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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두 번째 프라하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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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떨림이다. 두 번은 특별함이다. 첫 사랑 같던 프라하를 10년 만에 다시 찾았다.  속 깊은 프라하 이야기에 아름답다는 감탄사 이상의 깊은 울림을 내뱉는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 다양한 길거리 예술가들이 관광객의 웃음을 더한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뿐인 것은 없는 것과 같다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중에서

한 번 사는 인생, 그래서 그 의미가 무겁게 다가오는 삶, 그렇지만 한 번뿐이어서 한 없이 가벼운 시간의 여정. 우리 삶의 방점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좌표평면을 오가며 어지럽게 찍힌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읽고 나서 ‘어차피 한 번론論’을 맹신하게 됐다. ‘한번’이라는 건 여러모로 유용한 개념이다. 죽을 듯한 상처도 이번 한 번으로 지나갈 테고 무언가를 집요하게 소유하려 했다가도 어차피 두 번의 인생은 없으니 욕심을 버리면 될 일이었다. 

체코 여행의 기회가 다시 찾아왔을 때 쿤데라의 소설을 다시 폈다. 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남자, 토마시는 무겁고 진중한 사랑을 원하는 여자, 테레사를 속박의 굴레라고 생각한다. 반면 끊임없이 애인을 만드는 토마시의 자유연애주의를 테레사는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 사회가 투영된 각각의 캐릭터 간의 갈등은 끝나는 법이 없다. 역사, 철학, 이데올로기의 혼돈 속에서 사랑마저 풀기 힘든 실타래 같다. 책장을 덮으면 결국 우리의 한계는 분명하고 또 삶은 부질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 인생은 한 번이어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고 다시 삶을 위한 신발끈을 동여매게 된다.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10년 전 여행 배낭 속에 딱 한 권 들어 있던 책이었다. 책을 후루룩 넘기다 보니 ‘아인말 이스트 카인말Einmal ist keinmal’, 토마시가 습관처럼 말했던 독일 속담에 밑줄을 좍좍 그어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속담을 주문처럼 되뇌며 잔뜩 긴장됐던 첫 배낭여행을 의연하게 지속해 갔다. 여행 이후의 삶도 그렇게 살겠노라 마음먹었기에 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책도 함께 귀환했다.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중요한 것은 한 번이 아니라는 명제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두 번째와 세 번째를 가볍게 만들어가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인생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체코는 어쩐 일인지 다시 찾아 왔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들고 나의 두 번째 체코는 더욱 특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여행에 나섰다.


1 벽돌을 구워 만든 빨간 기와가 차곡차곡 쌓인 지붕들. 프라하만의 풍경을 만든다


2 가장 로맨틱한 도시에 이름을 올리는 프라하. 해가 지고 난 후 거리 곳곳에 조명이 켜지면 프라하는 또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3 프라하의 남대문 시장과 같은 하벨 시장. 디자이너가 제작한 기념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켜켜이 시간이 누적된 도시

항상성은 나를 달뜨게 한다. 변함없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지. 오랜 만에 맛보는 체코 맥주 얘기다. ‘캬~’ 한 모금 들이키니 세월을 거스른다. 시원한 목넘김 끝에 오랜 비행의 피로감이 누그러지고 시간의 흐름은 서울보다 반 박자 늦춰진다. 맥주 거품마냥 여행을 나서는 마음이 가볍다. 맥주 값을 올리는 대통령은 탄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체코인 덕에 저렴한 맥주 한 잔으로 나는 비로소 체코와의 재회를 실감하고 여행자 모드에 돌입했다.

