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구명주 기자의 카페 순례기] 경복궁역 커피한잔 -‘너’를 기다리던 곳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8.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AFE A CUP OF COFFEE 
글·사진  구명주 기자  

‘너’를 기다리던 곳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던 날이 있었다. 기다린다는 건 상대방이 오건 오지 않건 그 자리에 돌부처처럼 멈춰서는 일이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그리움이 되고 그리움이 깊어져 상처가 되더라도 말이다. 황지우 시인의 말을 빌리면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에도 가슴이 쿵쿵거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다. 그러나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까지 추적할 수 있는 신통방통한 세상에서 ‘기다림’이 뭔 대수인가. 그러나 경복궁 카페 ‘커피한잔’에선 휴대폰을 잠시 꺼두고 누군가를 무작정 기다리고 싶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불덩이 같은 이 가슴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신중현이 작사, 작곡하고 ‘펄시스터즈’가 부른 노래 ‘커피 한잔’의 노래 가사가 카페의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가게 문을 열면 자동적으로 타임머신에 오르게 된다. 포장을 뜯지도 않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 <은하철도 999>의 메텔 그림, 조용필의 일본공연 스케줄이 담긴 1983년도 <주간 TV 가이드> 등 카페를 가득 채운 희귀 아이템을 구경하다 보면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카페를 장식한 소품은 동시대를 살았던 누군가에겐 과거를 끄집어내는 장치가 되고,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겐 신기한 골동품으로 느껴진다. 모든 소품은 주인장이 직접 모은 것이다. 한옥과 적산가옥이 많은 경복궁 일대에서 주울 때가 많지만, 직접 돈을 지불하고 사기도 한다. 

가장 아끼는 물품은 사람의 손때가 묻은 생활용품이다. 주인장이 넌지시 열어 보인 서랍장 안에는 1970년대 일반 가정집에서 썼던 커피 잔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다. ‘생활사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가게 뒤편에는 커다란 정체불명의 기계 두 대가 보인다. 어디서 또 주워 온 물건인가 싶겠지만, 덩치 큰 물체는 주인장이 직접 개발했다는 숯불 로스팅 기계다. 숯불에 제 몸을 던진 원두의 향이 커피에 은은하게 감돈다. 여름에는 잠시 맛볼 수 없었던 호떡도 곧 다시 구울 예정이란다. ‘호호’ 불어야 제 맛인 호떡이 그리워지는 걸 보니, 뜨거웠던 여름도 곧 떠날 모양이다. 계절과 계절 사이, 카페 커피한잔에서 천천히 가을을 기다린다.  



1 1960~70년대를 풍미한 ‘펄시스터즈’의 노래가 카페 외관에 적혀 있다 2 온갖 잡동사니에 포위당한 카페는 생활사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3 고즈넉한 사직동 일대와 커피한잔은 잘 어울린다. 입구를 지키는 건 호떡을 구워내는 화덕


커피한잔┃주소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9길 18-1  문의 02-764-6621  주요메뉴 핸드드립 5,000원, 홍차 5,000원, 호떡 3,000원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