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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Train- 문산역 무임승차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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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선주 기자

거의 20년 전이다. 그런 생떼도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되돌아갈 힘이 없으니 기차에 싣게 해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앳된 대학생 3명이었다. 우리의 젊음은 반나절 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치고 올라갈 정도로 폭발적이었지만, 떠나온 만큼 되돌아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깨닫지 못했을 정도로 여물지 못했었다. 탈진한 녀석을 아무리 닦달해도 소용없었고, 빌려온 자전거를 버릴 자신은 더욱 없었다. 불행히도 경의선 문산역장은 깐깐했다. 우리에게 자전거는 승객에 딸린 수하물이었지만 그에게는 여객과는 함께 탈 수 없는 화물이었다. 이도저도 못한 채 대합실 출입구 바닥에 풀죽어 있는 모습은 안쓰럽거나 우스웠을 테다. 중년의 역무원도 그랬을까? 살그머니 따라오라더니 개찰구가 아닌 뒷길로 이끌었다. 규정대로는 불가능해서다,

자전거는 맨 마지막 칸 제일 뒤쪽에 넣어라, 서울역에도 말해 놓을 테니 도착하거든 
나가라는 곳으로 몰래 나가라, 
너희들 다시는 이러지 마라….
뜻하지 않은 무임승차와 불법화물적재는
그의 잔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이루어졌다.

이제는 기차역 개찰구도 사라졌고 검표도 하지 않는다. 개찰구가 있던 자리 바닥에는 ‘We trust you’라고 쓰인 노란선이 버티고 있다. 너를 믿고 표 검사를 하지 않을 테니 무임승차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그 선을 넘어 승강장으로 향할 때마다 문산역 그 역무원이 아련하다. 내 인생 최초의 무임승차를 도왔던 공범! 개찰구가 아닌 나무 울타리 개구멍을 통함으로써 우리의 무임승차와 불법화물적재는 5명만이 아는 완전범죄로 성공했다. 믿는다고 해놓고서 정작 열차 안에서는 최첨단 PDA 기기를 들고 승차권 없는 승객을 찾아내느라 분주한 지금의 기차 안 모습을 보노라면, 비록 허점투성이였던들 그날의 문산역은 참으로 따뜻했었지 싶다. 지금의 잣대로 재자면 어디 가당키나 한 아량이고 배려였단 말인가!

세상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잃은 게 참 많다.
 속도는 느린 것들의 소멸을 먹고 자란다.
최고 시속 80km의 통일호가
95km의 무궁화호에 밀리고
무궁화를 제쳤던 140km의 새마을호는
다시 300km의 KTX에 뒤쳐졌다.
어릴 적 곧잘 탔던 비둘기호, 통일호는
더해 가는 속도의 먹잇감이 됐다.

수인선 협궤열차도, 영동선 스위치백 열차도 멈췄다. 지금의 속도에 어울리지 않아서였겠지만 이들의 퇴장은 언제나 씁쓸했다. 우리가 무임승차했던 그 기차가 영영 떠나버린 듯했다.
귀향길에 여간해서는 KTX나 새마을호를 타지 않는다. 조금 느리지만 훨씬 익숙한 무궁화호를 택한다. 가속에 방해가 되는 시골 작은 역에는 아예 정차하지 않거나 간혹 정차해서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속도가 아니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오래된 속도를 더 누리고픈 생각에서다. 옛 속도에 대한 향수는 나만의 얘기가 아닌 것 같다. 버려지고 잊혔던 전국 각지의 철도 폐선이 레일바이크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쓸모를 다한 것처럼 보였던 폐객차는 기차펜션으로 재탄생하지 않았는가. 비록 맛보기 수준이지만 수인선 협궤열차도 복원됐다. 기차는 멈췄지만 군산 경암동 기차마을은 느림을 맛보려는 이들로 여전히 북적인다. 빠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증거다. 봄이 오면, 문산행 전동열차에 올라야겠다. 이번에는 유임승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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