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ESSAY] hommage-설국열차에 대한 오마주Hommage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8.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최승표 기자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비즈니스클래스 좌석을 지나면서 느낀 감정이 영화를 만드는 하나의 모티브가 됐다고 했었다. 하지만 내게 <설국열차>는 캐나다 열차 비아레일Via rail의 탑승 경험을 떠오르게 했다. 영화를 보면서 봉준호 감독이 이 열차를 타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비아레일은 꼬리칸 승객을 착취하지 않고, 이코노미 승객에게 양갱 같은 식량을 주지도 않는다. 단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약 80시간, 장장 4,500km에 달하는 거리를 열차는 말없이 달리고, 승객들은 구입한 티켓에 따라 차등화된 서비스를 받는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비아레일 동서 횡단 코스 중 말 그대로 ‘설국’인 코스는 로키산이 있는 알버타주의 재스퍼에서 서쪽 끝 밴쿠버까지 19시간의 여정이다. 나는 퍼스트클래스에 해당하는 ‘슬리퍼 플러스 클래스Sleeper Plus Class’ 칸에 탑승했었다. 비행기와 이름만 다를 뿐 이 열차 또한 클래스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칸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설국열차를 충분히 연상시킬 만했다.

취재차 퍼스트클래스에 탑승했기에
열차 내의 모든 칸을 가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열차란 여러 욕망이 뒤섞여 한 방향으로 향하는
하나의 작은 지구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승객들이 열차를 탄 목적은 ‘캐나다 횡단’으로 동일했지만 사연은 모두 달랐다. 영국 남편과 이탈리아 부인은 6개월짜리 세계일주 계획에 캐나다 횡단을 끼워 놓았다 했고, 화목한 노년의 부부들 사이에서 홀로 조용히 밥을 먹던 캘리포니아에서 온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한번은 이 열차를 꼭 타고 싶었다고 했다. 영어를 불편해하는 퀘벡에서 온 젊은 커플은 TV 프로그램에 응모해 부상으로 열차 탑승권을 얻었다며 조금은 뻘쭘해했다.

비아레일 승무원들의 면면은 승객들 못지않게 다채로웠다. 슬리퍼 플러스 클래스 승객만을 집사처럼 챙겨주는 멕시코 출신의 조나단은 유별나게 유쾌했는데,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지친 표정으로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어딘가 애잔해 보였다. 식당 칸에서 서빙을 하는 라오스 국적의 ‘마누’라는 밝은 인상의 아가씨는 한국인 남자친구로부터 한국어를 배웠다면서 내게 들려줬는데 ‘씨X’, ‘죽을래?’ 등 낯 뜨거운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흘러왔는지 궁금해졌다. 대륙을 한번 횡단한 뒤에는 며칠간 휴가가 있기에 일이 고되지 않다고 했는데, ‘망망대륙’을 질주하는 기차 위에 있다는 건 지독한 고독과 씨름하는 일처럼 보였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근함을 표한 승무원도 있었다. 캐나다인 마틴은 <살인의 추억>의 인상이 너무 강해 영화의 배경인 경기도 화성을 직접 가봤을 정도로 열렬한 한국 영화광이었다. <설국열차>를 보는 중 마틴이 계속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에는 없는 독특한 그 무엇이 한국영화에 있는 것 같다는 그의 말에, 한국은 갈등과 모순이 많은 사회인지라 영화화할 이야깃거리가 많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던져놓은 자신을 가소로워하며, 과연 ‘한국’이라는 열차에서 나는 어디쯤 있나 생각해 봤던 것도 같다. <설국열차>가 개봉하기 3년 전에 말이다.

이 세계는 철저하게 칸이 구획된 열차처럼
계층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럼에도 어느 칸에 있든
 사람이 가진 욕망과 사연들은 한데 뒤섞여
세계라는 열차의 연료가 된다는 사실을
횡단열차는 말없이, 한결같은 박자로
철길 위를 달림으로써 은유적으로 보여 주었다.

3년이 흐른 뒤 영화를 보면서, 당시 열차에서 만난 각각의 사람들은 이제 어떤 꿈을 꾸면서 생의 여정을 달리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