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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사-이별 연습

  • Editor. 고서령
  • 입력 2013.10.01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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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쉬운 사람이 있겠느냐만, 난 유독 이별에 서툴다.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에 너무 쉽게 정을 주는 성격인 탓이다. 2년간 지긋지긋하게 달고 살았던 교정기를 떼는 날, 오랜 시간 함께한 교정기를 떼 버린다는 게 무척 서운했을 정도로, 난 쓸데없이 정이 많다.
 
고작 교정기에도 정을 주는 성격이니 사람에겐 오죽 많은 정을 줬겠는가.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는 일은 언제나 내 인생의 둘도 없는 난제였다. 어느 책에 나온 구절처럼 이딴 일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손 반짝 들어 발랄한 작별 인사를 던지고 싶었지만, 실상 나의 이별은 매번 눈물 콧물로 지새운 수많은 밤, 알코올, 병원 신세, 폭식, 과다 쇼핑 등으로 점철됐다. 난 이렇게 쓸데없이 정 많고 이별에 서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사를 자주 다닌 것은
아마 그래서였을지 모른다.
나도 정든 장소를 남겨둔 채
이렇게 ‘쿨하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도 언제든 이렇게 새로운 곳으로 떠나가
씩씩하고 의연하게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그리고 정든 장소와 이별하는 일을 많이 하다 보면 언젠간 정든 사람과 이별하는 일에도 조금은 능숙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이유로 툭하면 ‘나 이사해야겠어’란 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대학 진학과 함께 상경한 이래 7년여 동안 서울 이곳저곳을 참 많이도 옮겨가며 살았다. 짧게는 3개월부터 길게는 2년까지. 살았던 동네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옥수동, 양재동, 필동, 둔촌동, 서초동, (다시) 필동, 명륜동, 휘경동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구로동이다. 그야말로 서울의 중심부터 동서남북까지 다 살아 본 셈이다. 사는 동안엔 ‘우리 동네가 최고’라며 애정을 쏟다가도 떠날 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홀가분히 떠났다. 정을 쏟은 모든 것을 떠나 보내는 데 서툴지만 이사만큼은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내가 짐짓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다.
 
이사의 명분은 다양했다. 등하교나 출퇴근 거리 때문이었던 적도 있었고, 단순히 ‘이젠 다른 동네에 살아 보고 싶어서’ 이사한 적도 있었다. 그중엔 살던 집과 동네 곳곳에 묻은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어 도망치듯 이사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떠나 온 곳이 휘경동이다. 그곳에 사는 동안 수십 건의 입사지원서를 썼고 수십 건의 불합격 통보를 받았으며 수많은 날을 무기력증에 빠져 지냈었다. 얼마나 떠나고 싶었는지, 회사 합격 소식을 접하고선 집이 새 주인을 찾기도 전에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그 덕에 넉 달 동안이나 양쪽 집에 월세를 내야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 집을 떠났다는 것에 대해 난 꽤 만족했다.
 
또다시 가을, 이사철이다. 이사 본능이 어김없이 꿈틀거린다. 이사 갈 동네는 오래 전부터 물색해 놨고 이사 명분 찾는 건 내게 일도 아닌데 왠지 이번엔 많이 망설여진다. 이 집에서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했고, 이 집에서 트래비 입사지원서를 쓰며 입사 시험 준비를 했고, 합격의 기쁨도 누렸다. 세탁소 아저씨, 편의점 아줌마, 빵집 언니, 과일가게 할머니와 수다를 나눌 정도로 정들었고, 집 앞 은행나무 가로수길, 건널목, 버스정류장에도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이 짙게 뱄다.
 
하지만 막상 이사 날이 다가오면
이번에도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서울 안에 추억 어린 장소를
한 곳 더 가지게 된 것을 기뻐하며,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이란 상투적인 말을 되뇌며.
한 손 반짝 들어 발랄한 작별 인사를 던지는
이별 연습을 하리라.
 
글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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