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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AIRBNB] 괴짜 예술가의 방에 하룻밤 머물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7.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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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사람들은 집에서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퇴근 후 집에서 가족들과 무얼 하는지, 거실 책장에는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궁금해 ‘현지인의 집’으로 들어가 봤다. 호텔처럼 편하진 않았으나 그들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는 남달랐다.


1 현지인의 가정집을 숙소로 공유하는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취리히의 한 예술가 집에 묵어 보았다. 빈티지 가구들과 독특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객실은 예술적인 영감이 충만한 공간이었다 2 호텔이나 리조트처럼 편하진 않았으나 현지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미안하지만 체크인은 네 시쯤이 어때?”

항공 스케줄 때문에 스위스에 하루 더 머무르게 됐다. 숙소를 1박 따로 잡아야 하는 상황. 옵션은 많았다. 호스텔, 민박, 호텔 아니면 체르마트의 산장에서 하루를 더 머무를 수도 있었다. 결국 공항이 가까운 취리히에 머물며 쇼핑도 하고, 쉬엄쉬엄 하루를 보내기로 했고 숙소는 그간 벼르던 현지인의 가정집에 묵는 방법을 선택했다.

올해 초, 한국을 찾은 숙박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Airbnb’의 창업자를 인터뷰한 뒤, 언젠가 이 흥미로운 사이트를 이용해 보겠노라 했는데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용 방법은 간단했다. 간단한 회원가입 절차를 마친 뒤, 도시를 고르고 날짜를 선택하니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쏟아졌다. 도시 외곽의 통나무집, 취리히 구시가지의 500년 된 주택, 호수변의 텐트, 캠핑카 등등 방을 고르는 과정부터 흥미로웠다. 3곳 정도를 후보군에 넣어두고 집 주인에게 쪽지를 보냈다. 어떤 이는 ‘미안하지만 최소한 2박 이상만 받는다’고 했고, 찜해 놓은 또 다른 집은 예약을 망설이는 사이 다른 이가 채가 버렸다. 결국 집 자체는 평범했으나 주인장 소개와 이용객의 후기가 흥미로웠던 아파트를 택했다. 집 주인은 예술가였고, 이용객들은 주인이 매우 친절했으며 집 안 곳곳에 재미난 예술품들이 많다고 했다. 주인장과 몇 번의 쪽지를 주고받은 뒤 서울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모바일 로 예약과 결제를 마쳤다.

취재 일정을 마칠 즈음, 다시 주인장에게 쪽지를 보냈다. “내일 2시쯤 취리히에 도착할 듯한데 바로 집으로 가면 되겠지?” “미안하지만 4시쯤 퇴근할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오는 게 어때?” “음. 할 수 없지. 조금 돌아다니다가 시간 맞춰서 갈게.” 호텔 같으면 체크인을 제 시간에 못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쪽지 몇 번 주고받고, 사진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교감을 한 탓인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체크인 전까지 취리히 구시가지와 삭막한 공장지대에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취리히 웨스트 등에서 시간을 떼웠다. 취리히 웨스트에서는 재활용품과 중고가구를 판매하는 빈티지숍과 소규모 갤러리들을 둘러봤는데 ‘빈티지’, ‘중고’라는 딱지와 어울리지 않는 비싼 가격으로 주머니를 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빈티지와 재활용 사이에 머물다

4시가 가까워 온 걸 확인한 뒤, 트램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스위스야 워낙 교통 시스템이 완벽하니 지도와 주소만 보고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고 아파트 복도로 들어갔더니 주인장이 팬티 차림을 한 채 갓난아기를 안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인장 오티Oti 는 “반가워. 실은 6주 전에 딸이 태어났거든. 좀 이해해줘”라며 아기가 울지나 않을까 가만가만 말을 건넸다. 집으로 들어가 예약된 방, 그러니까 빈티지 가구들과 인테리어가 독특한 그 방에 짐을 풀었다. 오티는 아기를 업은 채 화장실 위치, 와이파이 비밀번호, 커피 끓이는 법, 내일 먹을 조식 등을 알려주는 ‘체크인 절차’를 잊지 않았다.

