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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빠진 영화맨] 스폰지ENT 조성규 대표-그가 강릉에 가면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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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을 셀 수 없이 밟은 남자가 있다. 좋은 영화를 사러 전 세계를 누비면서도 강릉 여행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만든 영화 두 편<맛있는 인생>, <내가 고백을 하면>에서도 주구장창 강릉을 말한다. 그의 영화를 본 관객도 하나 둘 강릉에 ‘퐁당’ 빠진다. 스폰지ENT 조성규 대표의 얘기다. 영화 사냥꾼인 조 대표는 영화를 수입하고 배급하고 제작·투자하는 길을 걸었다. 영화만 물고 뜯고 지지고 볶은 셈이다. 그러나 그와 이번만큼은 영화 말고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조성규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 ‘조제’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곳엔 스폰지ENT의 손을 거친 영화 DVD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영화 위에 파오를 짓다

강릉 바다가 그립던 밤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로 갈까, 청량리역으로 갈까 갈팡질팡하다 ‘광화문 스폰지하우스’로 갔다. 강릉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을 보며 헛헛한 마음을 다독일 참이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로 시작하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주인공 유정예지원이 읊는 장면에서, 내 눈에선 푹푹 눈이 날리는 것처럼 훅훅 눈물이 흘렀다. 어딘가 불완전해 보이는 강릉 여자 유정에게서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조성규 대표를 만나 다짜고짜 따졌다. 당신이 만든 영화 때문에 ‘강릉앓이’가 심해졌다고. 영화판에서 날고 기는 그에게 ‘여행’ 얘기를 하자고 졸랐다. 이왕이면 ‘강릉’으로 수다를 떨자고 못 박았다. 

여권이 무려 4개다. 블로그와 카페에서 쓰는 닉네임은 ‘파오’. 몽골 유목민의 전통 가옥인 ‘게르’ 를 일컫는다. 조 대표는 영화 <인 디 에어원제 : Up in the Air>를 들먹였다. 주인공 조지 클루니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회사를 대신해 직원을 해고한다. 떠돌이인 그에게 집은 호텔 방이거나 비행기 좌석이다. 오랜 시간 떠돌다 돌아온 ‘진짜’ 집은 당연히 ‘휑’. 그러나 ‘트렁크’ 하나면 충분한 삶을 조 대표는 동경한다고 했다. 1년에 한 번꼴로 이사한다. 잦은 이사는 대개 타의적이기 마련인데, 그는 자의적으로 떠돈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움직일 때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사는 삶을 가볍게 하는 거창한 작업이다. 

조지 클루니는 누군가를 해고하기 위해, 조성규 대표는 영화를 잡으러 다닌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0년경부터 그는 본능적으로 2월이면 베를린으로, 5월이면 칸으로, 8월이면 베니스로 떠난다. 일과 여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다. 칸 영화제를 가면서 파리와 마드리드를, 베를린 영화제를 가면서 이스탄불을 함께 둘러봤다. 붙박이별의 일생을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새로운 곳을 끊임없이 찾는 여행자가 많지만, 저는 갔던 곳을 가고 또 가요. 그게 편하고 좋죠. 인간관계도 여행 스타일과 비슷하고요. 여행 가방은 절대 미리 챙기지 않아요. 집을 떠나기 직전에 재빠르게 싸거든요. 일본 정도는 트렁크도 없이 훌쩍 떠나 버리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생각한단다.
“이제 어디로 가지?”


2, 3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 속 장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자동적으로 강릉 여행을 꿈꾼다


서른아홉에 만난 강릉, 맛있다

영화를 찾아 세계 각지를 떠도는 통에 그에게 한국은 외국보다 먼 나라였다. 그러나 ‘강릉’만은 예외다. 39살이 되던 해, 우연히 강릉에 꽂혔다. “근 20년 만에 강릉을 갔는데, 변한 게 없더라고요. 20대였던 그때의 나는 이제 꽤 나이를 먹었는데 말이죠. 서울은 쉽게 버리지만, 강릉은 보존을 중시해요. 지역민의 특성이기도 하고. 강릉 객사가 있는 용강동에 집을 하나 얻을까 생각 중입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공간으로 쓰려고요. 일제의 흔적이 묻어나는 동네라 흥미롭죠.” 

