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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에 대한 생각을 들어 메치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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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신용일 셰프

‘떡’에 대한  생각을 들어 메치다

세상에서 떡을 빚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족들의 영양을 위해 떡을 빚는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를 제외한다면 새로운 제조법, 예쁜 모양 등을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빵은? 거의 모든 국가의 마을, 골목에서 어떻게 빵을 맛있게 구울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반죽을 만들고 빵을 굽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신용일 셰프는 이런 상황이 아쉬워 오븐 대신 시루를 택했다. 떡의 발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신 셰프는 기존의 떡을 들어 메치고자 했다.

글·사진  박우철 기자 


신용일 셰프가 직접 빚은 카스테라 인절미, 팥 인절미, 증편(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개떡’ 같은 경우

애석하게게도 ‘떡’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빵은 다르다.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로 사랑받은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은 제목대로 빵을 굽는 사람이고,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도 파티셰다. 대중 드라마에서 빵과 빵 만드는 사람이 조명받을 만큼 한국에서 빵의 지지도는 상당하다. 그러나 떡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 심지어는 떡에 대한 홀대(?)는 이미 익숙해졌다. 단적인 예로 대학 커리큘럼을 봐도 그렇다. 대학에서 떡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례는 거의 없고, 심지어는 ‘국가 떡 자격증’도 없다. 우리의 전통 음식이고 보존할 가치가 너무나도 자명한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신용일 셰프는 ‘개떡’ 같다고 했다. 신용일 셰프는 운명처럼 떡을 만났다. 연세대학교에서 체육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코오롱패션에서 의상디자인을 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지화자’에서 일할 때 요리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프랑스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 여기서 떡과는 무관해 보이는 서양식 요리, 제빵 등을 배웠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식당 ‘고시레’에서 일하기 위해 일본 도쿄로 떠났다. 이어 스위스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셰프로, 잘나가는 한식전문 레스토랑에서 헤드 셰프로도 일했다.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궤적을 그리며 셰프라는 직함을 단 이 남성과 떡. 정말 운명이 아니라면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울 법하다. 그러나 이 둘은 단순한 만남에서 그치지 않고 애정의 대상이 됐고, 그전의 과정보다 더욱 골몰하게 됐다.


1 새하얀 벽면과 검정색 식탁이 대조를 이루는 남산 ‘카페 합’ 매장 2 작은 식기 하나에도 신용일 셰프의 감각이 드러난다 3 남산 ‘카페 합’의 입구

시루떡, 개명하다

떡의 역사가 우리 민족과 함께한다고 치면 그 발전은 무척 미미하다. 먹을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그만큼 변화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떡은 그런 조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신용일 셰프가 ‘합’을 차리게 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떡에 대한 새로운 시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발전이기보다는 외연에 치우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요즘에 떡케이크이라고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떡케이크이란 게 시루떡, 백설기의 모양을 둥글게 하고 위에 쌀가루를 뿌린 게 전부입니다. 겉모양은 화려해져 사람들을 현혹시키지만 결국 발전이 아닌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떡의 미래가 아닌 것이죠.” 그의 말대로라면 떡케이크는 떡이 발전한 결과물이 아니다. 다만 떡이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일 뿐이다. 이름도 떡에서 케이크로 개명한 것에 불과하다. 이에 신 셰프는 떡이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떡을 고급화시키는 데 앞장섰던 지화자가 문을 닫은 이후 그 고민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는 10년 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떡집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지화자에서 배웠다. 신세대 입맛에 맞는 인테리어와 떡을 출시해 당대 ‘파격’이라고 인정받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를 뛰어넘을 만한 혁신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빵은 다르다. 밀가루와 우유, 달걀 등을 섞어 반죽해 굽는 것이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꾸준히 발전해 오고 있다. “케이크를 예로 들어 보죠. 처음에는 버터크림케이크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음은 생크림케이크, 그 다음은 쉬폰입니다. 빵의 재료는 크게 변한 게 없지만 패러다임은 계속 바뀝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빵에 관심을 갖고 즐기기 때문에 계속 변하는 겁니다. 떡은 어떻습니까. 모양만 바뀝니다. 어머니 시절의 동그란 떡시루가 지금은 스테인레스의 네모난 시루로 바뀐 것 말고 어떤 게 있을까요.”

그래서 신 셰프는 시중의 떡집을 보면서 안타깝게 느꼈던 것들을 되새겨보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변의 제안에도 떡케이크를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떡이 있었어?’라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내세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떡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재료들은 거부합니다. 구미를 당기기 위해 첨가제를 쓰지 않고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유화제도 넣지 않습니다. 그렇게 ‘떡다움’을 지키고 발전시키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구닥다리’라며 어린이들에게 외면받는 일도 없을 겁니다.”

신 셰프는 윈도베이커리 전도사이기도 하다. 오는 12월1일부터 2일까지 신세계 본점에서 진행할 5번째 윈도베이커리 전시회 준비도 한창이다. 윈도베이커리는 상업적인 성격을 최대한 배제하고 철학과 역량을 담은 음식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셰프들이 운영하는 제과, 제빵, 병과점 등을 통칭한다. 윈도베이커리 셰프는 속이 훤히 보이는 유리 안에서 빵을 굽고, 떡을 빚는다. 첨가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 정직하게 빵과 떡 그리고 초콜릿을 만들기 때문에 가릴 게 없다는 것이다. 신 셰프가 2010년 1회 때 윈도베이커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소비자들의 입맛과 음식의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사람들의 입맛을 길들이고, 골목상권을 장악하면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알리는 것도 윈도베이커리의 중요한 목적이다. 성업 중인 인사동 ‘합’과 지난 7월 새로이 문을 연 남산의 ‘합 카페’ 모두 윈도베이커리의 전형을 보여 준다. 개방된 주방에서 셰프가 직접 떡을 빚는다. 부끄럽지 않은 재료와 조리 과정을 통해 떡이 나오는 만큼 숨길 게 없다는 것이다.



4 정갈하게 낱개 포장된 증편 5 팥 인절미, 카스테라 인절미와 함께!


인사동·남산에서 만나는 ‘합’

세세대대로 떡이 이어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신용일 셰프가 만든 떡집. 현재 서울 인사동 1호점과 지난 7월 서울 남산에 2호점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메뉴는 달콤하게 입에서 녹는 팥빙수, 고소하고 부드러운 콩 인절미와 카스테라 인절미, 주악 등이다. 남산 합은 향후 한식 요리도 선보일 예정이다. 남산점은 발렛파킹 가능.

인사동점┃주소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8-31 사이에 빌딩 1층  문의 070-4209-0819
남산 CAFE점┃주소 용산구 이태원동 231-36 2층  문의 070-7532-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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