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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기자] 유혹은 나의 힘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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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향수 냄새에 고개 돌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너무 진한 향은 상대와 나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는 것을. 은은하게 번지는 향의 적정량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혹도 그렇다. 노골적이지 않게, 은밀하게 당신의 의도를 전달하라.

언젠가 친구들과 작은 파티에 갔을 때의 일이다. 파티의 주최자는 친구의 친구를 넘어, 사실 나는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다.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몇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다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흥겨운 음악과 약간의 술로 기분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때 나를 긴장하게 만든 것이 있었다. 건너편에 있던 남자와 자꾸 부딪치던 시선. 두어 번쯤은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니 별로 의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 번, 네 번을 넘어서자 약간의 긴장과 흥분이 전해지면서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을 가장한 호감의 눈빛이라면? 그래도 다가가서 말을 걸기엔 이유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끝났다. 안타깝게도 그는 내 마음에 들었고 소극적인 내 성격을 탓하며 뒤돌아섰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눈길이 만났을 때 한 번쯤 웃어 볼 것을, 용기를 내서 똑바로 바라볼 것을, 후회가 밀려들었다. 내 유혹의 스킬은 0%였던 것이다.

섹시한 당신,마음에 들어

그리고 여기 나와 반대되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 프랑스가 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일레인 사이올리노가 소개하는 프랑스는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력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사실 미국인이다. <뉴욕타임즈>의 파리 통신원으로 파리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프랑스를 유혹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저자는 상류사회 남자의 정부, 코르티잔부터 대통령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유혹에 대해 탐구한다. 그들은 모두 어느 위치에서건 누군가를 유혹하는 중이었다. 

사실 우리에게 ‘유혹’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로 다가오지만 프랑스에서는 다르다. 저자는 프랑스의 유혹을 ‘마음을 사로잡거나 영향을 주어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애정적 측면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표를 얻고 싶은 정치인, 상품을 팔고 싶은 상인, 지성을 설파하고 싶은 학자 등 모두에게 적용된다. 자신을 매력적으로 드러내고 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언변, 치장, 몸가짐 등등이 모두 유혹이 된다. 

그들의 유혹은 ‘섹시한 것’에서 비롯된다. 일례로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을 때, 미국에서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논란이 일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그를 ‘섹시하다’고 생각했단다. 심지어 프랑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스캔들이 없던 때보다 늘씬한 모델과 스캔들이 터진 후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자신의 성적 매력도를 어필하는 것 또한 그들에겐 능력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유혹은 게임이다

유혹하는 것을 넘어 유혹당할 준비도 되어 있다. 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성희롱일 수도 있는 ‘좋은 향기가 나네요’,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같은 말은 칭찬으로 여겨진다. 칭찬을 받은 사람은 고맙게 받아들이고 그날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고 고백한다. 유혹이 사회 전반에서 용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치레로 하는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며 손사래를 치던 나, 길에서 말을 걸어 오는 사람에게 의심부터 하는 나는 얼마나 순진하고 방어적인가! 

요리나 옷, 책과 음악도 그렇다.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잘 꾸며진 그것들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평가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나쁠 수도, 어떤 것은 좋을 수도 있다. 지금 프랑스인들의 생활과 문화 또한 유혹하고 유혹당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지.

프랑스인들은 유혹을 사악한 힘에서 선한 힘으로 감쪽같이 탈바꿈시킨 것이다. 맛있는 음식, 최고급 와인 한 잔, 로맨틱한 약속, 매혹적인 향수, 활기 넘치는 단어 게임으로 나를 유혹하라. 당신이 내게 해를 입혔는가? 아니면 즐길 자유와 특별한 삶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는가? 만약 그 과정에서 당신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거래가 아닐까?

놀라운 것은 프랑스인들의 유혹은 상당히 치밀한 편이라는 것이다.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옷을 입거나 진한 향수를 뿌리거나, 입을 직접 맞추는 손등키스는 프랑스식 유혹이 아니다. 옷은 실루엣이 드러나지 않도록, 향수는 가까이 다가와야 전해질 정도로, 손등키스는 숨결이 닿을 정도로만. 직설적이기보다 에둘러 다가가며 차근차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들은 감춰진 매력을 드러내는 이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프랑스 남자들이 앞모습보다 뒷모습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인간이 가진 본능적인 매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는 어떤가 생각해 봤다. 외설과 선정을 비켜가지만 본능적인 프랑스식 유혹의 법칙이 나에겐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유혹의 게임에 참여하고 싶어졌다. 우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책을 많이 읽어 둬야겠다. 좋은 향수를 고르고, 예쁜 속옷도 갖춰 입어야겠다. 유혹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으니까.

글  차민경 기자

프랑스 남자들은 뒷모습에 주목한다
프랑스식 유혹의 방법을 미국인의 눈으로 바라봤다. <뉴욕타임즈>의 파리 통신원으로 근무하며 만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은 나름 유혹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복잡하지만 매력적인, 흥미진진한 유혹의 게임을 즐기는 프랑스를 들여다본다.
일레인 사이올리노 지음│현혜진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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