골목 사이사이로 흘깃거리던 프라하를 제대로 대면한다. 과거의 감동을 기억하기에 온몸의 털은 쭈뼛 서고 군중의 웅성거림이 크게 들릴수록 발걸음에 속도가 붙는다. 탁 트인 강 위에 펼쳐지는 프라하만의 풍광. 언덕 위에 하늘을 찌를 듯한 프라하성을 향해 가는 듯 빼곡히 들어찬 빨강 지붕들. 사이사이 삐죽이 솟아오른 첨탑. 그 아래로 짙푸른 블타바Vltava강이 흐르고 수면에는 카렐다리Karluv most를 오고 가는 관광객들이 지긋이 반사된다. 난간을 따라 가톨릭 성인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카렐다리는 풍경에 감탄하고 그 순간을 사진기에 담느라 분주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프라하의 로맨스와 낭만을 찾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뱉어내는 서로 다른 언어, 현악기 소리, 이동식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보헤미안 음악이 작은 입자로 공기 중에 퍼지며 프라하의 청각적 배경을 낳는다.

구시가로 발걸음을 옮겨 광장에 들어선다. 시계탑 아래는 매시 정각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프라하에는 시계탑이 유독 많다. 여행자를 위한 지도에 프라하의 시계탑을 모두 들르는 코스가 표시됐을 정도다. 구 시청사에 위치한 천문시계는 단연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정각마다 조그만 창이 열리면 나무로 만들어진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여행에서는 30초간의 쇼를 보기 위해 군중들 사이에서 부비적거렸다면 두 번째 여행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여행자의 얼굴을 감상하는 여유가 생겼다. 

시청사 꼭대기에 직접 올라 고저高低가 만들어낸 도시의 드라마틱한 곡선을 주욱 눈으로 따라 그려 본다. 유럽을 여행하는 어느 배낭여행자든 이 풍광을 욕망하고 바로 이 장면을 탐닉하기 위해 체코를 찾는 것만 같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도의 자리를 다른 도시에 내준 적이 없는 프라하는 골목과 집, 성곽과 교회 등 구석구석에 시간의 지층을 누적해 왔다. 현재의 시간에서 이탈한 듯한 장관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10년 전의 여행사진을 들추는 것 같은 반복적인 감상일 뿐이다. 단순히 아름답다는 ‘형용사’ 외에 이 도시의 사람들과 공명할 만한 ‘동사’가 내게 필요했다. 두 번째 프라하가 비로소 의외성의 설렘을 안겨주기 시작한 것은 이 도시의 속 깊은 얘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부터다.

구 시청사 입장료를 내고 내부로 들어가면 천문시계의 속을 구경할 수 있다. 역사박물관, 예배당, 집무실이 있으며 맨 꼭대기 전망대는 구시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주소 Staromestske namesti 1w   입장료 105코루나


블타바강을 바라보며 카렐다리 위를 오고 간다. 빨간 지붕과 첨탑이 만드는 프라하의 스카이라인을 눈으로 따라 그려 본다

“유럽을 여행하는 어느 배낭여행자든 이 풍광을 욕망하고
바로 이 장면을 탐닉하기 위해 체코를 찾는 것만 같다.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도의 자리를 다른 도시에
내준 적이 없는 프라하는 골목과 집, 성곽과 교회 등
구석구석에 시간의 지층을 누적해 왔다.”


가난한 예술가 위에 재림한 초록색 요정

체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추앙받는 카를4세는 프라하성과 지금의 구시가지 일대를 ‘프라하’로 명명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서남북 4대문 안이 당시의 프라하, 현재 유네스코보존지역으로 지정된 구시가지다. 카를4세의 영광이 오롯이 보존된 중세의 도시는 현실과 걱정과 근심이 없어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 동화나라는 치열하게 시대와 얽히고 역사에 투쟁했던 사람들이 남긴 아름다운 잔해다. 두 번째 프라하는 바로 그 지점들을 하나하나 보듬어 가는 과정이었다. 

