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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le stay '참된 나’를 찾는 행복한 여행①3,000배의 깨달음 양평 용문사"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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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삶이 전쟁이라 느끼고 있는가.
하는 일도 없는데 늘 바쁘기만 한가.
조금만 다가가도 으르렁대는 굶주린 짐승이 바로 자신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자. 단순한 휴식이 아닌 참된 삶의 가치를 위해.


28번 울어 세상을 깨우는 새벽 타종

3,000배의 깨달음 양평 용문사
그 남자, 하심下心하다

헐레벌떡, 산사에 불시착했다. 적막감과 막막함이 급습했다. 내 눈에 포착된 것은 뜰에 드리워진 두 남자의 긴 그림자. 3,000배의 도반이 된 그들이 내 템플스테이의 주인공으로 포착됐다.

길이 어지럽다. 용문역에서 급히 잡아 탄 택시가 15분을 달려 사하촌에 도착할 때까지 굽이굽이 뱀 춤을 추었다. 택시 아저씨의 목소리도 귓가에서 울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속세를 떠나려니 멀미라도 하는 것인가. 낮 2시가 통례인 템플스테이 도착 시간에 이미 두어 시간쯤 늦은 상태였다.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는 용문산 도립공원 입구에서 절까지 1.2km를 걸어 올라가며 투덜대는 나란 인간! 어쩐지 한심寒心하다. 

헐레벌떡 뛰어가 템플스테이 사무실 문고리를 당기니 엉덩이를 쑥 내밀고 엎드려 있던 아가씨 둘이 고개를 들었다. 머쓱한 눈인사를 던지고 옆에 같이 엎드려 절 연습을 이어가는 것으로 1박2일간의 템플스테이, 그 낯선 시간으로 무너지듯 불시착했다. 

“하심下心하십시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그것이 ‘휴식형 템플스테이’라는 명목으로 산사에 들어온 내가 붙잡고 있어야 할 화두인 모양이었다. 세 끼 공양과 새벽 예불 외에는 딱히 정해진 것이 없는 여유로움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막막함이었다. 어두운 방구석에 기대 앉아 창호지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 기운을 쬐고 있자니 잊고 있던 허기가 먼저 동했다. 제일 먼저 공양간으로 내려가 밤과 나물을 수북하게 담고 있자니 곧 뒤따라 들어온 한 거사님이 보살님들을 향해 넙죽 인사를 하며 내 심정을 대신 말해 주었다. “허허, 하는 일 없이 배만 고프네요.” 월요일 저녁, 산사 손님 7명을 포함해 ‘식구食口’가 많지 않았고, 그 입을 말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묵언默言이었다. 

해가 떨어지자 뜰 안의 석탑으로 푸른 조명이 몰려들었다. 창백하고 야무진 빛이었다. 그 주변으로 한 청년이 저녁 내내 그림자를 길게 끌며 서성이고 있었다. 3,000배에 도전하러 왔다는 대학생이었다. 줄잡아 6시간이 걸릴 일이라고 들었다. 허허, 아직 어린 나이에 뭐 그리 소멸해야 할 업장業障이 많은 것인가. 어림짐작을 하는 동안 그의 옆으로 긴 그림자 하나가 다가서고 있었다. 아까 공양간에서 보았던 처사님이었다. 나란히 짝을 이룬 두 남자의 그림자는 밤이 깊도록 헤어질 줄 몰랐다. 

참았던 궁금증을 푼 것은 다음날 청년이 용문사 천년 은행나무 앞을 지날 때였다. “지난번에 용문사에서 108배를 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합천 해인사 백련암이 3,000배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성철스님이 계셨던 곳인데 3,000배를 안 한 신도는 만나 주지도 않으셨데요. 어쩐지 저도 3,000배에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템플스테이 담당 보살님의 일러줌대로 그는 참 맑은 청년이었다. 1월 초에 용문사에 왔었던 그는 절도 처음, 불교도 처음, 108배로 처음이었다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마음의 키를 한껏 키워 다시 산사의 품에 안겼다. 대학 4학년(26살) 강승우씨였다. 2박3일의 일정으로 들어온 그의 애초 계획은 3,000배를 3일에 나눠서 하는 것이었다. 흐릿했던 그의 계획은 스님과의 면담 후 한번에 도전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고, 때마침 체류 중이던 한 거사님이 그의 도반道伴이 되어 주기로 한 것. 하룻밤 사이에 특별한 인연의 끈을 맺은 두 남자는 나란히 앉아 108개의 구슬을 손수 한 알 한 알 꿰어 자신만의 염주를 만들었다. 나의 템플스테이는 어느새 이 두 사람의 3,000배 도전기, 그에 대한 관람기로 바뀌어 흥미를 더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게는 돌아가야 할 속세가 있었다. 점심 공양 후 수련복과 베갯잇을 반납하고 하산하는 길에 관음전에 들렀다. 냉기 가득한 팔각전 안에는 두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고통과 무념무상, 얼마간의 후회와 끊임없는 마음 다잡이. 혹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 전해지는 온갖 상념과 감회가 무거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들에게 이 고행苦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며칠 후 승우씨와 통화를 했다. 그날의 3,000배는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경에야 끝이 났다고 했다. 항상 관념으로만 존재했던 숫자들을 실체로 인지하게 된 것. 회계사 시험 준비로 숫자를 많이 다루는 그를 찾아온 깨달음이었다. 도반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은 물론이다. “혼자 가면 빠르지만 멀리 못 가고, 함께하면 느리지만 멀리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걸 정말 실감할 수 있었어요.” 

어쩌다 보니 템플스테이를 눈팅만 하고 돌아온 나, 한심이. 그러나 한참 어린 이 청년이 한없이 우러러 보였으니, 약간의 하심을 이룬 것은 아닌지. 못 다 마친 108배를 완성하며 자비慈悲를 구해 볼 일이다.


1 가슴 속까지 씻어 주는 맑은 샘물 2 3,000배를 앞둔 사람들은 직접 염주를 만들었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하나투어 02-2127-1566

▶travie info     
용문사 템플스테이는 체험형과, 휴식형 2가지로 365일 운영한다. 참선, 차담, 타종체험, 참회문 쓰기 등으로 진행되는 체험형 프로그램 중에서 용문사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은 연잎밥 만들기, 은행 핸드폰 고리 만들기, 친환경농업박물관 관람 등이다. 휴식형은 아침, 저녁 예불참석 외에는 일정이 자유롭다. 올해부터는 지난해 신축한 수련관에서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 참가비 성인 5만원, 초·중·고·대학생 4만원.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용문산 입장료 2,000원을 면제해 준다.
주소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정리 625 용문산  문의 031-775-5797 www.yongmun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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