별다른 계획이 없었기에 오티와 차를 마시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스위스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지금까지 1박 손님은 네가 처음이거든.” “취재차 왔다가 하루를 더 있게 됐어. 이렇게 방을 숙소로 운영한 건 언제부터야?” “한 1년반쯤 됐지. 한 달에 월세가 3,000CHF(약 330만원)인데 그걸 충당하는 목적도 있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흥미로워서 시작했지.” 이런 대화부터 지금까지 서로 여행 다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주인장과 손님의 관계라기보다는 여행 중 만난 대등한 여행자의 느낌이었다.

그리곤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낮잠을 자던 오티의 여자친구, 실바나도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젊은 부부, 아니 연인인 그들은 딸을 키우느라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을 겨를이 없다고 했다. 마침 내 캐리어에는 일용할 비상식량이 있었다. “라면 좋아해? 좀 맵긴 하지만.” “좋지.” 그렇게 나는 컵라면을 정성껏 준비해 줬고, 오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국물 한방울 남김 없이 해치웠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밤은 깊어 갔고, 오티에게 방을 어떻게 꾸미게 됐는지 물어보다가 결국 그의 예술작업과 예술관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번졌다. 영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그는 폐허가 된 주택이나 건물을 예술 공간으로 꾸미는 일과 어린이들에게 미술 가르치는 일을 겸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실물 비행기인 점보기를 태국으로부터 가져와 비행기 꼬리만 남기고 땅에 묻는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소수의 특권으로 여겨지는 비행기를 땅에 묻고 누구나 그 안에 들어와 예술적인 영감을 나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웹사이트(www.burythejumbo.com)에 가입해 후원자가 되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사실 빈티지가 별 건가? 취리히 웨스트나 빈티지숍에서 파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의 가구들은 모두 거품일 뿐이지.” 오티의 말처럼 그가 폐가에서 주워 모은 가구들과 소품들, 거기에 페인트칠로 꾸며진 객실은 어떠한 고급 빈티지 가구숍, 부티크호텔보다도 독특하고 예술적인 영감으로 가득했다. 그러더니 오티는 내게 집 근처의 벼룩시장 브로키랜드Brocki Land에 가보라며, 3CHF이면 고급 빈티지숍의 100분의 1 가격에 ‘득템거리’들이 많다고 귀띔해줬다.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출근준비를 하는 오티와 함께 에스프레소와 크로아상을 먹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추억하기 위해 오티와 딸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짧았지만 좋았던 시간에 대한 답례로 사진을 보내주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체크아웃(이라 해봤자 인사하고 나가는 것뿐)을 한 뒤, 그가 소개해 준 집 근처의 싱가포르 식당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겼고, 중고상점에 가서 약 20CHF(약 2만2,000원)치 쇼핑을 했다. 내 손에는 캠핑용품, 찻잔, 크로스백, 화병 등이 가득 들려 있었다. 두 손 가득한 물건들보다 훨씬 묵직하고, 오래 간직될 추억을 얻어 왔음은 물론이다. 이런 식의 여행이 아니었다면, 오티를 만나지 못했다면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었다.



3 주인장 오티는 폐허가 된 집이나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괴짜 예술가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travie info
에어비앤비Airbnb
2008년 샌프란시스코. 3명의 총각이 아파트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자신들의 방을 B&BBed & Breakfast로 내놓으면서 시작된 ‘숙박 공유’ 사이트. 이제는 전세계 190여 개국 3만4,000여 도시, 약 25만개 숙소가 등록되어 있으며, 일반 가정집부터 유럽의 고성, 남태평양의 섬, 통나무집, 비행기, 몽골식 텐트 등 희귀한 숙소에서 묵어 볼 수 있는 재미로 그 인기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여행객에게는 현지인의 집에서 묵는 희귀한 체험을, 집 안에 남는 공간이 있거나 오랫동안 비우는 이들은 호스트Host로 등록해 부가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공유경제’ 사업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다. www.airbn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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