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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두드리는 걷기여행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2.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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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trekking 
마음을 두드리는 걷기여행

자극적인 감칠맛을 배제하고 제철음식으로 소담하게 차려진 밥을 한술 뜨는 것 같다.
투박한 흙내음 한 숟가락에 시원한 바람 한줌 곁들인 걸음걸음이 피로물질을 날려버렸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양보라 기자   

강원도 영월 산꼬라데이길
천공의 마을 속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현실과 허상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를 담아내는 데 천부적이다. 그의 애니메이션에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캐릭터들이 ‘이곳’과 다른 ‘저곳’을 오간다. 생경한 경험과 모험에 빠져 넋을 잃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덧 현실인, 그가 만든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산길을 굽이굽이 건너 천공의 마을을 찾아갔던 영월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김삿갓면 산꼬라데이길을 걷는 여행은 ‘저 세계’로 들어가는 여정과 같이 길고 험난했다. 산골짜기를 뜻하는 강원도 토속어가 그대로 길 이름으로 굳어졌을 만큼 길은 영월의 깊숙한 골짜기 안에 숨어 있다. 내로라는 도사들도 울고 갈 꼬부랑 산길을 따라 국내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14개의 언덕이 이어지는 하늘강길을 거슬러야 산꼬라데이길 걷기 여행의 시작점인 광부의 길에 다다를 수 있다.

길은 그 자체로 호젓했다. 잣나무, 편백나무, 소나무가 뒤섞여 향긋한 숲길 특유의 내음을 만들어냈다. 석회질의 기름진 땅을 딛고 숲은 울창했다. 닿는 발길마다 점점 거뭇해지는 흙빛. 거대한 폐광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폐광의 압도적인 규모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상상에 불을 지핀다. 광부를 기리는 동상을 지나고 그들이 목을 축였을 우물을 건너고 아직도 시원한 바람이 밀려오는 갱도 입구를 지나며 석탄 채굴로 번성했던 영월로 빨려 들어간다. 

이 길은 광부들의 출근길이자 퇴근길이었다. 바짓단에 한 가득한 석탄가루를 풀풀 날리며 걸었을 그 길이다. 반면 남편을 탄광촌으로 떠나 보냈던 아내들은 설렘과 눈물로 걸었던 길이다. 타지에서 남편을 찾아 온 아내들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이내 어스름이 깔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면 이 외로운 산 속에 혼자 사는 남편이 불쌍해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게다. 하지만 곧 아내들의 슬픔은 놀라움으로 치환됐다. 산꼬라데이길 끝에 거짓말처럼 불야성의 도시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었다. 영월의 탄광촌은 1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급이었다. 광부를 상대로 한 간판 없는 술집들이 밤새 불을 밝히고 극장, 우체국까지 갖춘 신세계였다. 그리고 1989년, 광산은 문을 닫았다. 

시끌벅적함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 길 끝에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마을이 소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두어 시간 걷고 나면 구름이 머물고 간다는 ‘모운동’ 마을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난다. 1,000m 이상 고지대에 자리한 옛 마을에서 걷기 여행은 마지막을 장식한다. 길을 걸었더니 어느새 나타난 천공의 섬. 길을 드나들었던 그들의 발자국 위에 걸음 하나를 보태곤 아련한 길 여행이 저물어 갔다.


1 최신식 스파시설을 자랑하는 리조트. 단지 내 편의시설과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2 모운동 마을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 마을 주민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3 한가로운 풍광 때문인지 선뜻 1만명 이상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었다는 점을 상기하기 어렵다

▶travie info
추천숙박지 동강시스타 2011년 5월에 개장한 따끈따끈한 리조트. 모든 객실에서 동강이 감싸 흐르는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콘도뿐만 아니라 골프장과 겨울철에도 이용 가능한 실내·외 힐링스파를 갖추고 있어 지역 주민이나 여행자에게 인기가 높다. 24평형 패밀리룸 1박 가격이 10만원 선.
주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 108  홈페이지 www.cistar.co.kr



강원도 영월군 산꼬라데이길 
산꼬라데이길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간면에 2011년 조성된 도보길이다. 총 27km에 달하며 코스 대부분이 해발 700m 이상의 산길이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조성됐기 때문에 초보자도 걷기 쉽다. 예밀마을, 하늘강길, 모운동에서 도보 여행을 시작하면 편하다. 대중교통으로 닿기 힘들기 때문에 시작점까지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경상북도 봉화군 외씨버선길
싱그러운 운율감으로 걷다     