사실 체코는 우리나라만큼이나 외세 침략이 잦았던 나라다. 번성했던 체코 왕국은 16세기부터 합스부르크가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됐고 응당 그러하듯 체코의 문화, 체코의 언어는 장장 300년 동안 핍박받았다. 그 이후 체코 지배 세력은 합스부르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개명만 했을 뿐이고 체코인은 정작 체코를 갖지 못한 채 20세기를 맞았다. 세계대전 당시 턱 밑까지 쫓아온 독일군에 일찌감치 항복을 선언했다. 그 대가로 프라하의 겉모습은 유지됐지만 지식인과 체코 민중은 쓰디쓴 굴욕감을 견뎌야 했다. 체코인으로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하려고 해도 그들을 하나의 축으로 묶어 줄 언어와 문화가 없었다. 공식석상에서 모든 체코어는 금지됐고 지배 세력은 호시탐탐 체코를 완전히 흡수하고자 노렸다.

때문에 19세기 중반부터 방황하던 체코인들이 카페와 거리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체코어로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었던 카페에서 그들은 인생과 예술을 논했다. 그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 당시 체코어로 된 연극을 상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던 국립극장의 맞은편에 자리 잡은 슬라브카페는 지금도 프라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랑방으로 남아있다. 주인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문을 닫았을 때 재개장하라는 시위가 이어졌을 정도다. 나는 체코어를 이해할 수 없고 잠시 스쳐가는 여행객에 불과했지만 과거 체코의 지식인처럼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카페 벽면에는 한 남자가 탁자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빅토르 올리버의 그림이 걸렸는데 이 남성을 초록색 요정이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이 초록 요정은 투명한 녹색을 띠고 있는 술, 압생트Absinthe를 상징화한 것이다. 70도가 넘는 압생트는 마시고 나면 요정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 취하게 만드는 묘주였다. 이성을 무너뜨릴 만큼 강한 독주인 압생트는 그 당시 유럽 전역에서 금지됐으나 체코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와인과 위스키보다 가격도 싸고, 또 금세 취기가 오르는 초록색 술 한잔에 가난한 예술가들은 기꺼이 요정의 재림을 받아들였다.
호기롭게 압생트 한잔을 주문한다. 살짝 녹은 설탕과 함께 섞어 마시는 술은 뜨거운 불길을 만들며 식도로 흘러간다. 몇 잔을 들이켜야 초록색 요정이 찾아와 줄지는 알 수 없었다.
슬라브카페 Cafe Slavia
주소 Smetanovo nábřeži 1012/2 Praha 1 110 00
운영시간 월~금요일 오전 8시~밤 12시, 토~일요일 오전 9시~밤 12시
홈페이지 www.cafeslavia.cz


1 무하를 사랑하는 도시, 프라하에는 그가 추구했던 아르누보의 감성을 이어받은 건축물을 쉽게 볼 수 있다 2 호텔 파리Hotel Paris 1층에 위치한 사라 베르나르 레스토랑. 아르누보 투어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명소다 3 슬라브 카페는 프라하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Art Nouveau & Utopia
이상을 찾아 헤맨 사람들, 아르누보를 품다


