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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제주도-제주에 살어리랏다

  • Editor. 트래비
  • 입력 2013.12.03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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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Travie writer 정은주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평소에도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였지만, 그때만 해도 몰랐다. 이 노래 가사처럼 정말로 우리가 제주로 떠나올 줄은.
그게 벌써 2년 전, 딱 이맘때쯤 일이다. 사실 그전부터 나는 틈만 나면 사방팔방 소리 높여 ‘도시 탈출’을 외쳐댔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럼 뭐 하고 살 건데?”라는 반격의 한 방을 날렸고, 내가 내놓은 대안은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내 앞에 ‘제주’라는 신세계(?)가 나타났다.
 
그해 4월, 제주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머릿속에 불이 ‘반짝’ 하고 켜진 것처럼
 ‘게스트하우스’라는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먼 훗날 펜션 주인장을 꿈꾸던 그에게도
구미 당기는 해법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루하게 반복되던
문답이 드디어 끝났다. 오, 유레카!
 
그렇게 시작된 제주행 프로젝트는 생각만큼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제주도는 면적만 서울의 3배가 넘는다. 제주도 어디에서 살지를 정하는 것이 첫 단추였다. 다행히 둘 다 동쪽 지역이 더 끌렸고 새 집을 지을 땅도 비교적 쉽게 구했다(솔직히 위치가 썩 마음에 든 건 아니었지만 백배 양보했다. 그는 알까?). 그 다음은 집을 지을 동안 살 곳을 마련해야 했다. 수소문 끝에 근처 농가주택을 겨우 구했더니(시골에서 빈 농가 찾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번엔 금세 나갈 것 같던 집 전세가 도통 빠지질 않는 거다. 계약 기간이 한참이나 남아 있었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새로운 세입자를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결국 집을 비워 둔 채 제주로 이사를 강행했다. 도시의 계산법으로는 손해 막심한 일이지만, 마냥 들떠 하루라도 빨리 제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사 가는 날엔 오락가락 비가 내렸다. 슬리퍼와 추리닝 차림에 나타난 이삿짐 센터 직원들을 보고 허걱! 했지만 그럭저럭 이사는 잘 마쳤다. 날은 가고, 해는 바뀌는데 건축 일정은 자꾸 미뤄지고, 새로운 세입자는 나타날 생각을 안 하고…. ‘제주가 날 거부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꿋꿋이 견뎌냈다. ‘흥! 내가 이깟 것에 질 줄 알고?!’

제주에서 새 삶을 꾸려나가는 일은 재밌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고 때론 지루하기도 했다. 둘 다 도시 태생인 우리에게 제주는 확실히 ‘신세계’였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했지만, 반면에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했다. 조금만 나서면 펼쳐지는 푸른 바다, 햇살 가득한 마당에 마음껏 널어놓은 빨래들, 휴대폰조차 잠잠한 한적한 오후 한때를 만끽하고 나면, 그 이면에는 해풍에 금세 삭아 버린 새 자전거,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거센 돌풍,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심심한 마을 골목길이 펼쳐진다. 상상 속 ‘제주 살이’와 현실 속 ‘제주 살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깊었다.

시골생활이란 온갖 벌레들과의 상생을 뜻한다는 것도 이때 처음 깨달았다(오래된 농가주택에서 바구미들과 뒹굴며 살았으니 말 다했다). 게다가 처음 맞는 제주의 겨울은 너무나 춥고 길었다. 누가 제주를 따뜻한 남국이라 했는가! 창문에 둘러친 방풍비닐은 바람이 불 때마다 어찌나 숨을 크게 쉬어대는지.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여름 새 집으로 이사를 왔고, 게스트하우스도 문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제주 살이 3년차, 벌레들과 상호 영역
불가침 협약까지 맺은 데다 때때로
거센 제주 바람이 그리울 정도니
이 정도면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심지어 이젠 자연스럽게 ‘육지것들’이란
말까지 쓰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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