속도전에 매몰돼 파노라마식 여행을 해 온 사람들은 거대한 규모에만 몰입하기 바쁘다.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최대, 최고의 수식어가 없는 봉화의 심심한 첫인상. 그저 그런 감흥이 일었다. 울렁울렁 이어지는 능선, 골골골 흐르는 청정 물빛이 일렁거려도 달리는 차창 밖의 그림일 뿐. 우당탕탕 돌길을 굴러 가느라 갸우뚱거리는 차 안에서 기진맥진한 탓인지 시큰둥한 태도는 좀처럼 가시지 못할 참이었다. 

기지개를 쭈욱 켜고 드디어 땅을 밟으니 시각보다 후각이 기민하게 반응했다.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가 내뿜는 향기 덕에 심신이 싱그러웠다. 강원도부터 경상북도까지 백두대간 일대에 조성된 도보길인 ‘외씨버선길’의 봉화 구간의 주인공은 단연코 쭉쭉 뻗은 소나무 군락지다. 먼 데까지 찾아온 여행자의 발걸음을 재촉하듯 봉화의 소나무들은 걷는 자의 등을 가볍게 밀어 줬다. 이 길의 소나무들은 유전자보호 대상으로 지정돼 보호될 만큼 질이 좋다. 금강산에서 자랐다고 해 금강송으로 불리고 현재 문화재 복원용으로 1,480여 그루가 관리되고 있다 한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나무들이라 그런지 대감집 주인처럼 위풍당당한 모양새다. 

미네랄 가득한 오전약수터의 약수로 목을 축이고 외씨버선길을 즐기기 시작했다. 일단 발걸음을 떼니 완만하게 떨어졌다가 잘록하게 모였다가 둥글게 올랐다가 유려하게 꺾이는 버선의 실루엣처럼 산길은 리듬감을 만들어냈다. 억지로 만든 길이 아니라 예부터 사람이 다진 산길을 조목조목 이었기에 느껴지는 운율이었다. 외씨버선길의 이름은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에서 따왔다는데 두둥실 가벼운 발걸음을 떠올리니 기막힌 작명 센스인 듯하다.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저절로 시구 한 소절을 읊조린다. 

걷기 여행의 백미는 감각들이 생동하는 순간들이다. 봉화에서 피톤치드 세례를 흠뻑 받곤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봉화의 이곳저곳을 걸어 본다. 웅장하고 장중한 맛이 느껴지는 산 중턱에 흐르는 백천계곡의 시원한 물소리, 적송에 둘러싸인 현불사의 종소리에 귀를 연다. 사박사박 발자국 소리, 나무 기둥 사이로 스치는 바람소리도 좋다.
외씨버선길을 걷는 이는 나빌레라. 큰 그림, 압도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달려왔던 일상. 속도를 줄이고 직접 땅을 딛고 작은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되찾는다. 

1 쭉쭉 뻗은 금강송을 벗 삼아 걷는 외씨버선길 2 열목어가 서식할 만큼 봉화의 계곡은 맑고 투명하다 3 봉화 현불사는 시간을 맞춰 가면 직접 타종할 수 있다 4 길 곳곳에 피어 있는 야생화 5 붉은 고추 빛깔이 늦가을 정취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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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숙박지 국립청옥산자연휴양림
2010년 오토캠핑전문휴양림으로 재개장한 국립청옥산자연휴양림은 산장, 물놀이장, 단체수련장, 야외데크 등을 갖추고 있어 가족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이다. 휴양림 내 소나무, 낙엽송, 잣나무가 빽빽하고 주변에 피는 야생화와 함박꽃나무가 장관이다. 8,000원 수준으로 매우 저렴한 캠프장 이용요금 또한 매력적이다.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13-64  홈페이지 www.huyang.go.kr


경상북도 봉화군 외씨버선길
외씨버선길은 총 13개 구간 241km로 이루어진 도보길이다. 내년 4월 완전 개통을 목표로 길 조성 사업이 마무리되고 있다. 2014년에는 백두대간수목원이 개장될 예정이다. 금강송 군락지인 영월, 봉화, 영양, 청송 일대를 잇는 사업이다. 봉화에는 보부상길, 약수탕길, 춘양목솔향기길 구간이 조성돼 있다. www.beosun.com


