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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Train-9,288km의 교훈 "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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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구명주 기자

나는 ‘기차 예찬론자’다. 기차는 대입 면접고사와 입사 시험을 치르던 날, 내 곁을 지켰으며 지금은 고향과 나를 이어주는 든든한 다리다. 기차에서 먹는 달걀과 사이다는 또 어떤가. 기내식에 뒤지지 않는 특식이다. 기차에서 만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를 본 뒤로는 기차 옆자리에 운명의 상대가 앉을 거라는 희망의 끈도 붙잡고 있다. 기차 여행을 선도한 계층은 19C 유럽의 부르주아였다는데, 21C에도 기차 애호가는 죽지 않았다. 일주일간 기차로 전국을 누비는 ‘내일로 여행’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럽 배낭여행만큼이나 인기를 끌고 있으며, 3,000종에 달하는 에키벤기차 도시락을 먹기 위해 일본을 여행하는 마니아도 등장하고 있다.

기차의 주가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 건,
기차가 환상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기차 중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긴 열차라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유독 여행자의 마음을 뒤흔든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9,288km.
여행 좀 했다는 사람조차
횡단 열차 얘기만 나오면 군침을 흘렸다.

나도 러시아에서 기차를 탄 적이 있다. 볼고그라드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기차는 훌륭한 이층 침대 칸을 갖추고 있었고, 거기서 하루를 꼬박 지새웠다. 창밖의 설경을 안주 삼아 마셨던 보드카는 뜨끈뜨끈하게 몸을 달궜다. 대체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얼마나 더 황홀하단 말인가.
그러나 기차 여행을 즐기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했다. 볼고그라드 기차역으로 배웅 나왔던 친구들이 눈에 밟혔던 까닭이다. 러시아가 국적인 그들은 러시아인도 한국인도 아닌 ‘고려인’ 혹은 ‘까레이스키’로 불렸다. 시베리아 연해주에 정착해 살던 선조들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중앙아시아로 이동해야 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화물칸에 오른 그들은 짐짝보다 못한 신분이었다. 기차는 ‘감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40여 일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으며 몇몇은 기차에서 가족을 잃기도 했다. 죽은 이를 위한 가장 우아한 장례절차는 창밖으로 시체를 던지는 것.

고려인 1세대는 이제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고, 조상을 기억하는 몇몇 후손만이 남았다. 고려인 3세대 즈음 되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볼고그라드를 돌아봤다. 그곳은 가장 잔혹한 전투로 손꼽히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한이 맺힌 곳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그때, 볼고그라드에선 6개월간 200만명이 죽어나갔다. 소련군은 죽기 살기로 항거했으며 결국 독일군은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히틀러의 기세를 꺾었다는 러시아인의 자부심은 관광지 곳곳에서 묻어났다.

민족주의의 망령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부활할지 모른다.
전쟁이란 괴물이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날,
우리는 ‘지옥의 기차’를 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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