 중단하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빵을 굽다 보니 몸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이다. 손님을 위해 빵을 만들진 않지만 현재 베이킹 클래스는 꾸준히 운영 중이다. 또 그녀의 이름을 단 두 권의 베이킹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건강한 빵과 디저트를 소개할 예정이다. 그녀의 빵을 집에서 재연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오븐과 저울만 있으면 누구나 빵을 만들 수 있어요. 간과하기 쉽지만 저울은 참 중요해요. 계량에 따라 빵이 확 달라지거든요.”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재료, 이해하기 쉬운 방법을 책 속에 담을 테니 나에게 맞는 빵을 손수 만들어 보라 응원했다. 직접 만들어 먹는 빵도 좋지만 당신의 빵을 포기하기 싫다. “언제쯤 ‘나무 위에 빵집’의 맛있고 건강한 빵을 먹을 수 있느냐”는 사심 가득한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빵 굽는 사람은 빵을 구워야 하는 것 같아요. 책이 마무리되면 다시 빵집을 활짝 열어야죠.” 



1 이은영 대표는 빵 앞에서 정직하다 2 나무 위에 빵집의 빵은 한입 베어물면 고소한 잔향이 오래 남는다 3 달달하고 부드러운 단호박 흑미 찹쌀 빵 4 모양부터 눈길을 끄는 시나몬 타르트




‘나무 위에 빵집’ 베이킹 클래스 

이은영 대표처럼 몸에 좋은 빵을 직접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빵의 베이킹 클래스를 들어보자. 매주 1회 총 5회에 걸쳐 수업이 진행되며 매회 2가지 메뉴의 빵을 만들 수 있다. 수업시간은 화·금·토요일 오전 9시30분, 강습비는 40만원이다. 꾸준히 수업을 듣기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수시 접수가 가능한 ‘원데이 베이킹 클래스’를,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비즈니스 클래스’를 신청하면 된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 56-51 3층 나무 위에 빵집  문의 02-3142-9211 www.nap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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