강릉만 가는 건 아니다. 최북단 항구인 대진까지 가기도 하고 때론 미시령, 진부령, 한계령도 넘는다. 강릉에서 주로 하는 건 ‘먹기’다. 오죽했으면 첫 영화의 제목이 ‘맛있는 인생’일까. 영화만 봐도 강릉의 웬만한 맛집은 다 나온다. 자신이 하는 요리가 가장 맛있다는 그는 주문진 어시장에서 재료를 사서는 근처 콘도에서 요리하는 걸 즐긴다. 회도 척척 뜬다. 겨울철 진미인 오징어는 가래떡처럼 굵고 길게 떠야 제맛이란다. “나이가 들면 시력도 떨어지고 기력도 쇠하죠. 그러나 반대로 발달하는 감각이 딱 하나 있어요. 미각.”

또 잘 마신다. 커피 말이다. 지난해 11월, <내가 고백을 하면>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선 관객 전원에게 드립커피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가 좋아하는 강릉에서도 커피향이 진동한다. 조 대표는 귀동냥으로 들었다는 커피 얘기를 하나 풀었다. “안목해변에 가면 자판기가 쭉 늘어서 있어요. 사람마다 선호하는 자판기가 있대요. 자판기 커피가 거기서 거기일 텐데, 누구는 3번 자판기, 누구는 5번 자판기를 고른다는 거예요. 이유를 들어 보니 자판기 주인이 달라, 자판기마다 커피 맛도 다르다고 하더군요. 강릉은 여러모로 참 재밌어요.” 

조성규 대표가 강릉을 가고 또 가듯이 <내가 고백을 하면>을 한번 본 사람은 그의 영화를 보고 또 본다. 인터넷에는 “네 번이나 봤어요”, “친구, 회사 동료 데리고 다시 봤어요” 같은 광신도의 글이 많다. “마니아층이 생겼다는 건 좋은 징조죠. 낚시질 성공했네?(웃음) 이제 영화를 만들어도 굶어 죽진 않겠구나 싶어요. 최소한 저 영화를 본 사람은 다음 영화에도 관심을 보일 터이니.”  


사실 그는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한때 다큐멘터리 PD를 꿈꿨고, 지금은 카메라 하나 들고 전 세계를 누비는 상상을 한다. ‘영화를 때려 치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건만 벌써 17년째 영화라는 황홀한 감옥에서 살고 있다. 그는 확실히 타인의 영화를 자기 아이로 잘 키우는 데 재능이 있다. 지난해 열심히 영화를 사 둔 덕분에, 올해는 내세울 만한 영화가 많다.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온 더 로드> 등…. 그의 손때가 묻은 영화를 볼 생각에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1, 2, 3 타인의 영화를 탐했던 조성규 대표는 벌써 세 편의 자기 영화를 내놓았다. 그러나 그는 ‘감독’보다 ‘대표’라는 호칭이 더 편하단다

  구명주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영화사진  스폰지ENT



‘파오’라는 닉네임을 쓰는 그는 영화를 사냥하러 전 세계를 떠돈다


스폰지ENT 조성규 대표 
최근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조성규 대표를 일컬어 ‘스폰지 왕국의 교주’라 했다. 교주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일 수 없다. 소규모 상영관인 ‘스폰지하우스’를 운영 중이며 카페 ‘조제’의 사장님이기도 하다. 영화판에선 놀 만큼 놀았다. 1997년 영화잡지 <네가>를 창간하며 영화 일을 시작해 수입·배급·제작사인 스폰지ENT의 대표, 2010년에는 <맛있는 인생>으로 ‘영화 감독’ 타이틀까지 달았다. 작년엔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내가 고백을 하면>으로 관객과 만났다.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 속 거기는 어디?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의 영어 제목은 ‘The Winter of the Year was Warm’.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시골 온돌방에서 뒹굴뒹굴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노곤노곤해진다. 영화 속 명소를 따라가면 조성규 감독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주 무대는 역시나 강릉이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시라.        