충남 태안 태배길
걸음마다 고맙다, 고맙다고 

맨손으로 독살에 갇힌 고기를 잡으며 소박하게 살던 마을. 군 작전 지역이라 개발은 더뎠지만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개발이란 명문으로 내어주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했던 작은 어촌. 그렇게 평화로웠던 개목 마을에 대재앙이 불어 닥친 것은 2007년 12월7일에 일어난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였다. 해안을 검게 뒤덮어 버린 1만톤의 검은 기름띠를 닦기 위해 당시 이 지역을 찾아온 자원봉사자의 숫자는 123만명. 지난 6월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자원봉사자대회에서 특별공로상을 받았을 정도로 태안으로 몰려든 봉사자들의 헌신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태배길은 그에 대한 보은의 마음이 담긴 길이다. 길이 없어 접근조차 어려웠던 해안가로 내려가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졌던 방제길을 정비해 산책길로 만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주었던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깨끗해진 바다와 자연을 확인할 수 있도록 2년여 동안 7억3,000여 만원의 예산을 들여 태안반도 서북단 해안을 한바퀴 도는 6개 코스를 완성한 것이 지난 여름의 일이다. 새로 낸 길은 아직 어색한 부분이 있지만 쭉쭉 뻗은 안면송과 리아스식 해안선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수려하기만 하다. 태안에서 가장 유명한 만리포 해수욕장에서부터 북쪽으로 이어지는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 해수욕장들. 그중에서 십리포가 태배길이 시작되는 의항 해수욕장이고, 일리포는 구름포 해수욕장이다. 

태배길이라는 이름은 당나라의 시선 이태백도 암석 절벽과 작은 곶들이 교차하는 그 비경에 반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2코스 초입에 그의 시비와 함께 이태백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 비경이 한때 죽음의 바다로 변할 뻔한 위기에 처했었다는 사실은 남아 있는 2개의 방제계단 근처에 설치된 안내문과 사진들로만 확인할 수 있다. 태배전망대 1층에도 당시 봉사자들의 눈물겨운 방제활동을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름 유출 사고 이전까지 마을의 주 수입원이었던 굴 채취는 여전히 할 수 없지만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와 홍고추 익어 가는 마을의 따사로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감사함이 ‘울컥’ 올라온다. 

길을 재촉하여 동쪽 해안으로 넘어가면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파도가 거친 서쪽 해안과는 달리 동쪽 바다는 잔잔하기만 하고 썰물 때는 넓은 갯벌이 드러난다. 이 지역에 독살이 가능한 이유도 바다로 떨어지는 산그늘이 짙고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 길은 한반도 안의 작은 반도, 그래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축소해서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태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생태탐방로다. 태배길은 이제 등을 엎드려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살아난 제 모습을 봐달라고 넙죽 절하듯 말이다. 123만명에 속한다면 말할 것도 없고, 그중 한 명이 아니라면 더더욱 가 보아야 할 길이다. 하마터전 우리가 잃어버릴 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하러 말이다.


 
1 태배길의 서쪽 해안은 힘찬 파도가 넘실거리지만 동쪽 해안은 잔잔한 해변이라 지금도 독살로 물고기를 잡는다
 2, 4 기름 유출 사고의 피해를 잘 넘기고 다시 평화를 찾은 개목마을 3, 6 태배길 전망대에 올라서면 이태백이 감탄했던 그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5 2코스 초입의 이태백 포토존




취재협조
  동강시스타, 경상북도 봉화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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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맛집 항포구횟집 태배길 트레킹이 끝나는 의항포구에 위치한 횟집. 광어, 우럭, 농어, 꽃게 등의 자연산 회를 취급한다. 특별히 멋을 내지 않지만 정성들여 만든 반찬들이 정감 있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매운탕이나 지리의 맛으로 우연히 찾아온 손님을 단골로 만들어 버리는 곳이다. 미역을 넣고 진하게 끊여낸 자연산 우럭 지리는 1인분에 1만2,000원.
주소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2구 294
문의 041-675-7134


충만 태안 태배길
태안군 소원면 의항 해변에서 시작해 북쪽 해안을 한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총 6.5㎞의 탐방로. 순례길, 고난길, 복구길, 조화길, 상생길, 희망길의 6개 코스로 나눠지며 제3코스 태배전망대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  5~11월 사이에는 갯벌체험과 독살체험을 개목마을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www.uih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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