마리오네트 인형은 프라하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필수 기념품으로 여겨질 만큼 인기 있는 품목이지만 실제 마리오네트 연극은 우울하고 음습하기 짝이 없다. 독일어로 된 연극이 아니면 무대에 올리지 못했던 체코 예술가들은 지나가는 행인을 상대로 하나 둘 인형극을 펼치면서 마리오네트는 그들에게 유일한 배우이자 삶의 돌파구가 됐다. 사람이 조종하는 대로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마리오네트를 보고 길거리 예술가들은 체코인과 지배자의 관계를 투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카렐다리 위에서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인형극이 열리고 그것이 프라하의 낮과 밤을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체코인들이 언제까지고 마리오네트로만 살았다면 프라하가 낭만의 도시로 각인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19세기 예술가 사이에서 체코의 영광을 되찾자는 민족부흥운동이 점화됐고 현실에 바싹 메말랐던 민심 사이로 그 불길은 활활 타올랐다. 지배자의 문화와 사상과는 단절된 체코인만의 새로운 것, 새로운 양식을 갈망했던 사람들은 당시 유럽에서 싹 트기 시작한 아르누보Art Nouveau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했다. 체코의 이상을 찾아 헤맨 사람들은 프랑스와 벨기에, 영국 등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르누보를 자신들의 색채로 물들여 갔다. 새로운 예술 운동을 펼쳤던 예술가들 덕분에 프라하는 과거의 영광만 담는 그릇이 아니라 아르누보의 역동적인 실험장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구불구불한 선, 장식적인 패턴의 반복, 화려한 색감 등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아이콘들이 프라하 곳곳에 수놓아졌다. 체코인의 민족의식과 결합한 아르누보가 중세를 간직한 프라하에 스며들어갔다. 그래서 프라하를 제대로 여행하려면 새 시대를 향한 열망이 집약된 ‘시민회관Obecni Dum’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콘서트홀, 사교장, 카페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인 시민회관에는 체코인의 자존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체코인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 특별한 공간을 제안했고 1912년 시민회관 건립 당시 건축가, 예술가 등 체코의 내로라하는 유명 예술가들이 시민회관 건립에 참여했다. 체코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인 스메타나 사후 1주년 공연도 이곳 시민회관에서 열렸으며 스메타나필하모니는 그가 가슴으로 작곡한 <나의 조국>을 연주했다. 

특히 시민회관에서는 예술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체코 대표 화가인 무하는 시민회관 입구를 설계 했을 뿐만 아니라 프라하 시장을 위해 만든 전용 홀 건립을 전담했다. 시장홀은 현재 ‘무하의 살롱’으로 통칭될 만큼 무하의 예술과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공간이다. 계단과 벽면, 환기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매만졌던 예술가는 비록 파리를 주 무대로 삼았지만 누구보다 더 체코를 갈망했던 진보적인 예술가였다.

아르누보Art Nouveau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유행한 예술 사조. 알폰스 무하의 그림에서 보여지듯 화려한 선과 식물을 모티브로 한 패턴들, 긴 머리의 여인, 철제 난간 등 장식적인 화풍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아르누보는 시대의 전환을 요구하는 신진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펼친 예술 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 공예 등 실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아르누보는 박물관과 갤러리에서만 소비됐던 예술을 서민의 삶으로 전이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시민회관Obecni Dum
주소 nam. Republiky 5, 111 21 Praha 1  가이드투어 290코루나부터
홈페이지 www.obecnidum.cz 


밤에 붉을 밝힌 프라하. 도시의 분위기가 전환된다. 새빨간 트램을 타고 하루종일 누벼도 좋을 도시

프라하에 스며든 무하의 영혼

아르누보의 매력은 여행자의 발길을 무하박물관으로 이끈다. 무하의 전세계적 인기를 증명하듯 박물관 안에는 각국의 관광객들이 찬찬히 그의 작품을 훑고 있다.
전시장은 무하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화풍의 그림들로 가득하다. 파리에서 가장 유명했던 배우인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ard의 포스터를 그리면서부터 소위 잘 나가는 화가의 반열에 오른 무하는 식물 덩굴에 둘러싸여, 말 그대로 여신과도 같은 여인들을 그린 그림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길쭉한 사각형 안에 당시 아이돌급 여배우였던 사라를 거의 실사 크기로 담아낸 포스터를 보고 파리 시민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에 열광했다. 붙이기가 무섭게 떼어가는 바람에 무하의 포스터를 제작하는 인쇄소는 밤낮없이 기계를 돌려야 할 판이었다.