줄거리┃주말마다 강릉 여자 유정예지원은 서울로 향하고, 서울 남자 인성김태우은 강릉으로 떠난다. 홀로 찜질방이나 모텔을 떠돌다 지친 두 사람은 집을 바꾸기로 하는데….



테라로사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실은 쉽게 엉키기 마련이다. 얼키설키 심하게 실이 꼬이는 순간, 우리는 그 연을 기어이 자르고 만다. 카페 테라로사의 주인서범석은 유정에게 조언한다. “오해가 불신이 되고, 그 불신이 화를 자초하게 될 터이니 한번쯤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해”라고. 이 카페는 유정과 인성이 처음 만나는 운명의 장소이자 영화 제작 일로 지친 인성과 사람에게 지친 유정이 위로받는 쉼터다. 잠깐, 테라로사라고? 당신이 아는 그 ‘테라로사’가 맞다. 강릉 커피 여행자 사이에서 테라로사는 오래전부터 성지로 불린다. 본점과 2개의 분점을 두고 있는데, 영화 촬영지는 테라로사 경포대점. 
주소┃경포대점 강릉시 강문동 304-5  문의 033-648-2780


쿠바
영진해변에선 드립커피를?
  “지금 네 집 앞이야.” 호감 가는 사람이 예고 없이 찾아왔을 때, 심장이 뛴다. 영화의 막바지, 인성도 무작정 유정이 있는 강릉으로 달려간다. 영화  제목처럼 ‘고백’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좋아한다’든지 ‘사귀자’든지 직접적인 화법을 구사하진 않는다. 다만 영진해변이 보이는 카페 ‘쿠바’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카페라테를 마실 뿐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한 남녀가 겨울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마시는 커피의 맛은 어떨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카페 쿠바의 주 종목은 쿠바산 드립커피. 카페가 자리한 영진해변은 조성규 대표가 좋아하는 명소 중 하나다.
주소 강릉시 주문진읍 교향리 81-22  문의 033-662-0118 


서지초가뜰
전라도 한정식이 울고 간다?
친구 용락백원길과 강릉으로 떠난 인성은 ‘죽여주는 맛집’이 있다며 친구를 이끈다. 두 사람이 허겁지겁 먹는 음식은 바로 서지초가뜰의 ‘못밥’. 못밥은 모내기하러 나간 사람들이 나눠 먹던 음식으로 정갈하고 또 푸짐하다. 현미와 팥이 알알이 박힌 밥, 도톰한 전, 아삭한 나물, 바다 향을 머금은 생선 등이 한 상 가득 올라온다. 압권은 남은 볍씨를 빻아 호박, 밤, 강낭콩, 쑥 등을 섞어 쩌낸 ‘씨종지떡’이다.  
주소 강릉시 난곡동 264  문의 033-646-4430 


스폰지하우스
영화 마니아를 위한 아지트?
주인공 인성은 조성규 대표의 분신이다. 영화 제작자인 인성은 자신이 운영하는 영화관인 스폰지하우스에서 본인의 영화인 <맛있는 인생>을 튼다. 관객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슬프지만 허구가 아니다. 실제 조 대표는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의 사장이며, <맛있는 인생>은 그의 처녀작이다. 모 평론가는 이 영화에 평점 ‘별 반 개’를 줬다. 조 대표의 신작인 <내가 고백을 하면>을 본 그 평론가, 이번 영화에는 ‘별 네 개’를 주었다. 스폰지하우스에서는 스폰지ENT가 수입·배급하는 ‘좋은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다. 상영관은 단 하나. 
주소 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61-21 씨스퀘어 빌딩 1층  문의 02-2285-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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