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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IAN]소리 모으는 시인 성기완-일상의 소리, 그 신선함을 그러모으다 "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11.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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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리,
그 신선함을 그러모으다 

3호선버터플라이의 새 앨범이 나왔고, 기타리스트 성기완은 그보다 앞서 시집 <ㄹ>을 냈다.
시집은 2장짜리 앨범과 함께 나왔다. 앨범에는 ‘낭독의 발견’ 같은 달콤한 시낭송은 없다.
노동집회 현장의 소리, 사람 북적이는 시장 소리, 휴대폰 진동 소리가 배경음향으로 깔리고,
시를 낭송하는 나레이터는 혼이 나간 듯한 목소리거나, 시를 읽다가 발음을 틀려 키득거리기까지 한다.
이렇듯 너무 일상적이어서, 너무 하찮아서 낯선 소리들에 천착하는 ‘소리 채집꾼’ 성기완을 만나 봤다.  

  최승표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뜻을 버리고 일상을 택한 시와 노래 

왜 하필 ‘ㄹ’일까? “우리말 자음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게 ‘ㄹ’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ㄹ> 속 시들은 아름답다고 말하기가 영 어렵다. 성기완은 ‘확실한 텍스트’, 그러니까 뜻이 명확한 말들에 대한 앙심을 품고 시를 쓰고, 시는 뜻을 버림으로 우리의 일상을 환기시킨다.

듣는다는것은무언가내게닿은것을느끼는것이다
본다는것은무언가저기있다는것을알아차리는것이다
물고기는측선으로듣는다
그것은몸이귀라는뜻 몸으로들어보자
-<musicdrivesmecrazt2> 중

성기완의 작품은 그것이 시든, 노래든 항상 ‘전위적인’, ‘실험적인’이라는 형용사를 달고 다닌다. 이번 시집은 2장짜리 시디가 담긴 앨범 <Sonicwallpaper4poetrybook>과 함께 발매됐다. 시집을 위한 음반, 음반을 위한 시집이지만 굳이 함께 듣지 않아도 되는 개별적이면서 유기적인 작품들이다. 이전 시집 <당신의 텍스트>를 <당신의 노래>라는 앨범과 함께 발표한 것처럼 성기완은 텍스트와 노래가 분리될 수 없는 요소임을 꾸준한 실험과 실천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한 곡의 노래(혹은 한 편의 시)는 여행과 흡사한 구조를 가진다. 떠남이 있고, 돌아옴이 있고, 여유와 긴장감이 교차하는…. 그러나 성기완의 시와 음악은 익숙한 여행의 방식을 거스른다. 기승전결을 거부한 음악,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도통 맥락이 파악되지 않는 언어의 나열 앞에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끼기 일쑤다. “제 시와 음악이 뚱딴지 같다고요? 그냥 일상의 소리를 담으려는 것뿐이에요. 여름 내내 들었던 선풍기 소리는 음정이 없잖아요. 반면 아이돌의 히트곡처럼 상업적인 음악들이 훨씬 일상과 거리가 먼 작위적인 소리들이죠. 이것이 아이러니죠.” 노이즈로 치부되기도 하는 그의 작업은 결국 시와 음악에 대한 통념을 겨냥하고 있다. <ㄹ>의 음악앨범은 불편한 소리들의 집합체이지만 중간중간 서정적인 노래들도 섞여 있다. “우리가 맨날 소음에 둘려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가끔은 ‘멀쩡한 노래’도 들으니까요.”

블루스의 기원 찾아 아프리카 말리로 가다  

시인 성기완이 급진적인 언어 실험을 한다면, 로커·기타리스트 성기완은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들과 대화하듯 즐기며 음악을 한다. 물론 밴드 음악에서도 ‘소리 실험’은 유효하지만 어디까지나 멤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진다. 성기완 스스로 ‘배가 산으로 가는 음악’이라고 규정한 그들의 노래는 실험과 공감의 노를 저으면서 음악 듣는 이들을 산 속으로, 산 꼭대기로 인도한다.  

그래서일까? 3호선버터플라이의 음악은 여행하면서 듣기 좋다. 말랑말랑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지만 보컬 남상아의 지친 듯한 목소리가 피곤한 여행자를 동정하는 것 같고, 엉뚱한 노랫말은 일상을 벗어난 기분과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이에 대해 성기완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말을 빌려 답했다. “출발점을 회상하게 만드는 게 음악의 본질이죠. 노래마다 그 힘의 깊이나 진폭이 다를 수 있지만 3호선버터플라이도 궁극적으로 그것을 추구합니다.” 

성기완은 음악의 기원을 찾아 서아프리카의 말리까지 갔을 정도로 소리를 채집하는 데 천착한다. “퍼질러 있는 것을 좋아하기에 여행을 잘 다니지 않아요. 그런데 블루스(록 음악의 기원이 되는)의 원형을 찾아 말리를 가봤죠. 가 보니 블루스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즐기는 테크노, 댄스 음악의 원형까지도 그곳에 있더라고요.” 그의 소리 채집은 ‘우리 것’에도 닿아 있다. 소리 보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사운드아카이브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최근 덕수궁에서는 조선시대 궁중소설을 현대어로 번역해 방송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홍대 인디신의 태동기부터 음악을 해온 성기완은 기타리스트, 시인, 사운드 아티스트, 번역가 등 다채로운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허나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것은 ‘시인’이다. “시인으로서 ‘언어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 ‘언어의 최전방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을 할 때도 시인의 태도로 임합니다.” 그가 말하는 ‘시인의 태도’란 세상을 밖에서 바라보는 ‘결별의 태도’, ‘머뭇머뭇하는 태도’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오갔던 어떤 다른 말보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단단한 느낌으로 답했다.

3호선버터플라이 <dreamtalk>
8년 만의 정규 앨범으로, 서정성과 노이즈가 결합된 사운드에서 성숙미가 느껴진다. ‘쿠쿠루쿠쿠 비둘기’, ‘스모우크핫커피리필’ 등 시집 <ㄹ> 속 시들이 노래로 만들어졌다. | 미러볼 뮤직
시집 <ㄹ>  시의 경계를 넘어 ‘사운드 아트’라 할 수 있는 시집으로, 트위터 문장, 광고 카피까지 활용한 언어 실험과 키치가 돋보인다. | 민음사



성기완  1994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 <당신의 텍스트> 등과, 산문집 <장밋빛 도살장 풍경>, <모듈>을 발표했다.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로 지난 9월 <Dream Talk>라는 앨범을 냈다. 소리 보관 프로젝트인 ‘서울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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