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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IAN]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흘러간 노래, 그 황홀한 사운드에 대한 동경"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11.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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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흘러간 노래, 그 황홀한 사운드에 대한 동경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정서로 기타를 연주하는 하세가와 요헤이.
그는 솔직하고 진중하고 겸손했다. 그저 음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국에 왔고,
그저 60~70년대 한국 음악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연주를 할 뿐이라 한다.
한국생활 17년차, 그는 더 이상 ‘외국 손님’이 아니지만
여전히 이방인의 자세로 낯선 시선을 견지한 채 소리여행을 하고 있다.   

  최승표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록의 본고장에서 변방으로 건너오다  


그를 처음 본 것은 TV에서였다. 한국 음악에 꽂힌 한 일본 청년의 이야기였는데, 인터뷰는 구수한 분위기의 곱창전골집에서 이뤄졌다. 음악이 아닌, 곱창 때문에 한국에 온 청년 같았다. 당시 하세가와는 밴드 ‘곱창전골’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신문이든 TV든 모든 인터뷰는 보글보글 끓는 곱창을 앞에 두고 했었죠. 덕분에 곱창 하나는 원없이 먹었습니다.”   

어느덧 한국생활 17년차에 접어든 하세가와는 곱창전골의 맛보다 더욱 구수하고 얼큰하게 우려낸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허나 그는 ‘한국적인 기타 연주’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처음 영국에서 신중현, 김창완 선생님(그는 이 두 명의 대가에게 철저하게 존칭을 썼다)의 음악을 듣고, 그 독특하고 세련된 소리에 반해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그 소리들을 동경할 뿐 ‘저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동경하는 비틀즈의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서’라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그 문화의 공기를 맡으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거의 완벽에 가깝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하세가와가 절대 작사에 도전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세가와는 ‘한국 정서’라는 유전자가 없음에도 한국 록신에서 꽤나 인기 있는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황신혜밴드, 뜨거운감자, 김창완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고, 지금은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윤도현밴드, 델리스파이스와도 여러 차례 협연했다. 하세가와만한 한국 기타리스트가 없다는 말인가? “저보다 기타를 잘 치는 이들은 많아요. 하지만 제가 만드는 톤tone의 특성을 인정해 주고, 연주 자체보다 제 아이디어를 좋게 봐 주시는 것 같아요. 김창완 선생님은 저만큼 당신의 음악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며 함께하자고 하셨죠.”  

하세가와는 요즘 ‘정서’에 묻어나는 음악의 힘을 해외에서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최근 미국 여행 중 뮤지션들과 교류할 일이 있었어요. 블루스blues와 펑크funk를 연주하니 그런 것 말고 다른 것을 보여 달라더군요. 한국에서 늘 연주하던 싸이키델릭을 ‘쫄지 않고’ 연주해 봤죠. 그랬더니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냐며 감탄하더라구요.” 그가 동경하는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사운드에 오랜 기간 실험하고 축적한 멜로디와 리듬이 덧입혀져 그만의 색깔이 다져진 것이리라.

돌멩이처럼 무심하고 단단한 음악 

‘록의 본고장’ 영국에서 ‘록의 변방’ 한국으로 홀린 듯 건너와 20년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세가와를 붙잡고 있는 것은 단지 한국 음악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언젠가 한국을 떠날 수도 있으며, 다음 정착지가 뉴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에게는 낯선 것에 끌리고 방랑하는 이방인의 DNA라도 있는 것일까? 

하세가와는 ‘돌멩이처럼 사는 게 꿈’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흡사 도를 깨친 철학자 같은 하세가와의 이런 태도는 음악인으로서, 또 일본인으로서 쉽지 않은 한국생활을 하는 데도 중요한 바탕이 된다. “한국에서 일본인으로 사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럼에도 한국인들의 따뜻하고 ‘귀여운’ 면을 많이 보려 노력해요.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술자리에서 시비를 걸어온 아저씨가 있었는데, 신중현, 산울림의 음악이 좋아 한국에 왔다니까 술값을 다 내주고는 노래방까지 같이 가자고 하더라구요. 너무 귀엽지 않나요(웃음)?” 하세가와의 한국생활에 대한 숱한 에피소드는 이런 식으로 마무리됐다.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고생하고, 황당했는데, 너무 재미있고 귀엽지 않나요?”  

돌멩이가 되고픈 하세가와는 사소한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여행자이기도 하다. “주로 음악 때문에 한국의 지방이나 해외여행을 갈 때면 유명 관광지는 절대 가지 않아요. 쟁반만한 스테이크를 천천히 다 먹어치우는 미국 꼬부랑 할머니, 식당에서 조잘대며 부부싸움을 하는 일본 부부…, 저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는 게 재밌어요.”

음악인 하세가와는 아직까지 한국 록신에서 실험해 보고 싶은 게 많다. 한국의 음악은 혹은 음악인들은 역동적이고 빠르지만 획일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게 하세가와의 지적이다. “한국 뮤지션들은 배운대로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레코딩부터 기타 사운드를 잡을 때도 일부러 거꾸로 가곤 해요.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들을 때가 많은데 저는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세가와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도 당시엔 이해 못할 음악들이었을 터. 돌멩이처럼 무심하고 단단하게 음악하는 하세가와도 언젠가 우리의 ‘전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제작한 미미시스터즈의 앨범 제목,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거야’처럼.

미미시스터즈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거야’
하세가와 요헤이가 최근 프로듀서로 참여한 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에 안무 겸 코러스로 참여한 미미시스터즈는 이 앨범에서 사이키델릭, 블루스, 펑크 등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했다.┃붕가붕가레코드


하세가와 요헤이長谷川陽平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95년 국내에서 밴드 ‘곱창전골’의 멤버로 시작해 ‘황신혜밴드’, ‘뜨거운 감자’, ‘김창완밴드’ 등을 거쳤으며 현재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객원멤버로 활동 중이다. 프로듀서로서 ‘장기하와 얼굴들’, ‘미미시스터즈’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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