물론 무하는 특유의 장식적인 화풍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독창적인 예술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가 여기서 그치는 화가였다면 지금과 같이 체코인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는 없었을 거다. 1860년에 태어나 1939년에 숨을 거둘 때까지 수많은 애국 활동에 가담하면서 체코를 잊지 않았기에 시민들은 그에게 경의감을 표한다. 또한 예술은 특정 계급만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던 무하는 포스터, 간판, 액세서리, 심지어는 담뱃값과 초콜릿 포장지까지 디자인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펼쳤다. 예술 특유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던 무하는 대중 속으로 깊게 스며들었다. 지금도 프라하 시내에는 그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서 만든 아르누보식 호텔이 운영 중이며 체코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꼭 맞는 체코 음식을 내놓는 호텔 1층 레스토랑을 사라 베르나르로 부르면서 무하를 추억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운 좋게도 무하의 손녀딸로 그의 예술 활동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야밀라 무하 플로츠코바씨를 만날 수 있었다. 플로츠코바씨는 무하부티크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하는데 이 세상에서 오직 그녀의 손을 거친 작품만이 ‘무하’의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플로츠코바씨는 무하가 드로잉과 스케치만으로 남긴 작품을 직접 재연하기도 하고 무하의 작품을 통해 받은 영감을 독창적으로 해석해내 자신의 예술로 구현하고 있다. 무하와 연장선상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미스 무하, 플로츠코바 역시 유리 공예, 목걸이와 귀걸이, 스카프 등 생활과 맞닿아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무하는 1910년, 체코로 귀환했다. 시민들은 비엔나, 파리, 뉴욕 등 예술의 중심지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다가 명성을 얻고 돌아온 그를 반겼다. 그가 다시 찾은 조국에서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는 무하박물관에서 살짝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파스텔톤의 포스터들 너머로 전시의 맨 마지막에 무하의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어두침침한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는데, 이 작품의 이름은 바로 <황야의 여인>. 슬라브족 여인이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보일듯 말듯 빛나는 하늘의 별 하나를 보고 꺼져 가는 희망을 붙잡고 있다. 무하는 체코로 돌아와 평생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슬라브 서사시>를 그리는 데 매진했다. 한 작품이 벽면 전체를 꽉 채울 만큼 규모에서부터 압도적인 이 그림은 항상 핍박받고, 외세에 시달렸지만 예술과 문화를 잃지 않은 모국의 신화와 역사를 담아냈다. 꽃과 나비가 등장하는 소녀풍 그림의 화가로 생각했던 무하가 보여준 반전은 화려한 겉모습 안에 아르누보를 품은 프라하의 이면과 닮아 있다. 나는 두 번째 여행에 이르러서야 프라하와 무하를 제대로 발견한 것 같다. 

이 연작에 혼신을 다한 예술가는 총 20편의 <슬라브 서사시>를 1928년에 완성하고 프라하에 무상 기증했다. 프라하국립미술관에서 연말까지 개최되는 ‘슬라브 서사시’ 특별전을 통해 장엄한 무하의 예술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현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전’을 통해서도 슬라브 서사시가 만들어졌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1 무하박물관의 기프트숍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2 마침 예술의 전당에서 대규모 무하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3 무하의 피를 이어받은 플로츠코바씨는 무하의 예술의 명맥을 이음과 동시에 자신의 것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4 사라 베르나르를 그린 포스터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무하. 무하박물관은 독특한 무하 스타일의 그림이 집약된 곳이다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체코관광청 www.czechtourism.com

무하박물관 Muchovo Muzeum
주소 Kaunicky palac Panska 7, 110 00 Praha 1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홈페이지 www.mucha.cz
무하아트 & 디자인부티크 Mucha Art & Design Boutique
주소 Maiselova 5, 110 00 Prague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홈페이지 www.muchaplockova.com



“꽃과 나비가 등장하는 소녀풍 그림의 화가로 생각했던
무하가 보여준 반전은 화려한 겉모습 안에 아르누보를
품은 프라하의 이면과 닮아 있다. 나는 두 번째 여행에
이르러서야 프라하와 무하를 제대로 발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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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3-10-29 01:12:34 해외여행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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