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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책-책이냐 잠이냐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3.11.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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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책을 보다 잠드는 것’이었다. 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책을 읽는 도중에 잠이 든다는 것은 곧 그 책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잠이 온다는 것은 그 내용에 완전히 심취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내용이 재미가 없거나 이해할 수 없다면 그대로 덮어두는 것이 가장 적절한 처사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단언컨대 책을 읽다가 절대로 졸지 않았다. 제대로 말하자면 졸리더라도 절대 자지 않았다. 물론 나에게도 재미없는 책이,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앞에 두고 재미를 찾아보려, 의미를 찾아보려 글자 사이사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면 의지와 다르게 잠이 솔솔 찾아오는 것이 당연지사. 자간이 뭉개지고 똑같은 문장을 몇 번씩이나 다시 읽게 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눈을 부릅뜨고 견디었던 것이다. ‘이건 책에 대한 모독이자, 나에 대한 실망이다’라며.
이런 나에게 독서 중 졸음 퇴치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우선 커피를 마시거나 잠시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졸음을 달아나게 하는 것이 첫째. 스트레칭을 하거나 먼 곳을 바라보는 등의 방법도 있다. 이 과정이 정말 처절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눈은 반밖에 떠지질 않고 몸은 이미 수면 상태에 든 것처럼 천근만근인데도 ‘잘 수 없다’는 정신력만으로 꾸역꾸역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다음으로는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것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자야 하는 시간대에 책을 읽으면 무조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책을 존중해야 하나 자야 하나.
 
이런 식으로 이를 악물고 지켜 온
나의 ‘책보다 잠들지 않기’는
가학적인 한편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왜 과거형이냐고? 결국 깨졌기 때문이다. 불굴의 의지를 갖고 지켜 왔던 철칙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요즘 나는 ‘잠자기 전 책을 보다 잠들기’란 새로운 규칙을 만든 사람처럼 책을 보다 휘리릭 잠들고 있다. 마치 버릇처럼 책을 펼치고 두어 줄 만에 골아떨어진다. 다음날 어제 읽었던 두어 줄마저 기억이 나질 않아 황망히 첫 페이지를 펼치기 일쑤다. 그러다 기억나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그 씁쓸함이란. 불을 끄고 누워 잠을 청하던 어느 날엔 불면증처럼 잠이 안 왔고 나는 마치 수면제를 찾듯 책을 찾기까지 했다. 나와 책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나는 책에 의지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머리맡에 쌓인 책들을 뒤적거렸고
두어 페이지가 넘어갈 무렵이 되면
복잡했던 머릿속에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득 차곤 했다.
 
비오는 영국의 풍경이, 차를 타고 내달리는 스페인의 새벽이, 언덕을 오르는 중국 소년이 그림이 되어 마음속에 걸렸다. 내일에 대한 걱정, 풀리지 않는 문제들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글자들은 나에게 걱정할 시간도, 공간도 내어주지 않았다.

고민과 걱정으로 뒤척이는 밤, 책에 기대어 걱정을 잊은 채로 잠드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책이 걱정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을 믿게 됐으니, 오히려 신뢰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책은 쉽게 걱정을 날려 버리지 못하는 쿨하지 못한 나에게 믿을 만한 친구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머리맡에는 믿음직한 친구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글  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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